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다니는 글쓰기 학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책을 읽을 때 들고 있거나 받치고 읽으면 팔과 손이 아파서 집중이 잘 안된다고, 하시면서 독서 받침대를 구입하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선생님 말씀에 귀기울이며 듣다보니 점점 빠져들었어요. 독서대를 구입해서 커피를 마시면서, 음악을 들으면서 등등 책은 받침대에 놓고 나머지 두 손은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고요. 그런데 곧 받침대는 창고로 들어갔대요. 왜그랬나 질문했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책의 촉감을 느끼지 않고 눈으로만 읽으니 읽는 것 같지 않고, 두 손으로 다른 곳을 하니 내용이 끊겨서 손과 팔이 아플 때보다 오히려 더 집중이 안됬어." 라고요. 그 때 느꼈어요. 책을 읽는 다는 게 오디오북이나 받침대를 이용하여 (물론 각자의 취향이기 때문에 다를 수도 있어요. 오디오북을 즐겨 듣거나 이용하는 분들은 뭐라 하는 게 아녜요.) 하는 것보다 손으로 종이 특유의 촉감을 느끼면서 집중해서 읽는 것이 진짜 읽는 다는 것 이라는 걸요. 저도 그 후 책은 직접 들거나 손으로 받쳐서 읽었더니 다 읽고 난 후에도 대사나 중요 내용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어요. 이 영상도 많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저희 엄마께선 독서가 공부보다 더 중요하시다는데 맞는 것 같아요. 모두 독서 많이 합시다. 화이팅이예요!
인생은 재탕이 힘들지만 독서는 재독이 가능하지 책을읽을때 잘모르는이름이나 단어가 나와도 인생이 그러하듯 의문만이 남긴채 그냥 지나가리라 지나가고나서 생각해보면 그때 그런의미였음을 깨닫고 다시금 그때생각을 하게되고 그렇게 계속 진행되다보면 마지막장까지 오게된다 책에 있는내용을 다 알필요없다 원래 그런거니까
살면서 상식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와 다르게 디지털에 사는 시간이 더 많이진 요즘 사회인들은 지성을 겸비하는데 교과서 따위는 존재가 무가치하단 사실을 자각하고 있거든요, 근래 상식 없이 지혜로 사는 방법을 탐구하며 관찰하고 있습니다. 다소 멍청해 보이는 부분도 귀엽다고 말하려면 상대에게 적합한 메타포가 보다 뛰어난 상식이 존재하더라도 설득에 적합하지 못하거든요. 독서의 필수성이라고 명명한 저의 정의는 언제나 ‘나’에게 설득력을 가지고 있으면 됩니다. 설령 그 형태가 자위일 지라도 행위뒤 현타는 없고 본연의 자아만 남거든요, 천성이 악질인 인간도 선제적으로 선한 기질을 나타내는 순간이 있듯이 존엄과 가치의 어떠한 무형의 형태에도 지혜는 지성인의 정의아래 존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