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test2310 이순신의 실책이고 합당한 처사입니다 출동하라고 한 왕의 명령을 무시했으니 (고니시가 미리 스파이시켜서 알려줫죠)정적인 가토의 1군 침략시기랑 지역까지 알려줫는데 그거 막으라 시킨 선조 말을 안들은 이순신 분명 이거 하나는 실책이죠 머 그럴순 있죠 적의 계략이다 생각해서 무시할수도
@@rennykim8045 그떄 이순신이 출정 안한게 아닙니다 출정 안해서 파직당하고 압송 되었다고 많이들 알고 계시는데 가토가 온다는 정보를 듣고 부산 앞바다에 출정을 했습니다 조정에서도 자꾸 압박하니까 나가봤는데 물살이라든지 전술상 맞지 않다고 판단하여 다시 한산도로 돌아왔고 이걸 빌미로 원균으로 통제사 교체해버립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게 뭐냐면 !!! 적의 정보라서 믿지 않았던 이순신의 생각이 맞았습니다 가토는 고니시가 알려준 날짜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훨씬 전에 부산에 와 있었죠 그럼 이걸 고니시가 왜 가짜뉴스를 흘려줬느냐? 1. 이순신이 출정하여 전투가 벌어졌을때 이미 부산항에 진을 치고 있는 왜군에게 고립되어 이순신 함대가 패배하면 좋은거죠 2. 근데 만약 이순신 함대가 이긴다?? 그럼 고니시의 라이벌 가토가 죽던 토요토미에 의해 제거되던 좋은거죠 3. 이순신이 출정을 안한다??? 조정에 불려가 처형을 당하던 파직을 당하던 그 또한 좋은거죠 고니시는 정말 머리가 비상했습니다 한번에 1석 3조를 계획한거죠 상인 출신의 다이묘 다운 계산법이었습니다 근데 이걸 이순신의 실책이라고 하시다니 임진왜란史, 정유재란史 다시 공부 하세요
선전관 김식은 순천부사(우치적)와 원균,본인 셋이 탈출했다고 보고. 그런데 그후 상황은 모른다 운운..나중에 순천부사 우치적은 멀쩡히 살아서 이후 해전에 참가했음. 부장인 우치적이 주장인 원균을 버리고 달아났다면 처벌을 면치못했을탠데 처벌 안받음. 즉 원균은 살아서 숨어살았을 가능성이 농후
한끼 식사에 닭 세마리, 생선 몇마리 등등 거대하게 먹었다고 하고, 그래서 비대해서 어마어마한 체구를 가지고 있어서, 칠천량에서 도망쳐 상륙할때 몸을 가누지 못해서 앉아서 쉬고 있다가, 쫒아온 일본군들에 둘러쌓였던 목격담이 마지막이었죠. 그래서 그 주변에 엉근이 무덤이 전래되고 있습니다. 마을사람들이 묻어줬다고 전래되고 있죠.. 이전까진 괜찮았는데, 하필 임란때에 지모가 떨어지는 최악의 시기였으니.. 일개 장수로 썼었어야했었는데, 이순신을 옆에서 보고 공명심에 자신도 할수있다는 자신감이 파멸의 길로 가게된것이겠죠
원균은 자손들이 번창하여 현재 집안에 유력한 인사들이 많아요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어요 선조는 전쟁 내내 의병이나 관군이 백성의 신망을 얻으면 질투하고 시기했어요 아들인 광해를 질투했고 의병장 김덕령을 고문해서 죽게했습니다 이순신 또한 마찬가지로 백성들의 신망이 두터웟고 선조는 이것을 극히 싫어했어요 여기에서 선조는 이순신을 죽일려고 까지 했으나 유성룡 등이 극구만류하여 파직에 백의종군으로 그치게 됨니다 원균이 1등공신에 올라간것은 이순신의 공적에 대한 물타기라고 볼수 있을것임니다 당시의 기록들로 미루어 볼때 원균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도 살아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큼니다 전시에 패장은 용서하더라도 탈영은 참형에 처하는것이 불문율이었습니다 , 원균이 살아있었다면 탈주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 가능성은 두가지.... 하나는 기록에도 나온 행적... 또 하나는 교활하게 신분 변장 하여 살아남았을 확률... 충분히 그럴 가능성은 있음... 떳떳히 밝힐수는 없이라... 포로로 위장하여 지금의 누구들 처럼 딸랑딸랑하며 치졸하게 생존했을 가능성도 있음.... 누구도 신경쓰질않겠지만....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과연 전멸했는가에 대해선 논란이 있더군요 조선 수군 집단이 흩어지고 대부분의 전선이 불에 타 침몰한 것은 맞는데 수군 병사들까지 모조리 전몰했냐 한다면 그건 또 아니라는 의견 각자 흩어져서 여러 도서로 각자 도생한 숫자가 상당한데 후일 이순신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수군을 재건하려 했을때 전선도 복구했지만 상당한 숫자의 수군도 보충을 했음을 알수있는데 수군은 오늘날도 그렇지만 징병하여 하루 아침에 뚝딱 정예군으로 만들기는 힘들죠 그렇다면 이 인원들이 어디서 나타나 금새 주전력으로 움직일수 있었는가 칠천량해전에서 도망쳐 살아남은 수군들이 다시 모여들여 수군을 복구하지 않았겠느냐라는 설이 있습니다 비슷한 사례가 현대전에서 있었는데 625당시 3군단이 중공군 기습에 말려 붕괴된 현리 전투가 그것 병사들의 패닉을 제어하지 못해 제대로 싸우지도 못한채 붕괴된 현리전투에서 3군단이 각종 중화기 망실하고 인명피해가 생겼지만 그렇다고 전멸은 아니고 상당수 병사들이 역시 각기 살아남아 다시 재집결했다고 하죠 물론 미군은 빡쳐서 3군단을 해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