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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How to memorize music score the fastest 악보 가장 빨리 외우는 법 

Dr. Jung French 6천년의 음악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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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강. 많은 음악 전공자분들과 음악을 배우는 학생들이 잘못된 방법으로 악보를 외워, 연주때 잊어버리는 경험을 하거나 스테이지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많은 학생들을 유럽과 미국 Top Music Schools 을 장학금으로 보내면서 사용, 또 가장 큰 효과를 얻은 옳바른 방법을 여러분과 쉐어합니다.
#오디션준비 #클래식음악 #음악역사 #클래식음악가 #콩쿠르준비 #리허설 #임윤찬
Dr. Jung French's Majors 전공 :
I. Performance (B.M, California State Univ. Northridge) 연주
II. Pedagogy (M.M, California State Univ. Northridge) 페다고지 (Art of Teaching)
III. Historical Performance Practice (Doctor of Musical Arts, Claremont Univ.) : 각 시대에 맞는 연주, 음악 분석
Studied with :
Dr. Jeanine Jacobson (CSUN), Dr. Chrles Fierro CSUN), Dr. Daniel Pollack (USC), Dr. Nancy van Deusen (CGU), Dr. Hao Huang (CGU, Chair in Music at Scripps College)
Selected as a Top Teacher in 2021 by Steinway & Son, U.S.A.
음악 역사, 이론, 연주, 교육, 테라피, 패다고지 연구
2500년의 음악역사 강의 (유튜브: Dr. Dotori TV)
Laguna Beach Private Studio
Acorn Tree, LLC (AcornTree.com) / CEO

Опубликовано:

 

17 окт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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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мментарии : 109   
@Zoe-xb1zj
@Zoe-xb1zj Год назад
우와~~~ 어릴때 박사님강의를 들었어야했는데...ㅜㅜ 지금에라도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하네요~^^ 재밌고 쉽게 설명해주셔서 머리에 쏙쏙 들어오네요.. 건강조심하시고 다음 강의도 기대하겠습니다~~^^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항상 빠짐없이 강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
@TV-ez2ke
@TV-ez2ke Год назад
ㅎㅎㅎ 매력적 이시다 ^^ 말씀도 억양도 너무 아름다우세요 공부가 잘되는데요 안그래도 가사가 안외워져서 너무 힘들고 있는중 인데요 좋은 효과 있을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노래나 어떤 악기에도 적용이 되죠. 행복한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
@nykidarissam
@nykidarissam Год назад
이런 내용은 영상을 보기전에는 자신을 자책하던 모습이였는데, 선생님의 강의를 통해서 새로운 지식과 방법을 터득하게 되네요. '멍청이 연습' ' 고스톱비유' 최고네요 왼손을 깜빡한다는 사실도 선생님의 강의 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 가족과 지인에게 꼭 공유 하겠습니다. 대단히 감사드리면서 고생하셨습니다. 환절기도건강 조심하세요 👍👍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사업, 뉴스 전달, 가족 돌보시랴 바쁘실텐데 응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뉴욕은 추울텐데 항상 건강하세요 🙏
@user-hy2bw7op7s
@user-hy2bw7op7s Год назад
훌륭하십니다. 이런것이 재능기부이네요~고맙습니다.~^&^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응원에 감사드리며 좋은 방송이 되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
@yjljami7850
@yjljami7850 Год назад
풍성하신 감성과 율동적인 모멘트로 적절한 예를들어 설명을 쉽게 해주시니 한마디 한마디가 귀에 쏙~쏙! 녹아 들어오것 처럼 마치 옛날 동화를 듣듯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하하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깊이 감사드리며 좋은 강의가 되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user-sg8oh1mu8d
@user-sg8oh1mu8d Год назад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늘강의너무좋아요.저는 멍청이 연습을 많이하고싶네요. 예전에 학생들에게 멜로디는 노래하면서 나머지 한손만 치는 연습으로하라고했는데 효과가엄청좋았던 생각이나네요. 감사합니다. 한국은 지금 날씨는쾌청한데 너무추워졌네요. 박사님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세요.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하하하 멍청이 연습이 최고 스마트 연습이랍니다. 한국의 10월, 단풍과 은행잎이 물들은 아름다운 계절, 그립습니다. 감기, 코로나 모두 조심하시고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pinetree6783
@pinetree6783 Год назад
선생님 정말 훌륭하세요. 음악만이 아닌 인문학과 삶의 지식과 선한 통찰력도 감동입니다.유머도요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하하하 매우 감사합니다. 환절기 감시 조심하시고 늘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
@donnajang649
@donnajang649 Год назад
안녕하세요 선생님, 세심하게 쉽게 알려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깊이 감사드리며 행복한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user-jt3fr3kj4p
@user-jt3fr3kj4p Год назад
설명하실때 너무 귀여우십니다~~^^ 배웁니다 선생님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하하하 깊이 감사드리며 행복한 11 월 되시길 바랍니다.
@user-zx1vt2xr2r
@user-zx1vt2xr2r Год назад
고맙습니다...고맙습니다...사랑합니다 ^^...♡♡♡♡♡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깊이 감사드립니다. 🙏🎼🎶
@user-qd6pd5od9e
@user-qd6pd5od9e Год назад
오늘 강의는 피아니스트에게 유용하겠어요.하지만 저 같이 악기 연주 못하는 사람에게도 유용합니다. 항상 악보를 외워서 치늣 연주가들에게 경의를 보내고 있습니다.~~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남을 격려하는 긍정적 마음에 깊이 경의를 표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kipperhan9926
@kipperhan9926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최고에요 교수님
@Dr.JungFrench
@Dr.JungFrench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매우 감사드립니다. 축복 많이 많이 받으시고 원하시는 일들이 이루어지길 기원합니다.
@forever-with-the-piano
@forever-with-the-piano Год назад
그림공부 숨은그림찾기 멍청이연습 고스트연습 한번도 들어보지못한 연습법이네요 저는 무조건 외우려하고 머슬암기에 의존하고있었지요 지난번 제 질문에 답이되는 강의 너무 감사합니다 요즘 비창 2악장 연습중이에요 박사님 암기법에 따라서 암기해보께요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중요한 질문, 매우 감사합니다 🙏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시고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whitejoung1506
@whitejoung1506 Год назад
넘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White 님의 발전을 빌며, 항상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mcpbum
@mcpbum 9 месяцев назад
모든 음악연주에 통용되는 내용이네요. 이런 전문적인 강의를 올려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저장해놓고 두고두고 보겠습니다
@Dr.JungFrench
@Dr.JungFrench 9 месяцев назад
맞습니다. 어느 악기에도 적용이 된답니다. 감사드리며 행복한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Andrew-wk9tr
@Andrew-wk9tr Год назад
Thank you for another great lecture Dr Dotori!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Thank you so much for watching, supporting and encouraging!
@sun9kang
@sun9kang Год назад
이런 좋은 명 강의릏 저희들만 알고 싶네요. ㅎㅎㅎ 배워서 남 주시는 교수님 감사합니다.^^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깊이 감사드리며 성탄의 달, 축복 많이 받으시고 더욱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user-jd1gv3yw5u
@user-jd1gv3yw5u Год назад
정말 너무나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쉽고 품격있는 강의 정말 감사합니다~^^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격려에 힘입어 재미난 음악역사 전달에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
@SJH.Music.School
@SJH.Music.School Год назад
너무 귀한 강의 잘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갚이 감사드리며 행복한 11월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
@user-ox8gn4tu2r
@user-ox8gn4tu2r 12 дней назад
말씀하시는 모습 너무 중독적입니다 챠밍❤
@Dr.JungFrench
@Dr.JungFrench 12 дней назад
하하 긍정적 에너지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을 기원합니다. 🙏🎶
@Lemon_yum_yum
@Lemon_yum_yum Год назад
귀한 영상 감사해요. 선생님 전공은 바이올린이지만 항상 영상 보면서 연주에 좋은 방법들을 연구하고 있어요 좋은 채널 만들어주셔서, 도움되는 영상들 많이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긍정적이며 마음이 이쁘신 Violinist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
@heejinoh2625
@heejinoh2625 Год назад
우와! 대박입니다! 어떻게 이런방법을 생각하셨는지 대단하십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오랜 티칭끝에 나온 노하우입니다. ㅎㅎㅎ 오디션을 앞두고 곡을 잘 못 외우는 학생들에게 매우 효과적이였습니다. 행복한 시간 되세요. ;-)
@ggracelee
@ggracelee Год назад
대단한 영상이네요! 구독합니다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감사드립니다. 미국 박사과정 강의도 초보자들까지 이해하게 올려놨습니다. 스튜디오의 발전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user-kh5wc9bl1h
@user-kh5wc9bl1h Год назад
홍시의 유래 / 가을이면 가을색을 가장 정감있게 표현하는 것으로 서릿발을 맞으면서도 은은하고 농염한 향내를 풍기는 노오란 국화꽃이 일품이지만 이러한 국화의 절개못지 않게 가을의 짙은 맛을 전하는 것으로는 홍시가 있다. 홍시란 감이 익을대로 익어서 물렁감이 되었을때를 말한다. 가을의 쇄락한 기운을 전하는 것으로는 국화와 홍시가 대표적일 게다. 그리고 이 둘은 한국인이라면 남녀노소를 가르지 않고 거부감없이 즐거워하고 좋아한다. 나도 물론 그렇다. 단감은 과육이 딱딱한 그대로 나무에서 익는게 홍시와는 다르다. 그래서인지 같은 감이지만 홍시와는 여러모로 다르다. 옛날에는 나무에서 딴 감을 항아리속 쌀겨에 묻어두고 여러날을 놓아두면 스스로 숙성이되어 땡감이 단감이 되었다. 이를두고 감을 우린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한반도에 일본인이 살면서 품종개량된 단감나무 묘목을 일본에서 들여와 심었다. 이것이 단감의 시초가 된다. 우리 어렸을 때는 웅천시내에 있는 금융조합 뒷뜰에 단 한그루의 단감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이걸 아이들이 익기를 기다리지 않고 높은 담을 넘어 뒷뜰로 몰래 다가가 생단감을 털었다. 그러다보면 덜컹 유리창이 열리며, 야ㅡ임마! 소사아저씨가 머리를 내밀고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이 소리와 함께 아이들은 연어가 폭포수를 뛰어넘어 상류로 오르듯 혼신의 힘을 다하야 그 높은 담을 훌쩍훌쩍 넘어 골목길로 재빨리 사라졌다. 시골아이들이 참외서리를 하듯 시내아이들은 단감서리를 했다. 그러나 형제가 단감서리를 와서 인기척을 느끼고 튀었으나 형은 무사히 월담하야 느긋히 단감맛을 보지만 다리가 짧은 동생은 둠벙에서 개구리 뛰듯 혼신의 힘을 다하야 담밑에서 팔짝거렸으나 소용이 없었다. 도둑질이란 들어올때와 나갈때가 사정이 다른 법이다. 그제서야 울상이 된 동생이 담밑에서 징징거려보지만 득달같이 현장을 덮친 소사아저씨의 굵은 손마디에 목줄기를 잡히고 사무실로 질질 끌려갔다. 앗!ㅡ사색이 된 형이 우거지상을 쓰며 담너머에서 끌려가는 동생을 보고 발을 동동 구르나 이미 손을 쓸 수 없은즉 어찌 하겠는가! 사무실에서 얻어터지는지 동생의 울음소리가 처연하였다. 소사아저씨는 웅천금융조합의 상징인 멋장이 단감나무를 이른 봄부터 전지도 해주고 퇴비도 주면서 알뜰하게 챙겼으나 사단이 이에 이른즉 가지가 부러지고 어린 열매가 땅바닥에 어지럽게 떨어져 있은즉 복장이 터질 노릇이었다. 내~이놈들을 용서치 않으리라!ㅡ독, 독, 독..이를 갈다 마츰내 한 녀석이라도 단감도둑을 잡으면 다짜고짜로 따귀부터 올려 부쳤다. 동생도 울고 형도 담너머에서 훌쩍이고 있었으니 한 가족의 비애였다. 당시의 금융조합은 현재 농협으로 탈바꿈되어 옛 흔적을 찾을길이 없으나 그래도 단감나무는 그 자리에서 세월을 지키리라ㅡ 단감은 경남 진영단감이 유명하다. 씹을 때 과육이 사각거리면서 신선한 단내가 일시에 입안으로 배어드는 맛은 가히 영혼의 맛이다. 이런 시원한 맛이 다른 지역 단감에는 분명히 부족하다. 이와달리 홍시는 대봉이 유명한데 이것 역시 거제도 지역과 동해안 삼척의 대봉이 가장 맛이 좋다. 삼척시와 동해시는 뒤로 천미터가 넘는 태백산맥이 가로막혀 대륙의 삭풍을 막아주고 있으므로 동해바다의 수온탓인지 이곳은 기후가 온난하여 사람살기가 좋다. 대신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태백산 너머 내륙인 평창과 정선은 겨울이면 혹독한 추위로 고생을 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눈을 씻고 보아도 감나무가 없다ㅡ아니 다른 과실나무도 본 기억이 없으니 당연히 과수원이 있을 턱이 없다. 홍천도 그러한데, 이곳은 과거 대홍수가 나서 홍천군 일대를 내가 측량했으니 아주 잘 안다. 삼척과 동해시도 과거에 태풍으로 동해선이 대량 유실되어 팀원을 이끌고 철도측량을 했으니 이 지역에 이골이 났다. 산골에는 폐교가 된 초등학교가 제법 많은데 이런 현상은 앞으로가 더욱 심할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기 때문이다. 삼척에는 봉화만큼은 아니나 제법 수세(樹勢)가 뛰어난 금강송이 자라 풍치가 좋다. 소나무껍질이 붉고 영양상태가 좋아 살집이 튼실한 소나무가 그 유명한 금강송이다. 옛적에는 금강송목재로 남대문도 이었고 경복궁과 창경궁도 지었다. 쳐다볼수록 소나무의 자태가 빼어나 궁궐과 반가의 안방에 놓였던 병풍속에 빠짐없이 등장하는게 바로 붉은 껍질을 가진 금강송이다. 거제도에는 해상파일을 박으러 간 것인데 옛일이 소록소록 선명하여 어제 일 같다. 항시 일을 끝내고 인근시장에 들러 거제도의 명물인 대봉홍시를 사가지고 숙소로 돌아와 달콤한 홍시로 하루 피로를 말끔히 씻었다. 감미로운 홍시의 맛!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거제도의 맛이었다. 옛날 강안도에 관찰사나 고을 원이 부임하면 관아에서는 신임 지방관이나 지역의 삿또를 맞을 영접준비로 분주하고 이방은 수청을 들 기생명단을 점고하여 수장을 모심에 빈틈이 없도록 만전을 기한다. 이 맛에 너도나도 벼슬을 하려고 게거품을 물면서 가산을 탕진하여 미관말직이라도 얻고자 혼신의 힘을 쏟는게 아닌가! 이승만 대통령이 집권한 자유당시절 어린 나는 어머니와 함께 외삼촌이 보낸 검은색 관용차를 타고 청양읍 관사에 들렀다. 외삼촌이 청양군수였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읍내사람들이 우리에게도 공손하였다. 나도 덩달아 우쭐하였다. 특히 조선과 같은 유교사회는 돈보다는 관직을 으뜸으로 쳐 주었다. 벼슬아치는 존귀하고 각성받이 백성은 천하였다. 이것을 관존민비(官尊民卑)라 하였다. 현실적으로도 벼슬길에 올라야 가문영달이 가능했으니 말이다. 그리하야 명예직인 고을의 진사나 좌수가되는 향시라도 열리게되면 허연수염을 날리며 노인들이 시험관 도포자락을 부여잡고 향시에 입격하기를 소원하면서 눈물을 뿌렸다. 곧이어 여기저기에서 울음소리가 처연하게 들리며 시험장은 때 아닌 곡소리로 상갓집이 되었다. 이것을 걸과(乞科)라 하였다. 율곡 이이선생은 향시가 아닌 과거시험에 한번도 지난하거늘 내리 아홉번이나 합격하였으니 천재임은 분명하였다. 우리집안도 추사어른이 과거에 들었고 구한말에는 김광제 증조부께서 무과에 들어 정3품 벼슬에 올랐다. 국권을 일본에게 빼앗기자 관복을 벗고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을 일으켜 민족의 기상을 고취하셨고 만주로 가셔서 독립운동을 하셨다. 훗날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으셨다. 조선의 천재 추사어른이 정3품 병조참판에 그친것은 십여년의 유배생활과 어른의 강직한 성품 그리고 재능을 시기하여 음해한 무리가 추사어른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재목으로든 인품으로든 당연히 영의정도 넘치지 않았으나 관운이 이에 머물렀으니 오직 아쉬울 뿐이다. 본시 강릉, 동해, 삼척은 옛부터 맛있는 홍시로 이름이 났었다. 하여 지방관이나 사또로 부임하기 전 부터 익히 들었기에 이들은 대접에 가득 올라온 홍시에 넌지시 눈길을 주었다. 이런 점을 아전들이 진즉에 알았기로 숙주깐에서 음식준비를 하는 나인을 불러 이르기를..좋은 홍시를 엄선하야 상에 올릴것을 누누히 일렀다. 허ㅡ이 일을 어쩐다? 감나무에서 홍시를 정성껏 따와 대접에 올리려고 하나 감빛깔이 여전히 곱지가 않다. 이것은 속에서 당분이 올라와 희게 된 것이어서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것을 상에 그대로 올리자니 불호령이 떨어질것은 불보듯 뻔했다. 그리하야 궁리끝에 탄생한 비법이 연한 홍시살을 부드럽게 정성껏 혀로 핥아서 광택을 내는 것이었다. 보기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은 것이렸다. 이것을 알게된 기생들은 홍시옆으로도 가려하지 않았지만 외지에서 온 벼슬아치가 이런 사정을 알 턱이 없은즉 반들거리는 홍시를 한 입에 베어물고 매우 흡족해하는 것이었다. 옛부터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고 하였다. 세상사ㅡ모르면 만사가 편안하고 일 앞에서도 용감해질 수가 있었다.
@user-pz3en7ul9i
@user-pz3en7ul9i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샘~~강의 넘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 넘 아름다우시네요!!^^
@Dr.JungFrench
@Dr.JungFrench 8 месяцев назад
강의 참석에 매우 감사드리며 축복이 가득한 11 월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jaeseokjung4386
@jaeseokjung4386 Год назад
너무 열정적으로 잘 설명해 주시네요. 전 기타 치는 사람이지만 악보가 잘 외워지지 않는 고민을 가지고 있었는데, 제시해 주신 방법으로 한번 시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건투를 빌어 주세요~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감사합니다. 스텝만 따르시면 반드시 잘 외우실겁니다.
@user-lw9el7cb6g
@user-lw9el7cb6g 5 месяцев назад
멋진 강의 감사합니다.
@Dr.JungFrench
@Dr.JungFrench 5 месяцев назад
감사합니다. 더욱 유익하고 품격있는 강의가 되도록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user-kh5wc9bl1h
@user-kh5wc9bl1h Год назад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봄을 맞는 남도에서도 북쪽에 월출산, 남쪽에 구강포와 바다, 점점이 떠있는 늘푸른 섬들과 갯벌 그리고도 산과 하천, 평야를 고루 담은 강진 땅의 풍광은 손꼽힐 만큼 두루 화창하다. 1930년대에 활동한 김영랑(金永郎 1903. 1. 16~1950. 9. 29)이 대표작 을 발표한 시정(詩情)은 이곳에서 익어갔다. 강진읍 남성리에 영랑의 생가가 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뼏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는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찬란한 슬픔의 봄을!..이 얼마나 섬뜩하도록 아름다운 싯귀인가! 한때는 화려했으므로 갈채를 받았지만 꽃이 질때는 누구도 쳐다보지 않는다. 우리네 인생사가 이렇지 않던가! 다산초당을 푸근하게 품어주는 넉넉한 산자락이 만덕산(408m)이다. 이 산기슭에 있는 절이 만덕사(萬德寺)이다. 만덕사는 백련사(白蓮寺)라고도 한다. 통일신라시대 말기인 839년(문성왕 1) 태종 무열왕 8대손 무염(無染)국사가 창건하였다. 신라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산(680m)에 있는 성주산문(聖住山門)의 개산조이다. 사찰의 이름은 만덕산 백련사라고 불렀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만덕사로 불렀다. 하지만 근래에 다시 이름을 고쳐 백련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면 절을 창건한 무염국사는 어떤 인물인가? 신라를 중흥한 무열왕 8대손으로 어릴 때 불법을 찾아 당나라로 건너가 성불하여 동방대보살(東方大菩薩)로 불리웠다. 귀국하여 구산선문의 하나인 충남 보령군 성주면에 있는 성주사(聖住寺)를 창건하였다. 백련사는 숭유억불책을 국시로 삼았던 조선시대에 승려들이 천시되면서 쇠퇴하였고 절이 위치한 남해안 일대는 고려청자와 곡창지대이어서 약탈을 하기위하여 자주 출몰하는 왜구로 사찰이 겨우 명맥만 유지하다 폐사직전 효령대군의 도움으로 1430년부터 대대적으로 불사작업이 시작되었다. 효령대군은 왕위를 동생 세종(世宗)에게 양보하고 전국을 유람하면서 강진땅 백련사에 들어와 이곳에서 8년 동안 기거하였다. 절 앞에는 비자나무와 후박나무, 그리고 푸조나무와 함께 동백나무숲(천연기념물 151)이 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이곳으로 유배되기 이전, 한양에서 전도유망한 관료로 개혁군주 정조의 사랑을 받으며 잘 나갔던 정약용이 서학(西學..天主學, Catholic)에 연루된 혐의로 천리길 땅끝, 전남 강진으로 떨어져 좌절과 실의에 빠지면서 심신이 몹씨도 고단할때, 당시 백련사에는 아암 혜장(兒庵 惠藏 1772~1811)이라는 젊은 스님이 있었다. 다산보다 10년 연하로 신분은 천대받는 중이었으나 대화를 하다보니 당대 최고의 지식인 다산과 이야기가 통했다. 아암 혜장은 그만큼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였다. 아이처럼 단순하고 성질이 급한 10년 연하의 혜장을, 다산이 어린 아이 아(兒)자를 써서 아암(兒庵)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당시에 어울리기가 어려웠던 유학자와 승려의 만남이었다. 다산초당과 백련사는 걸어서 40여분거리였기 때문에 다산이 때때로 백련사를 방문하여 혜장과 더불어 성리학과 불법에 관하여 격의없는 토론을 나눴다. 다산은 주역에 관한 논의를 하면서 혜장에게 탁월한 비유를 들면서 깨우침을 주었는데 혜장은 비로소 막힌 혈이 뚫렸다며 큰 스승 다산에게 한없는 경의를 표했다. 그도 그럴것이 조선의 천재로 이름을 날린 다산이 아니었던가ㅡ조선 최고의 학자인 다산이 이곳으로 유배를 오지 않았다면 혜장으로서는 평생 만나지도 못했을 귀인이자 참스승이었다. 백련사 대웅전 옆에는 아암 혜장의 산거잡흥(山居雜興)이라는 시구가 써 있다. 이렇게 초탈한 시를 썼으면서도 술병을 얻어 40세에 일찍 갔다. 一簾山色靜中鮮 주렴에 어린 산빛은 정적에 쌓여 더욱 아름답고 碧樹丹霞滿目姸 푸른 나무숲 붉은 노을은 눈에 가득 곱구나 叮囑沙彌須煮茗 어린 사미를 불러 차를 끓이라 이르고 보니 枕頭原有地漿泉 배갯머리에 원래 시원한 우물이 있는 것을.. 두 사람이 서로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까? 다산은 아암 혜장으로부터 평소에 읽지 않았던 능엄경, 기신론 같은 불경들을 소개받았다. 그러나 춥고 낙담했던 시기에 다산이 백련사로부터 활력과 행복을 충전할 수 있었던 것은 차(茶)였다. 백련사에는 야생차 밭이 있었다. 차는 온난한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경기도 남양주가 고향이었던 다산은 남도 유배시절에 비로소 차를 알았다. 훗날 다산은 백련사 주지였던 아암 혜장에게 차를 보내 달라는 걸명시(乞茗의 詩)를 보내기도 했다. 다산은 차를 마시면서 유배의 고통을 견뎠지만, 차밭에서 살았던 아암 혜장은 술을 많이 마셔 일찍 죽었다. 음차흥국(飮茶興國)이요 음주망국(飮酒亡國)이라 했던가..4월 초에 동백이 모다 울긋불긋 땅으로 떨어지면 비로소 햇차가 나오기 시작한다. 현재 백련사 주지로 있는 여연(如然, 68) 스님은 보통 분이 아니다. 스님은 연세대 철학과를 나와 출가한 이후에도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다. 1980년대 초반에는 전민련의 공동대표를 맡기도 했다. 그 과보로 남산 지하실에 들어가 통닭구이와 몽둥이찜질을 당하는 고문을 받았다. 감옥살이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삶의 깊은 비애를 맛보았다. 스님은,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대쪽같은 성품이다.
@elgracelee4142
@elgracelee4142 Год назад
감사합니다!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감사드리며, 멋진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jjkleemusic2027
@jjkleemusic2027 Год назад
아 ~ 이 방법이 피아노만 적용되는것이 아니라 노래가사와 멜로디 외우는데도 적용이 되는것 같군요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외우는것보다 등급을 나누어서 외우니 금방 숙지가 되는군요 특히 똑같은 가사와 비슷하지만 조금씩만 다르게 작곡이 된곡인데… 고맙심다 Brava !!!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맞습니다. 또한 모든 악기들에게도 적용이 되죠.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jjkleemusic2027
@jjkleemusic2027 Год назад
이번에 아주 오래간만에 영상이 떴습니다. 간만에 영상을 올리신것인지요? 분명히 제가 subscribe를 해 놓았는데..?
@sntana97
@sntana97 8 месяцев назад
리딩은 빠른데 암보가 항상 고민이었는데 정말 도움이 되는 내용이네요 내일 당장 가서 해봐야 겠어요 왜 이제 봤는지 감사합니다
@Dr.JungFrench
@Dr.JungFrench 8 месяцев назад
감사합니다. 제 입시 학생들에게 수십년 실행 한 것인데 최고입니다.
@prettycabin4150
@prettycabin4150 Год назад
닥터정누나 최고십니다. ㅎ 강의가 너무 재미 있어요. 시청하며 저도 모르게 미소와 웃음이 절로 나오네요^^ 베트남 여행 잘 마치고 한국에 다시 돌아와 누나 강의 기억하며 피아노에 앉아 Hwv 432 pssacalia 연습을 했답니다. 오늘도 명 강의 깊이 감사드립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하하 매우 감사합니다. 여행을 하는 사람은 세상을 넓게보며 융통성도 있어 자신을 스스로 발전시킨다고 봅니다.
@HolyGrace
@HolyGrace Год назад
와우. 성악이지만 제가 외우는 방식과 유사하네요 ㅎ 전 눈썰미가 좋아서 사진찍듯 이미지로 외우는 스타일이에요~^^ 근데 예전같지 않아서 ㅎ 깜빡깜빡 ㅋ 더 노력을 해야겠지요ㅡ 귀한 강의 감사드려요 ~^^ 평안하시고 건강조심하셔요 ~~~^^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역시 센스가 남다르고 창조적인 분은 다르군요. ㅎㅎ 어제 멋진 설교 잘 들었습니다.
@becarefulhowuthink
@becarefulhowuthink Год назад
악보보는데 어려움이 많았는데 지성적인 방법이 있었네요. 슈베르트 세레나데 연습중인데~ 시도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감사드립니다. 아름다운 곡 연습 중이시네요. 5가지 꼭 연습때마다 응용해 보시면 놀라운 초견이 생기실 겁니다.
@elisha5004
@elisha5004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암보 때문에 늘 고전하는 아이를 어찌 도와줘야 하나.. 늘 고심 중이었는데 정말 고맙습니다. 일단 악보 분석부터.. ~ ^^ 머슬 메모리에서 벗어나기.. 멍청이 연습 (천천히..정확히) ㅡ 고스트 연습. (양손 따로 + 한손 묵음). 당장 적용해 볼 수 있는 방법으로 잘 도와주겠습니다. 열심히 수학하신 내용을 이렇게 나눠 주셔서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
@Dr.JungFrench
@Dr.JungFrench 8 месяцев назад
하하 정리의 여왕 선생님이십니다. ㅎㅎ 분명히 성공 할 겁니다.
@user-kz4lx9gx7h
@user-kz4lx9gx7h Год назад
감사합니다!!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user-wc1me2co5g
@user-wc1me2co5g Год назад
악보 빨리 읽기 기대됩니다.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감사합니다. 곧 강의 해 드리겠습니다. 🙏
@user-kh5wc9bl1h
@user-kh5wc9bl1h Год назад
초의선사(草衣禪師, 1786~1866)는 조선 후기의 대선사(大禪師)로 우리나라 다도를 정립하였다. 그래서 초의를 다성(茶聖)이라 부른다. 1786년(정조10년)에 태어난 선사는 5세 때에 강변에서 놀다가 급류에 떨어져 죽을 고비에 다다랐을 때 부근을 지나가던 승려가 건져주어 살게 되었다. 그 승려가 출가할 것을 권하여 15세에 남평 운흥사(雲興寺)에서 민성(敏聖)을 은사로 삼아 출가하고 19세에 영암 월출산(月出山)에 올라 해가 지면서 바다 위로 떠오르는 보름달을 바라보면서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맑은 차 한 잔의 맛과 멋을 초의는 이렇게 노래했다. 一傾玉花風生腋 옥화 한잔 기울이니 겨드랑에 바람 일어 身輕已涉上淸境 몸 가벼이 벌써 맑은 곳에 올랐네. 明月爲燭兼爲友 밝은 달은 촛불 되어 또 나의 벗이 되고 白雲鋪席因作屛 흰 구름은 자리 펴고 병풍을 치는구나. 다성(茶聖) 초의(草衣)는 1828년 지리산 칠불암에 머물면서 지은 다신전(茶神傳)에서 찻잎 따기, 차 만들기, 차의 식별법, 차의 보관, 물을 끓이는 법, 차를 끓이는 법, 차를 마시는 법, 차의 향기, 차의 색 등을 상세하게 다루었다. 초의와 추사의 교유는 평생을 이어갔는데 서로가 동갑인 갑장이었으나 서로를 높여 주는 남다른 사이였다. 추사가 제주도에 유배되었을 때 초의는 당시 험난한 뱃길을 건너 세 차례나 제자 소치(小痴) 허유(許維)를 통해 추사에게 손수 법제한 차를 보내고 추사는 초의에게 글을 써 보내기도 하였다. 71세 되던 해 10월에는 42년간 금란지교(金蘭之交)를 맺어온 추사 김정희가 과천에서 유명을 달리하자 그의 영전에 완당김공제문을 지어 올리고 일지암에 돌아와 쓸쓸히 만년을 보냈다. 초의스님은 24세 때인 1809년 강진 다산초당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다산 정약용을 아암 혜장스님을 통해 만났다. 아암 혜장이 40세로 세상을 떠난후 초의는 다산을 스승으로 모시며 유서(儒書)와 시학(詩學)을 배웠다. 초의스님은 다산을 스승으로 극진하게 모셨다. 1813년 다산의 초대를 받은 초의스님은 때 마침 내린 비로 장삼자락이 흠뻑 젖어 다산초당을 방문하지 못했다. 그러자 시를 지었다. ..슬프도다! 이 적은 몸 하나 나에게 선인의 경거술이라도 지었더라면 빗속으로 산넘어 날아갔을 텐데.. 초의스님이 정약용을 얼마나 극진히 모셨는지를 알 수 있는 탁옹(정약용의 별호)선생에게 드림이란 시를 보면..부자는 재물로 사람을 떠나보내고, 어진이는 말로써 떠나보내네. 지금 선생께 하직하려 하지만, 저는 마땅히 드릴게 없습니다. 먼저 공경하게 누추한 마음을 펼쳐 은자의 책상앞에서 말씀드리리라. ..하늘이 맹자 어머니같은 이웃을 내려주셨네. 덕성과 학업이 나라의 으뜸이요. 문장과 자질이 함께 빛나시네. 편안히 머물 때도 항시 의로움을 생각하고 실천에 나서면 어짊을 보였네. 이미 넉넉하면서도 모자란 듯 하였고 항시 비우고 남을 포용하였네. 내 이런 도를 구하기 위해 멀리 와서 정성을 드립니다. 이제 또 헤어지는 자리에 종아리를 걷고 가르침을 청합니다. 수레가 떠나갈 때 주신 말씀은 가슴에 깊이 새기고 또 띠에다 써두렵니다..훗날 초의가 조선의 신진사대부들과 활발하게 교류할 수 있었던 유학적 자산은 다산에게서 받은 것이다. 초의스님과 다산은 많은 교류를 했다.1812년 가을 초의선사와 정약용은 월출산 백운동에서 월출산 외경을 그렸다. 초의스님은 백운도(白雲圖)를 그렸고, 다산은 청산도(靑山圖)를 그렸다. 그리고 그림의 말미에 시를 지어 붙였다. 1823년 대둔사지 편찬에도 함께 참여했다. 초의스님이 한양을 방문할 때면 늘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수종사에 머물렀다. 수종사 인근 마현마을에는 그의 평생 스승 정약용과 정학연이 살고 있었다. 다산과 그의 아들은 수종사의 샘물로 늘 차를 달여마셨다. 한양에 온 초의스님은 수종사에 머물며 다산과 교류했던 것이다. 이렇듯 다산은 평생 초의스님의 스승 노릇을 하며 그의 안목을 더욱 깊고 넓게 해주었다. 다산 정약용은 차를 직접 제다(製茶)했을 뿐만 아니라 주민들에게 제다법을 가르쳐주기도 하였다. 18년간의 유배생활을 마치고 강진을 떠날 때 제자들에게 차를 만들어 마시며 신의를 지켜나가도록 다신계(茶信契)를 만들었다. 초의스님과 다산은 스승과 제자로서 유학을 배운 것만이 아니었다. 사상적으로 유(儒)·불(佛)·선(仙)에 대한 폭넓은 교류를 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차에 대한 제배(栽培) 및 제다(製茶) 그리고 행다(行茶) 등 다양한 논의도 함께 했다. 자신을 스승으로 모신 초의스님에 대해 다산은 스승과 제자관계를 떠나 한 사람의 존귀한 수행자로 여겨 평생 존경을 아끼지 않았다.
@user-ip3ot3bn6i
@user-ip3ot3bn6i 4 месяца назад
와우~박사님 엄청 또 위로가 됍니다,,전 학국무용간데 순서가 어렵고 무대공포증 땜 창작무로 전환했는데 안 알아주긴 하는데 다른 분야지만 용기가 납니다~알러뷰,,맴!!❤❤❤
@Dr.JungFrench
@Dr.JungFrench 4 месяца назад
반드시 해 내실 겁니다. 좋은 환경에서는 멋진 작품이 나오지 않습니다. 미치지 않고서는 마스터 작품도 없습니다. 하하하 좋은 시간 보내시고 화이팅!
@ahreumlee2048
@ahreumlee2048 Год назад
정말 감사해요 ❤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
@user-hq4qc1tb8b
@user-hq4qc1tb8b Год назад
구독! 좋아요~~~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깊이 감사드리며 행복한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soonjlee6919
@soonjlee6919 Год назад
전 이제 박사님 강의유트브 없이는 못 살게 되었어요. 음악전공자는 아니지만 1강 부터 찾아서 매일 매일 듣고 보고 공부 하고 있습니다. Amazing!!! TV 제가 캘리포니아 S Pasadena 에 살고 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박사님 연주회에 꼭 가 보고 싶슴니다.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하하 매우 감사드리며 축복, 사랑, 건강, 행복을 기원합니다. 🙏🙏🙏
@user-hp1fb1ot4f
@user-hp1fb1ot4f Год назад
전체적인패턴파악.색으로 디테일표시하기.쉬운부분.어려운부분.고난도부분은 빨간색으로 표시.네가지색으로 표시.가장쉬운부분부터 외워라.양손을 따로따로 외워라.오른손멜로디는 노래부르면서해라.왼손은 따로 외워라.왼손은 더많이 외워라.1:3으로.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A+ 학점 드립니다. 정리의 왕에게 박수!!! 감사드리며 행복한 7월 보내시길 바랍니다.
@user-dt6wm3ff6y
@user-dt6wm3ff6y Год назад
제가 치고있는곡을 콩클에 나가보라 제안받았을때 고개를 흔들고 말았어요. 암보 공포때문이죠.. 한번 도전해보겠어요. 전 취미로 배우는 주부에요. 아침산책중인데, 이럴때가 아니네요. 당장 피아노앞에 앉아야 하겠어요ㅎ 도움주시어 감사합니다.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남들이 인재를 알아봅니다. Intellectual memory 로 꼭 도전 해 보시길 바랍니다. 미미님을 위하여 화이팅!!! 👍
@user-hq4qc1tb8b
@user-hq4qc1tb8b Год назад
정 프렌치 박사님~~~ 오늘도 주도면밀한 악보암기법에 관한 메모리 연습에 몰입했습니다 항상 훌륭한 명강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사례를 들어서 구체적인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행복하시고 좋은 하루 되세요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상서중고등학교 재단이사장 하곡 이 재 석 배상*******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서포트에 감사드리며 교육에 큰 공헌하신 이사장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user-kh5wc9bl1h
@user-kh5wc9bl1h Год назад
쌤 ♥️ 오늘 일산호수공원ㅡ이곳은 일산의 센트럴파크이네! 길구 가을단풍이 곱게 물들엇으니, 아름답지 않은가! ..일산의 가을단풍 멋있네. 강아지들도 행복하고. 하모ㅡ교외단풍 못잖아~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감사합니다
@Red-xe8gj
@Red-xe8gj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저는 왼손암보에 굉장한 시간을 투자합니다.양손으로 쳤을때는 머슬메모리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서 무대같은 긴장감속에서 블랙아웃이 왔을때 연주가 멈출 수 있더라구요. 왼손만 확실히 외워도 암보, 다이내믹, 음악성 등등 더 진화된 연주가 가능한 것 같아요😊 녹턴의 경우 왼손 반주부분이 브로큰코드형식으로 2도,반음계적형식이 나와서 외워지지않으면 코드로 합쳐서 쳐서 화성적으로 접근해봅니다. 그리고 건반에서 치는척을 많이 합니다. 실제 소리가 나지않도록 모션만 적용하는것인데요. 생각보다 쉽지않더라구요ㅎ 또한 굉장히 느리게 칩니다. 멍청이 연습이라고 표현하신것!ㅎ 다이나믹이 필요없다고 말씀하신것, 즉 객관화작업을 통해 음악성도 키워지고 표현력이 높아져서 좋았어요! 랜덤뽑기로 마디를 숫자화해서 뽑은 마디의 앞,뒤 총 3마디를 쳐봅니다. 구구절절 옳은말씀이세요🤩 제가 암보한 방법이 소개되어 좋아요!
@Dr.JungFrench
@Dr.JungFrench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하하 훌륭한 연주가시라고 봅니다. 많은 학생들은 무대에서 실수를 경험하고도 인내력이 없어 머슬 메모리로 반복적 연습을 하는 경우가 꽤 많죠. 박수를 보내며 감사드립니다.
@CateY787
@CateY787 11 дней назад
👍👍👍❤❤❤
@Dr.JungFrench
@Dr.JungFrench 11 дней назад
Thank you! 🙏🙏🙏🙏🙏🙏🙏🙏
@user-ig8dm9ps6d
@user-ig8dm9ps6d Год назад
옷 색깔이 어디선가 본 그림의 느낌이 납니다. 그게 댄서를 그린 그림인지,,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하하 재미있습니다. 행복한 11월 되시길 기원합니다.
@user-kh5wc9bl1h
@user-kh5wc9bl1h Год назад
옛날 강안도 깊은 산골에 한 아낙이 살았다. 강안도 아낙은 늦가을에 부지런이 겨울을 날 준비를 해야한다. 강안도 산골에서 사는 사람들은 곰과같이 겨울동안 긴 동면을 한다. 이 시기에는 긴긴 겨울동안 눈뜨면 하루종일 길쌈을 한다. 여름에 모시를 베어말린 다음 겨울이되면 앞이빨로 모시를 잘게 쪼개어 무릎에 대고 가닥을 손바닥으로 비벼 잇는다ㅡ이런 작업을 뜨듯한 돗자리위에서 한시도 쉼이없이 소쿠리째로 하다보면 어느덧 모시가 방안에 가득 쌓이면서 봄이 찾아온다. 따뜻한 봄날이 찾아오면 강안도 산골은 온통 이름모를 꽃으로 눈부시게 아름답다!ㅡ온 산자락이 하얗게 꽃으로 뒤덮히고 향내는 산골을 진동한다. 봄에는 울긋불긋 야생꽃으로 눈이 부시고 가을이면 물감을 풀어놓은듯 단풍으로 화려하므로 세계에서 우리나라 만큼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벚꽃? 비교대상도 아니다ㅡ인위적으로 연출된 풍광은 이내 질린다! 꿩도 우리나라 꿩이 깃털색깔이 가장 아름답고 산삼 등 한약재의 약효도 또한 그러하다.일본이나 중국, 미국에서 나는 산삼은 약효가 없는 그냥 도라지다ㅡ백번 강조해도 강안도 산골의 봄가을 정취는 이들 나라와는 품격이 다르다. 세계 15개 국을 발발이 같은 마누라를 데리고 보름씩 다니면서 느꼈던 것이지만 바로 대한민국의 아기자기하고 비할데없이 매력적인 자연미(自然美)다. 외국이 좋다? 뭘 모르는 덜 떨어진 인간이다ㅡ 산골에 봄이 오면 깡깡 언 얼음짱이 깨지고 버들개지가 실눈을 뜨면서 냇물은 졸졸 흐른다. 아낙은 비로소 늘어지게 기지개를 켠 다음 부시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ㅡ싸늘하지만 상쾌한 바람속에 온갖 물이 오르는 나무의 단내가 풍겨온다. 다사로운 햇볕을 받아 땅이 풀리면 만물이 생동하는 잎철이 다가오는 것이다. 오월이 되면 한층 햇빛은 밝고 맑아 컴컴한 굴속같은 집구석에 더는 있지를 못한다. 아낙은 문고리를 잡고 밖으로 나와 마당을 거닐면서 생명의 기적을 맛보고 싶어한다. 얼음이 풀린 시냇물이 졸졸 흐르며 따사로이 아낙을 유혹한다ㅡ이윽고 아낙은 겨우내내 걸레가 된 츠마와 저고리를 벗고 속것까지 벗으며 첨벙거리고 깊은 냇물로 향한다. 먼저 겨우내내 기름에 쩔어붙은 머리부터 감아야 했다. 이때 산 등성이를 넘어 곰, 멧도야지, 퇴깽이, 노루, 오소리 등이 사는 촌간을 둘러보던 산군(山君) 눈으로 냇물에서 철벅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들어왔다. 어흥!~나로 말하자문 북(北)으로는 인제 내린천을 거슬러 오대산 백담사가 구역일 것이고 남(南)으로는 한양도성을 낀 북한산이 그 경계이며 동(東)으로는 태백산아래 가리왕산이 내 터전일 것이다ㅡ마츰내 서(西)으로는 임진강이 흐르는 포천과 파주가 있으니, 식읍(食邑)이 이만하면 호랑이 팔자로 남부러울것이 없은즉 오늘로 관할구역을 둘러본지가 열흘하고도 초닷새일 것이야~ 헌디 저기서 첨벙거리는 짐승은 무엇인고? 보아하니 내 일찌기 본 일이 없도다..이때 여인은 머리를 감으려고 머리를 풀어제끼고 하늘로 궁둥이를 높이 쳐 올리니, 발가벗은 방탱이 아래로 뭉실뭉실 두 다리가 뻗었고 아래로 내려진 긴머리는 물살에 떠밀리는 도다. 호ㅡ괴이하도다! 일찌기 천안읍성 왕자산 아랫마을에 사는 성녀의 탐스런 젖퉁이와 한양도성 영등포에 사는 순남이의 탱탱한 궁둥이를 염원한 바 있었고, 갑오년에는 오백근 짜리 멧도야지를 잡아 배를 갈라 간을 내어 먹으려고 할 즉에 도야지가 삽살문같은 꺼적눈을 떳다 감으며 구술프게 애원하기를, 자기는 죽어도 여한이 없으나 손자 백일상을 보지못함이 원통하도다!ㅡ과연 그럴 것이로구나!~글면 너를 방면할 것이니 백일상을 보고난 후 냉큼 내 집으로 달려오거라ㅡ이런 일도 있었거늘..나가, 오래살다 보니 또한 이런 괴이한 짐승도 있구나! 오마~오마~저으기 눈깔 좀 보소! 붉은 외눈깔이 씰룩이며 부릅뜨고 있은즉 두렵도다..게다가 눈썹은 장팔사모를 휘두르는 장비의 숯검댕이 턱수염처럼 무성하니 꿈에라도 두 번은 보지 않을 것이야~에구구ㅡ이렇게 장탄식을 하면서 넋두리를 하다가 이윽고 분연히 일어나 가로되, 오냐ㅡ그렇다하나 나 또한 온갖 짐승을 거느리고 넉넉히 양식을 댈 식읍을 다스리는 산군으로서 능히 갈고리같은 발톱으로 부릅뜨고 있는 저 붉은 외눈깔을 한방으로 찢어내고 천하에 나의 위엄을 보일 것이로다! 이리하야 안개와 같이 은밀히 다가서는데ㅡ여인의 음호는 가까이 다가갈수록 붉은 눈속에 검은 눈동자가 선명하였다. 오마나!ㅡ이제보니 눈동자가 여간 깊고 영악스럽지가 않네요~이런 즘생은 머리털나고 처음이니 기이한 노릇이로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너의 정체를 벗겨 천하의 웃음거리로 만들 게야ㅡ 호기롭게 다가가 은밀히 콧궁기를 음호에 가까이 붙인 다음 킁..킁ㅡ하고 숨을 들이켰다ㅡ 우와!ㅡ왁!ㅡ쑤발껏, 쿠려라~켘!ㅡ켘!ㅡ켁!..시궁창같은 청계천 바닥이 십년 썩었대도 이런 냄새는 두 번 다시 없을 일이었다. 눈앞이 캄캄하고 가슴이 말리면서 진공이 되어 정신이 혼미하였으므로 디딤발을 굴러 일시에 건너편에 착지하자 온 힘을 내어 줄행랑을 놓았다. 올매나 붉은 외눈박이가 무서웠던지 가뿐 숨을 몰아쉬면서 뒤돌아 보았을때 구름속에 잠긴 산봉우리를 셀수조차 없었다. 눈썹을 휘날리며 정신줄을 놓고 달려온것이 가평(加平)이었다ㅡ드디어 지친 눈을 지긋이 감고 인제(麟蹄) 내린천에서의 혹독한 시련을 겪은일을 생각하면서 만감이 교차하야 닭똥같은 눈물을 주르르 쏟았다. 호랑이는 그 자리에서 열흘간 곡기를 끊고 큰소리로 신세한탄을 하였는데, 훗날 그 산을 사람들이 호명산(虎鳴山)이라고 불렀다. 이때 탄생한 말이 순식간이다. 그리하야 눈을 한 번 깜짝하거나 숨을 한 번 쉴 만한 아주 짧은 동안을 순식간(瞬息間)이라고 한다.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호명리에 우뚝솟아 오른 해발 632m의 호명산은 옛날 삼림이 우거지고 사람들의 왕래가 적었을때 호랑이들이 많이 서식하여 호랑이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전한다. 산의 남쪽 아래로는 청평호반을 끼고 있고, 서쪽 아래로는 조종천이 굽이쳐 흐르고 있어 정상에 올라서면 사방이 물로 둘러싸인 듯 수려하다. 근처 산에는 표고차를 이용하여 발전하는 양수식 발전소가 있는데, 전력부하가 많이 걸리는 초저녁에는 산정상 저수지에 있는 물을 낙하하야 발전하고 한 밤중, 부하가 떨어질 때는 남아도는 전기로 펌프를 가동하야 아래 저수지물을 산꼭대기 인공저수지로 로 올려준다.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저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눈으로 양수발전소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과거 국립지리원에서 발주한 삼각점 재설치작업(再設置作業)을 할 때 호명산 정상을 오른 일이 있었다. 무거운 화강암 표석을 설치한 후 땀을 닦으며 숨을 돌리고 있을 때 어느 건장한 사나이가 옆을 지나면서 산행을 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좋아보이시네요, 선생님~하, 그렇습니까? 말투에 어딘가 군대 짬밥냄새가 났다. 이렇게 매일 산행하십니까?ㅡ넵..살기는~요 아래 마을이고요, 공수특전단 상사로 제대하야 연금을 받고 있다고 자기를 소개했다. 선생님, 군대는요ㅡ스타~스타~하는데 사실은 대령으로 예편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귀뜸을 했다. 하긴 이곳이 산 정상이니 옛적에 달 밝은 밤이면 호랑이가 바위에 배를 깔고 앉아 어흐흥~표효했을 것이다. 바로 내가 걸터앉은 바위다..나도 언젠가는 호명산 호랑이가 그러하였듯 지상에서 내 모습이 사라질 것이다.
@user-kh5wc9bl1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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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 (瞬息間) / 강안도는 자연이 살아있는 청정산골로 지금은 사통팔달 고속도로가 뚫려있어 교통이 말할 수 없이 편리하지만 옛날에는 험악한 비포장길을 달리는 버스와 트럭이 뒤집히고 사람들이 많이 죽어 악명이 높았다. 그리하야 한양에서 남도로 내려가기는 쉬웠지만 태백산맥을 넘어 동해안으로 진출하기에는 길이 고생스러웠고 험난했다. 이런 강안도는 겨울이 깊고 또한 길다. 강안도는 겨울에는 산골에서 불어오는 삭풍으로 뼛골이 아릴만큼 몹씨 춥다. 이런 바람이 눈보라가 되어 불어제끼면 온 마을이 눈속에 파뭍히고 사람들은 서로 깊은 적막속에 잠긴다. 그리하야 너나할것 없이 가을이 깊어지면 눈이 녹는 늦봄까지 호롱불아래 칩거하여 긴 겨울을 나야한다. 그러니까 그 동안 먹을 양식과 김장, 토장(土醬)국에 땔감준비를 단단히 해야 따뜻한 겨울을 날 수가 있게 된다. 우리네 고유음식인 토장국으로는 재료에 따라 냉이 토장국, 소루쟁이 토장국, 시금치 토장국, 아욱국, 배추속대국 등이 있으나 이 가운데 술국으로도 애용되는 우거짓국이 깊은 맛을 자랑하고 있다. 우거지국은 쇠뼈를 곤 국물에 된장으로 간을 하고 배추속대, 우거지 삶은 것, 콩나물 등을 넣고 끓인 것이다. 일반 농가에서는 토장국을 끓일 때 쌀뜨물을 이용하는데, 쌀이 귀한 강안도 산간지방에서는 쌀뜨물 대신 콩가루를 넣고 끓인다. 강안도 지방은 쌀이 귀하야 처녀가 시집갈 때 까지 이밥을 한 말 먹는것이 소원이다. 쌀밥을 강안도와 경상도 북쪽 산골에서는 이밥이라고 한다. 전기토목 권위자로 한창 뜰 무렵 현대건설 과장시절, 몇해에 걸처 캐나다 다음으로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평창과 정선 태백지역에 765 KVA 극초고압 공사를 할 때였다. 일반적으로 송전선로는 철탑을 100 m 이상 높여도 그 아래는 전자파 등으로 몸에 해롭다. 그래서 인체에 암발생이 우려되므로 송전선로가 지나는 바로 밑은 선하지(線下地)라고 하여 사업자인 한국전력이 토지 소유자에게 보상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하여 법률지식이 없는 일반인은 소송을 걸기가 난감한 일이다. 돈은 욕심나지만 법적인 과정이 녹록하지 않다보니 대부분 처음부터 포기하고 만다. 그러나 광권을 가진 광산업자들은 끈질기게 권리보상을 요구하므로 시공사측에서 공사진행상 한전에서 위임받아 감정평가사를 고용하야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한눈에 보아도 폐업한 광산이지만 광산주는 보상금으로 눈에 독이올라 결코 포기란 것은 없다. 여늬 보상과 달리 재산권인 광산권 침해이므로 보상액도 크다. 웃기는 것은 철탑을 공사하다 보면 무연고지 묘가 더러 있다. 처음에는 묘인지도 식별할 수가 없어 백호우 기사가 삽날을 들어 땅을 파다보면 땅속에서 관짝이 나오게 된다. 이렇게 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눈으로 보기에는 오랜세월 봉분이 허물어져 땅과 다름이 없으므로 장비기사가 땅을 판것을 나무랄수도 없을 일이다. 공사를 하다보면 후손이 끊긴 묘가 가끔 나오는데, 자식들이 고향에서 손을털고 이민을 간 경우가 그러하다. 그리하야 시공사에서는 공시최고라는 방법을 쓴다. 지방 일간지나 자치단체가 발행하는 관보에 관계인이 인지할 수 있도록 무연고묘임을 밝히고 보상금을 공탁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감정평가사가 객관적으로 보상액을 산출하는 것이어서 보상금액이 크지 않으나 처음부터 묘를 인지하지 못하고 파헤친 경우에는 감정평가가 통할리가 없다. 시공사의 현장소장은 이런사태에 직접 민형사상 법적책임을 져야하므로 어찌 어찌 관계인이 찾아와 난리법썩을 피워도 꿀먹은 벙어리처럼 그대로 당할 수 밖에는 없다. 개중에는 후손이란 자가 나타나 오랜세월 한번도 관리하지 않은 조상묘에서 뼈다귀를 찾아내어 씩씩거리며 들고와 소장실문을 냅다 발로 걷어차고 뼈다귀를 싼 신문지를 책상 위에 던지며 다짜고짜 대갈일성을 한다ㅡ야ㅡ새꺄! 뉘이는 조상도 없냐? 이렇듯 남의 소중한 조상묘를 멋대로 파재끼다니! 이 노옴!~너도 인간이냐? 사실 이 소리는 우리가 놈에게 하고싶은 말이다ㅡ그러나 찍소리도 못하고 꾸욱 참고 산골 양아치의 난동을 견디어내야 했다. 이어서 여자까지 가세하면서 소장불알을 구워먹는다고 고성이다. 이러면 정상적인 타결이란 불가능하다ㅡ그들이 만족할 때 까지 거액의 합의금으로 똥구녕을 긁어주어야 험악한 꼴을 면한다. 건설공사에서 가장 골치아푸고 겁나는게 민원이다. 나~ 죽여라!ㅡ민원인이 현장에 들어누우면 장사가 없다. 건설이란 제 공기내에 완공을 하지못하면 발주자에게 시공사가 페널티를 물어야 한다. 그것도 날짜로 계산되는 벌금이니까, 이리되면 끔찍한 악몽이 되고 소장은 변명의 여지없이 무능한 현장관리자로 낙인찍힌다.
@user-ig8dm9ps6d
@user-ig8dm9ps6d Год назад
영상을 보면 현장에 경찰관이 있었는데 그들은 현장을 보고 통제나 관리에 대한 보고나 지원을 왜 요청하지 않았는지? 그들은 꽉찬 행인을 보고 전문가로서 느낌이나 상상이 없었을까? 장관의 최초 답변이 어떻게 저렇게 말을 할 수 있나.. 작은 동네에도 잔치가 벌어져 교통이 혼잡하면 당연 질서를 정리하는게 공권력인데 주최측이 없느니 뭐니..
@user-kh5wc9bl1h
@user-kh5wc9bl1h Год назад
다산초당에서 지내던 1809년 호남지방에 큰 가뭄이 들었다. 지난 겨울부터 봄 여름을 지나 입추가 되도록 비가 내리지 않고 논밭에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았다. 유랑민이 떠돌고 곳곳에 시신이 널브러져 있어도 거두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송와잡설(松窩雜說, 조선시대 문신 이기가 명사의 사적·일화 및 기담·설화 등을 수록한 잡록)에 이르기를, 조선 초기에 함경도는 야인(野人)과 접해 있었으므로 크고 작은 수령이 모두 무관으로 뽑혀가는 것이 관례였으며, 게다가 조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꺼릴 것이 없이 오로지 형벌을 혹독히 내리고 세금을 가혹하게 받아내는 것을 일로 삼았다. 간혹 문관을 보내지만 수령으로서 물망에 오르는 자 또한 매우 드물었으므로, 백성들은 그들을 낮도적이라 일렀다. 어떤 함경도 사람이 처음으로 서울에 왔는데 성균관 앞길에 이르러 동행에게, 이곳은 어떤 관청인가? 물으니, 조정에서 낮도둑들을 모아 기르는 못자리라고 했다. 백성이란 것은 즐거워도 머물러 있고 괴로워도 떠나지 못하는 몸이 땅에 박혀서 마치 밧줄로 묶여 매를 맞는 것과 같았다. 지난해 봄에 내가 작은 배를 타고 가우도 어촌에 놀러갔더니, 현감이 역시 배를 타고 만덕사에 와서 놀이를 벌이고 있었다. 내가 어촌에 닿아 어부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바다에 있던 배가 항구에 들어오면 아전과 군교들이 배 1척마다 돈 200문씩을 억지로 거두어 가고, 고기잡이 통발이 바다 가운데에 수십 곳에 있는데, 밀물과 썰물에 잡히는 것을 모조리 빼앗아가면서 모두가 수령의 놀음을 핑계 삼는다고 했다..내가 바야흐로 석양에 작은 노를 저어 먼 갈대와 버들 사이를 따라가면서 산 허리에 있는 절간을 바라다보니, 붉은 옷 푸른 옷이 어울려 있고 피리 소리 장구 소리가 한창 높았다. 그러나 그들은 어촌 여러 백성들이 눈흘겨 주자며 욕하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茶山 筆談) 전라남도 강진읍 구룡포에 있는 가우도(駕牛島)는 둘레 2.5km에 10만평이 조금 안되는 섬이다. 섬의 모양이 소의 멍에를 닮았다고 해서 가우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금은 도암면 망호와 대구면 저두 양쪽에서 해상교량으로 연결이 되었다. 섬과 육지를 잇는 다리가 생겨 교통이 좋지만 예전에는 외딴 섬이어서 외지사람은 구경할 일이 거의 없었다. 바닷일을 갈 때면 산밑 모래밭 길을 걸어서 다녔다. 고기를 잡는 배들도 방파제나 부두가 없어 산밑 모래밭에 대놔야 했다. 토박이 섬사람이 기억하는 가우도는 마을 앞뒤로 온통 모래밭 천지였다. 동네앞은 물론이고 마을 뒷쪽에 바닷가 바위가 안보일 정도로 모래가 많았어라우..당시 동네 어르신들이 술을 잘 드셨는데 완도사람들이 방파제나 부두시설에 쓴다고 술 몇 되 사주면 맘대로 싣고 가라고 했다. 이래서 배로 모래를 한가득씩 싣고 갔는데, 지금까지 그 모래들이 있다면 가우도의 또 다른 자랑거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가우도는 앞 바다 깊이가 서 발 정도이고 탐진강 상류에 댐이 생기기 전에는 파래와 바지락 등이 성했다. 동네사람들이 하루에 20kg 망으로 30자루씩 캤지만 댐이 생긴 이후로는 바지락을 구경하기가 힘들어지고 대신 없던 석화(굴)가 조금씩 생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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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때문에 수없이 천 미터급 태백산맥 산봉우리를 오르내리다 보니까 한가지 희한한 일을 목도하였는데, 일을 마치고 산봉우리에서 힘들게 내려와 산 아래에서 살고있는 주민에게 물 한 잔을 청하여 마시면서, 아저씨ㅡ이제껏 뒷산에 몇번이나 오르셨수? 에이, 그 높은 델 뭣하러 오릅네까? 평생 한번도 오른일이 없시다ㅡ그래요? 글면 아저씨ㅡ닭 한 마리 삶아주쇼ㅡ힘이 빠져서 원기를 보충해야 겠시다!~강안도 산골 닭은 모두 토종닭인데 병아리때 부터 놓아길러서 지렁이, 메뚜기 등을 쪼아 먹으니 매우 실팍하다. 산골 아저씨가 부지런히 소여물을 쑤는 큰 무쇠솥에 물을 붓고 끓이기 시작한다. 아니, 아주머니는 안계셔? 헤헤ㅡ그게 아니라 읍내 병원에 있다오. 지에미 간호한다고 딸내미도 같이 있지요. 아ㅡ예ㅡ안됐네요..헌디 이런 적막한 산골에서 그나마 아주머니까지 없으면 아저씨가 오찌 살것오! 헹, 뭘 걱정합네까? 딸 데리고 살면 되지요!ㅡ 쾌활하고 호기로운 대답이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니, 개족보가 따로 없을 것이었다. ㅉㅉ.. 어느덧 무쇠솥에서는 물이 끓으면서 아저씨가 바가지로 뜨거운 물을 퍼서 닭에 끼얹고 털을 뽑기 시작했다. 굵은 소곰에 찍어먹는 토종닭의 구수한 맛이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다ㅡ이게 강안도 산골 토종꿀과 함께 손가락으로 꼽는 진미인데ㅡ그 소박한 맛이란 산골인심과 어울려 잊을 수 없는 맛이다. 깊은 산 속, 어느 천 고지급 산봉우리였는데, 하늘만 보이는 산꼭대기에 고요히 들어앉은 무덤이 있었다ㅡ 햐! 이런 곳에다 묘를 쓰다니! 아무리 명당이라도 그렇지..오찌 그 무거운 상여를 매고 여기까지 올라와 무덤을 만든단 말인가! 사람도 오르지 못할 만큼 가파로운 외길을 타고 산꼭대기에 묘를 쓴 초인적인 힘앞에서는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우리는 고려때부터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을 신봉했는데, 그 요지는 땅에는 길지(吉地)와 흉지(凶地)가 있어 길지에 집을 짓거나 묘를 쓰면 좋은 기운이 감돌아 당사자가 운수대통하겠지만 흉지라면 급살(急煞)을 맞는다는 것이다. 그런즉 조상묘를 잘 쓰면 자손이 복을 누린다는 것이어서 소문난 명당에 쓴 남의 묫자리를 파고 그 아래에 조상을 매장한 다음 감쪽같이 흙을 덮었다. 이러면 원래 묘를 쓴 임자는 명당복을 빼앗기고 나중에는 폐가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명당은 한 사람 몫이니 이런 기이한 일도 벌어지지만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얌체짓이고 도둑질이 아닌가? 겨울이었다ㅡ오토바이를 탄 이장이 현장사무실을 찾아와 소장에게 민원을 넣었다. 동네에 급수시설을 해달라는 것이다. 민원이 도를 넘지 않으면 해주는것이 관례이어서 우리는 해당지역을 방문하였다. 가장 높은곳에 있는 지붕이 낮은 산골집 방문을 여니 할아버지가 우리일행을 반가이 맞이하면서 아랫목으로 앉기를 청하였다. 방안은 침침하였고 된장뜨는 냄새가 구수하고 정겨웠다. 먼저 우리가 찾아온 목적을 간략히 설명하고 상수도 펌프시설의 편리함을 이야기하였다. 일순간 할아버지는 벙글벙글 웃으며 문명시설이 무척 기대되는 눈치였다ㅡ말끝에 문선명 통일교주가 자기와 가까운 친척이라고 여러번 강조하였다. 그때 사십이 되었을까?..이웃집에서 남자가 찾아와 우리를 아는체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옆에있는 주인 할아버지에게 마구 핀잔을 하는 것이다. 아예 할아버지가 벙끗도 못하게 말을 가로채고 지청구를 하는데도 꿀먹은 벙어리처럼 젊은놈에게 할아버지는 꼼짝도 못했다. 아주 싸가지없는 망난이였다. 우리앞에서 할아버지는 무안하여 겸연쩍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니ㅡ도대체 그 남자에게 무슨 약점이 잡혀 이렇듯 몸둘바를 모르고 쩔쩔맨다는 말인가? 안타까웠다. 강안도 산골에서 사는 남자들은 무어니 무어니 해도 마누라가 일등 재산이다. 마누라가 있고 보면 그래도 촌간에서 뒷짐을 질 체면이 서고 사내로서 가장이라고 넉살을 부릴수가 있으니 말이다. 이런 형편이어서 여인이 아무리 박색이어도 사내들이 몸이달아 몸값이 비쌌다. 여인에게 사내가 있든 없든 그랬다. 어느날 현장에서 측량을 하다 민가에서 점심을 먹는데, 부엌에서 아줌마가 남편들으라고 한 소리를 했다ㅡ나? 말이야, 근동 사내들이 정선시내로 놀러가자고 자꾸 청이 들어온단 말이야. 아는 아줌마와 같이가면 사내들이 불고기도 사고 영화도 구경시켜 준다니깐! 돈을 아끼지 않고 우리한테 올매나 잘 하는지 몰라ㅡ그런 사내들이 나한테 줄 섰단 말이야~알간? 대놓고 남편앞에서 기고만장하야 거드름을 부렸다. 그런말을 듣고도 아저씨는 꿀먹은 벙어리 마냥 애써 무시하는 듯 비굴한 웃음을 흘렸다. 형세를 본즉 남편이 시원찮으면 마누라도 동네 양아치에게 빼앗길 판이다. 오ㅡ통재라! 할렐루야~
@user-kh5wc9bl1h
@user-kh5wc9bl1h Год назад
헐ㅡ쌤, 본바탕이 타고난 미인일세!ㅡ우리 조선사람은 여자가 이뿌게 꾸미는걸 좋아하지..이것을 세상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니까.. 근디ㅡ소설은 원제 쓰것능가? 걱정이네~ㅋㅋ 다시 봐도 이뿐걸!..굿잡..오늘은 간만에 힐링하는구만 ㅡ고마워유! 💞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소설 쓰시고 계시는군요. 글을 너무 잘 쓰시고 표현도 솔찍하셔서 대박 날 것입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user-kh5wc9bl1h
@user-kh5wc9bl1h Год назад
따뜻한 격려의 말씀ㅡ정말로 황홀하도록 좋습니다~감사하고 고마와요..쌤, 최고야요!~💕
@user-kh5wc9bl1h
@user-kh5wc9bl1h Год назад
그런 초의스님이 평생의 도반(道伴)인 추사 김정희를 만난 것은 30세인 1815년이다. 초의스님은 그때 처음으로 한양에 올라가 2년 동안 머물렀다.1786년 같은해에 태어난 초의와 추사는 한눈에 서로 뜻이 통했다. 당대의 석학인 옹방강, 완원 등과 교분을 맺고 청의 금석학 시문 전각등을 깊이 연구해온 젊고 개혁적인 신진사대부였던 추사는 청의 상류사회에서 중국의 고급 차문화를 배워 차에 대해서도 해박했다. 추사가 가끔씩 초의스님에게 자신이 구한 중국의 고급차를 보낼때 초의스님이 중국차에 대해서 어떤 것은 참으로 진미가 있고 어떤 것은 가짜인듯 싶다고 촌평을 했다. 추사는 승설(勝雪), 고다노인(苦茶老人), 다문(茶門), 일로향실(一爐香室) 등 차에 관한 수많은 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초의스님에게 차를 선물받고 써 준 유명한 명선(茗禪)을 비롯, 죽로지실(竹爐之室), 다로경권실(茶爐經卷室), 다산초당(茶山艸堂) 등 차에 관한 수많은 글도 남기고 있다. 일지암을 맨처음 방문한 사람은 추사의 부친 김노경(金魯敬)이었다. 영의정 김흥경(金興慶)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월성위(月城尉) 김한신(金漢藎)이고, 아버지는 판서 김이주(金頤柱)이며, 아들이 김정희(金正喜)이다. 승지(承旨)를 거쳐 이조참판 및 경상도와 평안도의 관찰사를 지냈고 1819년 예조판서와 이조·공조·형조·병조의 판서를 두루 역임하였다. 그 뒤 대사헌을 거쳐 1827년 판의금부사, 광주부유수, 지돈녕부사 등의 요직을 거치고 사행(使行)으로서 1809년 동지 겸 사은부사로, 1822년에는 동지사로 연경에 다녀왔다. 글씨를 잘 써 아들인 김정희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며, 작품으로는 신라경순왕전비(新羅敬順王殿碑), 신의왕후탄강구묘비(神懿王后誕降舊墓碑)를 남겼다. 추사어른은 나로부터 8대조 어른이시다. 완도 고금도에서 4년동안 유배생활을 하다 풀려난 김노경은 그의 아들과 친하게 지내는 초의스님을 알고 싶어 일지암을 찾은 것이다. 일지암에서 하룻밤을 머문 김노경은 시(詩)·서(書)·화(畵)등 다방면에 능한 초의스님에게 첫눈에 반했다. 초의스님은 김노경에게 일지암의 유천에 대해 시로 답했다. ..내가 사는 산에는 끝도 없이 흐르는 물이 있어, 시방에 모든 중생들의 목마름을 채우고도 남는다. 각자 표주박을 하나씩 들고와 물을 떠가라. 갈때는 달빛 하나씩을 건져가도록.. 초의스님의 시에 김노경은, 유천의 물맛이 소락의 물맛보다 뛰어나다고 극찬했다. 초의선사와 경주김씨의 인연은 부친 김노경과 아들 김정희를 거쳐 이루어진 아름다운 인연이다. 물론 선대 어른을 통하여 나와도 간접적인 인연이 되리라.. 1840년 9월 추사는 제주도로 유배를 떠나며 초의스님을 찾아 일지암을 방문했다. 쇄락(灑落)한 가을 정취에 물든 일지암을 찾은 추사는 초의스님과 함께 고즈녁한 하루를 보냈다. 동지부사란 고위직을 내놓고 유배를 떠나는 추사에게 초의스님의 위로는 많은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후 초의스님은 자신의 제자이자 추사의 제자였던 허유를 통해 제주도로 차와 서신을 보냈다. 제주도에서 초의스님의 차와 서신을 받아본 추사는 그 고마움에, 차를 끓이는 다로(茶爐)의 향이 향기롭다는 일로향실(一爐香室)이란 글을 써서 허유편에 보냈다. 일로향실은 지금도 대흥사에 보관되어 있다. 추사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친 초의스님은 1843년 봄 제주도로 건너간다. 1년여 동안 제주도에 머물며 초의와 추사는 차에 대한 즐거움과 학문적 교류의 폭을 넓혀갔다. 추사는 이때 초의스님을 통해 선불교에 대한 혜안과 지평을 넓혔다. 초의가 다녀간 다음 해에 추사는 세속의 각박한 인심을 따르지 않고 어려움속에서도 그를 따르던 제자 이상적에게 유명한 세한도(歲寒圖)를 그려 세상에 선보였다. 소나무와 잦나무 지조는 눈이 내린 후에야 그 절개를 알수 있다는 화제(畵題)를 지닌 세한도는 세속을 완벽하게 품어낸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세상의 질곡에 대해 울분을 터트려야할 추사로부터 이같은 작품이 유배지에서 나왔다는 것은 초의스님의 영향이 컸을 것이리라.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기풍을 지닌 초의스님은 제주도에서 차의 재배를 시도했다. 일설에는 추사를 위해 차의 재배를 시도했다고 전한다. 지금 제주도에는 국내 굴지의 회사가 운영하는 광대한 차밭이 있다. 초의스님은 1851년 추사가 보내온 서간문을 모은 영해타운(瀛海朶雲)을 책으로 묶어냈다.1840년부터1848년 제주도 유배에서 풀려날 때까지 추사가 보낸 서신을 차곡 차곡 모았다가 책자로 묶은 것이다. 초의스님이 추사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 마음을 절절히 알게 한다. 추사가 제주에서 유배를 끝냈으나 정적들의 음해를 받고 다시 유배간 북청에서 풀려나 과천집에 머물면서 초의스님을 더욱 그리워했다. 란 편지는 그러한 추사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큰눈이 내리고 차를 마침 받게 되어 눈을 끓여 차맛을 품평해 보는데 스님과 함께하지 못함이 더욱 한스러울 뿐입니다. 요즘 송나라때 만든 소룡단(小龍團)이라는 차 한 개를 얻었습니다. 이것은 아주 특이한 보물입니다. 이렇게 볼 만한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래도 오지 않으실려오? 한번 도모해 보십시오. 너무 날이 추워 길게 쓰지 못합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초의스님은 추사의 간절한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차를 보내달라는 추사의 청도 제때 지키지 않았다. 추사는 제때 차를 부쳐주지 않는 초의스님에게 농섞인 말로 윽박질렀다. 지금 지체없이 보내지 않으면 덕산의 방과 임제의 할로 경책하겠노라!.. 그러다 초의스님이 차를 보내오면, 과천의 샘물로 차를 달여 시음하니 과연 천하의 제일가는 차로다! 칭찬을 멈추지 않았으니, 추사가 초의스님과 그의 차를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여실히 알 수가 있다. 그러던 추사가 1856년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초의스님은 깊이 슬퍼했다. 슬픔에 못이긴 초의스님은 추사가 세상을 떠난 3년후 완당김공제문(阮堂金公祭文)을 지었다. 오호라ㅡ그대와 나의 42년 동안의 아름답던 우정이여..그 우정일랑 다음에 저 세상가서도 오래 오래 이어 가십시다. 나는 그대의 글을 받을 때마다 마치 그대의 얼굴을 보는 것 같았고 그대와 만났을 때는 진정 허물이 없었습니다. 그대와 나는 손수 뇌협과 설유를 달여 마시곤 했는데 그러다 슬픈 소문이 귀에 닿으면 적삼 옷이 함께 젖기도 했습니다. 슬프다. 그대를 먼저 떠나보내는 나의 애끓는 심사여..황국이 다시들고 흰눈이 내리는데 어찌하여 내가 이토록 늦게 그대의 영전에 당도했을꼬? 원망일세 원망이로세! 하늘과 땅 사람이 모두 알지 못해도 오직 그대는 나의 심사를 알것입니다. 애절하고 통절하게 벗을 잃은 마음을 처연히 적고 있다. 추사를 보낸 초의스님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떠나버린 그를 잊지 못했다. 메말랐던 이 땅에서 초의, 추사, 다산이 이어갔던 변화의 담론은 18세기의 조선 한 가운데에서 잉태되어 익어갔다. 그들이 엮은 인연의 바다는 새로운 세기를 목말라했던 많은 후학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lemon_7.
@lemon_7. Год назад
ㅠㅠ초등학교때부터 알고있어스면 좋아슬텐데
@Dr.JungFrench
@Dr.JungFrench Год назад
ㅎㅎ 저도 그렇답니다. 늘 건강하시고 좋은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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