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좋은 영상 너무 감사드립니다. 상언과 격쟁을 통해 민원을 직접 듣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 그게 국왕이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비결이었네요.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귀찮다고 안 하고 말 일이죠. 정조대왕은 참으로 멋진 왕이었네요. 영화 "사도" 보고 바로 다음날 융건릉을 찾았었는데, 그때 생각도 나네요.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건강 잘 챙기시구요.^^
근대 왕조 조선의 그 피눈물 나는 세월의 정점은 사도세자 참.. 얼마나 아들 정조가 어릴때는 속으로 울고 커서는 맘놓고 울고 아... 저도 어릴때는 냉정했는데 늙으니 사도세자 이야기만 들으면 눈물이 납니다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오뉴월 삼복더위에 쌩으로 죽이는 그 광경을 목도하는 것은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을 것 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 시절의 기억이 가장 명확히 남으니까요 그러니 정조는 아버지에 대한 회한이 골수에 파묻혔을 것이라 생각 됩니다. 삶이란 살아 갈수록 그 한이 더 피부를 뚫고 올라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습니다 해설과 조근조근 낭낭한 나레이션 감미롭습니다
장조가 뒤주에 갇힌 날이 8일인데 정조의 행차가 8일간 진행됩니다. 행차의 가장 큰 목적은 왕권의 강화와 민생안정, 부친에 대한 추모입니다. 1795 을묘년은 장조 부부의 회갑연이기도 합니다. 국법을 어기고 여동생 청연, 청선공주, 청근옹주 까지 행차에 동원합니다. 정조는 1804 갑자년 세자에게 선위하고 수도를 화성으로 천도할 생각이 있었는데 1800년 갑자기 죽습니다. 남인들은 패닉 상태에 빠져 노론의 심환지와 정순왕후가 독살한 것이란 소문을 믿었는데 한의사들에 의하면 등창으로 인한 패혈증과 뇌졸중이라고 합니다. 술과 담배를 너무 즐긴 것도 48세 사망을 부채질합니다. 당시엔 담배의 해악을 모르던 시대입니다.
정조가 영조에게 부탁하여 승정원일기에서 부친의 악행 기록을 삭제합니다. 이것도 역사적 죄인 아닌가요? 정조의 반대파들이 계속 흠집을 내니 정조의 아킬레스건이라고 이해는 합니다. 부녀자 강간 보단 기생, 여승을 궁 내부에 숨겨두고 만난 것은 공식적입니다. 영조가 이 여자들을 죽이죠. 혜경궁이 노론이라서 정상인 남편을 정신병자로 기록하였다고 뇌피셜 소설을 쓰는 분도 있고 이를 진실이라 믿는 추종세력도 있습니다.
사도세자가 미쳐돌아서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고 온갖 기행을 다하고 다녔을지언정 아들인 정조에게만큼은 좋은 아버지였던건 맞는것 같아요 본인은 잘못된 아버지 영조의 부성으로 인해 살아생전 끈임없이 정신적 고통을 받았지만 아들 정조한테만큼은 칼을 휘두르거나 폭행한 기록이 남지 않을걸 봐서도 그렇고 영조가 기어코 죄인의 자식이란 굴레를 씌우지 않기 위해 정조를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위에 오르자마자 사도세자의 아들이라 천명한것만 봐도 부자지간 사이가 나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오히려 어머니 혜경궁을 대비못지 않게 대우하면서도 끈임없이 아버지 사도세자를 상기시키고 또 시킨걸 보면 지극히 효자였으나 마음 한켠엔 원망을 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