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때 할머니가 이방자 여사가 하는 자선사업에서 봉사한다면서 낙선재에 갈때 따라간적이 있는데, 할머니는 다른 할머니들과 낙선재 입구 근처 건물에서 편지봉투에 편지들 집어넣고 봉인 하는일 도와주는데, 난 심심하니까 나와서 낙선재 여기저기 둘러봤는데, 열려있는 문들 지나서 마당에서 건물들을 보는데, 어떤 건물에서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게 들려서 깜짝 놀라서 할머니가 일하는 곳으로 돌아와서 말했더니, 덕혜 옹주님이 가끔 그런 소릴 지르신다며 별거 아닌듯 말하셨다.
순종에 대해서는 역사에서 외면하는 분야가 너무 많아요. 그가 발달장애인이고 명성황후 생전에도 병증이 있었다는 점, 1917년 방일하여 다이쇼 일왕을 만난 점, 다이쇼도 정신병자이니 둘이 무슨 대화가 되겠습니까? 마주보고 웃다가 오셨겠죠. 순종이 말년엔 마약에 빠져 살았는데 이분 국상에 유서라고 나온 것은 6.10 만세운동을 위한 조작이라고 봅니다. 장애인에게 한일합방에 대한 책임을 문기도 어렵고 모든 욕은 고종 부부가 다 받고 있습니다. 고종은 3번이나 러시아 망명을 시도하고 의친왕도 임시정부에 파견합니다. 1902년 평양에 풍경궁을 지어 몽진할 생각도 하였는데 러일전쟁 때문에 실패하죠.
궁궐에 대한 자세한 설명 잘 들었습니다 낙선제를 보고 싶었고 궁금했었는데 소개해 주신 덕에 잘 보았습니다 왕의 아픈 역사와 일제의 침탈로 한 서린 역사가 함께 공존하는장소라 생각하니 숙연한 맘이들고 씁쓸하네요 소중한 문화제인 만큼 길이 보존되어 후대에 전수되길 바래봅니다
@@user-wh1gt2ei4g 넵 마지막 황제 순종의 부인 순정효황후님이 사셨고 덕혜옹주 영친왕 이방자여사, 일본에서 귀국후 낙선재에서 생활 하심덕혜옹주님은 1989년도에 돌아가시고 10일후 이방자 여사님도 돌아가심 6.25 때도 인민군이 낙선재에 들어와도. 별탈 없이 나갔다 합니다. 낙선재만 400칸이 넘는 규모 있는 전각 입니다. 마지막 왕자 이석님은 대학때에도 낙선재에서 다녔다 합니다. 왕족 어른들께 문안인사 꼬박 하시고 밤늦게 귀가 할땐. 월담도 했다고 하십니다 ㅋㅋㅋ
빈청은 삼정승과 정2품 이상의 고위관료들, 비변사 당상관들이 임금을 뵙기전에 회의하던곳입니다. 고종때 흥선대원군 섭정시, 비변사가 없어지면서 비어있다가 순종황제가 창덕궁으로 이어, 자동차를 이용하면서 어차고로 일제가 바꾸게 됩니다. 순종승하후에는 초헌, 연,여, 승용차 등의 보관, 전시되다가 2007년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겨진후 빈공간으로 남았다고 합니다. 카페는 2010년 5월에 들어섰습니다. 이름은 동궐마루 입니다.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2007년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종, 세종은 자녀를 엄청 많이 낳았습니다. 후궁을 많이 둔 덕분인데 3년상 기간엔 국혼, 성관계도 금지를 당했습니다. 영조가 모친상 기간에 정빈 이씨가 임신하자 숙종이 야단을 친 기록이 있습니다. 3년상을 지나치게 지내 문종, 인종이 단명한 것은 빈대 잡으려다 집을 태운 경우입니다. 헌종이 사랑한 경빈 김씨가 효정왕후 홍씨 대신 간택이 되었다면 후사가 생길 수도 있었는데 절손이 되었습니다. 석복헌이 경빈에게 준 선물입니다.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태조 3년 2월 26일 前朝太祖垂戒後昆, 勿用百濟人。 向使後昆, 遵守其訓, 殿下亦安能有今日也! 此臣等所以敢言者也。 古之人主, 優游不斷, 以致禍亂者, 殿下之所嘗聞也。 願殿下念天道之靡常, 慮民心之難保, 斷以大義, 卽令臺諫法官, 就將恭讓三父子, 置之於法; 其王康、王鬲、承寶、承貴幷其同姓弟姪, 屛諸海島; 其江華付處王氏, 亦竄海島, 以絶中外虞疑之心。 전조(前朝)의 태조(太祖)가 후손(後孫)에게 훈계를 전하면서 백제(百濟) 사람을 쓰지 말라고 했는데, 지난번에 후손들이 그 훈계를 준수했더라면 〈전주 사람인〉 전하께서 또한 어찌 오늘날이 있었겠습니까? 이것이 신 등이 감히 말씀 드리는 까닭입니다. 옛날의 인주(人主)가 어물어물하고 속히 결단하지 못하여 화란(禍亂)을 초래한 것은 전하께서 일찍이 들으신 바입니다.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천도(天道)의 일정하지 않은 것을 생각하시고 민심(民心)을 보존(保存)하기 어려운 것을 염려하시어 대의(大義)로써 결단하여, 즉시 대간(臺諫)과 법관(法官)으로 하여금 공양(恭讓)의 삼부자(三父子)를 법에 처하고, 그 왕강·왕격·왕승보·왕승귀와 그 동성(同姓)의 아우와 조카까지 모두 해도(海島)로 내쫓고, 강화(江華)에 부처(付處)026) 한 왕씨도 또한 해도로 귀양보내어 중외(中外)의 근심하고 의심하는 마음을 근절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