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이야기
전쟁 중이던 1952년 발표된 심연옥 선생님의 '아내의 노래'는 신세영 선생님의 '전선야곡'과 함께 발매되며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군가는 아니지만 군인들이 진중에서 즐겨부르던 가요들을 '진중가요'라고 칭하는데 두 곡 모두 대표적인 진중가요로서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곡들이지요.
사실 이 '아내의 노래'는 1948년 KBS의 첫 전속가수였던 김백희(金白姬) 선생님의 노래로 먼저 발표된 바 있습니다. 원래의 제목은 '안해의 노래'였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처음 가사는 전쟁 중에 쓰여진 것이 아니라 광복 이후 국군이 창설되던 시기에 만들어졌으니 우리가 알고 있는 가사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당신이 가신 길은 가시밭 골짜기오나
기어코 가신다면 내 어이 잡으리까
가신 뒤에 내 갈 곳도 님의 길이요
까마귀가 울어도 떨리는 가슴 속엔
피눈물이 흐릅니다. 피눈물이 흐릅니다.
가신 단 그때 저는 꿈 속에 울었나이다
이 몸은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넋이야 있든 없든 님 향한 마음
이 세상이 휘돌아 떨리는 가슴 속엔
잊을 길이 있으리까. 잊을 길이 있으리까"
'안해의 노래'의 내용을 보면 애닲은 노랫말이 군에 남편을 보낸 아내의 슬픔을 극단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조명암 선생님이 김다인이라는 필명으로 작사하고 당시 KBS악단 지휘자였던 손목인 선생님이 곡을 붙여 만들어진 노래로 이후 월북작가의 가사가 금지되면서 가사를 바꾸게 됩니다. 간혹 김능인(金陵人) 선생님의 작사로 알려진 자료들이 있는데 당시 SP레코드의 인쇄부분이 훼손되면서 김다인(金茶人)이라 적힌 글자를 잘못 본 것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여담이지만 본명이 승응순(昇應順)인 김능인 선생님은 고향인 황해도 금천(金川)을 금릉(金陵)으로 부르기도 하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금릉인'이라고 읽어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아내의 노래'는 6.25 전쟁이 발발한 후에 유호 선생님께서 다시 가사를 붙인 곡입니다. 한국 1세대 작사가이자 방송작가로서 긴 세월동안 존경받아 온 유호 선생님은 지난 5월 98세를 일기로 소천하셨는데 KBS 가요무대에서 선생님의 추모 특집방송을 제작할 정도로 후배 작사가, 가수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 인물입니다. '신라의 달밤', '이별의 부산 정거장', '비 내리는 고모령', '카츄샤의 노래', '맨발의 청춘', '님은 먼 곳에' 등 수없이 많은 히트곡을 남기셨지요. 유호 선생님은 1942년 동양화가로 화단에 등단한 뒤 1943년에는 극작가로, 1944년에는 서예가로 또 1945년에는 경성중앙방송의 국장으로, 1946년에는 시인으로 등단하기까지 만능 엔터테이너로서의 자질을 갖춘 분이셨는데요. 작사가로서 데뷔한 곡이 1947년 발표된 '신라의 달밤'이었다고 하니 문학적, 예술적으로 정말 깊은 식견을 가진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님께서 가신 길은 빛나는 길이었기에
이 몸은 돌아서서 눈물을 감추었소
가신 뒤에 내 갈 곳도 님의 길이요
바람 불고 비 오는 어두운 밤길에도
홀로 가는 이 가슴엔 눈물이 넘칩니다
님께서 가신 길은 영광의 길이었기에
손수건 손에 들고 마음껏 흔들었소
떠나시는 님의 뜻은 등불이 되어
눈보라가 날리는 어두운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처럼 님의 행복 빛나소서"
전쟁 중에 쓰여진 새로운 가사는 남편을 전장으로 떠나보내는 아내의 노래입니다. 원래의 가사가 떠나가는 남편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라면 유호 선생님이 개사한 이 노래는 슬픔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아내의 가련하고 결연한 의지가 느껴집니다.
처자식을 놓고 전장으로 떠났던 수많은 남편들과 그들을 떠나보냈던 아내들에게 이 '아내의 노래'는 큰 위로가 되어주었습니다. 지금도 해마다 6월이 되면 어김없이 생각나고 불려지는 노래들 중 하나입니다.
이 노래를 부른 심연옥 선생님은 돌아가신 백년설 선생님과 부부가수로서도 무척 유명하지요. 1927년 서울에서 출생한 심연옥 선생님은 어린 시절부터 무용을 공부했지만 집안의 반대로 꿈을 접어야했고 우연히 친구들과 극장 공연을 관람했던 것이 계기가 되어 가수로서의 길을 시작하게 되셨다고 합니다.
이난영 선생님의 남편인 김해송 선생님이 이끄는 KPK악단의 단원으로 활동을 시작한 심연옥 선생님은 뮤지컬 '투란도트', '카르멘', '로미오와 줄리엣' 등의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그러다 전쟁이 발발하며 김해송 선생님이 납북된 후로 국내의 뮤지컬은 대가 끊기게 되는데 이 시점부터 대중가요 가수로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지요. 그렇게 '아내의 노래'와 '한강'을 발표하며 인기가수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1957년 백년설 선생님과 결혼한 뒤로는 가수로서 활동은 거의 없다가 1979년에는 미국 LA로 이민을 떠나게 되고 후에 뉴저지로 이주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1989년 가요무대 100회 특집을 통해 이 '아내의 노래'를 부르시는 모습은 후배 가수들에게 그야말로 큰 감동을 주었지요.
2013년 7월 15일 가요무대 방송분에서는 미국에서 보내오신 영상을 통해 근황을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올해 91세가 되셨을 심연옥 선생님, 어디에서든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
9 июл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