본격 우리 역사 스토리텔링쇼 #벌거벗은한국사 00:00 세종이 두번째 며느리를 뽑은 기준 02:15 두번째 며느리 순빈 봉씨 05:00 순빈 봉씨의 온갖 만행들 08:20 세종이 내린 특단의 조치! 10:25 순빈 봉씨의 임신이 거짓이었다?! 13:15 궁녀 소쌍을 향한 순빈 봉씨의 사랑 16:10 결국 두번째 며느리를 쫓아내다! 17:10 총 4명의 며느리를 폐출시킨 세종 20:48 왜 4명의 며느리를 쫓아냈을까?
세종은 리 씨의 역사에서 가장 처녀 성 노예를 그 나라에 헌정했습니다. 세종은 밍 국가의 백업으로 종교의 국내 정치, 종교를 안정시켰다. 결과적으로 세종은 자국의 소녀를 종교에 팔았습니다. 성 노예는 명나라의 명령에 의해 강간 당했고 노화로 매력을 잃었을 때 한국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들은 한국인들에 의해 차별되었고 남은 생애에서 외로워졌습니다.
@@opchi2045 tmi로 이야기하자면 문종은 지금 기준으로 하면 마초남에 가까웠음 풍채가 좋고 수염이 아름다워 삼국지 관우의 풍모를 보였다고 함 명나라 사신이 문종 세자 시절 얼굴보고 '와 ㅅㅂ 이 나라는 자연환경이 좋아서 그런가 이리 아름다운 인물이 다 나네' 이랬다고 함 이외로 지금 기준으로 미남형 얼굴은 연산군 이었음 연산군일기의 기록에 따르면 키가 크고 가녀린 체형에 하얀 피부에 고운 이목구비를 갖고 있었다고함
봉씨가 시대를 앞서간게 아니고 동성애 자체는 역사적으로 내내 존재해왓엇음. 서양쪽 얘기 뿐만 아니고 우리나라도 기록이 종종 잇어왓음. 조선을 거치고 근현대를 지나면서 오히려 문화가 좀 더 보수적으로 바뀌어서 예전에는 저런 사상 자체가 존재햇겟나라고 다들 짐작하는 것일뿐, 동성애 자체는 세계사적으로 항상 존재해왓엇고 오히려 지금 보다도 더 개방적이엇음. 우리나라만해도 고대 삼국시대부터 동성애관련 기록들이 종종 잇고 오히려 당시엔 지금보다도 특이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좀 더 일반적이엇다고 함.
@@user-rq2ip3oz9i ? 영상에서 열녀전이 뭔지 설명해 줬어요 이미 ㅋㅋ 설명은 감사한데 이 영상 본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 입니다. 제가 댓글 단 내용이 이해가 안되셨나본데 당시에 여성위인은 입꾹닫 하고 남편과 가정을 봉양하고 손발 닳게 자기 희생을 실천한 여성들을 위인으로 삼았지 남자보다 목소리가 크고 자기 의견이 뚜렷하며 커리어가 대단한 여성을 위인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에 열 받는것 입니다..
@@user-qw8dr7xv7x 1. 열녀전에는 나름 커리어 쌓은 여자들도 나옵니다 2. 여자들이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배경에는 힘든 육체 노동이 거의 사라지고 서류나 사무실 내의 가벼운 노동으로 충분히 업무가 가능한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3. 길게 갈 것도 없이 70-80년대처럼 일일이 모든 문서를 수기로 작성해서 결제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면 여자들 커리어는 상당히 많이 제한되었을 것입니다. 저 열녀전이 한나라 시대 나온 책인데 조선 기준으로도 천년 전이니 ....
@@user-qw8dr7xv7x 그리고 예전에는 남편에 대한 희생과 가족 봉양의 대가로 상당 부분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었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적처는 엄청난 권위를 지녔습니다 지금은 페미니즘의 영향과 전통 가족 제도 붕괴+새로운 것은 안 생김 이 둘의 결합으로 전통적 여성 행동에 부정적으로 보게 된 것 뿐이지요
그래도 세종께선 본인이 살아계셨을 땐 가내 두루 평안하기라도 했지(세종 승하 직후 문종도 갑자기 승하, 어린 조카에 몹쓸 숙부 왕위 찬탈 들어가고 솔직히 생판 남이고 처음보는 며늘사위 인성 맞추는게 어디 쉬운 일인감), 영조 인조 선조 이 셋은 사는 내내 지 손으로 지 가정을 풍비박산 낸 꼴통 애비라 대왕과 비교하면 너무 섭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영조 - 유치원생 아들을 영재교육하겠답시고 윽박질러대더니 나중되선 혼자 알아 척척하면 지 무시한다고 쌍욕, 물으면 혼자 못하는 병신으로 매도한 최악의 애비. 결국 아들은 연쇄살인마가 되서 왕자로 태어나 아사하는 걸로 종결. 인조 - 인질로 끌려간 아들이 조선에 오자마자 몸구멍에 피를 다 쏟고 사망(유력용의자 1호) 그 아들의 처에게 역모누명, 손주들에게까지 죄를 물어 줄초상보냄 선조 - ㅈ을 ㅈ대로 다루었나, 자식농사가 죄다 ㅈ같아서 왕자 세 놈이 국운이 걸린 전쟁통(임진왜란)에도 백성들을 강간, 납치, 폭행, 강탈, 심지어 살인까지해서 원성이 자자한데도 쌩까고(이 중 하나가 인조애비되는 인간임. 그래서 인성이 그 모양이던가..) 그나마 멀쩡하던 왕자인 광해도 질투해서 인성나락보낸 원흉
자유영혼이었던듯요. 조선초라서 아직 고려시대 자유스러움이 남아 있었는데 수도는 그래도 유학적으로 갔지만 지방은 아직 원초적인게 남은 상태 순빈봉씨는 지방출신이래요. 그리고 첫며느리가 덩치가 크고 얼굴 검고 좀 못생겨서 두번째는 덩치가 작고 피부가 하얀 가녀린 미녀를 뽑았어요. 아들이 첫 며느리한테 관심이 없었거든요. 근데 봉씨에게도 관심이 없었던(둘다 성격이 안맞음) 봉씨가 들어 온 후 이미 권씨와 홍씨가 마음에 들어 온 상태... 문종 입장에서는 뭐 저런 무식한 여자가 다 있어 하는 수준이 봉씨였어요.
김씨는 어리숙하고 소심하고 답답해서 대화 안통하고 봉씨는 뭐 무식.요란.정신없는 수준 그리고 둘다 지적인 문종과 대화가 안통했다고 해요. 아시다시피 세종의 아들 딸 들이 다 똑똑한 보고 자라온 부류와 너무 다르고 엄마랑도 너무 다르죠. 여동생과도 다르고...권씨와 홍씨는 반대로 말이 통하고 행동이 조용했다 해요. 잘 교육받은 아가씨들이었죠.
유교국가에서 미신적인걸 궁에서 하는 건 위신이 안서니까요. 그렇게 첫째를 쫓아냈으니 2트는 안되겠다 싶어서 두번째는 안내치고 봐주다 터진게 아닐까요? 아무리 요새 결혼이혼재혼이 쉽다지만 재혼만 수차례하는 사람을 좋게 보지않는데 그 시절이라고 다를까요. 며느리가 이상해서 그렇다고해도 한두번이지, 계속 그럼 이상한 며느리만 뽑는 사람이 문제가 되는건데
닥터프렌즈라는 유투브 채널에서 세종의 건강에 관해서 기록을 토대로 병명을 추적하는 내용의 영상이 있었는데, 세종이 지병이 엄청 많고 많이 아팠다고 하더라구요. 아마 자신의 몸이 그렇게 아프니 자손들은 건강하게 살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건강한 며느리에 집착하신게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하나 더 쓰면 조선 시대 특히 초중기에는 우리가 사극에서 보는 것 처럼 주전자에 담아서 작은 잔에 졸졸 부어 먹는 것이 아니라 큰 그릇이나 독에 담아 놓고 잔도 아닌 그릇에 따라 마셨습니다 그러니까 큰 그릇에 담아 마셨다는 건 지금으로치면 최소 국그릇 정도되는 그릇에 마셨다는 말이 됨
맨 처음에 들어오자마자 쥐어준 열녀전 집어던졌다길래 나 같아도 싫긴 하겠다 조선시대에 살기엔 너무 자유로운 영혼이었나,,? 했더니 가면 갈수록 망나니도 저런 망나니가 없네ㅋㅋㅋㅋ 저 집안에선 무슨 자신감으로 궁에 들여보냄? 제정신 아닌 애라고 귀띔이라도 해줬어야지 권력욕에 눈이 멀었나
둘째며느리는 그냥 폭행범에 강간범, 주정뱅이인데 여기 몇 댓글보면 어디가 시대를 앞서 나갔다는건지... 요즘 시대에 태어났으면 오히려 봐주는거 없이 매장 당하지.. 근데 그 담에 다른 왕자들의 두 며느리는 아파서 쫒아내는건 진짜 모질다.. 이제 왕실의 사람이 된건데 사람이 아프면 내 가족이 아프다는 생각으로 돌봐주고 치료해주는 노력을 해야지 그냥 내쫒아 버리넴..
며느리의 증세가 정신병적 증세가 있으니 나라의 종사를 맡길 수가 없다 라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겠지요. 건강한 세손을 빨리 봐야 왕권이 안정되는데 아들 부잣집에 바람잘 날 없던 태종시대의 비극을 잘 아는 세종 입장에선 더더욱 건강한 적장자 세손을 봐서 안정시키고 싶었겠지요. 하지만 세종의 바램대로 되지 않고 결국은 수양대군이 피바람을 일으켰지요.ㄷㄷㄷ
18:02 에이 이건 결혼 해서 병이 생긴 게 아니라 애초에 사기결혼이지..... 부모는 분명 알았을텐데 속이고 결혼시킨거지. 요즘도 이러면 혼인 무효일 듯. 봉씨도 보통 아닌 거 친정에서 알았을 텐데 억지로 궁궐로 보냈네. 근데 세종이 극성이긴 하네요~ 치맛바람.....아니 용포바람 오지네~~
막내아들 송씨하고 재결합해서 백년해로하고 돈도 많이 벌고 그렇다고 알고 있는데.. 세종의 개인재산(?) 중 제일 많이 물려준 아들이 막내고.. 또 송씨가 장사수완이 좋아서 돈을 불리고.. 요즘이면 삼성같은 대기업 총수라고 할 수 있을 거라고 들은 것 같아요.. 그냥 첨부터 쭉 살게 하지.. 세조 때까지 잘 먹고 잘 살았다던데.. (제가 혹시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재결합한건 맞았던듯요. 남씨는 좀 문제가 있었던듯요. 지금으로는 발달장애가 있었던거같구요. 송씨(단종왕비의 고모)는 친정가서 병을 치료하는데 성공했어요. 둘사이는 애틋했어요. 딸을 둘 낳았고(한명만 커서 결혼함) 딸이 시집가서 낳은 아들은 연산군딸이랑 결혼해요. 송씨때문에 쫏겨난 정씨의 남동생이 문종 사위 ㅎㅎㅎ 다들 연결됬어요. 막내아들이 세조 편을 잘 들어서 잘 살았죠. 자기 처조카(정순왕후)와 친조카(단종)도 버리고 우리가족끼리만 잘 살자였거든요.
세조는 단종의 세자빈 간택을 주도한 사람입니다. 외척이 막강하지 않고 재력등에서 좀 떨어지는. 자신의 어릴적 과거 급제 친구 집에 가서 처자를 구해 옵니다. 그 친구 누이는 세종이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응원군의 부인으로 삼았고요. 또,친구인 송현수에게 딸을 단종의 세자빈으로 삼게하죠. 왕실 가족을 모두 자신이 컨트롤 할수 있는 가문들로 셋업 시킨거죠. 그런데. 단종을 폐하고 자신이 등극하고자 하는 욕심을 드러내기 시작한 이상 단종의 울이 되어주는 정종과 그의 누이 정씨 부인은 갈라 놓아야 했지요. 그 당시 궁궐 바로 옆에 민가 60 여채를 헐고 직접 지어준 세종으로 인해 이미 그들은 젊은 재력가와 세도가가 됐으니까요. 이들의 이혼은 정치적인 뜻이 다분한 것 같습니다.
세종 입장에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세종의 어머니 원경왕후와 부인 소헌왕후의 친정이 멸문지화를 당했는데 누가 왕가에 딸을 시집보내고 싶겠어요? 그건 곧 가문이 끝장난다는걸 뜻하는데요. 문종의 입장에서도 그걸 인지하고 있었을테니 자신의 배우자를 궁 밖으로 내보내주고 싶었을 거에요. 아버지 세종이 절대 용서하지 못할 스캔들을 만들어 세자빈을 쫒아내게 만들려고 계략을 꾸민거라고 봐야죠.
???????? 개인의 해석은 자유지만 영상의 내용이 실록에 기재된 걸 바탕으로 한 건데요 그리고 세종의 어머니와 부인의 가문을 숙청한 건 태종의 강력한 의지로 밀어붙인 거라 태종 사후 세종이 굳이 그럴 의향은 확실히 없어 보이고요 대체로 제왕이 기가 너무 세면 정실 부인과 해로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더라고요 음~ 똑같은 경우는 아니지만 한나라 무제, 청나라 강희제는 황후들이 다들 폐위당하거나 오래 살지 못했는데 문종도 왠지 정식으로 혼인하면 부인들과 오래 못 사는 그런 운명이었던 게 아니었나 추측합니다
나만 세종 마음이해가? 3,4번째 며느리는 내가 알기론 세종이 잔병치례많이 해서 자신처럼 자식들이 아프지 말라고 쫒아낸거도있고 애 임신 하더라두 같이 죽는경우도 많아 그런거 같은데 1번째 며느리는 아들이 안좋아하니 세종입장에서 어쩔수없는거고 2번째 며느리는 고민하며 참다가 폭팔한거 이해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