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에 모친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의 요청으로 라구요를 기타반주로 부르셨지요. 장례식에 무슨 노래를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우리 전통은 호상이면 잔치분위기이고 가사가 부모님의 자전적스토리고 자식의 직업이 가수라 가장 적합한 세레모니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모친의 인생으로부터 흘러나온 노랫가락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강산에도 최고. 뒤에 최만선 기타리스트도 최고. 저 기타리스트가 대단한건 절대 튀어보이지않고 묵묵히 보컬목소리를 보조해줌. 정말 대단함.. 저정도 실력이면 더 튀어나오고싶어하고 더 화려한 라인들을 보여주고싶을텐데, 그러지않고 정말 완벽하게 밸런스있게 노래를 꾸며주네.. 대단한 실력이다.
수많은 가수들의 북한공연이 있었지만, 딩시에는 화제거리가 되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잊혀졌다. 2024년 2월에 다시 이 영상을 찾아본다. 왜일까???? 갑자기 문득 강산에의 영상이 보고싶은것일까???? 그 이유는 감성이다. 목청 자랑하지 않고, 잘난척 하지 않았다. 강산에의 공연은 뭔가 북한 사람들과 동질감을 주는게 있다. 아마도 강산에의 평양공연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 가슴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내 사랑하는 아빠가 참 좋아한 라구요- 자연스레 어렸던 아기부터 따라부르곤 했어요. 중고딩 때 노래방 가면 불러서 친구들이 이 노래 뭐냐곤 했었는데ㅎㅎㅎ저에겐 이 노래를 부르는 저희 아버지의 쓸쓸함이 더 깊어지는 듯 덜어지는 것 같아서 더 가슴에 남는 곡이예요.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이 곡을 듣는 게 너무 힘들어서 멀리했는데 오늘은 아기를 재워두고 옆방에서 듣는데 왜 이리 보고싶은지 모르겠어요. 3일에 한번은 문득문득 제 마음에 찾아와 다독여주시는 우리 할머니가 오늘 밤에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실 우리 아빠 꿈에 나와 두분이서 많은 이야기 나누시면 좋겠어요. 할머니 너무 보고싶어요. 제 인생에 한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배우고 싶으셨다던 한글 꼭 가르쳐드리고 싶었는데 철없는 손녀는 그 마음도 헤아리지 못하고 바쁘단 핑계로 연락도 자주 못했어요. 세상에 정말 소중한 것을 잃고야 매일 후회해요. 강산에님 감사드립니다, 우리 아빠께 위로를 주셔서.
저는 30대 중반인데요, 강산에 음악을 최근에서야 집중에서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술가의 역할은 이래야하는구나 다시한번 느꼈습니다. 감사합니다. 잠시 삶이 버거워서 어떻게 일어날까 용기가 안 들었는데. 그냥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네요. 부모님의 자전적 스토리, 아들로서의 바램. 그래서 더 감동이 깊은 것 같습니다. 저도 제게 주어진 역할에서 최선을 다할게요. 감사합니다.
강산에씨가 그런 역사적 사명을 띠고 경희대 한의대 포기하고 가수가 되었다고 직접 말하던가요? ㅋㅋ 그냥 한의사 하는것보다 노래가 좋아서 가수를 하는겁니다 대다수 국민들처럼 현장경험없이 적폐청산이니 정의니 선동만 내세우면서 이분법으로 5년동안 아마추어 운동권들이 온 나라를 분열만 시켜놨죠 촛불든 대다수 국민들 이럴줄 알았으면 절대 그짓 안했을껍니다 저도 후회를 하고있구요
전 나이 50, 친가와 외가 모두 6.25때 피난하신 분들입니다. 황해도 사람들이구요. 어머님은 36년생.. 초등학교때 평양 모란봉으로 소풍 다녀오신 기억이 아직도 있다고 하십니다... 고향에 큰 오빠가 인민군으로 징집되고 다시는 못 보셨고.. 아버님은 돌아가셨네요.. 어머님 살아 생전에 고향을 다시 볼 날이 있으실지... 저도 친가 외가가 모두 북쪽이라 사실 고향의 큰 의미가 없이 살아왔네요.. 친가 외가가 피난와서 터잡은 곳이 그저 인천과 서울일 뿐이고요... 노래를 들으면서 그냥 살짜기 눈물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