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초(不老草)가 내용중에 나와서 말인데요. 외계인 서사는 차치하고 불로초를 찾으러 동쪽 (한국,일본)으로 보낸 스토리가 생각나네요. 오히려 그의 건강은 꾸준히 섭취한 수은 중독이라는 말도 있구요. 진시황은 중국 최초의 황제를 떠나서 여러모로 흥미로운 스토리를 담고 있는 또 하나의 이야기 소재 같습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원래 진시황이 한민족과 인연이 깊은 인물임.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지만 우리 문화와 우리 민족 형질이 형성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임.우리는 반만년 역사니 고조선 단군 어쩌고 5천년가까운 세월동안 우리민족이 단일민족처럼 형질이 이어온다는 판타지 역사관도 있지만 실제로 우리 민족 형질은 크게 두부류로 한반도에 유입된 중국발 이주세력들에 의해 결정된 것임. 그전에 한반도에 살던 한반도 석기시대 원주민들은 우리 주류 조상은 아님. 일본 원주민들은 명맥이 남았지만 한반도 원주민들은 아예 사라져버렸음. 물론 모계쪽 (미토콘트리아)으로 흔적은 있지만 무시해도 될만큼 미미한 것. 한반도 초창기 문명세력은 고대문명부터 이어온 당시 세계에서 가장 앞선 문명권중 하나였던 중국 중원국가들 재나라 초나라 이주민들이 전란을 피해 탈출을 도모하면서 뱃길로 지척의 한반도로 건너오면서부터 시작된 것임. 여기에 대량 이주 부추긴게 바로 정복욕에 불타 전란을 확대하던 중원국가 취급 못받던 변방 오랑캐색이 짙던 진나라의 지배자가 된 어린 왕인 영정이였고 태어나서 오냐오냐 권력 누리며 왕자로 길러진게 아니라 어린나이부터 볼모잡히고 암살당할 위험 피하며 죽을 고비 넘겨 온 인물이라 어린나이부터 먼저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 먼저 먹지 못하면 내가 먹힌다, 먼저 침략하지 않으면 침략당한다... 이런 생존본능이 그의 사고를 이끈거임. 약육강식 생존경쟁 사고에 물들어 있었지. 혼란한 진나라에 어린왕으로 등극해 위협되는 정적세력들 차례로 제거하고 진나라를 장악해서 자신의 안위를 보호해주고 후원자나 마찬가지였던 최고실권자까지 권력구도에서 밀어내 제거해버리지. 진나라 어린왕인 영 정은 어린시절 안정적인 양육환경을 겪지 못해 그것이 성격형성에 영향을 준거지. 겁이 많고 공포심이 강해서 생존본능에 지배당하는 사고를 하게 되는 거임. 낮은 자존감과 불안한 정서로 인해 자신이 모든걸 지배하고 통제해야 안심이 되는 그런 성격인거지. 자신보다 강하거나 위협이 된다고 느끼면 엄청 불안해서 제거를 해야 안심할 수 있었던 인물임.결국 그를 지켜준 후원자까지 죽여버림. 어린나이에 꼭두각시 왕은 싫다는 이유지. 아무튼 걱정이 많은 성격때문에 주위 자신과 밀접한 인물들과 관계를 제대로 풀어나가려고 하지 않고 의심과 불안함으로 그르쳐버리고 결국 다 죽여버림. 겁이 많고 생존본능에 지배당하다보면 힘을 추구하고 지배욕구가 강해지고 관대한 사고가 불가능해짐. 그렇게 진나라를 장악했으나 또 불안한거지. 춘추전국시대 각 나라들 서로 경쟁하는 세상이니 진나라 왕으로 불안해서 걱정이 태산인거지. 그래서 중화통일해서 불안함을 해소하겠다고 나선거임. 정복욕에 전란을 확대하며 피바람을 일으켜 터전 잃은 양민들 지방세력들 불안해서 결국 바다건너 한반도까지 탈출 행렬 이어지게 한거지. 거기서 끝이 아님. 북방계 연나라도 진나라의 위협으로 흔들리고 있었지. 이미 고조선은 연나라 출신들이 장악하고 연나라계 주민들 유입이 계속되어 고조선 상위층 백성들 다수가 연나라 출신들임. 고조선 집권세력은 이미 쫓겨나 한반도로 남하한거지. 이미 불모지가 아니라 문명인들이 살고 있었음. 그들이 한반도 토착세력화된 중국발 이주민들임. 그렇게 만주에서 남하한 세력과 한반도 토착세력이 섞이면서 휘에 삼한의 토대가 되는거임. 이후 북방에서 세력을 형성하고 내려온 집단들이 중앙세력이 되면서 또 한번 변곡점이 오게 되는거지. 그건 이후의 이야기고... 암튼 고조선에 왜 연나라인들 유입이 갈 수록 늘었느냐 불안한 정국때문이지. 거기에 불을 지핀게 진나라 왕 영정임. 다 침략해 지배하겠다고 나서니 그때 중원나라들이 협심해서 야만세력인 진나라를 쳤어야 했는데 못치고 넘어가 결국 진나라 천하게 되며 문명의 큰 후퇴를 낳게 된거임. 진보된 문명들이 파괴되고 발전된 다양한 사상들이 사장되었음. 사실 진나라는 서율이라 불리던 오랑캐 터전에 세워진 나라라 오랑캐 기마부족 반달리즘 야만족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나라였음. 진나라가 제시한 정책을 고집하며 값어치를 환산도 못할 인류사에 귀중한 기록유산들을 태워버리고 문화말살 사상적 탄압하며 각 나라들 정체성을 짖밟아 말살시킨거임. 연나라 망하면서 연나라계 후 손들이 살던 고조선과의 연고 친밀성에 진나라로 흡수 거부하거 고조선으로 넘어오는 양민들도 많았지. 고조선은 당시 진나라가 복속시켜야하는 강력한 국가로 보지 못했음. 오랑캐들 유목부족들이 오가며 사는 터전정도로 인식했지. 연나라인들이 막판 대규로모 넘어가면서 철기가 널리 쓰이고 농작물 생산이 비약적으로 늘어나고 인구가 날로 불어나고 무역거래도 활발해 나날히 부유해지며 넓은 영토 접경지역에 군사조직 배치하면서 나라로 알려지니 진나라 이후되어서 한나라시절에는 천하통일을 외치는데 이웃에 무시못할 나라가 있으니결국 쳐들어온거임. 아무튼 진시황덕분에 한반도로 인구 유입 문물 유입 우리민족 형질이 형성되는 개기가 됨.
3:08 신기한 점은,, 삼발이 기둥을 이용해 거석을 옮겼다는 내용은 미국 Florida 에 위치한 Coral Castle 내용과도 일치한다는 것. --- 1940년 경,, 거대한 산호초 바위를 옮겨 성을 지어 놓은 곳인데,, 삼발 기둥에 아래로, 철재를 사용,, 바위를 감싼 다음원형 자석을 돌려 자기장을 일으켜 옮긴 듯 하단 것.
@@농민의난-z1z 말귀를 못알아들으시는 모양인데,, 저 coral castle의 경우는 혼자서 5톤이 넘는 거석들을 옮겨서 성을 지은 것입니다. 검색해보시면 나오니,, 영상을 보고 다시 말하세요. 옛날이 아니라, 요즘도.. 몇 톤씩 되는 돌을 나무 삼발이로 들지 못하고.. 그걸 삼발이로 옮길 순 없어요. 삼발이 자체를 함께 움직여야 하는데, 그건 넌센스죠.
전국시대 당시 중원 여러나라 사람들은 진나라를 오랑케 취급을 했고, 진나라 사람들은 머리위에 상투를 틀었음 상투는 우리민족의 특징임... 그래서 진시황릉을 발굴하면 동이족의 유물이 나와서 발굴을 못하고 있었고, 거대한 역사조작인 동북공정이 끝나고 한반도를 중국에 흡수하고 나서야 당당하게 발굴할 예정이었음
짜장들이 한 말의 대부분은 과장과 구라인 것이죠... 그게 역사라 해서 별반 다르진 않습니다. 물론 기록된 정사는 어느정도 이상은 사실이지만, 뭔가 지나치게 과하거나 대단하거나 엄청난 것의 거의 대부분은 과장과 거짓이라 보면 맞을 것 같습니다;;; ㄷㄷㄷ (영상에 나오는 거울은 그냥 멋지게 장식된 거울인데 황제가 자꾸 거울 앞에 사람 세워놓고 '이 거울은 사람의 속마음이 다 들여다 보인다'는 식으로 자꾸 구라치고 겁주니까 그게 부풀려져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가 매우 과장되서 전설처럼 전해졌을 수도 있고, 기적의 삼발이는 걍 듣기만 해도 지렛대와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해서 공사에서는 기중기로 사용되고, 전쟁시에는 투석기 등으로 사용된 물건을 말하는 것 같군요. 중국이 말하는 지들의 대단한 점은 거의 대부분이 과장과 구라라고 생각합니닼ㅋㅋㅋㅋ) 하지만 기묘님의 영상은 늘 흥미롭습니다. 특히 몇몇 못참는 조합이 있는데, 진가 + 외계인이라니...이건 넘 흥미로워 못참겠네요 +_+
만리장성에대해 대부분 알고계시겠지만 첨언 하면 지금의 형태는 명나라때 보수된 것이고 진나라때는 벽돌이 아닌 흙으로 지은 토성이였을 것으로 확인 되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토성도 대단하긴 하지만 벽돌로 된 현재의 형태를 당시에 지어진 그대로 라고 하면 충분히 오해가 생길 수 있을 거 같아 짧게 글을 씁미다.
왜 발굴을 않하는 걸까? 진시황은 동이족 계통이기 때문임.. 원래 그들은 서융족으로 오랭캐이며.. 서융족은 신농의 후손인 동이족인 강족에서 갈라진 일족임 또한 진시황의 '영'씨는 성씨로 보면 동이족 소호씨의 후손이고..그들은 사료에도 소호와 치우에 제사를 지내는 족속들이임..즉 중국 한족이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