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 토박이로서 1979년 지금의 양재역~신사역 구간, 즉 강남대로를 막 포장했을때인데 주변에 가로수만 듬성듬성 있고 건물도 별로 없었던 그 길을 학교 마라톤 대회 때문에 뛰면서 뭔가 운치가 있는 풍경에 매료되었던 기역이 있음. 그 풍경이 너무 아름답고 뭔가 묘한 느낌을 주는데 오래도록 잊혀지지가 않음. 그러다가 그후 건물들이 들어서고 개발이 되자 그 인상적인 풍경이 사라지더라..강남도 그렇고 어디 가나 거리 풍경은 옛날 그 시대 경치들이 좋았음.
처음에 강남으로 이주한분들 엄청나게 고생함 일단 시장이 없고 버스노선이 거의 없고 배차시간이 길어 개고생함 그래서 정부에서 서울 명문 고등학교를 이주시키고 그토록 허가 내기 어렵던 유흥업소 허가를 내주어 나름 부활에 힘씀 그래서 신사동 사거리는 한때 카바레가 5개나 있었음
고등학교 다닐때내,. 추억이 새롭네 강남 학동에 살았는데... 79번 버스타고 제3한강교 지나 남산순환로 남대문. 시청. 광화문에서 내렸는데.. 저 당시 도산대로 우측에 영동호텔 있고 길가에 건물 좀있고 건물뒤엔 개발되지 않은 공터들 그곳에서 놀곤했는데 .. 당시 동명여고 다니는 여친이 하는말 여기도 서울야 가난한 동네구나 하던말이....ㅋㅋ 그당시 그말에 왜그리 창피하던지... 서울 변방이고 볼품없던 강남였는데.. 중심가로 변할줄이야... 좋은영상 잘보고 갑니다..
영등포 동쪽이라해서 영동이라 불렷음니다 당시 나가 시방 논현동서 노가다핸는디 당시 배밭이던곳에서 여름에 여자들이 일하다가 그자리서 속고쟁이벗고선 오줌깔겨서 보지맨날 봤죠. 심지어 가을에 감하나주믄 감밭에서 일하든 여자들이 그자리서 속고쟁이벗고선 보지대주든 시절입네다. 1975년에 가수 김정구가 위문공연와서 두만강불런는디 여자들이 손이 저절로 다리가운데로가서 보지맨지는것도 봤읍죠
1978년까지는 구가 넓어서 이후 분리한거죠 은평구도 원래 없던구인데 서대문구를 나누어서 은평구사 생겨난거죠 강남도 .서초구로 나누고 강동도 송파구로 나누어서 생긴것처럼 예전에는 영등포를 중심으로 동쪽을 전부 영동이라고 칭함 동작.서초.강남.송파.강동을 전부 영동이라고 했지요 그래서 강남의 생긴게대표적인 영동호텔.영동시장.입니다
삼성동 구 한전부지(현 현대차 부지) 저 지역 뒤에가 저희 할머니 집이였죠!! 지금 글쓰는 저는 이 40대중반 입니다. 2호선을 타고 그 땅아래 삼성역 지하를 지나가고 있네요^^ 할머니 할아버지 살아계실때 제사나 차례 지내로 가면 삼성동 본가에서 하였죠!! 그때는 강남이 2호선만 운행하였더랬죠! 더 밑으로 아버니 청년시절엔 온통 산과 논.밭.그리고 잠실엔 배밭이 많아서 놀던곳이라 하구요!. 홍수도 잦았던 곳이고 물도 깨끗했던 한강을 기억하시네요! 멧돼지가 뛰어다니고 했다하구요! 그런데 그런 평화로운 시기에 고모부(사기꾼)란 사람이 68-70년사이에 잘 모르는 큰아버지와 글을 모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속여 강남개발 당시 2,000평가까운(무역세터와 접한 인터콘티넨탈호텔 대로변인근)땅을 팔게해서는 도박으로 다 날리셨죠! (아마도 장영자나 부동산 투기꾼에 판듯...) 이후 막내 아들이던 우리아버지(현 70대 중반)가그래도 지식인였는데 군대가있을때 그틈을 이용해서 집안이 무너졌네요! 군 전역후 빼앗긴 땅에 술로만 사셨다네요;;; 해당 그땅이 시세만 최소 2억이 넘습니다. 국민학교도 못 나오신 테헤란로에 350평 쌀농사 하던 일자무식 아버지 친구분은 "저는 이땅 아니면 먹고살때 없시유 안되유" 하시던 이분은 현재 테헤란로 빌딩주인이 되어계세요^^ 다른 개포동과 대치동에 땅부자였던 분에 아버지 친구분 한분은 그 많은 토지와 빌딩 거의 1조원가까운 재산을 세금 못내고 버티다 국가에 다 압류잡혀 뺏겼다네요~~~ 참 옛스럽네요 세상은 변하구요 또 변하구요 내모습도 변하고 돈이란 그저 돈인거죠!! 그 강남에 알짜 땅부자였던 집안이 사람하나 잘못 들어와 풍지박살 나구요 약하거나 무식하다 싶으면 그 사람들 이용해서 돈 뜯는 기술(사기꾼)은 지금이 더 많은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열심히 몸으로 먹고 사셨구요 그래도 지금은 서울 강동에 역세권 빌라한동과 양평에 제가 전원주택 지어드리고 월세 조금으로 몸에 뵈어있는 검소함으로 가족중 그나마 자수성가 하시고 사시고 계십니다.^^
1974 년만 하더라도 영동지역까지는 개발이되고있었으나 지금 삼성동 4거리 는 파밭이였고 평당 당시 화폐로 5000원이 였었는데 그것도 비싸다 하였었읍니다! ... 그곳이 지금은 코엑쓰! 현대자동차 고층건물! 인터콘티넨탈 호텔등! 어마어마하죠! ... 1074년에 그곳에 땅을 제일많이가지고 계신분이 이북에서 내려오신 아주 검소하신 할머니였었는데 그당시 그할머니 하루종일 참일만 열심히 하시더니 나중에 그곳에 빌딍을 몇개를 갖고계셨는데 지금은 돌아가셨을 겁니다! ... 그리고 1990년초만 하더라도 청담동의 현대 아파트! 청실!홍실 아파트! 가격이 평당 150만원 즉 32평이면 4천5백만원~5000원! 하였지요!
잘 봤습니다~~ 옛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7:15 초 정면에 보이는게 진주아파트이고 논밭자리가 현재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 쪽입니다~ 제가 80년부터 쭈욱 살았던 곳이라.. 10:06 코엑스 자리는 당시 국풍 81인가 행사장인걸로 보이네요. 11:51 잠실 시영아파트 입니다~ 저 놀이터에서 자주 놀았어요 ㅎㅎㅎ 12:04 저 위가 석촌 호수가 맞다면 시영아파트가 아닌 주공아파트 일겁니다~ 밑에 보이는게 잠실 학생체육관이구요~ 암튼 재밌게 잘 보았습니다!!
I'll forever be grateful to you because your lovely video of my former home near Cheongdam-yeok, (Samseong 2-Dong) brings to my Cancer-ridden Mind excellent memories of not only Kangnam-ku, but Yongsan, Mapo-daero, and the Western Seoul areas of Omokyo, Mokdong, Shinjung, and Kachisan. Thank you very much.
1962년 미국은 달에 가려 로켓 만들려고 하고 있고 일본은 올림픽 개최 준비중이던 시절... 대한민국 서울에 많은 사람들이 나룻배로 수도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한강을 건넜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는 이유...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 그건 이념과 진영 논리론 제발 해석하지 말자
도요다 다리쥬 대중이랑 영삼이 이사람둘 저때 대통령 했으면 이나라가 이만큼 발전될수 있었을까 저는 생각해봅니다 ■김대중이는 70년대 일본에 가있을때 재일인들과 함께 (한민통)이라는것을 만들었다~ 그 한민통 조직원들 속에는(조총련) 사람들이 있었다~ 김대중이는 일본에서 한민통 결성식을 앞두고 중앙정보부 요원들한테 두들겨 맞고 납치되어 한국으로 데려져와서 서울 어느골목에서 풀려났음 김대중이는 그때 일본에서 한국으로 데려져 와서 한국에 와있었고 그후 일본에서는 그 한민통 소속 인간들이 일본에서 주한미군 철수주장 시가행진 했음~ ★80년대 전두환 영웅님께서 대통령 안되고 김대중이가 80년대 대통령 됐더라면 우리나라는 어떠케 됐을까 ?? 나는 궁금하네 내가 생각 하기엔 80년대에는 영웅전두환님께서 80년대 대통령 잘 되셨다고 저는 생각해봅니다●노태우측으로부터20억원 돈받은 김대중 ■김대중이를 30여차례 만난적있는 영국인기자 헨리스콧 스톡스씨가 (책에쓴내용) 그때는 그래보지않았지만 뒤에생각해보니 김대중이는 오직 자신의 권력과 이익추구만을 탐닉하는 카멜레온같은 사기꾼이자 위선자라고 책에썻네 ●김대중이는 전남신안군에 태어나지 말고 평양이나 원산이나 함흥청진이나 신의주같은 저 위쪽에 태어나서 김일성 하는일에 태클걸고 발목잡고 사사건건 김일성 하는일에 시비걸고 살았으면 좋았을텐데 라고 나는 생각 해봅니다
12:25 이름만 강남 4로일뿐 강남과는 거리가 먼 곳입니다. 앞에 보이는 교차로에서 좌회전하면 영등포가는 길이고 우회전하면 서울교를 거쳐서 여의도 광장으로 가는 길입니다. 88도로로 통합이 되어서 지금은 없어진 길 이름이죠. 여의도 광장 끝에 빤히 보이는 그 유명한 흥국생명 건물과 사자상이 보입니다. 이 흥국생명 건물은 7-80년대 국군의 날 행사 사진이나 KBS건물 사진에 꼭 곁다리로 껴들어가 덩달아 유명해진 건물입니다. 그래서 흥국생명이라는 회사도 그 사세에 비해서 왠지 모르게 익숙한 회사가 되었죠... 아마도 엄청난 광고료 절약 효과가 있었을 겁니다.
I am the first non korean person commenting on this page. I like Korea it was a hardy and warm culture. Those picture show that it was modernized too fast. It looks like buldozed entire scenery to build high rise buildings, but i like to see there are still many traditional houses.
맞습니다! 왜 성동구인가 하면 청담동에 봉은사절이 있구요! 그절을 가려면 지금은 성수동에서 청담대교를 건너야 하는데 ... 옜날에는 그자리가 뚝섬이라는 유원지 가 있었고 한강이 흐르고 바로 청담대교를 건느듯 나루배를 타고 건너서 봉은사로 다녔읍니다! ... 그래서 그곳이 성동구라 하였지만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 광주였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옜날에는 지금의하남! 성남! 이 전부 경기도광주 였었기 때문입니다!
77년 8살 반포국민학교 입학 후 그 해 겨울 어느 날 방배동 살때 버스 288을 흑석동 중대 앞에서 타고 삼호아파트에서 내려야 하는데 어려서 잠깐 졸았다. 말죽거리 종점에 도착해 기사 아저씨가 “너 왜 안내리냐고”하셔서 “삼호 아파트에서 내려야 합니다” 하니 아저씨에게 꾸중을 들었다. 그때 기억의 말죽거리(현 양재동)는 눈으로 앃인 그냥 논밭이였다. 버스는 돌아 상문고 서울고를 지나 금방 이수교에 도착했다. 돌아 올 때 졸지 안았다. 그때는 강남구 방배본동이였는데 그러다 언제 서초구 방배본동으로 바뀜. 어렸을 땐 강남 서초동이 참 멀었음. 압구정 대치는 뭐 말할 것도 없고.. 점실이 있는지 중학교 때 알게 됨. “아버지 말죽거리 땅 100평이라도 사 놓으시지 그러셨어요!”…😂😂
저희 고모부가 충남일대에서 제법 돈좀 만지셧던 부자이셧는대 1970년 당시에 현금 6천만원으로 서울로 이사오셔서 그돈으로 일부는 은행에.집어넣고 일부는 구로공단일대에서 임대사업을 하셧는대 그돈으로 강남으로 가서.살자고 저희아버님이 그렇게 설득을 해도 말안듣고 아직도 독산동에서 딸랑 조그만 건물 그대로 살고게십니다 ㅋ
저기 서초동 아래 몽돌 마을이 보이네요..우면산에서 보면 .....꽃마을 ㅎㅎㅎㅎ1972년그당시는 밤에 나가서 노는땅에 새끼줄 치고 들어 오면 낼 바로 그 땅에 농사 지어 먹을 수도 잇엇 져 ㅎㅎㅎ..주인업는 땅도 많앗고..신중 국민학교 부근에 큰 화분 굽는 화분 공장이 잇 엇지요 ㅎㅎ꽃 마을 아래몽돌 마을에 가면 ..신동 면 장 집 도 크게 ㅎㅎ선황당 고개넘어..방배동 미군부대 쓰레기장에 가서 용산 미 8군 부대 에서 실려온 도라무 통에 들어 잇는 짬 밥 만이 먹 엇져 큰 햄들 ..고기들 ..ㅎㅎㅎㅎ좀 잇엇니간 ..가야 병원 자리인가 ㅎ288번 시영버스 ㅎ아리랑 모사 앞에 ..이수교 주유소 옆에 쓰레기장 ㅎㅎㅎ 삼익 아파트..그 쓰레기장이 지금은 어더케 변햇을 까 싶네요?그 큰 스레기 장이..? 신세계백화점에서 말죽거리 들어 가는288번 시영버스 타 보신분들 계실가 싶습니다 ㅎㅎ 순환도로 공사 한다구 국립 극장 짓구,,,참 그립습니다 그 당시가 요 ㅎㅎ
Poorest regions once in 70's but 2020's in richest regions in progress of economic development. From the economic level as Africa into the rich ones like US.
공무원 아파트는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는 70년대 초에 영동 사거리 쪽에서 살았고 (주소도 기억 나네요 논현동 153-1번지), 논현국민학교를 다녔었는데 한 친구가 공무원 아파트에 살아서 놀러 갔던 기억이 있네요. 저 시절이 그립네요, 그리고 어머니가 보고 싶네요.
■김대중이는 70년대 일본에 가있을때 재일인들과 함께 (한민통)이라는것을 만들었다~ 그 한민통 조직원들 속에는(조총련) 사람들이 있었다~ 김대중이는 일본에서 한민통 결성식을 앞두고 중앙정보부 요원들한테 두들겨 맞고 납치되어 한국으로 데려져와서 서울 어느골목에서 풀려났음 김대중이는 그때 일본에서 한국으로 데려져 와서 한국에 와있었고 그후 일본에서는 그 한민통 소속 인간들이 일본에서 주한미군 철수주장 시가행진 했음~ ★80년대 전두환 영웅님께서 대통령 안되고 김대중이가 80년대 대통령 됐더라면 우리나라는 어떠케 됐을까 ?? 나는 궁금하네 내가 생각 하기엔 80년대에는 전두환님께서 80년대 대통령 잘 되셨다고 저는 생각해봅니다 ●노태우측으로부터20억원 돈받은 김대중 ■김대중이를 30여차례 만난적있는 영국인기자 헨리스콧 스톡스기자 출신이 김대중이를 평가하는 것을 책에 썻는데 헨리스콧 스톡스씨가 (책에쓴내용) 그때는 그래보지않았지만 뒤에생각해보니 김대중이는 오직 자신의 권력과 이익추구만을 탐닉하는 카멜레온같은 사기꾼이자 위선자라고 책에썻네 김대중이란인물은 사기꾼이며~위선자였다 언제나 술수를노리는 연기자였고 사람들의 속마음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뒤에서 조종하는데 몰두하고 교활하기 짝이없는사람이다 이렇케평가했고 헨리스콧스톡스기자~ 자신도 김대중이의 연기에 놀아난 한사람이였고 수많은 한국인들도 김대중이에게 속아넘어갔다~라고 책에썻다네요 ●김대중이는 전남신안군에 태어나지 말고 평양이나 원산이나 함흥청진이나 신의주같은 저 위쪽에 태어나서 김일성 하는일에 태클걸고 발목잡고 사사건건 김일성 하는일에 시비걸고 살았으면 좋았을텐데 라고 나는 생각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