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에 공감합니다. 원균같은 소장(또는 리더)이 경영진이 볼때는 일을 잘하는 것처럼 보일수도 있기 때문이죠. 단기간만 보면요, 근데 장기적으로 볼때는 결국 그 한계가 여실히 나타나기 때문에 장수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의외로 원균으로 위로 올라가 경험이 많이 쌓이면 이순신처럼 살짝 바뀌는 리더쉽들도 가끔 있긴 합니다. 이런 유형들이 회사에서 오래 갑니다.
최초 해전이 있기 전부터 겁을 먹고 대다수의 판옥선을 훼손해서 수장시켜야 했는지 . 배 한척을 건조하려면 그 당시 장비로는 시간이 오래 걸릴건데 왜 전략 자산을 수장시켰는지. 전투에 자신이 없으면 그 배를 이끌고 전라 좌수영으로 합류할 생각을 왜 못했을까. 그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원균은 사형감이었다고 본다.
단순히 겁을 먹어서가 아닙니다. 당시 배는 오늘날 배처럼 시동 틀어서 바로 나가는게 아니라 각종 무기며 식량이며 보급품을 다 실고(이 당시엔 냉장고가 없었고 배도 나무배라 물속에 너무 오래 있으면 금방 내부가 습해져서 무기를 물에 뛰운 배 안에서 보관하면 녹이 쉽게 슬어버립니다.)평시엔 썩는걸 방지하기 위해서 물밖에 보관중인걸 다시 물속에 넣어야 합니다. 게다가 바람방향, 물의 흐름도 다 맞춰야되고(안맞으면 아무리 노를 저어도 배가 안나갑니다! 아니면 약간 나갔더라도 노꾼들이 다 뻗어버리면 그냥 떠내려가버립니다.)또 당시는 농번기라 대부분의 인력이 농사를 짓기 위해서 나가있는 상황이었습니다(농민이 곧 군인이고 농업이 국가의 주요 경제품이었던 시기에 이는 당연한 조취입니다.). 이 인력들을 모두 다 호출해야 하는데 부산산성이 수비하는 몇시간으로 다 호출한다는건 당시 기술력으로 불가능합니다. 이 시대에 전화기가 있던것도 아니고 인터넷이 있던것도 아니고 SNS도 없었습니다. 즉, 공격 받았다고 수군이 바로 출격하기에는 많이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순신은 전라도에 있었기에 이 모든걸 맞추기 쉬웠지만 원균은 경상도에 있었기에 이순신만큼 준비하기엔 시간이 많이 촉박했습니다. 이 상황에서는 차라리 다 태워버리거나 수장시켜버리는게 낫습니다. 안 그랬다가 일본군이 조선의 함포와 함선을 노획해버렸다간 이순신이 첫 전투인 옥포해전에서 전사했을지도 모릅니다.
@@dinos119 너무 지나친 말씀으로 보입니다. 전란 1년전에 부임하여 판옥선을 추가 건조는 물론 노후된 전선을 수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거북선까지 만들었던 이슌신장군입니다.그 와중에 전술 훈련까지 지속적으로 병행해온 이충무공께 이런 표현은 너무 심하다 생각치 않으십니까? 전란에 대비하여 철저히 준비해온 장군에 대한 모독입니다
@@skp2747 그 모든것은 대부분 전쟁 전이나 아니면 전라좌수영까지 일본군이 공격해오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아무리 충무공이 철두철미하고 전쟁 대비를 철저히 하였다해도 그는 인간이지 신이 아닙니다. 아무리 사람이 능력이 좋아도 그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수 없습니다. 충무공은 그런면에선 다행이었죠. 선조가 대간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수군제독에 임명하였기에 수군의 지휘를 맡을수 있었고 일본군이 전라도가 아닌 경상도로 공격을 하였고 또한 전라도로 오는 길목은 조선육군, 의병이 목숨을 걸고 사수하였기에 그의 능력이 발휘될 기회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건 역사학계에서도 부정하지 않는것입니다. 이런걸 보지않고 함부로 모독 운운하는것이야말로 충무공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겠다는 소리입니다. 더군다나 당시 일본군의 공격으로부터 전라도를 목숨을 걸고 사수하여서 충무공의 기지로 일본군이 진군하지 못하도록 수비한 권율등 육군과 의병들은 대놓고 무시하겠다는 겁니다.
@@dinos119이순신도 원균이 어쩔수 없었다고 이해해 주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실책이 아닌건 아닙니다 왜냐면 경상우수영이 바로 습격 당한것도 아니였고(자침까지 5일정도 여유가 있었음) 아무리 당시라도 이정도면 병력 소집이 안될까지의 시간이 안되진 않습니다 애초에 5일동안 준비도 못한 원균의 무능력함이라면 뭐.....게다가 즉시 방어까지는 못하더라도 현존함대 전략이라도 쓰게 퇴각이라도 했었어야지 이거마저도 나중에 시도도 못하게 다부수고 튄 바람에 경상도는 성에 해안지원도 못받고 이후 추가 상륙도 못막았습니다 물론 전반적인 초기 전쟁의 실책은 조정의 늦장 대응이 가장 문제가 되지만 그렇다고 원균 실책이 아닌건 아닙니다 이순신이라고 시간이 많았던거도 아니고요 전라도랑 경상도가 엄청 떨어져있는 것도 아니고 이것도 평소에 훈련과 대비를 하던 이순신 장군님의 노력 덕분이겠죠
현실 특히 사회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갈등 중 하나임. 원균출생: 1540 무과급제: 1567 이순신출생: 1545 무과급제: 1576 원균은 범부고 범부의 입장에서는 자기보다 한참 후배가 본인 제끼고 먼저 승진한 상황임. 나이로보나 짬으로보나 원균이 위임. 근데 어느 시점에서부터 이순신 품계가 원균보다 높아짐. 동인,북인쪽에서 푸쉬도 받고, 비록 숟가락이지만 전공도 쌓았고, 나름대로의 자부심과 야심이 있었다고 생각함. 그러나 이순신이 본인 위로 가면서 무시당하고 사소한 허물까지 장계로 올려버리니, 내부갈등이 안생기는게 이상하다고 봄.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원균과 갈등을 겪고나서 이후 명나라 진린을 대할때 처세가 유연해졌다고 봄.
원균은 왜란 발발 당시 일본군과 싸우지 않은채 대다수 우수영 군함들을 침몰시키고 도망쳐왔던 터라 당시 군율로도 용서가 안되는 행동임 후배인 이순신이 선배인 원균의 위에 있었다고 해도 이순신도 후배인 권율이 도원수라는 자신의 위에 오르니까 순순히 복종하고 그랬음 후배인 권율이 상관으로 올랐는데도 잘 지낸 이순신의 경우를 보면 승진 떄문에 이순신과 싸우는 원균이 비정상적이라고 보여 진다
@@afta-u8g 물론 그런 점도 있을겁니다. 그러나 전후사정을 종합해보면, 경상우수영 > 전라우수영이고 흔히 말하는 짬밥에서도 원균 > 이순신일 겁니다. 원균은 위에 말했듯 범부고,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똥별일 겁니다. 즉 기수낮은 사단장이 기수선배 사단장에게 지원요청을 하고, 전공에 관해서는 단독장계로 진행한 셈입니다. 먼 길 지원을 왔는데 전공에 있어서 '공정'함을 지향했던 이순신이 콩고물을 안주니 탐탁치 않아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 현실에서도 사회생활을 한다면 타부서에 지원요청을 하고 성과가 났는데 배제한다면 그 다음부터는 협력받기 힘들겁니다. 명나라가 조선과 사대관계에 있으니 당시 사회상으로 당연히 더 대접해주는 상황일지도 모르겠으나, 전공에 있어서 '공정'함을 지향했던 이순신이 이중장계로 진린에게 거의 모든 전공을 양보한 것은 원균을 단독장계로 제끼고 허물을 상소하던 행보와 많이 다른 것 같아서 올린 댓글입니다.
항상 감사하고 좋으신 박사님❤ 역사를 자신의 주장/신념/믿음/이념을 보강하는 장치로 선택적으로 골라 취하는 게 역사를 접하는 최악의 태도라 생각합니다.. 역사를 이용하지 않고, 역사를 통해 배워 발전하기 위해서 나도 모르게 이용하려 내가 듣기 좋고 보기 좋은 것만 골라 취하는 것을 경계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사님❤
그러나 상사의 말이 옳다라고 생각한다면 죽음을 각오하고 적극 지지할 스타일.. 그러나 이건 상사가 이순신 같은 사람보다 더 능력있고(최소 동등하거나) 넓은 아량과 배포가 있어야 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함.. 근데 현실 사회에서는 이런 상사는 극소수.. 대부분은 자기 감정대로 판단하고 휩쓸릴 스타일..
그래서 유자광이 중용되었나요? 유자광도 따박따박 발언하는 스타일입니다. 원균은 가문이 잘났다는거 말고는 시체입니다. 윤씨가문과 혼인관계라는 것까지 더해서요. 원균의 아버지 원준량이 탐관오리인데도 잘나간 이유입니다. 아 장점은 하나 있네요. 동생이 영걸임. 그 동생이 종가의 장남이 아니라는 이유로 찬밥취급 먹고 원균 혼자만 기억됨.
@@은밀하게위대하게-s9u 일본으로 잡혀간 여자들은 관백(關伯) 평수길(平秀吉)이 엄히 금지시켜 되돌려 보냈는데 수사(원균)가 적선을 쳐부순 날에 배에 가득 실려 있던 아이들과 여자들이 우리 나라 사람이라고 외쳤으나 듣고도 못 들은 척하고 모두 목을 쳤다고 한다. 이로써 송서(宋瑞)의 딸과 손녀도 우리 나라 사람 손에 죽은 것이 아니겠는가. 《정만록》
@@은밀하게위대하게-s9u 일본으로 잡혀간 여자들은 관백(關伯) 평수길(平秀吉)이 엄히 금지시켜 되돌려 보냈는데 수사(원균)가 적선을 쳐부순 날에 배에 가득 실려 있던 아이들과 여자들이 우리 나라 사람이라고 외쳤으나 듣고도 못 들은 척하고 모두 목을 쳤다고 한다. 이로써 송서(宋瑞)의 딸과 손녀도 우리 나라 사람 손에 죽은 것이 아니겠는가. 《정만록》
@@은밀하게위대하게-s9u 정만록 기록 복사해서 올리면 자꾸 댓글 지워지는데 살아있는 조선인 여성과 어린아이도 죽였다는 기록 있습니다 그런일이 허다 했는데 왜 유독 원균만 온갖 기록에서 그런짓을 했다는 말이 넘쳐나고 다른 조선장군들은 언급이 없을까요.. 난중일기 전체내용 통 틀어서 그런짓 했다는 인물은 원균 하나고요.. 다른 장군들도 그랬을수 있겠지만 기록의 양만 봐도 원균은 비할바가 아닙니다
@@은밀하게위대하게-s9u 일본으로 잡혀간 여자들은 관백(關伯) 평수길(平秀吉)이 엄히 금지시켜 되돌려 보냈는데 수사(원균)가 적선을 쳐부순 날에 배에 가득 실려 있던 아이들과 여자들이 우리 나라 사람이라고 외쳤으나 듣고도 못 들은 척하고 모두 목을 쳤다고 한다. 이로써 송서(宋瑞)의 딸과 손녀도 우리 나라 사람 손에 죽은 것이 아니겠는가. 《정만록》
초기의 이순신은 아무리 선후배 사이여도, 지위의 차이가 있어도 실력으로 당당하게 이겨낼수 있다고 믿었던게 패착이라 조정과도 많은 문제를 발생 시켰고 원균과의 일련의 사건을 경험하고 나서 불합리 해도 본인과 더 나아가 주변 사람들까지 살려면 거짓말도 좀하고 굽혀야 그 안에서 견뎌낼수 있다는걸 깨달은거 같습니다. 그후에 진린을 대한거 보면 진린 패악질도 못 봐줄 정도였는데 제가 알던 이순신을 생각하면 너무 반대의 대응을 한게 의아햇는데 그래서 그랬나? 라는 생각도 듭니다. 한편으론 그냥 황제국의 장군이라 참은건지 아니면 단순히 다른 나라의 전쟁에 파병을 온것에 감사함을 느껴서 그랬는지 알고도 싶고 궁금합니다
두 장군이 공을 다투었다고 하는 것은 이순신 장군은 "죽은 왜군의 신체일부를 절취해서 공을 세우려고 하지 말라 대신 내가 잘 살펴서 공을 보고할것이다"고하고 대신 전투에 더 열심히 하라고 독려했지만. 원균은 실제 전투는 열심히 하지않고 죽은 왜군 신체를 절단해서 상부에 전공보고를 하여 얌체짓을 하니, 이순신 장군께서 많이 불편해 하셨다고 알고있읍니다. 아뭏든 좋은강의 잘 들었읍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선조 이외 대신들에게도 원균이 인기가 더 많았고 조선시대 전시상황 정보력은 한정적이라서 원균을 밀어줘야 하는 사정이 생긴거. 왕의 명령을 어긴 이순신은 눈 밖에 날 수 없는데 선조가 가진 정보로는 이순신이 출전하지 못한다는 사정을 이해하기 힘들었음. 당연히 대타로 원균이 들어가게 된거
진짜 저돌형 : 이순신 강제 저돌형 : 원균 이유 :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에서 단 12척의 함선만을 이끌고 나갔다. 상대는 133척의 대함대였고 뒤에는 200여 척의 적이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열세 속에서 이순신의 부하들은 나가서 싸우길 주저했고 이순신은 대장선 1척만을 이끈채 133척의 적진 속으로 뛰어든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열세에도 불과하고 이순신 대장선이 끝까지 버티고 싸우니 부하들도 용기를 얻어 그 뒤를 따라 같이 싸워 말도 안 되는 명량대첩이 이뤄진 것이다 반면 원균은 선조 및 조정 대신들이 왜 부산포 안 치냐고 닥달을 하니 그 말 듣고 돌격했다가 함대와 수군이 전멸하는 바람에 조선 수군을 시원하게 말아드시게 된다 이게 원균과 이순신의 돌격 성향의 차이점이다
@@은밀하게위대하게-s9u 12척으로 300여척을 대적 할 수있을만한 리더쉽과 지도력, 전략전술이 대단하단 말이죠 그게 그렇게 이해가 힘드신가요? 아무리 낮게잡아 보려고해도 명량해전은 역사에 길이 남을 대단한 해전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당신이 그렇게 높게보던 수군 함대를 가지고도 시원하게 말아먹은 칠천량 해전 후 패전의식에 찌들어있던 부하들, 자신(이순신)을 믿지않은 조정, 최악의 군함상황 어떠한것 하나 정상적인 것이 없었음에도 명량대첩같은 승리를 만들어냈습니다 도대체 무지성적으로 이순신장군님을 비하하고 깎아내려서 당신이 얻는점이 무엇인가요?? 뭔가 남들과는 다른 소리를해서 본인을 뽐내고 싶으신건가요? 아니면 정말 멍청해서 그러시는건가요? 정말로궁금하네요
@@은밀하게위대하게-s9u 여기에 원균 같은 놈이 하나 있네 ㅋㅋㅋ 현재 군함의 함포처럼 각도를 재서 공격하는 줄 아는 무식한놈이네 그리고 화약이 넘쳐나고 포탄이 넘쳐나서 막쏘면 다 배가 침몰 되는줄 알지? ㅋㅋㅋㅋ 또한 물살이 쎈지역에서 노를 저어가면서 싸우는데 정확도가 있겠다 ㅋㅋㅋㅋ 그 당시 해전은 붙어서 넘어가서 싸우고 그런 시절이야 그리고 대장선의 분전으로 나머지 두척이 뒤따라와서 싸운전투를 왜 못믿어? 생각을 해봐도 칠천량에서 대부분 해군들이 전사했고 노꾼들 밖에 없는데 전투 병사가 살아 있더라도 도망친 겁쟁이들 뿐인데
@@은밀하게위대하게-s9u대장선 혼자서 오랫동안 싸운건 팩트이고 13척으로 저걸 이긴게 잘난 학자들이 모라해도 이런게 대첩이지 명량대첩으로 재해권을 다시 가져왔고 결국은 전쟁에서 승리할수있었고 수많은 백성들의 목숨을구함 그리고 울돌목이 동네 골목길인줄 아나본데 2척으로 교대? ㅋㅋㅋ일본사람인가 엄청 비하하노
전쟁사 시리즈 중동전쟁편과 임지왜란 구입해서 너무나 재밌게 잘보고 있습니다. 근데 혹시 [임용한의 Battles of Tactics] 세상에 없던 기동(로이텐전투2) 영상에서 책상위에 있는 십자군 처럼 보이는 중세 기사 두명이 검과 도끼를 들고 싸우는 메탈 모형 같은게 보이는데, 혹시 어디서 구입 할 수 있는지 알수 있을까요? 이번 영상에서도 창과 방패를 든 스파르타 병사가 보이는데... 이런 모형류를 정말 좋아해서요~!! 구입 가능한 인터넷 사이트 같은 곳 궁금합니다;
어렸을때부터 이유없이 이순신 장군님을 초인으로 생각했던 60대 입니다 임용한 박사님의 다년간에 걸친 강의와 임진왜란(상)을 접하고 감탄을 합니다 제가 교육받았던 1차원적인 역사와 달리 그나마 남아있는 사료에 기초한 역사적 사실과 더불어 이성에 근거한 해설! 독자들에게 특정한 방향을 강요하 지 않으시고 팩트에 근거한 이성적인 사고의 방향을 제시해 주시고 여유있는 판단의 공간을 제공해 주시니 진심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당시엔 해군에 대한 전략전술적 개념조차 별로 없었던 시기에, 당시인들은 배타고나가서 용맹하게 싸우면 되기에 수군경험은 전혀 필요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판단에 적당한 사람을 지휘관으로 임명한 것이고, 지금의 전술론으로 지휘관의 판단이 틀렸니 마니 평가하지만, 당시기준으로 지휘관으로서 알았어야 할 것들을 모르고 큰 오판을 저질렀냐면, 오히려 당시 기준에 맞게 싸운것이 아닐까요? 이순신도 새로운 방식을 처음으로 알아가는 과정이었고
어떻게 들으면 임용한 교수님의 원균에 대한 분석이 "원균을 변호하려는 것"으로 들릴 수가 있는지.. 도대체 어떤 사고구조를 갖고 있으면 그렇게 들리는지..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원균에 대한 이미지는 두둔은 커녕 오히려 원균이 그냥 나쁜 놈 정도가 아니라 군인으로서는 최악의 인간이라고 하고 있는데말야 원균인가? 원균과 같은 종류의 사람인가? 원균을 욕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니 원균이 자신과 너무도 닮아서?? 교수님의 표현대로로만 원균은 어느 한 구석 변호를 받을 수 없는 사람이지
9:20 박사님이 항상 말씀하시는 일관된 스탠스가 이겁니다. 그 순간을 살아갈 때는 신이 아닌 이상 매번 정확한 판단과 평가를 하는게 불가능합니다. 그나마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확률을 높이기 위해 안목을 훈련하는 것이고, 그 훈련의 도구가 여기서는 역사입니다. 여기서도 매번 스스로가 듣고 싶어하는 말만 아전인수 격으로 골라듣는 부류들도 왕왕 있으신데, 미리 선호하는 결론을 정해놓은 뒤 호불호 문제로 접근하지 말고 딱 한번이라도 박사님처럼 인간의 보편성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과거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현재의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함께 훈련해보는 건 어떨까요.
문제는 원균같은 인물을 두고 왜 그렇게 되었을까를 이해해 주려고 하면 꼭 그 틈을 파고들어서 원균 재평가, 이순신 내려치기를 하면서 그걸 합리적 평가, 공정한 평가 라고 포장하는 세력이 생기는데 또 사람들이 그걸 이번영상 [저돌] 구분 못하는것 같이 그냥 받아들여버림. 이해란 중요하지만 원씨 후손들 같은거 보면 한숨 나오면서 이해하려는 마음이 식는것도 어쩔수 없는듯.
왜 그렇게 되었을까에 대해 분석하는걸 이해해준다고 인식하는것 자체가 영상의 취지파악을 못하는것이라 봅니다. 살인범이 되기까지 과정에 대해 분석하고 연구한다고해서 그게 살인범에 대한 감정적이해는 아니겠죠. 어디까지나 어떤 자연적인 법칙에 현상적인 이해를 얘기하는 이해의 영역이겠죠. 애초에 임용한 박사님은 어떤 전쟁이든 인물이든 구분없이 감정적인 접근자체를 배제하고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보는 사람이 감정적인 접근을 하기때문에 그렇게 받아들이는거죠.
@@biroe3028 역사를 인식할때 결과에서 과정을 바라보지말고 그 시대에 입각해서 보고 비판해야 한다는 얘기를 그렇게 단순화해서 너라면 잘할거 같냐는 식으로만 받아들이면 시작점부터가 편협하게 시작하자는거 아닙니까? 배경지식차이의 문제고 얼만큼 알고있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것 같아보이네요. 댓글이 전문가를 이긴다는게 이런거죠. 학문적 정의에는 개인의 신념과 가치관을 대입시키는걸 가장 지양해야합니다.
@@hyeonseung6 전 임박사님 취지를 잘못 이해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한건데요 님도 말한 너라면 잘할거 같냐는 식의 단순 논리로 접근하거나 그걸 넘어서 옹호하기까지 하는 사람들요 그런 사람들 때문에 임박사님이 오해를 살수 있는거고 또 님처럼 엄근진 해서 들이대는 사람도 한 몫하는거죠 한쪽으로 과하게 치우친 논리들에 대해선 당연히 반박해야 하지만 원댓은 지극히 현실적으로 고려된 반응입니다 빠가 까를 만든다는 말도 있죠 댓글이 전문가를 이긴다 하시는거 보니 박사님 영상 챙겨보시는거 같고 고대로 반복하시는거 같으신데 학문적 지적인 부분을 배우시는건 좋으나 그걸 현실적인 반응에 까지 너무 적용하려 들이대지 마세요 오히려 그게 현실과 괴리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원래 그런겁니다. 이런 말을 하는 우리들도 대부분은 별이 아니고 모래이니ㅋㅋㅋ 너무나 당연한 것에 지나친 비난 비판을 하거나 나는 남들과 달라 하면서 우쭐하는것도 모래들의 속성이죠. 그걸 관조하면서 생각이 아니라 행동을 다르게 하는 것을 고민하고 꼭 실천을 해야 교훈적인 부분이 있는거 아닐지. 뭐 물론 여기서 남들 비판하면서 얻는 만족감들이 있기에 저도 종종 공격하고 하지만은 ㅋㅋ 돌아보면 참 쓸데 없는 짓을 여전히 계속 하는구나 이생각이 들긴 하더라고요
@@티라노사우루스렉스trx 이일이가 왜 이순신에게 책임전가를 했는지 모르나? 원래는 이일도 처벌 받아야 하는데 이순신, 이경록 둘에게 독박 씌운거지. 원래 녹둔도 전투 주요관련자 판결이 사형이었다. 그나마 상대가 선조라 말이 통한거지. 고려시대 무관은 조선시대 무관이랑 분리할 필요가 있는게 고려시대 무관은 자기이름 석자 못쓰는 문맹들이 대부분이다. 즉 책도 못읽었다.
ㅡ그 날이 오면(심훈)ㅡ 그 날이 오면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치리니 그 날이 오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두개골이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으리다 그 날이 오면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큰북을 만들어 그대들의 행렬에 앞장 서오리다
역사에 나온 등장인물들을 선과 악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눠서 평가하면 그 사람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제가 예전에 한번 원균은 무능한 장수는 맞지만 그 당시 조선을 배신하거나 전쟁을 회피한 장수는 아니었다 라고 말해서 욕을 한바가지를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저의 그 생각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원균은 무능한 장수는 맞다 라고 인정 했고 다만, 그 이상으로 원균을 나쁘게 평가하는 건 경계해야 한다 라고 한 것 뿐이죠
사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게 된 부산포 출격 거부도 처음엔 원균이 나선다고 했다가 멍청한 자기 머리로도 부산포로 출격하면 개죽음 당할 걸 알았는데 한양의 선조 및 대신들이 닥달하니 마지 못해 출격했다가 본인 및 조선 수군 7000명이 싸그리 전사하지요.. 그나마 배설이 중간에 튀어서 12척만 살아남았구요.. 조정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한 이순신 장군이 대단한 것이지 원균을 지나치게 비방한 건 옳지 못하다고 봅니다 어찌됐든 무능한 장수는 맞지만요
이 세상에는 수많은 선조와 원균이 있다. 문제는 본인이 선조인지 원균인지 모른다는 거지. 오히려 그 주변은 잘 아는데. 원조 선조원균과의 차이라면 그들은 생사가 실제로 오가는 전쟁터에서 살았던거고, 세상의 수많은 선조/원균은 다행히도 자기가족 자기조직에만 한정적으로 악영향을 끼친다는 거지. 그걸 늘 참고 견뎌야하는 주변사람은 죽어나지만. 원균은 자신이 왜 죽는지 몰랐지만, 그 부하와 병사들은 다 알았지. 저 병싱때문에 우리 다 죽는다고. 늘 자신을 돌아보며 살자고.
뭔가 해서 영상을 봤는데, 무슨 말인지는 알겠습니다 이치에 안 맞는 말도 아니고, 적절한 분석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썸넬에 '심각한 잘못'이라고 지칭하기에는 좀 표제 낚시가 아니었나 싶군요. 말씀을 간단하게 도식화 하면 '유능하고 뭘 좀 아는 이순신이 아예 말이 안 통할 법한 원균같은 사람과도 같이 맞춰가며 일을 해 나가는 방법을 알았어야 비극과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 라고 요약이 되는 내용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건 '완벽한 사람에게 더 완벽함을 요구하고 모자란 사람에게는 더 관대한 기준을' 대주는 판단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그 모자란 사람이 압도적인 다수라서 그런 사람들과 같이 일할 줄 아는 능력이 요구되기도 합니다만 당대 이순신같은 천재가 아님에도 이억기 같은 인물은 거기에 맞춰 줄 줄 알았습니다. 배설 같은 인물은 아예 도망을 쳐서 결과적으로는 도움이 되는 역설을 완성시킵니다. 진린이나 등자룡 같은 인물들도 이순신과 수준을 맞출 만한 인물이 아님에도 나중에는 감화되어서 협조적이게 바뀌었습니다. '모두가 다 이순신 같은 천재와 맞춰 나가면서 공존하고, 손발을 맞추는 법을 세워 나갔는데, 유독 심각하게 모자란 인물이 끝까지 이순신과 공존하기를 거부 했다면, 이순신이 문제였을까요, 원균이 문제였을까요' 라고 반문해 보고 싶은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정도 생각 정도는 그냥 사소한 견해 차이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 직장에서 보는 현실들을 생각하면 뭐... 교수님 생각도 충분히 납득은 갑니다.
원균 선조를 욕하고 악마화 시키고 이순신을 신격화 시키고 끝내면 역사에서 배울건 아무것도 ㅇ없다 . 원균같은 인물을 사령관 시키는 시스템을 고치지 않고 욕만 하면 다음에 제2 제3의 원균이 나타날꺼임 원균 나쁜사람이고 악마가 아니라 사령관을 시키면 안되는 사람인데 사령관을 시키는 시스템이 문제인거지
궁금한게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이웃국가인 일본과 중국 두 나라가 타국의 인명을 해친 피해자의 수를 비교해 주실 수 있는가요... 공산주의 국가가 타국의 인명을 얼마나 해쳤는지 아님 제국주의 세계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타국의 더 많이 해쳤는지 수학적인 숫자로 비교해 주실 수 있는지요 ? 부탁드립지다~
그 시대에 과거를 통과할만큼 능력이 출중했던 선조분들입니다. 원균을 비난하시는 분들 중 고시를 통과하고 국대뽑힐 자신있으신분있나요? 그시대 무과를 합격할정도면 고시통 국대수준의 능력자 아닌가? 사람성격에 따라 인력운용을 해야되는데....그 인력운용에 오류가 잘못한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