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gmolee 모든 것은 3.1운동 이후로 시작된다 3.1운동은 세계사적으로도 유명한 피지배국이 행했던 저항운동이다 3.1운동은 독립운동을 하는 이에게도 그리고 일본제국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일제는 그간 폭압정치로 발생한 3.1운동을 보면서 한국민족은 절대로 폭력과 강압으로 억지로 다스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문화통치라는 새로운 통치이념을 만들었는데 그 문화통치라는 것의 큰 두개는 친일파 육성과 역사왜곡 식민사관의 주입이였다 식민사관은 역사를 왜곡해서 조선인 스스로가 자신의 조상을 부끄럽게 여기고 욕하게 만드는것이 그 주된 목적이다 초기에는 기록이 부족한 고대사의 왜곡이 주공을 이뤘다 그러나 신채호 박은식등의 민족주의 사관 학자들의 고대사 연구로 이 첫번째 공격은 학문적으로 방어가 된다 그리고 두번째 공격은 조선사에 있었다 일본은 바로전 시대의 역사를 왜곡함으로서 목표를 달성하고자 했다 조선사는 단순히 정치사와 유물 유적에 의한 고증만 잘 한다면 방어가 되는 고대사와는 달랐다 그러나 유물사관 학자 신민족주의 사관의 학자 진단학회의 학자들은 조선사를 다각적 심층적으로 해석해서 이 일본의 두번째 식민사관 공격을 학문적으로 방어했다 조선의 상업 발달과 각 분야의 발달 (광업 수공업) 모내기 이앙법의 발달로 인한 계층분화 부의 상승 그 부의 상승에 의한 신분제의 붕괴 백성에게 근대 시민사상을 깨닫게 해주는 서민문학의 발달 근대화 시민 혁명에 비견할 농민 민란 그리고 이 모든 사회현상의 이론적 배경을 제시하는 실학자들의 등장 특히 정약용은 일본 학자들도 인정한 조선의 등불로 비유된다 이것을 조선학 운동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것을 근간으로 현재 역사교과서가 편찬되지 그리고 이것을 반대하는 사관이 뉴라이트이다 반론 하길 바란다 엉터리 우파 개소리 하지 마시고
모든 것은 3.1운동 이후로 시작된다 3.1운동은 세계사적으로도 유명한 피지배국이 행했던 저항운동이다 3.1운동은 독립운동을 하는 이에게도 그리고 일본제국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일제는 그간 폭압정치로 발생한 3.1운동을 보면서 한국민족은 절대로 폭력과 강압으로 억지로 다스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문화통치라는 새로운 통치이념을 만들었는데 그 문화통치라는 것의 큰 두개는 친일파 육성과 역사왜곡 식민사관의 주입이였다 식민사관은 역사를 왜곡해서 조선인 스스로가 자신의 조상을 부끄럽게 여기고 욕하게 만드는것이 그 주된 목적이다 초기에는 기록이 부족한 고대사의 왜곡이 주공을 이뤘다 그러나 신채호 박은식등의 민족주의 사관 학자들의 고대사 연구로 이 첫번째 공격은 학문적으로 방어가 된다 그리고 두번째 공격은 조선사에 있었다 일본은 바로전 시대의 역사를 왜곡함으로서 목표를 달성하고자 했다 조선사는 단순히 정치사와 유물 유적에 의한 고증만 잘 한다면 방어가 되는 고대사와는 달랐다 그러나 유물사관 학자 신민족주의 사관의 학자 진단학회의 학자들은 조선사를 다각적 심층적으로 해석해서 이 일본의 두번째 식민사관 공격을 학문적으로 방어했다 조선의 상업 발달과 각 분야의 발달 (광업 수공업) 모내기 이앙법의 발달로 인한 계층분화 부의 상승 그 부의 상승에 의한 신분제의 붕괴 백성에게 근대 시민사상을 깨닫게 해주는 서민문학의 발달 근대화 시민 혁명에 비견할 농민 민란 그리고 이 모든 사회현상의 이론적 배경을 제시하는 실학자들의 등장 특히 정약용은 일본 학자들도 인정한 조선의 등불로 비유된다 이것을 조선학 운동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것을 근간으로 현재 역사교과서가 편찬되지 그리고 이걸 부정하는게 뉴라이트의 시작이란다 반론 하길 바란다 엉터리 우파 개소리 하지 마시고
모든 것은 3.1운동 이후로 시작된다 3.1운동은 세계사적으로도 유명한 피지배국이 행했던 저항운동이다 3.1운동은 독립운동을 하는 이에게도 그리고 일본제국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일제는 그간 폭압정치로 발생한 3.1운동을 보면서 한국민족은 절대로 폭력과 강압으로 억지로 다스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문화통치라는 새로운 통치이념을 만들었는데 그 문화통치라는 것의 큰 두개는 친일파 육성과 역사왜곡 식민사관의 주입이였다 식민사관은 역사를 왜곡해서 조선인 스스로가 자신의 조상을 부끄럽게 여기고 욕하게 만드는것이 그 주된 목적이다 초기에는 기록이 부족한 고대사의 왜곡이 주공을 이뤘다 그러나 신채호 박은식등의 민족주의 사관 학자들의 고대사 연구로 이 첫번째 공격은 학문적으로 방어가 된다 그리고 두번째 공격은 조선사에 있었다 일본은 바로전 시대의 역사를 왜곡함으로서 목표를 달성하고자 했다 조선사는 단순히 정치사와 유물 유적에 의한 고증만 잘 한다면 방어가 되는 고대사와는 달랐다 그러나 유물사관 학자 신민족주의 사관의 학자 진단학회의 학자들은 조선사를 다각적 심층적으로 해석해서 이 일본의 두번째 식민사관 공격을 학문적으로 방어했다 조선의 상업 발달과 각 분야의 발달 (광업 수공업) 모내기 이앙법의 발달로 인한 계층분화 부의 상승 그 부의 상승에 의한 신분제의 붕괴 백성에게 근대 시민사상을 깨닫게 해주는 서민문학의 발달 근대화 시민 혁명에 비견할 농민 민란 그리고 이 모든 사회현상의 이론적 배경을 제시하는 실학자들의 등장 특히 정약용은 일본 학자들도 인정한 조선의 등불로 비유된다 이것을 조선학 운동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것을 근간으로 현재 역사교과서가 편찬되지 그리고 이걸 부정하는게 뉴라이트의 시작이란다 반론 하길 바란다 엉터리 우파 개소리 하지 마시고
@@콩사탕이싫어요-w5f 그래도 지리상 봤을 때 아무래도 서양인이 동북아시아 가는 루트가 보통 한반도로 가는 것보다 일본과 중국으로 가는게 더 일반적이라서요 먼나라 이웃나라 네덜란드 편에서 이것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고 님이 하멜도 따지고보면 일본으로 가려다가 표류해서 한국에 온 것이니까요
조선이 진짜 초기에는 성리학 기반으로 태평성대를 이루긴 했으니 나라가 단종이후로 맛탱이가 가기 시작해서는.... 일본도 번역할정도였으면 분명 조선에도 접근은 했을테지만 그놈의 성리학으로 인해 고조선이나 고대국가기록도 그남아 남아있는 관련서적을 조선시대에 불태웠음... 분명 가장 강력한 고대국가임은 틀림없지만 그와동시에 가장 무능하고 명분이 없는 왕조임
모든 것은 3.1운동 이후로 시작된다 3.1운동은 세계사적으로도 유명한 피지배국이 행했던 저항운동이다 3.1운동은 독립운동을 하는 이에게도 그리고 일본제국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일제는 그간 폭압정치로 발생한 3.1운동을 보면서 한국민족은 절대로 폭력과 강압으로 억지로 다스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문화통치라는 새로운 통치이념을 만들었는데 그 문화통치라는 것의 큰 두개는 친일파 육성과 역사왜곡 식민사관의 주입이였다 식민사관은 역사를 왜곡해서 조선인 스스로가 자신의 조상을 부끄럽게 여기고 욕하게 만드는것이 그 주된 목적이다 초기에는 기록이 부족한 고대사의 왜곡이 주공을 이뤘다 그러나 신채호 박은식등의 민족주의 사관 학자들의 고대사 연구로 이 첫번째 공격은 학문적으로 방어가 된다 그리고 두번째 공격은 조선사에 있었다 일본은 바로전 시대의 역사를 왜곡함으로서 목표를 달성하고자 했다 조선사는 단순히 정치사와 유물 유적에 의한 고증만 잘 한다면 방어가 되는 고대사와는 달랐다 그러나 유물사관 학자 신민족주의 사관의 학자 진단학회의 학자들은 조선사를 다각적 심층적으로 해석해서 이 일본의 두번째 식민사관 공격을 학문적으로 방어했다 조선의 상업 발달과 각 분야의 발달 (광업 수공업) 모내기 이앙법의 발달로 인한 계층분화 부의 상승 그 부의 상승에 의한 신분제의 붕괴 백성에게 근대 시민사상을 깨닫게 해주는 서민문학의 발달 근대화 시민 혁명에 비견할 농민 민란 그리고 이 모든 사회현상의 이론적 배경을 제시하는 실학자들의 등장 특히 정약용은 일본 학자들도 인정한 조선의 등불로 비유된다 이것을 조선학 운동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것을 근간으로 현재 역사교과서가 편찬되지 그리고 이걸 부정하는게 뉴라이트의 시작이란다 반론 하길 바란다 엉터리 우파 개소리 하지 마시고
@@us-sdf이거 그냥 좌파식 역사수정이잖아 ㅋㅋㅋㅋ 진짜 이정도면 정신병이다. 일제감정기를 그저 친일파와 무능한 조선인 이단하여 스스로 무엇을 증명하는지 조차 말하지 못하는 개 뻘글 잔뜩써놓는 수준...뉴라이트? 너의 주장에 뒷받침되는 근거자체가 근거는 있음? 그리고 이승만 박정희도 반일주의자였는데 왜 욕함? 그때부터 반일감정도 부추겨진건 알긴할까?
@@us-sdf 뭔 ㄱ소리여. 중국이나 프랑스나 일본이나 독일에 맞서 무장투쟁을 계속해왓는데, 한국은 아무 저항없이 일본과 합방 받아들여놓고, 꼴랑 수백명 독립운동한걸로 지들이 독립운동한줄아네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실제로는 일본인으로써 충실히 수십년을 산 주제에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실제, 연합국 문서에도,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 또는 연합국측으로 표기 안되어 있고, 일본의 부역국 정도로 표기되잇는게 팩트.
다른 나라도 다 똑같았음 팩트는 유럽국가들은 비교적 빠르게 중세를 타파하고 근대를 열였고 조선은 시대에 뒤떨어진 중세왕국과 그 사상이 몇번의 위기를 제외하고 180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고 옆나라 보다 접근성도 딸려서 무역도 못하고 유럽에서 일어난 그동안의 전쟁과 혁신의 파도를 버티지 못한것일 뿐임 일본은 버텨내서 조선 식민지로 만들었잖음? 도박마냥 전쟁하다 식민지를 다 뱉어내긴 했지
@@jihwankim9855조선이 유달리 인재를 천시 했는가가 사실이 아니라고 했지 급격한 서양열강의 발전을 아시아와 똑같다라고 한게 아니라는거지 딴소리 하시네요 유럽과 아시아의 차이는 인재를 천시했는가가 아닌 얼마나 많은 혁신이 발현될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느냐죠 베스트팔렌 조약, 명예혁명, 대항해시대, 산업혁명, 프랑스 혁명 같은게 일어나기전에 있었던 사건들이 아시아에서는 일어나지 못했고 전통적인 사회 구조와 가치에 기반한 정치적, 문화적 체제에 따라 나날이 체제유지만 하던것하곤 차이가 있죠. 인재는 어느나라 대륙을 막론하고 우대 받았습니다.
@@Djdllclclc 추가한 댓글 짤려서 그런데 본래 의도가 조선이 인재를 천시한게 하닌 조선은 혁신이 일어날 환경 자체가 안됬다는 거였음 전통적 사회구조를 가진 아시아와 다르게 서양사 주요 종교적 사회적 사건들 자체는 아시아에서 동시대에 일어날수 있는 사건 자체가 아니였다는 말임
조선 일본에 역전당하고 치욕당할수밖에 류승룡이 징비록 만들었을떼 조선은 등한시 했고 오히려 일본이 철저하게 연구했고 일본은 선진서양 기술.문물을 받아들여 조선을 먹었지 그리하여 해방후 우리도 미국도 많이 도와주었지만 일본에서 자동타,원전,지하철 수많은 기술들을 배워와서 이만큼 잘사는 선진국이 되었지 참고로 일본이 1년 걸린일 대한민국은 5년만에 해냈다
@@북쪽동네한글 쓰면서 그런소릴합니까 조선초기까진 일본이나 명나라에 비해 그나마 나았음 명나라 반란횟수만봐도 압도적임 일본은 그냥 내내 전쟁터였음 단지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나라가 맛탱이가 간거지..임진왜란으로 조선 명 일본 전부 국가가 뒤집어졌는데 명은 청으로 강해졌고 일본은 에도시대들어서면서 안정기가 왔는데 조선은 인조...
오사카의 아베노 하루카스를 지은 다케나카 공무점 창업 1612년 아시아 1위, 세계10대 제약회사인 다케다제약 창업 1700년대. 동양 최초의 백화점인 미츠코시 백화점 창업 1600년대(에치고야) 1980년대 세계1위 반도체 메이커 일본 nec 창업 1899년(에디슨의 일본인 제자가 창업) 일본 종합전기회사 도시바 창업 1700년대(동경 닌교초의 태엽인형 제작소에서 출발)
개혁혁명 조선말기에 꽤 많이 일어남 대표적으로 갑신정변 동학혁명을 꼽는데 이 두사건 전부 고종과 민비가 외국세력을 끌어들여 진압하고 개혁을 막음 대부분 흥선때문에 개국이 늦어졌다 말이 많은데 당시 서양인들이 동양국가에서 했던 꼬라지보면 폐쇄해도 이상할게 없긴했음 침탈약탈 심지어 왕족묘 도굴까지 그냥 국기걸은 해적집단이 였음 때문에 일어난게 병인 신미양요 흥선은 병인박해로 많은 학살을 저지른건 굉장히 잘 못한 행동이지만 적어도 고종민비처럼 나라를 외국세력에 갖다바치진 않았음
모든 것은 3.1운동 이후로 시작된다 3.1운동은 세계사적으로도 유명한 피지배국이 행했던 저항운동이다 3.1운동은 독립운동을 하는 이에게도 그리고 일본제국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일제는 그간 폭압정치로 발생한 3.1운동을 보면서 한국민족은 절대로 폭력과 강압으로 억지로 다스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문화통치라는 새로운 통치이념을 만들었는데 그 문화통치라는 것의 큰 두개는 친일파 육성과 역사왜곡 식민사관의 주입이였다 식민사관은 역사를 왜곡해서 조선인 스스로가 자신의 조상을 부끄럽게 여기고 욕하게 만드는것이 그 주된 목적이다 초기에는 기록이 부족한 고대사의 왜곡이 주공을 이뤘다 그러나 신채호 박은식등의 민족주의 사관 학자들의 고대사 연구로 이 첫번째 공격은 학문적으로 방어가 된다 그리고 두번째 공격은 조선사에 있었다 일본은 바로전 시대의 역사를 왜곡함으로서 목표를 달성하고자 했다 조선사는 단순히 정치사와 유물 유적에 의한 고증만 잘 한다면 방어가 되는 고대사와는 달랐다 그러나 유물사관 학자 신민족주의 사관의 학자 진단학회의 학자들은 조선사를 다각적 심층적으로 해석해서 이 일본의 두번째 식민사관 공격을 학문적으로 방어했다 조선의 상업 발달과 각 분야의 발달 (광업 수공업) 모내기 이앙법의 발달로 인한 계층분화 부의 상승 그 부의 상승에 의한 신분제의 붕괴 백성에게 근대 시민사상을 깨닫게 해주는 서민문학의 발달 근대화 시민 혁명에 비견할 농민 민란 그리고 이 모든 사회현상의 이론적 배경을 제시하는 실학자들의 등장 특히 정약용은 일본 학자들도 인정한 조선의 등불로 비유된다 이것을 조선학 운동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것을 근간으로 현재 역사교과서가 편찬되지 그리고 이걸 부정하는게 뉴라이트의 시작이란다 반론 하길 바란다 엉터리 우파 개소리 하지 마시고
요즘 의사분들이 특히 해외 이민이나 취업 많이 알아보고 계시다던데 한국의 의료가 특히 걱정입니다...고령화, 저출산의 한국에선 특히 많은 의사가 필요할텐데 말이에요...정부의 의대생 증원도 공감하는면도 있고, 의사 입장에서는 제가 의사라도 밥그릇 줄어드는게 싫을테니 의사들의 입장도 공감하는면이 있습니다. 빨리 무언가 합리적인 중제안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대항해 시대, 지정학적 중요성 이런 건 역사적 운이니 차치하더라도 현재 한국이 한번 침몰을 겪고 다시 일어났지만 국가 전체의 규모에서 일본에 밀리는 것처럼 일본의 국토랑 인구 수 때문이라도 조선 초기부터 서서히 그 무게 추가 일본에 기울 수밖에 없었을 듯함 전국시대가 오래 지속되었다면 모르겠지만 조선 중기부터 내전도 종식되었으니 국가적 역량이 모일 수밖에 없고 이런 흐름이 정체 중이던 조선 중후기랑 맞물리면서 일본이 앞서나가게 된 큰 초석이 되었다고 생각함
@@AlgoranofAlgorand 1. 북해도가 농축업생산지로써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생각하면 북해도를 왜 제외하나요? 2. 인구가 7~8천만급 되어서 영국, 프랑스 급이 되었더라도 결국엔 일본이 영국, 프랑스보다 GDP가 높다는 건 인구에서 비롯되는 국력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걸 증명하는 건데 지금보다 인구 수가 더 중요하게 작용했던 전근대 사회에서 조선의 2~2.5배 되는 인구를 가진 일본이 더 유리한 지점에서 시작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 드네요
인구와 국토면적이 늘 한민족보다 우위였던건 아님 면적으로 치면 고구려와 발해등 한민족이 만주와 요동에서 활동하던 시기까진 영토에선 한국이 앞섰고 반면 그당시 일본은 혼슈섬 중간까지만 먹은 상태였고 인구는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등 한반도 고대 국가들 모두 기록이 말살됐기에 추정조차 불가능하니 의미 없는 논쟁이고 고려 이후부턴 일본열도가 인구와 국력면에서 한반도보다 우위였던건 맞는데 여러 세력으로 갈라져 있었기에 이것도 딱히 의미는 없고 일본이 확실하게 통일된 국력으로 한반도를 뛰어넘은건 수백년간의 내전이 슬슬 종결될 기미를 보인 오다 노부나가 시기부터일듯 에도막부 시대부턴 문명수준에서도 확실히 한반도 왕조를 넘어섰고
@@Zenamoseno저분이 말한건 우리가 여기서 가정한다고 해서 사실이 바뀌는건 없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원문도 그런 의미에서 쓰인 것이기도 하고요. 가정해 보는것은 언제나 즐겁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런다고 바뀌는 것이 아니니 현실을 생각하고 지나간 과거에 얽매이지 말자는 것입니다
조선을 마냥 욕하기엔 조선초기는 괜찮았지만 임진왜란이후로 맛탱이가 감 명나라 망하고 청나라와 국가대 국가로 교류하고 지냈어야 했는데 그놈의 명은 조선의 아버지다 라는 망할 마인드 때문에 청한테 개털리고 또 청나라 밑으로 들어가는 바보같은 짓을 해버려서 그이후로 그냥 맛이가버리고 세도정치때 조선은 망하고 갑신정변때 나라가 바뀌었어야함
@@bill_blackhands 야동도 중요하다. 출산율 봐라. 우리나라는 성이라고 하면 무조건 폐쇄적으로 하는 게 문제인 게 맞다. 일본을 이겨야 된다고 하지만 일본은 그래도 9천만은 유지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이대로 가면 3천만까지 떨어진다. 인구가 1/3 밖에 안 되는데 일본을 어떻게 이기냐.
개인적으로 조선은 일본에 밀릴수 밖에 없는게 과학기술에 대해 무지하고 성리학 유교 들이미는 정신 나간 짓을 우리 조상이 해서 그런것 같아요. 도자기 도공만 봐도 바로 느낌 오더라고요. 정말 좋은 기술은 가졌지만 조선에선 소위 대접 받지 못하는 집단이지만, 일본에 가니 아주 극진한 대접을 해주니, 현재 일본의 도자기 기술이 세계 최고급인거 보면 딱 나오더라고요. 소름 돋는건, 이런 모습이 21세기 한국에도 나타난게 문제인것 같아요.
애초에 일본열도의 환경 자체가 조선보다도 온난하고 강수량이 많아 모내기 도입을 이미 12세기에 하는 등(조선은 편차가 심한 문순 기후라 저수지 같이 수리시설 아니면 모내기가 힘듦어 조선 후기에나 도입) 벼재배에 훨씬 유리했기때문에 경제력과 인구수에서 우위를 점했습니다. (벼가 원래 남중국지역 아열대출신이라 일본의 환경이 성장에 훨씬 잘 맞기 깨문) 전국시대를 거치며 여러 지방 다이묘들이 개간과 농업생산 증대를 꾀하며 이미 경제력이 조선을 뛰어넘은 상태였다가 에도 시대의 평화 시대상 + 교통 발전 등으로 인한 상업과 여러 산업이 발전하면서 조선과의 격차를 더 벌려버린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열도의 환경을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는 모양인데 일본열도는 화산 지진 태풍 등 악명높은 자연재해가 많이 활개쳐서 수확물을 많이 확보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며 게다가 일본 최대의 평야지대인 간토 평야도 17세기에 와서 개척이 완료된 터라 전국시대인 16세기까지만 해도 일본열도는 한반도보다 농업 생산력에서 열세이지요 그 나마 서양 세력이 대항해로 일본에 진출하여 일본과 교역해서 일본의 기술력과 경제력을 높여주었기에 다이묘들중 서양세력과 교류한 다이묘와 그렇지 못한 다이묘들의 전력 차이를 가져와서 히데요시 같은 세력이 서양과의 교역권을 독점해서 일본을 통일해 나갈수가 있던 것이지요
@@가불-w1k 그것들을 모조리 감안해도 전근대 일본이 구리와 은이 풍부하고 혼슈 대부분까지 2모작이 가능하다 보니 고려시대 이후로는 일본의 생산력이 한국을 능가한다는 시각이 대부분이기는 합니다. (애초에 홋카이도와 도호쿠 일부를 빼도 한반도만한 크기니까요.) 그리고 서양무역도 초창기였던 전국시대에는 타 지역에서 잡아온 일본인 노예를 팔고 화약을 사오는 방식으로 영지확장을 했기 때문에 석고가 늘어났다는 것이 더 맞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당시 아프리카 소국들이 다른 부족을 침락해서 잡은 포로를 서양에 팔아서 다시 다른지역을 점령하는 방식으로 체급을 키워나가는 방식처럼요. 기술력의 측면에서는 서양과의 교류가 도움이 된건 맞는 것 같습니다. 에도시대때는 이전과는 다르게 정밀한 해부학 서적도 만들 수 있게되고 간토지역의 토네 강을 정비할때 네덜란드인 기술자를 고용했다는 기록도 나오니까요.
gdp 대비 r&d 지출비중이 세계 2위고 전체 규모에선 5위인데 한국밖에 없다는 표현은 조금 무리수 아닌가 싶어요. 다른나라는 투자조차 안하는데. 물론 대기업 비중이 7할이 넘고 정부 비중이 2할 언저리긴한데 이건 우리나라가 대학 중심의 연구 개발이 아니라 대기업 중심의 연구개발이 주를 이뤄서 그런게 아닌가싶고. 기업 입장에선 성과가 빠르게 나오지 않거나, 이미 따라잡기엔 너무 먼 기술에 투자할 수 없으니까 해당 부문 지원이 끊기는건 어찌보면 당연함. 영리기업이니까요. 그럼 대학이나 국가기관에서 주도하는 r&d를 늘려야하는데 단순히 행정부 한쪽에서만 늘리고 싶다고 늘려지는게 아니라 국민적인 합의가 이뤄져야하고 다른데에서 쓰이던 세금을 끌어다 써야하는데 그 합의가 되긴할까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봄... 우리나라는 지금 위치에서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대우를 해주고 있어요. 미국같은 고연봉국가랑 비교하는 건 말이 안됨 돈이 없는걸요. 그래서 인재들이 떠나는거고.
@@holymolyK 니들이 얘기하는 논리 잘들었음. 자원은 인재뿐이라는 나라가 살길은 R&D인데 포닥들 다 떠나는 대폭삭감을 갑자기 논의도 없이 밀어부치는게 맞나요? 늘리는게 아니라 이유도 영문도 모르고 식감. 지금 왜2000명 의대정원확대인지 이유도 영문도 아무도 설명못하는데 이런 행정부가 정상?? 그 힘들다는 IMF때도 우리 아이들 미래를 위해 손대지 않았던게 R&D였음. 안그래도 인재 유출에 이과1등들 다 의대로 빠지고 있는데. 이건 우리 아이들 미래를 뺏어버리는 짓거리였음. 대체 R&D 삭감으로 얻은게 뭐였음? 카르텔 잡았음? 윗대가리들은 피해없고 자라나는 과학자들 끊어버리고 ㅈㅈ 지금의대증원도 인턴.레지턴트들 다 일반의로 강제로 만들어 버린꼴이니 나중에 죽을병걸림 전문의 없어서 어쩌자는건지 ㅈㅈ 영국처럼 인도.동남아 의사 데리고 와서 해결되겠냐구 ㅈㅈ
임진왜란 때 일본에 잡혀간 조선인 포로만 10만명이 넘는다 ㄷㄷ 전근대 시대에는 노동 가능 인구수가 국력에 거의 전부를 차지하던 시대임 10만명을 뺏겼다는건 전쟁에 이긴 조선은 오히려 국력이 쇠하고 전쟁에 패한 일본이 강성해지는 이상한 효과를 가져옴; 그 시대에 10만이면 지금으로 따지면 일본이 수도권 도시 하나를 떠갔다고 보면 됨 일본은 전쟁에 패할 위기에서도 필사적으로 자신들의 손해를 만회하고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것은 일본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이익이 되는 것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일본은 독도. 라인 강탈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걸 우리 스스로가 망각하면 안된다 일본을 믿거나 방심하면 당한다는 교훈
@@박기락-k5y딴건 모르겠는데 스님이였나 통신사였나 사람 보낼 때 포로 데려 오려고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남겠다고 했었음. 특히 도공들 찾아보니 연려실기술에 이렇게 써져있음 ‘유정이 찾아 온 포로들을 경준에게 맡기면서 편리한 대로 나누어 보내라고 하였는데 선장들이 앞을 다투어 나누어서 인수하고 구속하는 것이 포로된 것보다 더 심하였다.그 출생한 곳을 물어도 어릴 때 포로가 되어서 본계(本系)를 자세히 알지 못하면 모두 자기의 종이라 칭하고, 아름다운 여자는 그 남편을 묶어서 바다에 던지고 마음대로 자기의 소유로 만들었다. 일이 발각되어 경준은 파면되고 이운룡(李雲龍)이 후임이 되었는데, 각 도의 수사로 하여금 적발하여 사실대로 아뢰도록 하였으나 끝내 실상을 조사하지 못하였다.’ 연려실기술에는 찾진 못했지만 ‘1607년에는 1,418명의 피로인을 데려와 민간에 분산배치하고 관리들은 그냥 가버렸다. 1617년에는 귀환한 321명을 부산에 내려놓고 마중오기로 한 관리가 나타나지 않아 모두 끼니를 걸렀다고 한다. 이런 소식이 일본에 남아 있는 피로인들에게 알려진 것 같다. 사절단이 일본에 가 돌아오라고 종용하면 그들 중 일부는 “조선은 피로인을 쇄환해도 대우가 형편없다고 합니다. 저희들이 포로가 되고 싶어서 된 것은 아닙니다. 쇄환시키고도 그렇게 냉대합니까”라고 힐문했다고 한다.’라는 소리도 있는거보면 남겠다고 선택한 사람들 꽤 많았을 듯. 노예로 팔려간 사람도 꽤 있었을거고
조선에서 개발된 연은분리법이 일본으로 유출되더라도 전국시대로 분열되어 전쟁터가 많은 일본 각지에 골고루 보급되기가 어려운 점이 많아서 지정학적으로 조선과 가까운 대마도 및 큐슈 등 서일본 지역만 혜택을 많이 받을 공산이 크기에 연은분리법이 일본 통일 같은 일본의 강성함을 가져왔다는 논리로 본다면 큐슈의 시마즈 가문 같은 서일본 세력이 일본 통일의 주역이 되어야 정상이지요 그런데 큐슈의 시마즈 가문이 일본 통일의 주역이 되지 못하고 히데요시 같은 일본 중부지방 세력이 일본 통일의 주역이 되는 것을 생각한다면 일본은 연은분리법보다 서양세력과의 교역과 이를 손에 넣은 오다 및 도요토미 등 유력 다이묘 세력의 일본 통일로 강성해졌다라고 봐야 될것이지요 연은분리법의 효과가 많이 나타난건 에도시대에 와서 부터라 국내적인 상업이 발달한 에도시대에 화폐 유통이 활발할수밖에 없어서 은화 제조에 필요한 연은분리법이 그 때문에 많이 쓰여질수밖에 없었지요
산업기술적인 측면에서 보면 조선의 연은분리법이 일본으로 흘러간게 획기적인 사건이 될수 있겠지만 그러나 당시 일본은 전국시대로 분열중이라 연은분리법이 흘러 갔다고 해서 당시 전쟁에 휩싸인 일본 국내에서는 화폐가 유통될 분위기도 아니어서 연은분리법의 효과를 보지 못하지요 일본의 강성함은 연은분리법보다는 대항해로 아시아에 진출한 서양 세력과의 교역이 작용했다고 봐야 될것입니다 게다가 동아시아의 맹주 명나라의 쇠퇴 같은 주변 국제정치적 상황도 유리하게 작용해서 임진왜란을 일으킬 원동력이 될수밖에 없었고요
사실 조선이 전근대 국가에 못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기에 세종시기의 황금기와 한글창제는 칭찬하고, 조선의 과오에서 교훈을 얻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조금 염려되는 건 일부 사람들이 조선을 분석하는 걸 넘어서 일본에 감정이입하고 한국인을 깎아내리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유독 일본 관련 영상이 이런 게 심한데 중국이 g2에 진입한 거에 대해선 "어차피 중국에 비해 한국은 열등하다"는 극단적 자국혐오는 표출되지 않습니다. 만약 이런 댓글들이 달린다면 중국인 댓글알바들이 쓴 것인 반면 일본 영상에는 유독 한국 국적의 일본 무료 변호사들이 입장해서 현실과 괴리가 있는 말들을 이야기합니다. 여기 댓글창에도 어김없이 조선인은 선천적으로 열등하다거나, 한국이 일본에게 식민지배 당한 채 일본 영토로 계속 존속했다면 자기 삶이 한결 나았을 거라 믿는 분들이 있네요. 국뽕도 안 좋아하지만 자국혐오도 잘못된 겁니다.
중국에 대해선 안그러는데 일본에 대해선 여론 화력이 완전 다르죠? 그만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을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입니다. 일본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들의 조상으로부터의 유산은 매우 값진 것이거든요. 한국의 조선시대로부터의 유산? 뭐 있나요 한글? 한글정도야 잘 만들어진 글자라는건 인정합니다만 일본인은 일본어 써서 손해보나요? 한국은 한글이 있어서 뭔 큰이득을봤나요? 심지어 한국 역사는 침략자들이 나쁜놈이고 우리는 착해서 당하기만했다 이런 스탠스를 취합니다. 참 웃길노릇입니다 ㅎㅎ 도저히 국뽕을 할래야 사실을 알면 할 수가 없는 구조기 때문에 국까 일빠들이 많은겁니다.
@@엽기토끼-f9n일본인에게 한글은 중요한 유산이 아니지만 한국인에게 한글은 매우 중요한 유산입니다. 한국어를 한자로 표시하는 데에 한계가 있으며 한자가 일반 백성들이 익히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었지만 한글이 창제됨으로써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쉬운 한글이 만들어지면서 조선시대 백성들은 한글을 써서 상소를 올리고 편지를 쓰며 자신들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게 됐고 왕과 지배층조차 한글을 사용했으며, 시대를 거치며 확산과 보편화, 띄어쓰기 도입 등을 추진하며 한국인에게 익숙하고 가독성이 좋은 문자 체계를 완성해 문맹률 개선에 성공했습니다. 또한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빛을 발했는데 키보드로 한자를 입력하는 것은 오래 걸리지만 한글은 보다 간단하게 입력할 수 있기에 우리 삶에 가져온 편의성이 적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총균쇠를 보고 지정학을 이해하고 국제정치도 좀 이해하고 봐야지 과거에서 배워서 미래로 가야 하는데 일제 나빠요 배척이나 식민지근대화론에 빠져서 충성 ㅇㅈㄹ하는 수준이 젤 문제 통찰하고 배워야지 지금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선진국들 많이 보는데 거기서 배워서 좋은 곳으로 가야지 과거나 답습하고 있으니....... 최근에 대통령부터 다 뉴라이트니 종왜매국노들이 성장하는데 그 전 정부가 못한 탓도 있고 이번에는 심각하게 합리적 보수가 멸절하고 매국노급으로 가고 독도도 식민사관도 심각하게 가는데 일본재단과 도요타재단, 미쓰비시재단 등 일본 정부과 기업들이 오랜 기간 우리나라나 해외 인재를 키워서 친일을 넘어 간첩 매국노로 까지 사용 가능하게 키운 부분이 대단한 거지 우리도 배워서 도광양회를 하던가 해야지 우리나라 통합의 정치로 가고 양극단에서 벗어나고 국민과 정부, 기업 모두 전략적으로 가야지 일본처럼 인도 태평양 전략 쿼드 등을 계획하고 주도하는 위치로 가는 거지 지금 같이 무능하거나 매국노거나 하면 답이 없음
결국 조선의 기회는 중국 이외의 세계가 어느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최대한 재빨리 눈치채는 데 달려있었음 마지막까지 외부세계 대신 기존 동아시아-중국 시스템에 최적화된 폐쇄경제를 '최선의 수' 라고 판단한 데에서 '가장 효율적인 것' 은 '유통, 소비 인플레이션의 가능한 한 억압' 원툴일수밖에 없었음
사치풍조를 멀리 한 것도 있지만 사실 조선에서 연은분리법이 제대로 이용되지 못한 것은 일본 수준의 대규모 은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름 기술 개발을 했지만 채산성이 떨어지는 것과, 명나라와의 충분한 무역, 조공 품목에 은이 확대될 확률 등을 고려했을 때 여러모로 현실적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JJ-ho3cx이미 1인당 GNI나 GDP는 통계기관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우리 정부는 제외하더라도 IMF, WORLD BANK, UN등의 발표보면 거의 비슷하게 따라잡았거나 심지어 우리가 더 높게 나오기도 하잖아요 헝그리 정신이라 할만큼 넘사벽인 시대는 2010년대초 정도까지고 우리 소득이 3만불이 넘고 일본은 상대적으로 주춤하면서 4만불에서 5만불언저리 살짝 찍어보나 하다가 3만불대로 주저앉으면서 격차 많이 좁혀졌죠 뭐 무식한 제가 확실히 이길 수까진 모르겠네요 다만 예전에 그 까마득한 선진국이던 일본을 이 정도까지 따라온거 보면 님의 주장처럼 지구 종말까지 절대로 불가능이라 단정하는게 더 불합리하게 보여서요
사실 조선이 미개했던 데에는 지금까지 내려오는 조선인의 국민성이 한 몫 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를 토대로 해서 미래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감정에 호소하며 과거에만 연연하는 자세요. 세계 여러 나라들은 불과 50년이 채 안 됐는데도 우방국이 될 때도 있고 적국이 될 때도 있었죠. 1912년 발칸전쟁으로 불가리아는 오스만제국에게 영토를 상실했지만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동맹국의 일원으로 함께 싸웠죠(물론 패배했지만). 독일제국과 일본제국 역시 1차 세계대전 당시엔 적국이었습니다. 하지만 30년도 안 돼서 동맹국이 됐구요. 영국과 프랑스 역시 굉장한 앙숙이었으나 독일이라는 새로운 잠재적 적국이 생기자 동맹을 맺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떻죠? 일본한테 합병 됐던 것을 어떻게든 식민통치라고 사실을 부정하면서 일본이 했던 짓을 잊지 말자고 불매운동까지 일으키면서 국가적, 외교적 망신을 당했습니다. 현재까지 50번이 넘는 사과와 배상금 지급, 일왕과 총리의 직접적인 사과에도 "진정성 있는 사과"가 아니라며 일축해버립니다. 정작 북한과 중국은 6.25 전쟁에 대해 사과 한 마디 없으나 그 사실에 대해선 침묵하구요. 지금 이런 정당이 190석을 장악했습니다. 한국인은 과거에 사로잡혀 미래로 나가지 못 하는 성격입니다. 일본은 어떻죠? 일본에게 있어 미국이라는 나라는 증오의 대상이자 만악의 근원입니다. 평화롭던 에도막부의 시대를 끝낸 것이 페리 제독의 흑선이었으며 유일하게 원자폭탄을 맞은 나라를 만든 것도 미국입니다. 또한 플라자 합의로 잃어버린 30년을 만든 것도 미국입니다. 하지만 일본이 미국을 증오하나요? 오히려 미국 옆에서 콩고물 하나라도 얻어 먹으려고 혈안입니다. 국제사회에서 이런 자세를 취해야 국력이 강해질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성과 이를 이용해 자신들의 밥벌이 수단으로 삼는 특정 정당이 있는 한 향후 500년은 한반도가 일본보다 우위에 있는 일은 없을 겁니다.
조선이 변화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이유를 부정확한 국민성으로 보기보단 대항해시대 당시 조선은 명과 매우 밀접한 사이였기에 왜처럼 명과 기존교역루트를 통한 이익을 챙기기보다 대항해시대의 흐름에 맞추는 것은 조선에게 있어 일종의 도박수였음. 또한 당시에는 양란및 세도정치등을 예상못했으니 국제사회의 흐름에 맞출 기회는 충분히 있다고 판단하여 대항해시대의 흐름을 타지 않았음. 당시 상황으로 봤을땐 이게 제일 안정적인 루트다
조선인들은 너무 과거에 집착해서 미래를 못봄 자꾸 이렇게 일본하고 과거사로 갈등 일으키면 손해인건 한국임 당장 위 동네에 빨갱이 국가들이 떡하니 있는데 일본마저 돌아서버리면 정말 동서남북 사방이 적국뿐임ㅋㅋㅋㅋ 어서빨리 식민지 트라우마 극복하는게 대한민국이 진보하는 것임
@@AL-yu5vi 님 말도 일리는 있지만 내가 말 한 국민성이 드러나는 부분이 있어요. 명청 교체기죠, 미래로 나아가려면 떠오르는 태양인 청나라(여진)에게 조공은 못 할지언정 적어도 수교 및 화친을 시행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명나라와의 의리 어쩌구 하면서 또 과거에 목숨 걸다가 결국 난리 나잖아요... 생각보다 나라의 흥망성쇠는 국민성이 좌우하는 경우가 많아요. 독일의 경우를 예로 들어볼까요? 독일인들은 역사적으로 춥고 척박하던 유럽 북쪽 지역이었던 탓에 프랑스나 영국처럼 농경사회를 오래 전부터 하지 못 했고 수렵 생활을 통해 아버지의 권위가 높았고 이는 명령에 복종하고 집단생활과 규율에 최적화된 민족성을 만들죠. 이는 추후 프로이센이 독일제국을 건설하고 철혈통치를 통해 부국강병을 이루는 요인이 됐다고 봅니다.
조선이 여러 변화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또 다른 이유가 당시 왜와 달리 다방면으로 발전해있었기에 되려 리스크가 큰 변화를 꺼려했고 대항해시대이전에 이미 조광조가 급진적인 개혁을 펼쳐 부담이 된 예가 있었기에 조선은 뇌빼고 감성에 호소한다는 님말과는 다르게 과거의 사례를 보고 현명한 대처를 했음. +현재 일본이 사과를 많이 했는데도 국내에서 인식이 안좋은건 일본이 강제징용등에 대한 사과를 해놓고 바로 다음날 본인들은 그런적 없다니 과거부터 시행한 역사왜곡을 계속 이어나가는등 사과에 따른 실천이 없어서다. 아베만 봐도 집권초기에는 사과를 언급했지만 일본우익들덕에 지지율 반토막나니 바로 과거사왜곡을 하고 미쓰비시는 아직도 강제징용사실을 미인정하는데 사과한다던 일본은 이걸 계속 감싸주고 있는데 이걸보고 비정상인들 일부가 모자란 배경지식으로 일본을 싫어하니 조선인국민성이라는 근거없는 개소리가 나온거임
생각해보니 일본을 부유하게 만든 결정적 기술들은 전부 조선이 제공했네ㅋㅋㅋㅋㅋ 도자기도 그렇고 연은분리법도 그렇고. 거기다 무역하기에도 한반도보다 훨씬 좋은 위치였고 농사 짓기에도 좋은 열도 특유의 기후환경까지 더해지니 포텐 터진듯 거기다 섬나라라 외적의 침입에도 안전하고 중국과 한발짝 떨어져 있어 중국으로부터의 위협에도 안전하고 이정도면 가히 일본은 지진과 화산만 아니면 축복 받은 땅이라 할 수 있을 정도네
무역이 중요하지. 일본은 무역을 가능했지만 조선은 완도를 아예 없애버렸지. 도자기를 수출해야 하는데 이성계가 도자기를 수출 안하니 거지가 된거지. 일본에 도망친 도공들은 거짐 자발적이였다던데 조선은 북조선과 비슷했을껄? 기술이 있어도 돈을 벌지 못하는데 납치당하기는 개뿔. 개전초반 다 도망쳤지. 일본에서 잘나가는 도공가문이 되서 잘나갔다던데
조공과 관련해 자조적 비난을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속국, 종속관계라는 요소의 이미지를 살짝 바꾸고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통 일반적으로 생각되어지는 종속관계라 함은 "타국에 의해 지배당하며 사회적 권리들이 압박, 박탈당하고 휘둘리는 나라" 라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는 제국주의 이후 생겨난 인식이며, 틀린 말까진 아니지만 종속관계의 핵심 요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영향을 받는 나라"입니다. 즉 사회적인 관계양상이 중요한 거지 일반적인 지배 관계만으로 속국이자 종속관계라고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물론 역사적인 위치나 형태를 보면 종속적인 면도 있긴 하지만 고려의 원 간섭기나 일제강점기때 처럼 말 그대로 휘둘리고 지배받는 입장의 종속관계가 아니라, 명나라와 청나라라는 거대한 국제질서에서 영향을 받는 종속관계인지라 자주적인 부분도 컸습니다. 원 간섭기 고려시대의 경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속국의 이미지에 부합하지만 조선시대의 경우 명나라와 청나라의 신하국이자, 동아시아 질서에 영향을 받는 속국으로서 종속과 자주가 동시에 존재해왔기에 훨씬 나은 입장이었습니다. 예를들어 조선 국왕의 책봉에 있어서 보다 親중국의 인물인지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고, 즉위에 절차적 정당성이 있느냐가 더 큰 관심사였습니다. 그것도 해당국가의 제도나 관습에 비춰서지 중국관습 기준이 아니었고. 반정으로 등극한 국왕의 경우 책봉전 어떤 논평수준의 의견을 개진하긴하지만 결국엔 책봉을 해줬습니다. 정말 말그대로 형식적 절차였던 것입니다. 오히려 조선 국내에서 중국에서의 책봉 여부를 두고서 정치질로 이용했었습니다. 이런 것을 봐서 책봉을 명나라와 청나라에서 조선을 실질적인 지배의 수단으로 이용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각각의 요소들을 나누어 보자면 아래와 같은 요소들이 있습니다. 종속적인 요소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사회·문화적 질서에 영향을 받는 종속관계가 이루어졌다. 정치적 활동을 진행함에 있어 중국이 일정 부분 견제하였다. 사대의 예와 조공을 바치고 신하국이자 제후국으로서 명목상 을(乙)의 입장에 있었다. 자주적인 요소들 외교, 법, 화폐 등 국가적인 운영과 제정에서 큰 방해 없이 조선 스스로 이루어냈다. 기본적인 의식주에서 독자적인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었고 때는 중국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국가의 지배층이 외부의 압력이나 요구에 의해 바뀌거나 휘둘리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대륙의 식민지나 구성국이 아닌 자체적인 국가로서 독립성을 가졌다. 정리하자면 "대륙에 지배받는 속국이 아닌, 동아시아라는 영향력의 아래에 있던 종속관계로서의 속국이자, 동시에 스스로가 주체인 국가권리들을 행사하는 국가였다" 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종속 관계의 입장은 조선뿐만이 아닌 동아시아에 속한 대다수의 국가들이 조선과 같은 입장에 놓여 있었음으로 딱히 부정적으로 생각할 요소는 아닙니다. 사회적, 문화적 규모가 큰 나라에게서 주변국들이 직·간접적 영향을 받는 일은 동서양 어느 시대에서나 자주 일어나던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같은 논리로 중국의 조공국에 해당되는 나라는 조선뿐만이 아니었다. 조공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지금의 몽골, 카자흐스탄 같은 중앙아시아 일대, 베트남이나 시암 같은 동남아, 오키나와, 무로마치 막부 등 일본의 옛 국가나 정권 그리고 몽골족, 여진족들 또한 중국에 조공했습니다. 봉건제도의 영향으로 국가 간 위계질서가 훨씬 심했던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더 심한 상하관계가 넘쳐나기도 했는데, 가령 명목상 프랑스 왕국의 속국인 노르망디 공국, 아키텐 공국, 브르타뉴 공국, 가스코뉴 공국 등의 공작위를 모조리 한 가문이 상속받아 프랑스 영토 절반 이상의 영지를 차지하고 프랑스와 동격의 왕국인 잉글랜드의 왕위까지 겸한다든지, 스페인 국왕이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겸한다던가 사례는 넘치도록 많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해당 조공국의 구조는 중국 직속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베트남은 중국의 손이 닿지 않는 더 남쪽에 있는 국가의 조공을 받았고, 조선은 대마도, 류큐, 큐슈, (중국보다 조선에 가까웠던) 여진족 일부, 무로마치 막부의 조공을 받았습니다. 구조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조선 통신사의 경우도 칙사를 조공국에 보내는 형태이기 때문에, 에도 막부 또한 조선의 조공국으로 취급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문제는 위에서 말했듯 속국이라는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변모하니 현대에선 속국의 의미가 "영향력"이 아닌 "지배"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듣는 사람들 입장에선 "조선이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고?" 하며 반발하고, 말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조선은 중국에게 지배당했다!"하며 싸움을 부추기고 왜곡하는 일들을 자주 벌이고 다니는 것입니다.
아직도 원간섭기라고 개소리하는 인간이 있네. 원지배기지 원간섭기라는 용어는 한국이외에 그 어느나라도 인정하는 국가 없다. 세계사로 역사를 봐야지 우리나라 편향적 시선으로 보면 한국은 잘못한게 역사적으로 단 한번도없고 항상 올바른판단만하는 천사국가인데 주변국은 항상 완벽한 악역에 나쁜색기들임.
한글 창제까지는 상관없었지 이방원이 대숙청으로 조져놓아서 세종이 안정적인 통치가 가능했고 그 때만 해도 부국강병을 추구했을 정도로 세종이랑 장영실은 실리적인 사람이었음 황희를 말이 안 되는 수준으로 엄청나게 장수한 사람을 죽기 직전까지 갈았을 뿐이지 그 외에 연산군부터 부패하기 시작하더니 병자호란 이후에 교역 안하고 정세에 뒤쳐지기 시작하면서 200년이 지나도 낡아빠진 성리학을 1800년대까지 외우고 다녔다는 게 문제일 뿐 그저 나라가 저 오른쪽에 쳐져있어서 유럽 열강들이 그 위치를 몰라서 안 갔을 뿐임 ㅋㅋ
@@AlgoranofAlgorand 기술하고 제조업은 다른겁니다. 기술이란 소재연구,물리적 반응 연구 ,기초 연구들을 통해 어떠한 현상을 의도적인 과정을 통해 늘 똑같이 일정하게 발현시킬수 있는 무엇을 만들어 낼수 있는 능력이고 제조업은 기술을 바탕으로 물건을 제조하는 일종의 공장입니다. 참고로 한국은 oecd 기초 연구 최하위에 놀고, 기초연구, 소재연구 를 거의 안하며, 늘 과학 기술부 예산을 깎아서 기술을 천시하기로 유명합니다. 한국제조업은 해외에서 해외 기술로 패러다임을 바꾸는게 나오면, 그걸 똑같이 복제품을 만들고, 박리다매 전략으로 점유율을 늘리는걸 기반으로 컸습니다. 지금의 한국 대부분 대기업들이요. 그러다가 특정 산업 기술 정도만 대기업들의 지원하에 크고 있죠. 한국은 제조업은 중시할지라도, 기술은 천시하는 나라입니다.(일부 기술은 제외)
기술하고 제조업은 달라요. 기술은 특정한 행위와 일렬한 과정을 통해 똑같은 행위와 과정을 거쳐 똑같은 결과값을 늘 얻을수 있는 능력인데 한국은 기술 천시로 유명합니다. 과기부 예산 삭감으로 기술 기반이 초토화되는게 일상인 나라입니다. 제조업은 기술을 가져고 응용하여 물건을 만드는건데, 보통 해외에서 패러다임을 바꾸는 기술이 나와서 회사가 만들어져 상품이 수익이 나는걸 보고, 그거 배껴다가 공장만들어 물건 팔고, 박리다매로 돈버는게 한국 대기업들입니다. 그러다가 그 몇몇 기술들만 연구하는게 한국이죠. 제조업은 한국의 핵심이지만 기술천시를 당연시하는 국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