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미스테리 : 전세계 각종 신비스럽고 오싹한 미스테리 이야기 소개 ■ 금요사건파일: 국내 사건사고를 재조명 ■ 귀로듣는영화: 공포 스릴러 위주의 반전영화를 나레이션으로 소개 ■ 본 영상에는 이해를 돕기 위해 실제 사진 외에도 참고 사진을 함께 사용하고 있습니다. ■ 비지니스 문의: jbsnetwork7@gmail.com 감사합니다.
과거 병원에서 일했을 때 손가락 절단 환자가 왔었는데 덩치 3명이 옴. 딱 보니 조직으로 보였음. 당시 상황은 1명이 손가락 2개 정도 잘려서 왔고 형님이라는 사람이 손가락 어딨냐며 빨리 수술하게 내놓으라고 했었음. 근데 그 절단한 사람은 절대 얘기안하고 아닙니다 행님 그런 상황이었음. 근데 이미 여러 손가락이 없었던 상태였음. 그때 엄청 예쁜 와이프가 와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보고 있었고 형님이라는 사람과 당사자는 계속 손가락 어딨는지 얘기해라 아닙니다 행님 그러고 있었음. 국내 조직에서도 비슷한 문화가 있나 봄..실제로 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더 집중이 되네요.
오늘 내용이 야쿠자에 관한 내용이어서 그런지 시카님의 속눈썹이 유난히 강렬합니다.!;;; 영상을 보면서 그들이 얼마나 강하고 무서운 존재인지 알 수 있었던 거 같아요;; 하지만 한편으론 저들도 한낱 인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강력함을 뽐내던 그들이지만 저들도 세월을 거를 수 없고 결국은 여느 사람처럼 힘없고 초라한 노인이 되어 버리니 말입니다.... 인생이 다 그런거 같아요.. 떠오르는 때가 있으면 지는 때도 있듯이 말이죠! 오늘 야쿠자의 관한 시카님의 설명 잘 들었습니다.! 영상 감사해요~
일본 소형 관광선 카즈 1호에 대해서도 부탁드려요. 얼마전에 사고났는데 며칠째 일본에서 탑 뉴스 중 하나로 계속 보도되고 있어요. 파도가 3미터로 친다는데도 출항한점, 회사의 안테나 고장으로 연락이 안된 점, 선주가 작년에 2번 좌초사고를 일으키고 배에 균열이 갔음에도 수리하지 않은점 등.. 승객은 사망하거나 실종상태입니다. 구조된 사람이 없어요..
야마구치구미 내분 역사는 19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죠. 2차세계대전기였던 1942년에 2대 조장 야마구치 노보루가 연예사업 관련 항쟁(야쿠자들 사이의 전쟁을 항쟁이라 함)으로 목숨을 잃고, 이후엔 전쟁이 격해짐에 따라 제국경찰의 단속이 심해져 사실상 와해상태가 되버립니다. 이 와중 1943년에 조직의 행동대원이자 1936년 항쟁 당시에 상대 조직원을 살해해 징역8년을 언도받은 [타오카 카즈오]가 7년만에 특사로 출소, 조직을 장악하여 3대 조장(오야붕) 자리에 오릅니다. 타오카 카즈오 3대 조장의 별명은 이른바 야쿠자를 뛰어넘은 대오야붕이라죠. 타오카 조장은 코베항 항만하역, 경륜, 경마, 연예사업등을 통해 부를 쌓았고, 직계조직들을 동원하여 오오사카 전쟁, 호쿠리쿠 대리전쟁 등의 전국정벌 항쟁에서 승승장구 하며 코베의 군소조직에서 전국구 조직화, 1970년대에는 조직원 1만여명을 넘어서는 일본 최대의 조직으로 만들어냅니다. 또한 조직의 폭력부문과 사업부문을 철저히 이원화하여, 일본의 고도성장에 분승하야 엄청난 부를 얻게 됩니다. 1960년대 당시 야마구치구미의 와카슈(말단 코붕)의 수입이 월 330만엔이었으니 말 다했죠. 다만 폭력부문과 사업부문의 이원화로 조직 결속력은 약해졌는데 이 점은 타오카 조장과 여러 항쟁에서 활약한 와카가시라(부두목) 야마모토 켄이치의 카리스마로 억눌러서 바로 문제화 되지는 않았지요. 다만 1978년 교토의 벨아미에서 타오카 조장이 저격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 지도부가 흔들리게 됩니다. 이 사건의 보복을 실시한 야마모토 와카가시라도 구속좌죠. 3년뒤에는 타오카 조장이 지병으로 사망, 그 7개월 뒤에는 야마모토 와카가시라가 간경변으로 사망하면서 지도부 공백이 심화됩니다. 이후 조장대행을 맡았던 사업부의 대표이자 경제야쿠자인 야마모토 히로시, 와카가시라역이자 무투파인 타케나카 마사히사가 4대 조장 자리를 두고 경합, 조직의 돈줄을 쥐고 있던 와카가시라 보좌(부두목 보좌) 타쿠미 마사루와 행정을 장악한 본부장 키시모토 사이조 및 죽은 타오카 조장의 부인인 후미코 여사의 지지를 받은 타케나카 와카가시라가 조장에 취임합니다. 문제는 야마모토 히로시파가 이러한 움직임에 반발, 야마모토를 지지하던 직계조장이자 와카가시라 보좌였던 카모다 시게마사를 시작으로 7000여명의 조직원이 조직을 이탈하여 [이치와카이]를 구성합니다. 그러나 타케나카 조장의 지도력 아래 결집된 야마구치구미는 회유와 협박을 통해 이치와카이의 조직원 절반 이상을 복귀시키거나 은퇴시켰고, 위기를 느낀 이치와카이 측은 암살을 계획, 타케나카의 애인이 살던 아파트 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타케나카 조장과 나카야마 와카가시라를 살해합니다(1,2인자가 동시에 사망). 이후 야마구치구미와 이치와카이 사이에사 전면항쟁이 발생, 1년만에 200회가 넘는 시가 총격전이 발생하는 등 피로 피를 씨는 유혈극이 1989년까지 이어집니다. 결국 1989년에 야마모토 히로시가 항복함으로서 일본 최악의 야쿠자 내전 야마이치항쟁은 종결됩니다. 이러한 내전으로 인해 일본의 검경과 시민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고, 이에 더해 1990년 11월엔 오키나와에서 폭력단간 분쟁에 휘말려 고교생 1명과 경관 2명이 총격을 맞아 사망, 폭력단, 즉 야쿠자를 고사시키는 폭력단 대처법 및 폭력단 배재조례 결성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사실 이전에도 야쿠자 배재를 위해 조직 지도부급을 대거 검거하는 정상작전이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3차례 이루어졌고, 수천여명의 조직원들이 구속됩니다). 이후 야마구치구미의 5대 조장에 1981년 간경변으로 사망한 야마모토 켄이치 와카가시라의 조직인 야마켄구미 출신 와타나베 요시노리가, 위에 언급한 주식과 부동산의 귀재 [야마구치구미의 금고지기] 타쿠미 마사루의 지지를 얻어 조장에 취임하죠(오타나베 요시노리가 조장, 타쿠미 마사루가 와카가시라에 취임한 2인 지도체제). 그러나 와타나베 조장은 조장이면서도, 자신을 조장으로 만든 타쿠미 마사루 와카가시라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이래저래 불만을 가지게 됩니다. 결국 이 갈등이 폭발하여 1993년에 와타나베의 지시를 받은 나카노카이의 조직원에 의해 타쿠미 마사루가 살해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건은 내부에서 수많은 의혹과 불만을 낳았고, 결국 2004년에 나고야를 거점으로 둔 하부조직 고도카이의 회장 츠카사 시노부(본명 시노다 켄이치)가 사실상의 쿠테타를 실시, 타쿠미 와카가시라 살해사건을 빌미로 약점을 잡아 와타나베 조장을 은퇴시키고 자신이 6대 조장에 취임합니다. 츠카사 시노부 6대 조장은 이후 자신의 계파인 나고야 고도카이의 독주체제를 확립시켜버립니다. 이에 2015년경에 원래 주류계파이자 5대 조장의 출신조직인 야마켄구미의 이노우에 쿠니오 조장을 비롯한 코베계 조직원들이 야마구치구미를 이탈, 코베야마구치구미를 조직하여 본가와 현재까지도 내전중이죠. 결과적으론 1985년의 야마이치항쟁이 현재까지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생각합니다. 4대 타케나카 조장의 사망이 불러일으킨 나비효과가 아닐지 말이죠.
대한민국 우리나라 사람들은 폭력을 싫어합니다. 거대 범죄 집단 세력들이 생기지 않도록 정부가 치안관리을 잘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범죄 세력 집단은 안 궁금해하셔도 됩니다. 세상의 어둠 보다 세상의 밝음을 알아가기도 바쁜 시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영상 기획 하신다고 수고 많으셨어요
야쿠자?ㅋㅋ 나이 먹고도 지들 세상에 갇혀 사회의 뭐라도 되는 줄 도취하는 꼬라지가 개웃김. 30년간 목숨 내놓고 바닥부터 굴려질 각오와 노력이면 차라리 10년 각잡고 외시,행시 준비하는 게 남는 장사지. 인생 흐를수록 어떤 게 '진짜' 힘이 될지 계산도 못 하나ㅋ 요즘 사람들은 정상인 취급 안 해주니 현실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