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이만갑 출신들은 말씀을 아주 잘하십니다! 모란봉도 있지만...ㅎ 북한과 대한민국의 의료 시스템 이나 군장비 훈련등 느낌대로 세세히 너무 설명을 잘해주셨습니다 !유진님! 이젠 행복한가정을 이루셨으니 앞으로 도 하시는일에 더욱 발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영상시청 잘했습니다!
오늘 새벽에 잠깨어 가영씨 유튜브 최유진편 1.2편을 모두보았습니다. 고향분을 만나 감회가 더욱 크셨을듯 하군요. 유진씨 이 자유대한민국의 품에 않기신것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하합니다. 그 지옥보다 더한(지옥이 어떤지 못가봐서 모르겠지만) 구렁텅이에서 너무나 이루 말로서 형언키 힘든 고생하시었군요. 이제 가정을 이루고 아기까지 있으니 그동안 누리지못했던 행복 가족과 함께 마음껏 누리며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누구든지 바쁘고 힘들고 어려운건 다있습니다 물론 여건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는요 어려운 난관을 헤쳐나가는건 본인의 슬기와용기만 있으면 어렵지않게 해결할수 있습니다 위인의 말씀이 생각이 남니다 어둡다고 불평하기보다는 작은 촛불하나라도켜라 초심을 잃지말고 열심히 살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나두 북한으로치면 남한 호위사령부 출신입니다 ㅎㅎ
대한민국 한끼식사가 3-4000원 합니다 집마다 차량 한대 이상씩있는데 1500만원 이상 합니다 서울에 집있는 사람들 집 최소2-3억 합니다 한국사람 1인당 한달평균 350만원 법니다 세계 10위경제 선진국이고 각분야에서 세계적으로 1,2위하는것들 많습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이태리가 우방국이며 세계가 극찬하고 우러러보는 나라가 대한민국 입니다 저 우간다 아프카니스탄하고 친구인 북한하고 많이다릅니다 언어 문화 경제력 차이가 어마어마합니다
음식을 못 먹는 게 아닌 이상 영양실조 걸릴 일은 없지요. 그런데 영양실조는 안 걸려도 편식하거나 하면 '영양불균형'이 될 수 있고 생각보다 그런 사람 많아요. 음식은 골고루 먹어야 ㅎ ㅎ 그리고 무기(소총)에 달린 조준경 말씀하신 것 같은데 '도트 사이트(Dot Sight)'라고 합니다. Dot(점), Sight(시력, 시각, 조준..) 즉 (빨간)점으로 조준하는 총기 악세사리입니다.
퇴역 장군 유투브 보면. 따로 먹는 곳이 있답니다. 같이 먹으면 사병들이 신경쓰고, 부담스러우니까요. 아마도 그 날은 일부러 보여주려고. 높은 분들이 같이 먹었던 거 같구요. 큰 식당에 칸막이만 장교용으로 해서. 식단은 동일하게 먹기도 하구요. 오래 전에는 식단도 따로였다고 하구요.
대한민국 군대에서 군인이 굶는다던가 식사가 모자라서 영양실조걸렸다는 뉴스는 군대가 생긴이래 없었답니다 난 오십년전에 군생활했는데 그때도 북한과 같은 그런 불상사는 들어본적도 경험해본적도 없있답니다. 북한에서 잘못된 교육을 받은 결과입니다. 1960년대말에 고등학교를 보냈는데 그때도 한국은 잘살았어요. 물론 가난한사람도 많이 있었지만 북한과는 차원이 다르게 보리밥에 잡곡섞어서 먹는정도
맞습니다. 이건 군대 얘긴 아니지만 제가 학창시절 군부대가 즐비한 강원도 인제군 현리에서 자랐는데 당시 국민학교에도 (현재 초등학교) 도시락을 싸갖고 다녔는데 보리쌀을 많이 넣고 덜 넣고 차이였지 굶는 친구는 없었어요. 대신 가방을 들고 다니는 친구와 보자기에 책과 도시락을 넣어서 메고 산길로 집을 가야 하는 친구들은 있었어요.
아직도 기억 남는게 제가 제 동생한테 참으라고 했어요.눈 앞에 보이면 시간이 참 제가 먼저 하죠.형이니까.내 동생을 그렇게 했는데 참으라고 했죠.그냥 마음이 아프요.내 동생을 그렇게 했는데 그런 거 삶을 잘 못 산다에 십원 겁니다.제가 그 때 제 막내에게 어디있냐?전 사학.역사공부하던 놈이요.알아보게.했더니 제 막내는 여행이라도 부산은 가지 않겠다고 했죠.저도 부산 놈한테 인생 군대에서 처음 맞았죠.부산놈.내무반에서.총들고 병장새끼가 별 짓 다하더군요.전 진짜 그 때 처음 맞았죠.끔찍했죠.저 92학번 92군번../라도 부산은 가지 않겠다고 했죠.저도 부산 놈한테 인생 군대에서 처음 맞았죠.부산놈.내무반에서.총들고 병장새끼가 별 짓 다하더군요.전 진짜 그 때 처음 맞았죠.끔찍했죠.저 92학번 92군번.철모 쓰고 개머리판으로 맞았던 기억이 있죠.원래 불법이요.글고 우리 고향 그 놈 봤고 전 않 본 척했죠.제대후에 전 마포.제가 말 던지면 우린 제대 후라로 이십대 중반.우리고향.그 날 그 지 표씨 도망가듯 가더군요.수도권 헌병도 마포 신촌은 접근불가였죠.미군도.암튼 그 표씨 군대에서 불쌍하고 지 팽생에 병장 하나 달아주면 지가 왕.세상을 모르고 살면 넘을 힘들게 하죠.근데 그 날 그 표씨는 도망가서 다행이요.그 때 저 24살이었죠.마포가 고향이고 제 친구들 다 있고.표씨를 도와 줄 사람 없죠.제가 그 놈한테 맞을 때 과도가 보이길래 잡을까 생각했죠.참은 이유는 딱 하나요.난 미래가 있다.그래서 않잡았죠.근데 우낀 건 그 전 날에 제 꿈이 그 놈을 그 칼로 찌르는 꿈을 꾸었죠.과도로.정학하게 상황이 너무 똑같아서 그냥 맞았죠.그 놈이 때리는데 그렇지 말라 말도 똑같고 그 새낀 자꾸 칼을 보고 꿈이 현실이 되는구나.찌르라고하고 글고 과도도 주더군요.전 군대가서 처음 맞은 날이요.악몽.그 새끼 내무반에서 둘 만 있었고 칼을 과도를 잡았죠.병신새끼.정말 그 순간 전 이등병 난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웃긴게 병장이 겨우 과일칼을 들었죠.더 맞았죠.정말 인간적으로 계급없었다면 군대에서는 있죠.대흥동시장 그새끼 그냥 가더군요.술 다 남기고.그 자식이 과일칼 든게 다행이요.전 웃었죠.전 지금도53 키도160.그 때나 별반 차이 없고 이 놈이 절 우습게 알았죠.전 그 때 행정병.전 어떤 말도 않했죠.그 날을.그냥 지켜봤죠.제가 그 날 말 했으면 표씨는 영창 및 군기교육이 아니라 군사재판을 받아야 하는거죠.아군을 해쳤으니까요.운이 좋은 놈이요.
과거 한국군의 식사는 형편없었다. 닭곰탕이 나온다 해서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닭기름이 둥둥 떠올라 있어 입맛을 다시고 수저를 떴으나 허당이었다 . 다른 동료는 뭔가 건졌다고 좋아했으나 눈을 부릅뜬 닭대가리였다. 또 다른 동료도 건졌는데 똥묻은 닭발이었다. 60년대 얘기지만 그 옛날 부정을 저질렀던 사람들 요즘 잘먹고 잘사는지 궁금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