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과 이순신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해줄래? 대한제국을 일총독부가 인수하고 총독부는 미11군단에 항복하고 한반도 관할권을 미군정에 넘기고 집에 간다. 그래서 남한이 한반도 정통성을 가진단다, 전 주인이 미군정에 넘겼거든. 소련군이 아냐. 미군정은 38선 이남에 대한민국을 건국해주고 집에 간다. 이순신하고 대한민국하고 무슨 관련이 있을까나?
미군정이 군사영어학교를 설립해 중국군, 일본군, 만주군, 광복군등 잡동사니들을 모아 미군식으로 새로 용광로처럼 녹여 한반도 최초의 민주군대를 창설해준다. 문재인애들은 광복군 운운하던데 갸들 뇌피셜일 뿐이다. 군사영어학교가 육사의 기원이며 한국군 기원이란다. 지 에미 출신이 부끄럽다고 모르는 척하고 좀잘산다고 지에미를 쪽팔려하는 놈은 천하의 나쁜 놈이란다. 좋든 싫든 우리 과거를 인정하고 넘어가는걸 용기라고 한단다. 예 맞아요 우리 엄마 미군한테 몸팔아 저 공부시켰습니다. 인정하는 놈이 용기있는 놈이란다. 초딩들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미군한테 붙어 사는 양색시 (당시는 양갈보라고 했다) 하나가 집안을 일으켰단다. 좋든 싫든 우리 역사다. 그게 국사라는거다. 하기사 3초컷 토깽이들 하는 짓이 다그렇지 뭐.
꼰대 교장애들은 뻑하면 삼천리 금수강산 운운하는데 그러면 니들은 금수강산이 아니면 조국을 버릴래? 전부 사막이어도 전부 얼음구덩이라도 조국이다. 우리나라가 멋있다고? 외국 가봐라 그 소리 나오나. 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 능선에서 굽어보이는 골짜기에서 밥하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작은 초가의 고즈늑한 시골 풍경은 엄마 품같아. 대학때 등반하면서 능선 위에서, 입대해 전술 훈련하면서 방어진지 위에서 수도 없이 보았고 지금도 내 가슴에 각인되어 있다. 전세계 어디에서도 내 가슴에 각인되는 그런 풍경은 없었다. 그게 내 나라다. 잘나지도 대단하지도 않지만 엄마 픔같은 내 나라야. 군대있을때 졸개들에게 말했다. 뒤를 봐라, 뭐가 보이나? 서울이다. 여기가 우리 무덤이다. 판타지와 미화, 프로파간다, 개뻥 허풍은 몸에 해롭다.
@@user-qi6uu7on7d 그래 너는 니 할애비, 증조 할애비도 조선 사람이었으면 너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거냐? 니 논리데로 라면 우리가 고조선의 역사를 무엇 하러 배우는거냐? 수천년전 역사를 뭐하러 배우냐? 미국이 만들어준 대한민국에서. 그리고 너는 일제시대에 일본에 항거 해서 싸워서 죽었던 수많은 독립투사들에 대해서 안중에도 없는거냐?이인간 완전히 일본의 식민지사관으로 똘똘 뭉쳤네.
한국인은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원래 이순신은 현재 한국인의 은인이 아니다. 당시 조선 민중은 양반의 정치에 시달렸다.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하자 조선 민중은 일본군과 협력해 서울까지 길 안내를 하고 식량을 제공했다. 서울 왕궁으로 방화한 것도 조선 민중이다. 즉, 임진왜란이란 명군+조선정부군과 일본군+조선 민중의 전쟁이었다. 이순신 처음 조선 양반 전사 중 상당수는 임진왜란과 그 후 청국과의 싸움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현재 한국인의 조상은 당시 조선 민중이다. 즉, 이순신은 한국인의 조상의 적이며, 아군은 일본군이다. 한국인은 이 역사적 사실을 모른다. 우스꽝스럽다.
한국인은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원래 이순신은 현재 한국인의 은인이 아니다. 당시 조선 민중은 양반의 정치에 시달렸다.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하자 조선 민중은 일본군과 협력해 서울까지 길 안내를 하고 식량을 제공했다. 서울 왕궁으로 방화한 것도 조선 민중이다. 즉, 임진왜란이란 명군+조선정부군과 일본군+조선 민중의 전쟁이었다. 이순신 처음 조선 양반 전사 중 상당수는 임진왜란과 그 후 청국과의 싸움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현재 한국인의 조상은 당시 조선 민중이다. 즉, 이순신은 한국인의 조상의 적이며, 아군은 일본군이다. 한국인은 이 역사적 사실을 모른다. 우스꽝스럽다.
일본군이 철수한 이유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병으로 죽었기 때문이다. 이순신이 일본군의 진격을 멈췄다고 말하는 것은 한국인에 의한 날조이다. 실제로 이순신이 일본군에 대해 우세하게 싸운 것은 전쟁 개시 후 3개월의 한산도 해전까지이며, 그 후 7년간은 이순신은 모든 전투에 패주하고 있다.
한국인은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원래 이순신은 현재 한국인의 은인이 아니다. 당시 조선 민중은 양반의 정치에 시달렸다.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하자 조선 민중은 일본군과 협력해 서울까지 길 안내를 하고 식량을 제공했다. 서울 왕궁으로 방화한 것도 조선 민중이다. 즉, 임진왜란이란 명군+조선정부군과 일본군+조선 민중의 전쟁이었다. 이순신 처음 조선 양반 전사 중 상당수는 임진왜란과 그 후 청국과의 싸움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현재 한국인의 조상은 당시 조선 민중이다. 즉, 이순신은 한국인의 조상의 적이며, 아군은 일본군이다. 한국인은 이 역사적 사실을 모른다. 우스꽝스럽다.
일본군이 철수한 이유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병으로 죽었기 때문이다. 이순신이 일본군의 진격을 멈췄다고 말하는 것은 한국인에 의한 날조이다. 실제로 이순신이 일본군에 대해 우세하게 싸운 것은 전쟁 개시 후 3개월의 한산도 해전까지이며, 그 후 7년간은 이순신은 모든 전투에 패주하고 있다.
조선 민중은 조선왕조의 정치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군을 환영하고 식량을 헌상했다. 조선 민중에게 이순신은 적이었다. 조선군은 이 싸움과 그 후의 청국과의 싸움에서 대부분이 죽었기 때문에 그들은 현재 조선인의 조상이 아니다. 현재의 조선민족의 조상은 당시의 민중이다. 따라서 현재 한국인에게 선조의 아군이 일본군이고 이순신은 선조의 적이다.
일본군이 철수한 이유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병으로 죽었기 때문이다. 이순신이 일본군의 진격을 멈췄다고 말하는 것은 한국인에 의한 날조이다. 실제로 이순신이 일본군에 대해 우세하게 싸운 것은 전쟁 개시 후 3개월의 한산도 해전까지이며, 그 후 7년간은 이순신은 모든 전투에 패주하고 있다.
일본군이 철수한 이유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병으로 죽었기 때문이다. 이순신이 일본군의 진격을 멈췄다고 말하는 것은 한국인에 의한 날조이다. 실제로 이순신이 일본군에 대해 우세하게 싸운 것은 전쟁 개시 후 3개월의 한산도 해전까지이며, 그 후 7년간은 이순신은 모든 전투에 패주하고 있다.
당시 조선군은 일본군 및 그 직후 청국과의 전투에서 거의 전멸하고 있다. 지금의 한국인의 조상은 당시의 민중이지만, 그들은 조선 정부의 정치를 원망하고, 일본군에 식량을 헌상해 환영했다. 서울의 왕궁에 방화한 것도 조선인의 민중이었다. 이 사실은 여러분 한국인에게 이순신은 선조의 적이고, 아군은 일본군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 민중은 조선왕조의 정치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군을 환영하고 식량을 헌상했다. 조선 민중에게 이순신은 적이었다. 조선군은 이 싸움과 그 후의 청국과의 싸움에서 대부분이 죽었기 때문에 그들은 현재 조선인의 조상이 아니다. 현재의 조선민족의 조상은 당시의 민중이다. 따라서 현재 한국인에게 선조의 아군이 일본군이고 이순신은 선조의 적이다.
일본군이 철수한 이유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병으로 죽었기 때문이다. 이순신이 일본군의 진격을 멈췄다고 말하는 것은 한국인에 의한 날조이다. 실제로 이순신이 일본군에 대해 우세하게 싸운 것은 전쟁 개시 후 3개월의 한산도 해전까지이며, 그 후 7년간은 이순신은 모든 전투에 패주하고 있다.
강의 아주 시간 가는줄 모르고 잘 봤습니다. 영상 만드시느라 고생많으셨어요 😊 이순신 장군...조선을 구한것 뿐만 아니라 지금의 우리 대한민국이 있기까지를 위해 지켜낸 명장이신데 백원짜리 동전에 있는게 말이나 되냐고요..더러운 정치권에서 자기들 이권지키자고 더러운 입방아에 오를 뿐이 아니라 전국민적으로 승격받아서 화폐에서도 가장 높은 권의 모델이 되셔야 합니다.
당시 조선군은 일본군 및 그 직후 청국과의 전투에서 거의 전멸하고 있다. 지금의 한국인의 조상은 당시의 민중이지만, 그들은 조선 정부의 정치를 원망하고, 일본군에 식량을 헌상해 환영했다. 서울의 왕궁에 방화한 것도 조선인의 민중이었다. 이 사실은 여러분 한국인에게 이순신은 선조의 적이고, 아군은 일본군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인은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원래 이순신은 현재 한국인의 은인이 아니다. 당시 조선 민중은 양반의 정치에 시달렸다.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하자 조선 민중은 일본군과 협력해 서울까지 길 안내를 하고 식량을 제공했다. 서울 왕궁으로 방화한 것도 조선 민중이다. 즉, 임진왜란이란 명군+조선정부군과 일본군+조선 민중의 전쟁이었다. 이순신 처음 조선 양반 전사 중 상당수는 임진왜란과 그 후 청국과의 싸움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현재 한국인의 조상은 당시 조선 민중이다. 즉, 이순신은 한국인의 조상의 적이며, 아군은 일본군이다. 한국인은 이 역사적 사실을 모른다. 우스꽝스럽다.
조선 민중은 조선왕조의 정치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군을 환영하고 식량을 헌상했다. 조선 민중에게 이순신은 적이었다. 조선군은 이 싸움과 그 후의 청국과의 싸움에서 대부분이 죽었기 때문에 그들은 현재 조선인의 조상이 아니다. 현재의 조선민족의 조상은 당시의 민중이다. 따라서 현재 한국인에게 선조의 아군이 일본군이고 이순신은 선조의 적이다.
누군가는 북녘땅에서 어떤이는 남쪽바다에서 누군가는 낯선나라에서 어떤이는 아스팔트 위에서 누군가는 감옥소에서 어떤이는 미디어에서 지켜온 나라 또 지켜낼 나라 저들의 목숨값이 바래기 전에 반짝이는 대장별이 희미해지기 전에 뭐라도 해야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또 다른 빛이 되어야하지 않겠는가 깨어있어야한다
조선 민중은 조선왕조의 정치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군을 환영하고 식량을 헌상했다. 조선 민중에게 이순신은 적이었다. 조선군은 이 싸움과 그 후의 청국과의 싸움에서 대부분이 죽었기 때문에 그들은 현재 조선인의 조상이 아니다. 현재의 조선민족의 조상은 당시의 민중이다. 따라서 현재 한국인에게 선조의 아군이 일본군이고 이순신은 선조의 적이다.
당시 조선군은 일본군 및 그 직후 청국과의 전투에서 거의 전멸하고 있다. 지금의 한국인의 조상은 당시의 민중이지만, 그들은 조선 정부의 정치를 원망하고, 일본군에 식량을 헌상해 환영했다. 서울의 왕궁에 방화한 것도 조선인의 민중이었다. 이 사실은 여러분 한국인에게 이순신은 선조의 적이고, 아군은 일본군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순신이 일본군에 대해 우세하게 싸운 것은 전쟁 개시 후 불과 3개월의 한산도 해전까지였고, 그 후 이순신은 7년간 모두 패전을 이어갔다. 이순신은 무서워 전쟁 명령을 무시했기 때문에 백의병으로 강등됐다. 원균의 사망으로 사령관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그 직후의 명량해전 1597년 9월 16일에는 조수의 흐름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선이 유리해져 일본군의 크루시마가 죽었지만 저녁이 되어 조수가 바뀌자 조선군은 도피했다. 일본에 쫓긴 이순신은 9월 21일에는 멀리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 앞바다)까지 도망쳤다. 그 후 순천해전 등에서도 이순신은 패퇴하고 노량해전에서 일본군에 의해 쏘여 죽였다. 이상이 조선왕조실록이나 이순신의 일기에 의한 진실이다.
가슴이 터질것 같았고, 눈물이 줄줄 흐르는데 그런줄도 몰랐습니다. 정말 정말 강추합니다. 개인적으론 서울의 봄에서 느낀 그 느낌하고는 완전히 다른 가슴이 벅차오르는 진한 감동을 느껴서 서울의 봄보다 3배는 더 값지게 봤습니다. (참고로 지루한 부분이 좀 있다는 평과, 북소리가 너무 길다는 평이 있었는데, 그런말 하는 분들은 혹시 혹시 왜인이 아닌가? 고니시, 시마즈 후손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듭니다. 단 1초도 지루하거나 북소리가 싫은 1초도 없습니다. 우리 조선의 마음을 갖은 분이라는 그런 느낌이 절대 들지 않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강강강....추 합니다. 3만원 내고 3000억의 가치를 갖고 옵니다.
한국인은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원래 이순신은 현재 한국인의 은인이 아니다. 당시 조선 민중은 양반의 정치에 시달렸다.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하자 조선 민중은 일본군과 협력해 서울까지 길 안내를 하고 식량을 제공했다. 서울 왕궁으로 방화한 것도 조선 민중이다. 즉, 임진왜란이란 명군+조선정부군과 일본군+조선 민중의 전쟁이었다. 이순신 처음 조선 양반 전사 중 상당수는 임진왜란과 그 후 청국과의 싸움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현재 한국인의 조상은 당시 조선 민중이다. 즉, 이순신은 한국인의 조상의 적이며, 아군은 일본군이다. 한국인은 이 역사적 사실을 모른다. 우스꽝스럽다.
영화도 해설도 정말 감명 깊게 보았습니다. 이순신 장군께서 전사하신 것은 정말로 안타깝고 가슴이 아픈 일이지만 어쩌면 전사하셨기에 이렇게 영웅으로 모셔지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만약 생존하셨더라도 어쩌면 당시 당파와 조정 간신들 틈에서 역적으로 몰리시고 처참한 최후를 맞으셨을지도 모르겠다는 씁쓸한 생각이 들어서요...ㅠㅠ
황현필 선생 ㆍ ❤❤❤ 고맙게 공부 많이 합니다. 저의 고향은 고흥 입니다. 임진왜란때 이순신 장군 전라좌수영 휘하 5관5포 가운데 4관4포 장수들과 고흥 출신 정걸, 송대립, 송희립, 당시 녹도만호 정운 장군과 대부분의 수군병사,격군은 고흥 민초들이 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고흥 녹동에는 임진왜란 전 손죽도 전투에서 전사한 이대원 장군 사당에 임진왜란 부산포 전투에서 전사한 녹도만호 정운 장군을 합사하여 기리는 초라한 쌍충사가 있을 뿐이고, 명나라 장수 진린에게 전공을 넘겨준 절의도 전투의 현장이기도합니다. 65년전 제가 어렸을때 조부님께서 쌍충사 제를 모실때 굴건제복 갖추고 입혀 데리고 다녔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한산, 명량, 노량은 단지 전투현장일 뿐인데, 지금은 많은 유적지로 기리고 있는데, 고흥 녹동에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하나, 수군병사 격군 민초를 기리는 사당하나 없다니 서글프네요 ~~~ 이치 전투 황진 장군 같이 ~~~ 호남 푸대접은 아닐거라 ?? 고 스스로 위로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