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0만원 → 재계 2위 → 부도... 파란만장 대우그룹 - 김우중이 가장 아깐 상품? '시간'이었다 - 회사를 뒤집어 놨던 인턴시절 김우중 회장 잡지사 방송 | 매주 월~금 오후 7시30분~8시 CBS 라디오 표준FM 98.1MHz ※1/16 월요일 방송분 #잡다한지식사전 #대우그룹 #썬킴
저희 아버지가 대우 중공업 출신이라 잘 들었습니다 당시 김우중 회장이 국가 대반역 죄인 이었는데 김우중 회장이 수의복 입은 모습 TV 로 보면서 나즈막히 '아,, 회장님..' 아렇게 말씀 하셨는데, 그 의미는 아직도 미스테리 입니다 당시 한국은 폭발적인 인구 성장세를 감당할 기업의 성장률도 중요했가애 그 당시 대우 중공업은 혼자의 기업을 넘어 나라의 운명을 쥔 맥시멈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공격적인 비즈니스를 했던 상황 이었습니다 지금에야 경제 흐름으로 깨닫게 되었지만 2008년 서브프라임의 모럴 헤저드 이전의 1990년대 초중반 아시아 사업가들의 모럴 헤저드는 관례적으로 곪아 있던 상태에서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에서 연달아 디폴트가 터지며 한국에서도 투자 위축에 이로인한 급격하고 급박한 달러 회수 압박에 불경기까지 터지니 터지지 말아야 할 뇌관이 대우에 핵폭탄으로 터진 꼴이더라구요 현재 중국의 헝다와 컨트리 가든같은 좀비기업을 국가가 뒤봐주고 있는데, 이것은 한국 대우 종말로 인한 대한민국 부도사태를 가까이서 보아온 반면교사가 있기 때문에 국가가 최대한 신경을 써주는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당시에 대우는 귝가가 버텨줄 상황을 넘어서는 채무였기에 팩트에서 빼박인 상황으로 터졌다 봅니다, 막상 사회생활 해 보니 지금도 절세와 조세회피을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는 분식회계는 업종병 관럐나까요.. 당시 뉴스를 보며 저의 눈에 띈 것은 김우중 회장이 그헣게 난타를 당하는데도 TV 에서는 김우중 뒤를 보좌하는 직원들이 많았던 겁니다.. 회사가 망하기 일보직전까지 직원들과 기업 대표간에 의리는 끝까지 보이더군요.. ( 뭐, 월급을 주니까 그렇겠지만은 ) 당시 대우 중공업 기술자들 중에서도 조장인 최고급 기술자 셨기에 김우중 회장과 업무보고 회의를 하셔서 당시 회사의 경제적, 정치적 큼지막한 상황들과 앞으로 다가올 문제들을 IMF 터지기 전부터 너무 잘 알고 계셨다고 해요.. 아버님은 대우가 한국기계를 인수하기 이전부터 직원 이셨고 IMF 시절에도 관리 총괄 책임 엔지니어셔서 대우 구조조정 칼날 살아 남으시고 두산이 대우 인수 할 때 두산 소속으로도 약 8~9년 더 일하시다가 한 직장 40년 정년 퇴직 하셨어요 당시에도 대단하시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한 직장 40년은 요즘 시대에도 1만명에 1명 나올까 말까 싶은 상황 아닐까 싶네요, 그것도 IMF 폭풍의 해긴 대우에서 살아남으면서 40년 근속이라.. 저희 아버지 관련 무용다믄 영화 국제시장의 스토리가 80% 일치합니다, 한국전쟁때 피난길 앞 뒤 폭탄 터지며 2살 아기로 희생자 거치며 업혀 내려오셔서 기술자로 폭일가서 일하시고 간호사도 사귀어 보셨거든요.. 정말이지 대우 얘기 나올 때 마다 아버지 안 떠오를 수가 없어요, 아버지 너무 존경합니다..
훌륭한 아버님을 많이 자랑하셔도 됩니다. 그것을 제대로 기억해주고 회상해주는 아드님도 물론 훌륭하시구요. 무척 긴 얘기지만 읽는 동안 계속 아버님께서 아드님의 이 글을(비록 댓글이지만) 꼭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싶었는데, 시간적으로 이미 작고하셨을 수도 있겠다싶어 많이 조심스럽습니다. 아무튼 귀하의 김우중 회장에 대한 존경과 아버님에 대한 사랑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사람도 있슴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계속 건승과 건행을!!!
공항은 대우, 수로는 동아가 맞아요. ㅡ선킴샘의 이야기는 늘 즐겁게 듣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ㅡ 당시 저희 아버지가 동아건설 재직할 때 출장 리비아 왔다갔다 히셨어요. 오일 추출 하려다 리비아에서 물이 터지면서 리비아 현지에서는 오일보다 비싼 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카다피가 이를 이용해서 녹색혁명을 하게 되고 장기집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어릴 적에 들은 게 생각납니다. 수로 건설 기술적인 것도 듣고 그랬는데 되게 신기했었어요.
썬킴 이분!!! 듣고보는 사람을 매료시키는군요. 채널A ' 이만갑'에서는 조금쯤 자만에 넘친 달변가 정도로만 판단했었는데, 편집없이 자신어 소신대로 이어지는 이런 영상에서는 갖고있는 지식과 재미있게 스토리를 텔링해주는 특이점을 발견할 수가 있군요. 팬이 될 것 같습니다. 오늘 그리고 관련영삼 2개정도 잘 봤습니다. 관심갖고 ZAPZISA 이강민 MC님과 함께 계속 지켜볼께요.
대우는 분식회계로 회사 빚이 너무 많았고 김대중 정부 시절 구조조정 지시도 이행하지 않아 김우중씨가 해외 출장중에 파산시킨 겁니다. 분식회계가 얼마나 심했으면 당시 탱크주의 광고로 유명하던 대우전자를 삼성에서 인수 거부할 정도 였습니다. 또 구조조정도 수차례 시간을 끌다 파산하는 바람에 GM에 대우차가 헐값에 넘어갔습니다.
지금은 오래돼서 거의 대부분 퇴역했겠지만, 90년도 초반? 탱크주의 제품들은 내구성이 말그대로 탱크다. 고장이 잘 안난다고 소문날 정도. 결론적으로 이게 패착이긴하지만... 그래서 예전 공작기계들 보면 대우 제품이 유명하다. 우리나라도 나름 유명했지만 외국이 더 좋아라했다. 아마 30년된 기계 아직도 정밀도 유지하면서 돌아가는 기계 있을거다.
여기 나오는 내용은 상당부분이 부정확한 내용이기에 가려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대우의 과도한 재무차입 모델은 우리가 비난하는 현재의 문어발 차입하는 중국 기업의 모습입니다. 연구개발등한시하고 핵심역량없이 정부에 기대서, 외국에서 저렴한 노동력으로 대량생산해서 기업을 운영하는 모델은 지속 가능성 없습니다
대우가 망한 건 좀 아쉬운 면이 있었습니다. IMF 시절에 이종사촌 형이 대우 연구소에 있었는데, 우연히 만나서 대우는 얼마나 자금을 마련해 놨냐고 물어봤더니, 현금으로 2조 넘게 준비해 놨다고 했었죠. (참고로 당시 우리나라 5대그룹은 각자의 연구소를 갖고 있어서 IMF 올 걸 반 년도 더 전에 예상하고 준비해 놨었죠. 심지어 이 연구소들이 정부 연구소보다 수준이 더 높던 시절....) 근데 몇 일 뒤에 김우중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됐죠. 이전의 국제그룹이나 무슨 은행이더라... 거기랑 같은 경우.... 분명 정부 안에 있떤 부패한 놈들이 뜯어먹을 제물로 골랐던 것일 듯합니다.
지금 김우중을 미화 하는 사람도 많은데 물론 나름 산업 발전의 일익을 차지한 공은 있지만 그 당시의 대우 직원과 협력업체 직원의 피눈물을 희생양을로 성공한걸 잊어서는 않된다. 월급대신 , 납품한 자재 대금으로 대우 물건 받아 팔아서 생활한건 지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 대우 자체도 박정희의 힘으로 은행에서 저리의 이자로 대출 혜택을 받아서 성장 했고 대우가 망했을때도 엄청난 비자금 빼돌리기도 했지.
김우중회장을 재조명해야한다 만약 대우차가 지금도 존재한다면 현대차의 독점은 없을것이다 공과사가 있겠지만 김우중 회장님을 욕하지말고 세계경영를 뒤돌아보자 어쩌면 세계경영를 한국에서 최초로 부르짖은 사람이다 김우중회장을 김대중이 조금만알았다면 과연? 암튼 김우중 회장은 한국경제에 큰 역사에 남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