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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선의지에 대하여 ② 윤리형이상학 정초 제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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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окт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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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мментарии : 6   
@죠워니
@죠워니 Год назад
칸트의 도덕철학을 쉽게 풀어 줄려는 교수님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칸트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도입부분을 비교하는것을 보고 드는 질문인데요 좋음과 옳음의 차이가 무엇인가요?
@philosophyTV
@philosophyTV Год назад
아 감사합니다. 선생님! 좋은 질문을 주셨네요. 간단한 질문은 아닙니다. 윤리 도덕의 문제와 관련하여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좋음의에 대해 문제입니다. 좋음 혹은 좋다는 말은 정말 광범위한 영역에서 사용됩니다. 좋다는 말의 사용을 분석 정리해 보면, 크게 세 가지 의미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도구적 의미에서 유용성을 나타낼 때입니다. 예를 들어 좋은 집, 좋은 자동차, 좋은 노트북, 좋은 스마트폰, 좋은 의자, 좋은 것은 무수히 많습니다. 이를테면 좋은 의자라면, 편안하게 앉아서 원하는 작업을 하는데 안성맞춤의 도구가 되겠지요. 좋은 자동차라면 이동수단으로서의 목적을 잘 충족할 뿐만 아니라 가격, 디자인에서도 만족스럽다는 뜻이겠지요. 둘째로 좋다는 말은 심신의 만족감을 표현하거나 개인적인 선호를 나타낼 때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하거나 기쁘게 하는 것, 혹은 우리가 선호하는 것에도 좋다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를 테면 식사를 맛있게 먹고 난 후에, 맛있게 먹었다, 잘 먹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식사가 참 좋았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혹은 ‘나 이 음악 좋아’ 이렇게 말합니다. 심신의 전체적인 만족감이나 선호를 한마디로 드러낸 것이지요. 셋째로 도덕적인 의미에서 좋다는 말을 사용합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 사람, 참 좋은 사람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어떤 행위나 사람에 대하여 은연중에 도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입니다. 도덕적인 의미에서의 좋음은 사람과 관련하여 쓰는 말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상의 세 가지 요소를 비교해 보면 어떤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칭찬, 승인, 허가의 요소를 포함합니다. 또한 어떤 기준, 표준, 규범과 일치하는 속성들이 있음을 나타냅니다. 좋은 자동차는 잘 나갈 것이며, 고장이 거의 없으며, 연료도 적게 들고, 나쁜 배기가스도 내뿜지 않으며, 디자인도 멋질 뿐만 아니라 가격도 저렴할 것입니다. 내가 좋다고 하는 사람은 나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어떤 종류의 기준이나 표준과 일치하는 사람일 것이다. 따라서 내가 무엇이 좋다고 말한다면, 나는 그것을 칭찬하고 승인하며, 또한 어떤 기준이나 표준에 맞는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상의 내용은 김양현/장복동, 참조) 그런데 문제는 윤리 도덕의 문제에서 좋음과 옳음의 일치와 불일치의 문제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특히 최고 좋음/선은 행복)나 벤담이나 밀의 공리주의(쾌락과 고통의 대차대조에 의한 행복)에서 좋음과 옳음은 상호 교환가능한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칸트에게서 좋음과 옳음은 항상 일치하지 않습니다. 칸트의 일차적인 관심은 윤리 도덕입니다. 최고의 좋음인 행복이 아니라 도덕이 문제인 것입니다. 물론 도덕적인 사람이 행복할 가치/자격을 갖는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 겠지요. 그래서 최고선(도덕과 행복의 일치)의 관점에서 좋음은 옮음과 과 바꿔써도 되겠지요. 다소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죠워니
@죠워니 Год назад
쉽지 않군요!! 답글 감사합니다 교수님!
@9susangrysword
@9susangrysword Год назад
항상 좋은 영상에 감사드립니다 칸트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교부분을 보고 칸트철학의 삶은 목적이 없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philosophyTV
@philosophyTV Год назад
늘 관심을 갖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삶의 궁극 목적은, 보통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행복한 삶, 잘사는 삶, 성공적인 삶, 잘 행위하는 삶입니다. 이것들 모두는 서로 서로 바꿔써도 되는 말입니다. 이와 달리 칸트의 생각과 주장은, 우선 중요한 것은 행복이 아니고, 인간이 인간으로서 윤리 도덕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행복할만한 가치를 갖는 것입니다.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무엇이 우선적이고 중요한가라는 점에서, 칸트는 행복이 도덕보다 앞에 위치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소간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9susangrysword
@9susangrysword Год назад
@@philosophyTV 답변 감사합니다! 가졌던 의문이 해소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영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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