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좋습니다 즐겁습니다 💝👍 후회없는 삶을 살도록 노력합시다 나만을 위하는 삶을 산 사람은 그만큼 생의 애착도 강하겠지만 나를 비롯 다수를 위해 산 사람은 그만큼 여유가 있고 자신이 있으며 떳떳하기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을 것 입니다 늙고 병든 가죽 옷, 아바타, 버리고 새 것으로 바꿔 준다는데.. 뭐가 두렵고 슬플까요? 하등의 그럴 이유가 없지요 그렇기에 떳떳하게 사는 게 중요 합니다 맞은 사람은 발 뻗고 자도 때린 사람은 편히 못 자지요 죄 짓고는 못 삽니다 아무리 권력이 높고 명성이 자자하 고 명예가 드높고 돈이 많아도 지금 이 순간 마음 편한 것만은 못 하지요 죽는 순간 마음이 편한 상태.. 그렇게 죽기위해 철학을 공부했던 것이고 실천된 삶을 살려고 노력 하는 것 입니다 항상 내용 훌륭하십니다 멋지십니다 💖👍
영상 감사드려요! 다른 사람의 아픔이 제 아픔과 같이 느껴져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가 있는데요… 에피쿠로스, 장자처럼 된다면 세상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겠지요? 원자로 구성된 인간은 ‘소크라테스이건 공자이건, 인간의 몸으로 오신 분(?)이건 인간의 육신을 지녔음에 아픔을 느끼고 결국 죽음이라는 끝을 맞이 하게 된다’, ‘운명이라는 것이 있어 나의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더 편해지겠지요? 죽음이라는 끝이 있다면 제가 좋아하는 철학, 윤리 공부하다가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생각을 점검하고 정리해볼 수 있는 좋은 영상 올려주심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죽음의 공포를 잊고 인간의 존엄성을 부여하기 위한 수단으로 절대적인 신을 만들거나 다른 개념의 정의를 만드는 것은 각 나라나 개인이 속한 문화에 따라 다릅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도 절대적인 사실은 시간은 흘러 결국 내 차례가 온다는 것입니다..... 깊은 삼매를 통해서 부모 본래 미생전을 가보지 않고서야 어찌 삶과 죽음이전을 알겠읍니까??? 아는 자는 말이 없고, 모르는 자는 수다스럽고 번거러울 뿐,
삶이 있기 때문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이 있다 즉 삶은 죽음이고 죽음은 삶이다 누구나 그렇듯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죽음에 대해 고찰하고 초연한 마음을 가지자 삶에 대한 의욕도 함께 사라졌다 죽음에 대한 적당한 공포는 삶의 기적을 위한 원동력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 자체보다는 죽어가는 과정의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철학적 관점의 혹은 존재의 의미에서의 죽음의 의미는 상당히 퇴색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과연 그렇다면 왜 인간은 자식을 낳아야 하는 것일까요? (삶과) 죽음이 의미가 없다면 고통만을 되물림할 필요가 있울까요?
에피쿠로스의 논증은 의외로 쉽게 반증될 수 있습니다. 에피쿠로스의 논증은 기본적으로 어떤 것을 체감하거나 느끼려면 인식 대상이 현재 내 앞에 존재하거나 내게 작용하고 있어야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요, 만약 이러한 전제가 참이라면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보고 우산을 가져가는것 역시 무의미하거나 혹은 비합리적인 행위가 됩니다. 왜냐면 현재 비가 내리지 않는 까닭에 우산을 가져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죠. 그러나 우리는 예보를 보고도 우산을 가져가지 않는 사람을 되려 비합리적이라 비난하겠지요. 논증방식은 다르지만 주장하는 내용은 같은 좀더 세련된 논증으로 로마의 시인인 루크레티우스가 펼친 대칭논증이 있습니다. 이를 찾아보시면 더 재밌으실거에요!
하이데거는 죽음에서 벗어나고자하는 욕망을 자기기만이라고 하였습니다. 왜냐면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고 죽는다는 사실이 자신의 실존을 완성시키는 시발점이 되기 때문이죠. 영혼을 믿는다는 것은 어찌보면 죽음을 믿지 않는 태도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기독교 성경에서도 두번째 죽음을 막아준다는 표현이 등장하거든요. 좋은 주제 좋은 내용 영상 감사합니다.
아무리 몸부려쳐도...시간이 다 되면 어차피 인간은 죽을테고.....죽으면.... 그 죽음이 무엇인가에 대해 자연스레 알게 될테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들이 죽음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것을 보면.....인간은 죽음에 대한 공포에 대해 자유스러울수 없다라는...숨쉬는자의 영원한 숙제...
몇년전 이른 아침 입 안이 이상해 거울로 입안을 쳐다보니 입 천장에 피로 가득찬 용종을 보고 그만 나는 죽음이라는 단어와 조우했다...응급실에서도 의사는 아이스크림 막대기 같은 것으로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모르겠다고해서 다음날로 검진 예약하고 집으로 향했는데 절망스러웠던 그 때 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렇게 나는 앞으로 고통스럽게 죽는건가?....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고 죽음엔 초연할 수 있을거란...생각도 있었는데.... ..집에 도착한 나는 볼때마다 두려움을 자아내는 그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싶었다..그런데....그 용종이 사라졌다...감쪽같이....복잡해진 머리속에서..불연듯 어제 저녁 바늘로 찔린듯한 느낌이 되살아나면서.. 맛있게 먹던 새우가 생각났다.. 너무 맛있어서 수염과 같이 먹다가 찔렸던것이.... .. 샤르트르도 다를바 없네...
무한한 흐름속에 생기고 멸하기를 반복하니 우주도 빅뱅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할 것이고 그러면 삶도 무한히 찾아올것이고 과연 죽음이 두려운것일까요, 다시 삶이 찾아오는 것이 두려운것일까요. 모인것이 흩어지고 다시 모이기를 반복하면 똑같은 조합은 언젠가는 계속해서 나오듯이 우리의 삶과 경험도 언젠가는 똑같은 것이 찾아온다는것이죠.. 마치 산에서 길을 잃었는데 같은 곳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산에서 벗어날 수 없는것과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불교애서는 그것을 윤회라하고 그것에서 벗어나는것을 깨달은 자라 하여 부처라 하던데...
죽음에 관한 재미난 영상 잘 봤습니다. 에피쿠로스가 나온 만큼 루크레티우스의 대칭논증도 언급하셨다면 더 유익했을 것 같아요! 또한 이들 고대 철학자과들과 상반되게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걱정하는것을 정당화하는 현대의 deprivation theory도 다뤄졌다면 더욱 유익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실제로 죽음이 두렵거든요 ㅠ_ㅜ… 아무쪼록 모두 건강하게 장수합시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입장을 이전부터 받아들이려고 했고 지금도 이러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지만, 솔직히 그 사람들에게 총을 들이밀며 살고 싶냐 죽고 싶냐 라고 묻는다면 어느쪽이든 좋다가 아닌 살고싶다는 대답이 나올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고통을 경험하기에 두려운 것이 아닌 경험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두려운 것이니까 말이죠.
@미학 그 두려움은 우리를 좀먹고 있는 것 같아요. 물리학이 점점 알려주는 검증된 진실들은 우리 우주가 잔인하고 냉담하다는 걸 계속 상기시켜 줘요. 사실 인간 존재의 이유는 아무 이유도 없는 우연과 불확정성에 의한 것이고, 죽음조차도 그런 무작위성의 일부란 사실은 분명 두려워요. 그래서 그 공포에 압도된 우리들의 다수는 …. 단지 이기적이고 편협하기를 택하는 것이겠죠.
인간의 숙명과도 같은 죽음을 철학이 다루지 않는다면, 그러니까 어찌보면 가장 실천적인 문제인 이러한 죽음을 철학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면 대체 댓쓴이님이 생각하는 철학의 목표는 무엇인지 궁금해지네요. 대다수의 철학과 학부수업의 101에서는 죽음에 관한 철학적 논쟁을 다루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적어도 서울대와 연대의 경우 그렇구요. 물리주의를 받아들이는 오늘날에까지 죽음에 대한 철학적 탐구가 여전히 중요하게 다뤄지는것을 볼 때, 이들 철학을 폄하하는것이 오히려 유아론적인 생각이 아닐지 되묻고 싶습니다.
@@islanduntomyself 저는 사후세계가 아닌 사후 생존이라 말씀드렸습니다. 사후생존 문제는 피상적으로 그쪽이 생각하는 신학적 문제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고, 개인의 동일성과 관련된 형이상학적 문제이자, 인공지능 그리고 뇌 과학과 관련된 기술적 영역의 문제라고 보셔야합니다. 무슨 생각으로 이것이 퇴행적 문제라 치부하는지 모르겠으나, 만약 퇴행적 문제라면 차머스, 네이글, 파핏등 수많은 영미 현대철학자들이 이를 다루는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지성-n9i 인문학이라면 사후세계를 다룰 만 하겠죠.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 세상은 형이상학과 상극되는 실존주의 철학과 물리학이 가장 잘 설명하고 있어요. 포스트 모더니즘의 궤에 속하는 학자들이 사후세계에 대한 어젠다를 가진 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물리학과 실존주의가 세상의 냉담함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잘 바라보고 있고, 그 시각에서 사후 세계와 신적인 존재의 탐구란 단지 인간 존재의 나약함에 대한 반증에 불과합니다. 단지 '유명하고 위대한' 누군가가 제시했다고 해서 그 이론이 충분히 근거 있다는 논조로 얘기하시고 있는 것 같아 저는 결코 고개를 끄덕여 드릴 수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