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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속의 사랑] 절대권력을 누린 박정희의 세 여인 - 김호남, 이현란, 그리고 육영수 

문역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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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속의_사랑 #박정희 #김호남 #이현란 #육영수 #박재옥 #육인수 #육종관 #박근혜
오늘 한국사속의 사랑은 절대권력을 누린 박정희의 세 여인 - 김호남, 이현란, 그리고 육영수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육영수 여사는 함께 살았던 세 번째 여자였고 육 여사에게 박 대통령은 생애 첫 남자였습니다.
김호남과 결혼
박정희는 대구사범 5학년이던 1936년 4월 1일 고향 선산에서 김호남과 결혼을 했는데 박정희는 19살, 김호남은 16살이었고 신부는 무던한 여인이었지만 박정희는 결혼이 내키지 않았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혼인날짜를 받아왔는데 박정희는 결혼식 날 도망칠 궁리까지 했지만 결국 늙고 병든 아버지를 생각해 결혼식을 올리고 한 여자의 남편이 되었습니다.
결혼 후 김호남은 관습에 따라 1년간 친정집에 머물렀고 1937년 4월 박정희가 문경보통학교 교사로 부임한 후에는 상모리의 시댁으로 옮겨 살았습니다.
박정희는 이따금씩 처가나 친가에 내려가도 친구 집을 겉돌다 대구나 문경으로 올라갔으며 1937년 11월 김호남이 딸 박재옥을 낳았으나 박정희는 여전히 아내를 냉대했습니다.
김호남은 박정희가 집에 없는 동안 집안의 막내며느리로 궂은 일을 도맡아 했는데 시어머니는 이런 막내 며느리가 안쓰러워 연민의 정을 쏟았다고 합니다.
박정희는 중국에서 해방을 맞은 후 해방 이듬해 고향집으로 갔기 때문에 김호남과 4개월 가까이 한 지붕 아래서 살 수 있었지만 틈만 나면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밖으로 나돌았습니다.
그러다 1946년 9월 조선경비대사관학교 입학을 앞두고 서울로 올라갔고 다시 홀로 남은 김호남은 딸 박재옥이 11살이던 1948년 딸을 데리고 시댁을 나와 대구에서 다른 남자와 살림을 차렸습니다.
그러나 박재옥은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선산의 외갓집을 거쳐 사촌오빠 박재석 집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비로소 박재옥은 안정을 찾고 국민학교 5학년부터 학교를 제대로 다녔다고 합니다.
박재옥이 아버지의 재혼 소식을 들은 것은 1952년 박근혜가 태어난 직후였는데 박재옥은 21살이던 1958년 10월 박정희의 전속부관 한병기 대위와 결혼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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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окт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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