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린 내용이 있어서 8:17 진지를 빨자면 4세 3공은 4대에서 3명의 재상이 나온것이 아닌 4세대 동안 3공-태위 혹은 사마(현 국방부장관) 사도 혹은 승상(현 국무총리) 사공(감사원장)를 계속 지냈다고는 뜻이고 원소의 아버지 숙부 할배 중 원안,원창,원경,원탕,원봉,원외 무려 6명이나 역임하였습니다
자질있음을 보여준 손권에게 극찬하고, 여력이 있었음에도 저항없이 냅다 항복한 유종 채부인은 자기한테 큰 이득을 가져다 줬음에도 개돼지라고 한걸보면 조조는 '굴복 시킬 가치가 있는 상대'에게 강한 욕망을 드러내는 기질이 있고, 그런 기질이 반영됬던게 아닐까..그런 생각은 예전에 해본적 있어요 ㅋㅋ
그 당시에는 이쁘든 추녀든 개나 소나 조혼을 했기 때문에, 특정 나이 이상이면 무조건 유부녀임. 유부녀를 좋아했다기 보다는 전쟁에서 이기면 당연히 전리품으로 여자를 취하기 때문에, 적장의 여자를 취했다는 자체가 승리의 표상이자, 적을 깔아뭉갰다는 희열을 느낄 수 있겠고. 그 여자가 미모로 유명하다면 더더욱 높은 성취감을 느꼈을듯요.
서주 대학살에 대한 뇌피셜인데.. 당시에는 현대적인 과학수사도 없었고 cctv나 객관적인 증거도 없었다보니 진범을 찾기 어려울거 같으면 그냥 무고한 주민이더라도 원하는 대답을 할때까지 고문해서 범인으로 만드는등의 행위가 종종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위화감을 느낀 조조가 그냥 용의선상에 있던 서주 주민 모두를 죽인건 아닐지..
그거하고 조조하고는 다른 듯 조식은 자식처럼 키워주고 잘해준게 있어서 어린마음에 좋아할만한 근거로 충분히 보여지지만 조조가 탐하려고 했던 유부녀들을 좋아할만한 인과관계나 그 근거가 될만한게 전혀 없음 조조의 처음보고 인연이 아예 없는 유부녀들하고 조식의 사람 대 사람과의 인연이 계속 있었던 유부녀랑은 구분 하셔야 할 듯
서주 대학살을 정신 의학적으로 분석했을 때 자기애적 상처와 더불어 아버지를 허망하게 잃었던 슬픔에 대한 발로로 해석한 것이 인상 남네요. 저는 이 서주 대학살로 불리는 서주 침공에 대해 조금 다르게 생각했거든요. 두 가지로 나눠서 생각했는데, 첫 번째는 이미지 쇄신의 측면에서 이 학살이 필요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거슬린다고 서주의 백성들을 마구 죽인 건 손가락질 받아 마땅한 일인데, 반대로 생각하면 조조는 이 학살을 통해서 자기의 비정함을 드러내고 싶어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생각해보면 반동탁연합 때는 조조가 아무런 명성이 없었기에 명성을 빠르게 얻을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조조는 이때 상황 판단을 잘하면서 필요할 때 나서는 책임감있고 정의로운 사람으로 각인되기 위해 패배가 뻔히 보이면서도 동탁을 쫓아간 거죠. 당시엔 의와 협을 보이면 좋은 사람이라고 소문이 나서 명성이 빠르게 올라가니까요. 그런데 조조가 연주에 자리를 잡은 상황을 보면 이미 동탁은 장안에 들어 앉아서 침략에 대한 대비만 할 뿐 그 안에서 자기가 누리고 싶은 권력을 다 누리는 중이고, 연합군으로 소집되어 온 사람들은 이미 조조의 잠정적인 적이 된 상황입니다. 게다가 이 연주가 딱 가운데라 공격 받기도 쉬운 위치에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자기가 착하다는 이미지를 계속 가지고 있으면 조조는 다른 맹주들에게 호구 이미지가 박히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사방팔방에서 이 연주를 먹기 위해 병력을 보낼 것이 분명하니 조조는 끝없는 방어전을 치루기 위해 국력을 다 쏟아야 하죠. 그러면 결과는 조조는 날개도 피지 못한 채 죽는 베드 엔딩만이 남게 되는거죠. 그래서 조조는 이 서주를 침공하면서 일부러 백성들을 다 죽이면서 자기가 이렇게 비정한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한마디로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서주의 백성들을 학살한 거죠. 두 번째는 군사적인 이유입니다. 위에서도 언급 했듯이 연주는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 있는 지역입니다. 빈 땅이라고는 불타버린 낙양과 들어가는 길이 험한 허창뿐이죠. 그런 상황에서 기반을 안정적으로 다지기 위해서는 동서남북중 자기가 빠르게 정리할 수 있는 곳으로 가야만 하죠. 그런 상황이기에 조조는 자기와 멀지 않으면서 세력이 약하고, 그러면서 후방기지의 역할을 충실히 해줄 수 있는 장소로 선택한 것이 바로 서주인거죠. 그래서 조조는 가장 먼저 서주를 밀고 들어간 겁니다. 도겸만 처리하면 하비의 풍요로운 땅이 자신의 후방을 든든히 버텨 줄 기둥이 됨과 동시에 근처의 공융과 장막에 대한 견제도 가능해지니까요. 그래서 조조의 첫 침공이 서주였던 것, 그리고 거기서 대학살이 일어난 건 모두 계산된 상황이었다고 생각해도 됩니다. 위의 이유들은 삼국지 11로 반동탁연합이나 군웅할거 시나리오를 선택해서 직접 조조군의 입장에서 게임을 시작하면 왜 서주를 먼저 치고 싶어지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동서남북 둘러봤을 때 상대적으로 약한 세력이 모인 곳이 서주 지역이기 때문이죠. 물론 시뮬레이션 게임이니까 허창이나 낙양을 먼저 먹고 싶기도 한데, 문제는 낙양이나 허창의 개발이 막 끝난 다음에 밀려오는 장안의 군세를 막기가 생각보다 힘들기 때문에 여기 보다는 서주로 먼저 치고 들어가서 복양, 북해, 소패, 하비를 먹고 여기서 생산되는 병력과 무기들을 가지고 게임을 굴리는게 더 좋습니다. 그래서 보통 삼국지 11 최고 어려움 난이도 기준 반동탁연합 시나리오 조조 공략을 보면 인재 탐색과 호로관 유언비어를 동시에 하다가 호로관에 위치한 여포의 충성도가 80이하일 때 무장 등용으로 데려와 동탁을 막고, 그 사이에 군사를 키워서 서주로 진격하라는 블로거의 글도 있죠. 그만큼 당시 조조에게 있어 서주는 굉장히 탐나는 지역이었기에 서주 대학살과 침공을 일으킨 것이라 생각합니다.
팩트1 조조아버지는 서주학살 이후에 돌아가심 ,팩트2 서주학살은 조조에 개인감정에 의한것이 아니라 지극히 냉정함에 나온 조조세력이 미약할 시기에 도겸세력을 점령하기위해서(즉 초기에 도박을 통해서라도 조조 자신에 세력을 불리기위한) 서주에 증원군을 막기위한 초토화전술이였음(초토화 전술로 인해 서주 행정망에 무너져 증원군 소집 불가)
서주 대학살..이게참 연의영향때문이지 실제로는 원소를 상대하기 앞서 세력확보+후방견제+빠른 보급을 위해 일정지역을 한번에 몰살시킨후 알아서 항복하게 만드는 전략이죠.( 1개성 10만명을 몰살시키면 전투없이 10개성100만명을 확보) 1000년후에 몽골군대가 신속하게 정복한이유도 이러한 전략으로 밀고나가게 된거죠.. 어떻게보면 몽골군 전략을 조조가 먼저 생각해서 실행해서 서주를 얻게되는.오히려 전체적인 피는 덜보는 전략(비난은 엄청나겠지만)
삼국지연의가 티비 없던 시절 대륙 술집에서 이야기꾼이 풀던썰을 모아 정리한것이라 술취한 객들 기호에 맞춰 각색한 내용이 많아서 신빙성있는 얘기는 적다고 하지요 전쟁에서 진 진영의 유력자들의 유부녀를 갖는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흔한이야기입니다 여자는 재산으로 취급되어서 전리품으로 배분되는 내용이 자주 나오죠
ㅋㅋㅋ 두씨 달라 두씨!! 이건 진짜 주인장처럼 해석할 수 있음. ㅋㅋㅋ 근데 다른 건 다 오버임.. 이건 비단 중국사만이 아니고 내전이 장기화 되는 경우와 거기에 준하는 상황이 일상일 수 밖에 없는 중앙아시아, 이누잇 등의 특수한 환경을 가진 문화에서는.. 입신한 이가 미망인을 취하는 게 일종의 미덕임.. 조조만의 문제가 아니라.. 권하는 분위기라는 거임.. 삼국시대만 예를 들 필요 없이 동서 불문 시대 불문에 가깝게 늘 그래왔던 거임.. 삼국시대에 한정해 예를 들자면,,,, 유비의 오황후도 같은 예시임.. 일국의 황후인데 그냥 과부도 아니고 다른 성씨의 자손도 낳고 일가를 이룬 미망인을 초대 황후로 봉했음... 마냥 정치적 이해관계가 다 였다고 사학에서는 판단하지 않음.. 그 정도의 난세에선 먹고 살기 힘든 미망인 거두는 거.....그게 칭송받을 일임..
영상에서 말씀하신 '4세 3공'은 원씨 가문이 4대에 걸쳐서 끊이지 않고(한 대도 거르지 않고) 3공을 배출했다는 뜻이죠. 여기서 '3공'이란 승상, 태위, 어사대부 세 벼슬을 의미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삼정승을 '삼공'이라고 불렀나요? 조조는 카이사르보다는 소련 스탈린과 비교하는 것이 어떨까요? 보통 스탈린의 폭정 위주로 생각하는데, 스탈린의 잔인한 폭정에 희생당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철천지원수이지만, 그런 폭정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이 죽는 순간까지 권좌에서 쫓겨나지 않았던 것으로 봐도 스탈린이 조조와 비슷한 패도 정치에 능한 정치인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론 조조의 아버지의 죽음은 조조의 악명을 만들기 위한 책략이 아닐까 합니다. 어느 정도 자리 이상에 오른 군주급은 공포라는 가장 편한 무기가 있기 때문에 이런 공포의 악명을 만들기 위한 장기말로 아버지를 쓴거죠. 어쨌든 자신의 명예와 권력은 아버지도 사용할 수 있기에 독점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