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자 정?? 입니다... 제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20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올릴땐 웃으면서 올렸지만 결국 보면서 눈물이 흘러버렸네요... 제 사연 보면서 생각한건데 구라10%가 아니라 1%입니다... 단지 글만 읽으셨을 석조형님... 통화도 안했는데 보면서 2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니 울었겠죠...^^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 군생활 하시는 분들이나 곧 입대예정인 후배님들 주위에 잘 보면 진정한 전우들(간부+선임+후임) 많습니다... 후배님들은 무사고 전역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와 눈물 날뻔했다.. 충,효,예를 지키라고 말하다니 참 대단하신분이다 임종을 지킬수 있게끔 도와주시다니 진짜 복받으실거다 이건 다시봐도 눈물이 나올뻔했다 진짜 저 연대장님이라는분은 어른으로써도 자기 병사를 자기 자식처럼 가족처럼 생각해주고 참 대단하신분이다 정말 훌륭한 어른이다 저분은
@@정타이커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어디에서 어떤 근무를 하든 국민의 의무를 다 하신겁니다 . 오히려 의경 이야기 그리 많이 듣지 못해 생소해 더 알고싶네요 제가 알기론 구타가 굉장히 심했다고 들었습니다 . 제 고딩 친구가 의경였고 대학 후배가 그 후임으로 가서 어느정도 이야기는 들었거든요 . 기회가 되신다면 이야기 올려주세요
군대 내에서가 아니라 일생을 살면서 한 명 만나기도 힘든 은인이시네요. 휴가 보내는 거에서 그치지 않고 어떤 일이 있을지 뻔히 알기에 그 단속까지 철저하게 해주시고, 위로의 말씀 중에도 정타이커스 님의 휴가를 조금이라도 더 챙겨주시려는 섬세함이 너무 멋진 분이십니다. 덕분에 보는 사람도 행복하고 감사하게 되네요. 다들 당연한 의무라고 나라에선 떠밀지만... 뒤로는 불공평하게 빼는 이도 있지만... 열심히 나라 지켜주시는 국군 장병 여러분 모두 감사드리고 부디 몸 건강히 전역하세요!
저는 후임병 의가사제대 시킨적이 있습니다. 1986년 10월에 입대해서 인제 원통의 12사단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한달후 입대한 얼빵한 후임병 한명이 자대배치를 왔습니다. 당시 일병달고 열심히 기어다니고 있던 어느날, 후임병넘이 하루종일 힘없이 빌빌거리고 밥도 안먹기에, 취침후 근무시간에 깨워서 물어봤죠. 그랬더니 우울한 이유가 집이 홍수가 나서 모두 떠내려 갔다고 울먹이는데, 환갑 넘은 부모님과 초등학교 여동생이 있고 재산이 하나도 없는 소작농으로 이넘이 가장역할을 해야 하는데 군대를 온거죠. 다음날 병무청에 아는 사람이 있어 알아보니 잘하면 의가사제대가 가능할 것 같다고 해서, 중대장님께 보고하여 의가사제대를 신청한 결과, 2달쯤 지나고 나서 의가사제대를 명 받았었죠(제대하고 용접공으로 조선소에 취직했다고 편지 받았음) 지금은 뭐하고 살고 있을런지? ㅋㅋㅋㅋ
연대장님 머리가 상당히 좋으신듯. '치휘체계를 잘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해결이안될시 나에게 연락하라.' 라는말은 일단 병사들이 사고를 칠맘이 생기더라도 사전에 자신에게 먼저 상담할수잇는 사고발생전의 마지막 방어책을 세우신것과 같음. 군대라는곳에서 지휘체계를 지키는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지만 지휘체계가 사고보다 중요하진 않다고 개인적으론 생각한다. 진급정말 잘하셨을듯. 덕분에 사연자 분께서도 사고안치고 잘 사건을 마무리하실수있었어서 다행임.
오랜만에 보는 훈훈한 사연이네요, 확실히 아무리 조직 자체가 오래되고 굳어있다고 해도 그 중에 누군가는 참 군인이 있기에 아직까지 군대가 잘 돌아가리라 생각합니다. 여기에서도 군생활의 노하우가 잘 나오네요. 소대장 중대장이 안해주면 더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지금 힘드신 군인분들도 혼자 너무 마음고생 하지 마시고 어떻게든 상부에 보고하고 상급 기관에 이야기해야 합니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대부분의 사람은 내 마음 고생에 크게 관심이 없는거 같더라구요...
맞습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예전엔 돌아가신 후에야 휴가가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30여년전 강원도 전방지역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할 당시, 한 소대원의 아버님이 위독하시다는 급한 전보가 왔는데 공교롭게 훈련기간 중이라 바로 휴가를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중대장은 깡패 호랑이로 소문난 대대장에게 말도 못 꺼낸다 하고 제가 직접 학군선배였던 대대 인사장교에게 물어보니 위독하다는 연락만으로는 어렵다고 하더군요. 결국 몇 일 후,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부대에 다시 도착했는지 대대에 남아있던 우리 중대 인사계가 부식 추진 차량 편으로 와서는 슬픔에 젖은 그 병사를 데려갔던 기억이 나네요. 병사 이름은 커녕 얼굴도 흐려질 만큼의 오랜 세월속에 잊고 지냈었는데 영상을 보니 갑자기 그 일이 떠오릅니다. 아마도 평생 아버님 기일만 되면 늘 그 때를 생각하며 원망할턴데 챙겨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고 미안하다. 늘 건강하고 행복한 여생이 되기를 바란다.
개판이네요... 97군번 대대 인사과 계원이었습니디. 부모님 위독하시면 100퍼 청원휴가 당일로 보내 줬내요. 일과 후 대대장한테 유선 보고 후 휴가 보내준 경우도 많이 있었고. 4박5일 청원휴가중 부모님 임종하시면 4박5일 연장 후 인근부대나 tmo등 통해서 휴가증 재발급 공조업무 했죠. 조부모도 전부 보내 줬습니다. 아니 어떤 지휘관이 부모님 위독하신데 휴가 짜르는지. 청원휴가 일순위가 직계가족 경조사로 갑니다.
남 이야기인데 보면서 눈물이 흐르네요. 저런 지휘관이 있다면 진짜 열심히 군 복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군생활은 다행히 좋은 간부님들과 함께 했습니다. 옆 전우가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휴가를 보내주었습니다. 동네 형 같던 본부대장님, 인사담당간부님, 아버지와 어머니 같던 주임원사님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군생활 행복하게 마무리했습니다.
장병이 뭔가 문제가 생겼다고 보고 올리면 무조건 엄살이나 요령으로 못박아버리는 멍청한 간부들이 가장 문제입니다. 그런 인간들 때문에 골든타임을 놓쳐 멀쩡한 사람이 장애인되고, 살 수 있던 사람들이 죽고, 인생에서 놓쳐선 안될 순간까지 허망하게 날리게 되는 사례가 계속 나오고 있죠. 사연자분은 좋은 연대장님을 만나 할아버님의 임종을 지키게 되어 정말 다행입니다. 물론 연대장님께 전화하기까지 용기를 내신 것도 대단하구요.
저도 군에 있을 때 저를 끔찍이도 아껴 주시고 잘 해 주신 할머니께서 돌아 가셨는데 80년 초에는 부모님 말고는 휴가가 허락 되지 않아서 할머니는 첫 휴가 때 산소에서 뵈었습니다. 연대장님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 되었고 우리나라 군이 많이 발전 한 것을 느낍니다. 40년 전 할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한 밤중에 전우들 몰래 많이 울었었는데 할아버지의 수화 장면에서 눈물이 흐르네요! 할아버지께서 많이 아껴주신 님의 마음을 함께 공감하는 좋은 사연 잘 보았습니다.
솔직히 FM대로 하진 않았습니다... 뺑기도 써가며 후임 고생 안 시켰고... 전 이등병때 조금 맞았지만 전 후임 절대로 때리지도 갈구지도 않았고... 할건 다 해가며 군생활 했습니다... 그때 제 위로 두달 한달 고참이 6명(5명은 동갑 한명은 형)이었는데 지금도 연락하며 지냅니다... 제가 전역할때 친했던 후임도 지금도 1년에 한두번 만나서 밥 먹구요...ㅋㅋ
저도 군 복무중에 할머니가 돌아가신기억이 있어서 보는 내내 마음한켠이 아프네요 저는 그때 근무 서고 복귀 할때 소식을 들어서 얼마나 울었던지 .. 전역하고나서 진짜 묘 앞에서 그렇게 슬픈 감정을 처음 느꼈었죠 지금도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지는것같네요 군대라는 곳에 갇혀 소식을 접하면 진짜 후.. 마지막에 뵈었던 할머니 웃고 계신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네요 ..
아들을 군대 보낸 아비입니다. 아들은 아직 쫄병이라 눈치 보며 지내고 있습니다. 며칠 전 아들과 통화하는데 아들이 한여름 대낮에 더운데서 전화를 한 모양인데 그걸 본 간부께서 눈치 보지 말고 시원한 데서 통화하라는 목소리가 들렸는데 참 고마웠습니다. 6** 61** 전갈** 간부님, 계급 성명 모르지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 말씀 하나가 병들의 사기를 높이고, 부모에겐 군에 대한 신뢰를 높이게 됩니다.
제 친할아버지도 제가 군대에 있을 때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첫 손주여서 많이 예뻐했다는 걸 느꼈었고 임종을 못 지켜 드렸다는게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그 날 휴가를 나가서 저녁에 도착한 뒤 할아버지를 영정사진으로 뵙던 날 절하면서 울었습니다. 이런 선례가 앞으로도 많아 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랑 너무 비슷한 사연이라 사연듣다 울컥했네요, 일요일 새벽4시경에 할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전화를 받고 내무실에가서 환복하고 아침점호 후 바로 출발할 수 있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근데 당직이었던 행보관이 말하길 휴일이라 소,중,대대장 모두 부재중이라 보내줄 수 없다하여 점심시간이 지날때까지 계속 대기만 하였습니다. 그 사이 아버지는 빨리 출발 안한다고 독촉전화를 계속 하셨지만 전 출발할 수 없었고 결국 할아버지는 저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저도 사연자와 같이 집안의 장손이라 유독 저를 아끼시고 저도 따랐던지라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행보관도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 것이겠지만 그당시 다른부대에서 복무중이던 친동생은 당직간부가 휴가증은 뒤에 자신이 처리하겠다며 일단 출발하자면서 본인의 차로 터미널까지 태워줘서 동생은 할아버지 임종은 지켰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욱 속상했던 기억이네요…
그래도 좋은 연대장 밑에서 일이 잘풀렸다니 참 좋네요. 사연을 듣다보니 제기억도 나네요. 30여년전 신병훈련소에 입소하고... 지병으로 고생하시던 할머니의 병세가 악화되시었고... 죽기전에 나를 한번 보고싶다하시어... 이모님이 아는 투스타에게 밤에 잠깐이라도 외출을 시켜달라고 청을 넣으셨는데... 훈련병은 부모가 돌아가셔도 훈련소에서 나갈 수 없다는 대쪽같은 부대장의 소신때문에 거절당했습니다. 퇴소식을 하고서야 퇴소식 전날밤 할머니가 돌아가신걸 듣고 집에 가니... 이모와 어머님이 하루만 더 버티셨으면 하며... 목놓아 우시더군요. 원칙대로 한 부대장에게 큰 원망은 없었지만... 당시만해도 각종 부당한 청탁과 부패가 만연하던 나라에서... 그 하룻 저녁의 외출이 뭐 그리 힘들었을까 하는 아쉬움은 생기더군요. 이젠 다 옛날 이야기가 되었네요. 저에겐 할머니가 생각나는 사연입니다.
저도 사병출신이긴 하지만 간부와 가까이 지내던 인사과 행정병 출신 입장에서 보면....간부들이 깍탈스럽게 굴만하다고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사병들 중에 휴가 나가려고 별의별 짓 다 하는걸 봤으니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친이 임신했다는 둥.....) 휴가 사례는 아니지만, 제가 본 고참중에는 축구시합할때는 그렇게 날라다니던 사람이 훈련만 되면 절뚝거리면서 의무대 가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신뢰가 안가지요. 저 영상의 간부를 지지한다는 것은 아니고, 그런 사병도 많아서 저런 간부도 생기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참군인!! 참아버지!! 연대장님!!! 그저 빛입니다...이런분이 높은 위치에 가셔야합니다...그저 자리보전 하고자...병사 갈구는 간부가 많은데...병사들은 나라지키기 위해 입대하여 모든 자유를 잃고 희생하는데... 상명하복은 군대에서는 당연하지만 사람이 사람에게...사람으로서 이해해주고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너무 너무 감동적이어서 영화 같네요 ㅋㅋ 전역자들이 제대후 내부 고발을 해줘야 군 부조리도 없어지죠... 반대로 이런 미담은 계속 계속 퍼뜨려서... 저런 연대장님은 군에서 잘 모셔야하고... 중대장이란 녀석은 참 답이 없네요 ..... 저런 중대장이 자기에게는 또 엄청 관대한.....
오인용데빌에서 댓글을 잘 달지 않고 있었지만, 이 영상은 몇번을 보다가 댓글을 적게 되네요. 사연으로 만들어지는 이 영상에서 제보해주신 분의 당시에 느꼈을 절망감, 부대원들에게 미안함, 그리고 연대장에게의 감사함... 거기에 중대장도 빌런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그저 이야기의 한 부분으로 넘어가는 것까지... 사연을 제보해주신 분의 마음까지 느껴지는 따듯한 영상이었습니다.
갑자기 이걸 보는데 똑같이 할머니 돌아가시는걸 뻔히 알고도 청원휴가 조차 쓸 엄두를 못내다가 결국 새벽에 소대뒤로 가서 나홀로 울던 후임이 생각납니다 이름이 김동욱인가.. 참고로 저도 똑같은 00군번입니다 사연자님은 참 훌륭한 지휘관님을 두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기운 평생 이어 받으시고 건승하시길..
저도 군생활중에 할아버지께서 많이 편찮으셔서 마음졸이며 군생활 했습니다. 잦은 쇼크로 청원 휴가도 쪼개서 많이 나갔었죠. 다행한 일은 전역 후에 비교적 건강을 찾으셔서 5년더 계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저도 종손이라 할아버지이쁨을 많이 받고 자라서 사연자의 마음을 감히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지금은 행복 넘치고 편안한 곳에서 사연자분도, 저도 지켜보시고 계실거에요. 행복하게 잘 지내는 것이 최고의 효니까 잘 살아봐요 ㅎㅎ
저도 생각이 나네요...95년 봄 최전방 GP에서 부친 위독 이라는 전문을 받고 새벽에 부하들의 경호를 받고 통문으로 철수 하여 통문앞에서 대대장께 날짜 없는 휴가증과 대대장 찦차를 받고 동송터미널로 달려가던 그때...결국 부친께선 도착 다음날 작고하셨죠... 대대장께 부친임종을 보았다고 보고 하니 아버지 잘 모시고 삼우제 지네고 한 열흘 쉬다 오라고 하시며 부대에서 조문 갈것이고 필요한거 챙겨서 보네겠다고 하시던 그때 대대장님이 생각납니다... 감사 했습니다 대대장님... 12년 군생활 하면서 수많은 중대장(지휘관)을 모셔봤지만 정말 저런 중대장 한 두명은 만났었죠... 최소 군생활 3~4년한 중대장(대위)이 신임 소위보다 더 꽉막혀 중대원들 숨막히게 하거나 소통이 안되는 지휘관 들은 어쩔수 없이 정말 저렇게 건너뛰고 상급 지휘관에게 직접 보고하여 부대업무나 애로사항을 해결할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중대장은 대대장이나 부대대장 작전과장 에게 졸 깨지고 부대내 간부들과 병사들 사이에서 왕따 되고 딱 일과내 지휘나 업무관계에만 얼굴 보고 그이상 그이하도 절대 접촉을 안하죠... 그런데 이상한건 활동적이고 병과 간부들 간에도 소통이 잘되고 교육훈련과 부대관리도 잘한 중대장은 거의 소령이나 기것 해야 중령 전역하고 저 사연의 저런 부류의 중대장들이 전우회 소식을 들으면 특별히 육사도 아닌데 진급도 잘되어 대령달고 연대장 나가고 심지어 별(준장)달고 지금 여단장 하는 인물도 있어서 어쩔때 깜놀 합니다... 저 연대장 같은 분들 즉 (부하)병사들을 아끼고 챙기는 지휘관을 어느부하가 따르지 않겠습니까... 정말 훌륭한 지휘관 이시고 분명 영전하여 장군이 되어 더큰 역량을 발휘 하셨을 겁니다...
부럽습니다. 제가 근무한 대대는 저렇게 한 사람들 대대장이 어떻게든 지휘체계 미준수로 어떻게든 처벌하려고 했는데.. 제가 있던 수송대에도 후임 두명이 사단 마음의편지 적을때 썼더니 수송관이 욕하고, 대대장은 우리 볼때마다 수송대 배신자놈들 이라고 했던게 기억나네요. 그게 벌써 십몇년전 일인데 아직도 기억납니다.
보는동안 눈물이 왈칵 맺혔네요. 목도 칼칼하고. 군복무 동안 어머니 암수술 하셨을때랑 돌아가신 고모부 생각이 많이 나네요.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핑돌고 아찔합니다. 고모부는 일병휴가 복귀 전에 마지막으로 뵙고 부대 복귀 했었는데 췌장암 말기셨거든요. 어릴때 동생이 많이 아파서 큰수술 하느라 부모님은 직장과 동생 병간호 때문에 저를 봐주실 여력이 안되셨고 고모네 에서 그동안 봐주셨었는데 그래서 제게는 아버지 같은 분이셨어요. 찾아뵜는데 피골이 상접한다는게 딱 이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인지 알겠더라구요. 몰골이 말이 아니셨는데 아파서 앉으면 고통스러워 눕고 그걸 반복하시는 상태랄까. 아무튼 제가 친척중에 제일 마지막에 찾아뵙고, 3일인가 뒤에 돌아가셨다는데 사연자 분은 1시간 뒤라니. 정말 조금만 늦었어도 평생 가슴에 상처남으실뻔 했네요. 그래도 좋은 인연으로 멋지신 연대장님 만나서 다행히도 임종 지키실수 있어 다행입니다. 뒤에 가혹행위나 보복 없도록 조치해 주신 쎈쓰하며 일사천리로 일처리 하시고 장병들 정신교육 평소에도 단단히하시고 아버지 같이 하신거 보면 분명 최소 2성 에서 3성 군단장 급 이상 하시지 않으셧을까 저도 생각해 봅니다. 너무 멋지시네요. 박수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