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을 어제 올렸는데, 수정할것이 있어서요…. 슈만이 마지막에 자살 한게 아니고… 죽기 2년전 병세가 너무 심해서 강에 몸을 (라인강- 우리나라 한강 같은 큰강) 던집니다. 자살시도죠… 하지만 지나가던 어부에 발견, 구조되고 , 그 이후로 정신병동에 감금됩니다. 거기서 2년 살다가 죽게 됩니다… 참고로 독일은 심리학, 정신병, 철학 등등이 많이 연구됩니다. 지금은 조현병, 조울증 조절할수 있는 약이 참 많이 발달되어서, 약으로 치료되고 거의 일상생활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슈만, 고흐가 살던 시대에는, 그런 좋은 약이 없었고, 정신병동도 현재와 같지 않고 , 감옥같은 감금된 생활이었습니다. 슈만, 고흐 가족사를 보면 가족력이 아주 많습니다. 정신병에 취약한 가족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란한 예술 작품을 남겼다는건 정말 인간의 힘으로 할수 없고- 그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것 같습니다…😄💓🇩🇪
애정결핍적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 것 같네요. 어릴 적 충분치 않은 사랑 신뢰 지지 등...결핍된 부정적 감정은 평생을 두고 가는 것 같습니다. 극단적 희생은 유년기의 결핍을 보상받는 방법이지 않았을까요?자신이 받고 싶었던 사랑을 타인에게 베푼 것이죠... . 정서적 결핍이 많았기에 사회성이 떨어져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힘들었을 듯. 기질적인 예민함과 천재성 더불어 결핍된 사랑이 작품으로 승화한 듯 합니다 ...
고흐에 대한 이해 핵심 두가지 자기자신 사랑하는방법 자기관리 취약한 고흐의 자존감 어린시절 인정받지못한 애착관계 눈에 들어온 빈민들 보자마자 그 순간부터 소외되는약자들 고통당하는사람들 위해 목숨을 던져버릴정도 탄광촌에서의 삶 책을많이 읽은 고흐 설교 시적이고 장황함... 영상 감사합니다
메디치 가문도 그렇고 차이코프스키도 후원을 많이 받았다구 하는데 오늘날 지금도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은 과거보다 늘었겠지만 배우는 비용은 늘 비싸고 누구나 투자한만큼 결과값을 보여주긴 힘든것 같습니다 ㅎㅎ 태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과거나 지금이나 홍보는 매우 중요한것 같네요 ㅎㅎ 훌륭한 작품만큼이나 영상/홍보/마케팅의 중요성도 상당한 것 같습니다
어느순간 고흐에 많은 관심이 생겨 영화도 보고 많은 유튜브를 찾아보고있어요 저도 고흐가 많이 가난한 삶을 살을은 알았는데 아니었다니 ㅎㅎ 다행이다가 후 영국에서 약자들의 삶을 보고 그 삶을 살았다니.. ㅠㅠ 가난한자, 약한자들을 바라보줄 아는 눈과 마음이 있다는게 너무 뭉클하고 코ㅓ끝이 찡했어요 ㅎㅎ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종교가 망친 ? 고흐의 삶이 아니라 종교도 그의 인생과 그림의 한부분입니다 모든 것은 좋게 나쁘게 영향을 미칩니다 아버지가 면도칼로 비둘기를 해체하는 것은 어린 피카소에게 무슨 생각이 들게 했을까요 좋게든 나쁘게든 작용하겠지만 피카소의그런 그림이 나온 것은 다 삶에서의 뚜렸한 경험입니다 초창기의 그림은 종교적인 색체가 있지만 그마져도 변하는 세상이 그런 어두운 그림은 원하지 않았던거죠
저는 인간은 신이있는지없는지 알수없는존재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막상 살면서 인간으로서 해결할수없는 고통이 찾아오니 지푸라기라도잡고싶은심정으로 종교를 찾게 되더군요 허나 그전에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란 책을 너무 심오하게 읽었고 모태신앙이었기에 오히려 종교를 멀리하게되었죠 제가 성숙하지 못한탓이겠지만 부정적인면을 많이보았죠
고흐의 알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흥미로운 지점을 짚어주셨네요. 고흐가 지닌 복합적인 문제들(자기정체성 혼란, 자존감 상실, 부모와의 유대관계, 세속과 종교의 딜레마 등등)이 그를 그림만이 구원이라는 인식에 다다르게 한 것 같네요. 생각해보면 모든 인간의 문제는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것 같아요. 한가지만 원인인 경우는 거의 없지요. 모든 어려움을 예술로 승화시킨 고흐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듯...
Vincent Van Gogh란 이름은 세상을 보지 못하고 죽은 형의 이름이었지요. 교회의 정원에 있는 작은 무덤에 새겨진 비석의 이름이 Vincent Van Gogh.... 화가 Gogh는 그 형의 이름을 그대로 갖게되는데...한번 상상해보실까요? 무덤속에 있는 형의 이름을 그대로 쓰는 어린 화가 Gogh의 모습을요...여기서부터 그의 가슴은 슬픔과 외로움으로 얼룩지기 시작했다고 볼수있을까! 종교가 그의 삶을 망쳤다고 하기는 조금 낮설어요. 화가 Gogh는 목사가 되기위해서 인턴쉽까지 하게되는데 목사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남을 돕는데 주게됩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침대까지 내어주고 자신은 창고의 풀더미위에서 자는것을 본 노회임원들은 그를 패스시키지 않습니다. 그때부터 그림에 적극적으로 인볼브하게됩니다. 그 이후의 삶에서 종교적인 모습은 그다지 크게 부각되지 않습니다. 그의 삶에서 외로움은 삶의 시작부터 함께 했다고 볼수있을겁니다. 무덤속에있는 형의 외로움을 가졌다고 볼수있을까요.. 그가 그린 첫번째 Empty Chair도 십대에 그렸지요.... 지독하게 그의 가슴깊이 자리잡은 외로움..자신의 가슴을 총으로 쏘았는데 며칠을 죽지않고 그리고 결국에는 Theo의 품에 안기어 "나는 왜 죽는것도 이리 힘드니" 라고 마지막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납니다. 지독하게 그를 따라다니던 그 외로움...세상을 보지못하고 죽은 형의 무덤에서 가져온것은 아닐까!! 무덤속에 있는 형의 이름을 받은 화가 Gogh!! 그 둘은 생일도 똑같은 날이었거든요....
영상 감사합니다. 고흐 그림은 유럽 여러 박물관에서 볼수 있는데, 너무 유명하다보니까 많이 신경 쓰고 안 봤는데-😮그런 뒷배경이있었다니… 전 예술에 관심이 많은데요, 수 많은 예술작품 앞에서 내린 결정은-예술인은 보통사람들과 다른 뇌구조를 가진것 같아요… 얼마전 프랑스 휴가중 Colmar 에서 Stefan stael 그림을 보고 다시 한번 감격했습니다.. 요즘 슈만 작품을 이해하고 바이올린, 피아노로 연습하고 있는데- 슈만( 조울증, 그리고 자살)이 병마와 싸우면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을 쎴다니-그저 감격스러울 뿐입니다. 어린이 정경, 헌정, 바이올린 소나타no1 a -moll ( 한참 아플 마지막 시기에 작곡. 정말 아름다움), 피아노 소나타 f-scharf . 한번 들어보세요…
고흐를 종교가 망쳤다고 하셨는데.. 고흐가 진정한 기독인이었다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었인지를 항상 찿았을 테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 그일이라고 확신하고 평생 그렇게 살았던 사람일 겁니다. 그러므로, 고흐의 일생은 성공한 일생이지요. 지독한 어려움 속에서 죽기까지 했으니까요. 성공과 실패는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 아닌 창조주께서 판단 하십니다^^
아는 척 하면서 극도의 이기심으로 주위 분을 도구화 시키면서 말년에 명예 한번 얻어 볼까 하는 심정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람이라면 절데 고호 그림 이해 못하죠. 헌데 그런사람들이 예술가라는 또 한번의 가면을 쓰려고 열심을 전 욕심으로 느껴지네요. 왜 그런 싸구려깡통들이 고호를 이해하는 척 하면서 붓질들을 하는 지.
고호는 화가로서 실력은 없었다. 모든 예술가가 그렇듯, 경제적인 도움과 주변의 도움이 없으면 아무리 뛰어난 화가도 이름없이 사라져 간다. 고호는 화상이라는 그림 매매 중심의 환경에 있었고, 동생의 경제적인 도움으로 떠돌며 그림을 그렸으며, 끝내 가족이 그의 그림을 소중이 보관한 까닦으로 세상에 알려진 화가일 뿐이다. 그는 정신병원에 가기 전, 고갱과 함께 살면서, 서로 창녀에게 돈을 더 많이 소비하여 생활비가 나간다는 이유로 싸우다가 결별을 하고, 홀로 되며 광기가 깊어지게 된다. 동생 태오가 그에게 생활비와 물감을 대주지 않고,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 무명화가) 그의 그림을 오랫동안 보관하지 않았다면 그는 이 세상에 아무도 모를 존재 였다. 그러니까 그의 그림이 빛을 본 것은 우연과 그의 그림을 상품화한 사람들에 의한 행운이었던 것이다. 그의 그림 속에 종교니, 예술혼이니, 인간미니 하는 추상적인 개념은 후에 그의 그림이 고가로 팔리게 되며, 비평가들이 만들어 낸 말들이다. 고갱은 부자 였고, 세계를 여행하며, 섬 원주민들의 살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그렸다. 그의 그림은 같은 부자들에 잘 팔렸고 유명했다. 그러니 그림은 여유 있는 자들이 부리는 사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