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영화리뷰채널의 팝콘&콜라 입니다! 오늘 추천드릴 영화는 독일과 소련군들의 전쟁배경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고스트 스나이퍼 입니다. 러시아에 침략한 독일군. 하지만 쥐도새도 모르게 독일군들을 습격하는 한 사나이가 있었는데... 독일군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 그의 정체는?! 영화보기: movie.naver.co...
10:46 저도 이 영화를 봤는데. 설명에 약간의 오류가 있는 것 같아서 글 적어봅니다. 이 부분에 진짜 레드고스트는 '코스디야' 라고 설명하셨는데. 맞지만 아닙니다. 앞의 레드고스트도 진짜 레드고스트 입니다. 영화 앞부분에 누군가가 레드고스트는 죽지 않는 불사신이라고 말하는데. 영화 마지막 부분에 이 말은 레드고스트는 죽어도 또 다른 이가 레드고스트가 되어.. 계속 이어나간다는 뜻으로 해석이 됩니다.
고증상 문제도 있습니다. 시기는 1941년 겨울인대 독일군이나 소련군의 소총을 제외하면, 기관총과 독일군 장병들이 운송 수단으로 이용하는 차량 디자인 다른 화기들이나 동계 설상 위장복이 대부분 1942년 이후를 넘어가야 등장할 물건들입니다.1941년 겨울까지는 혹한기 전투에 대비해 혹한기전투준비가 전혀안되있어야 하는것이 정확한 독일군 전투복장이니까요. 1941년까지만도 보병부대 또는 전군을 통틀어 독일군 주력기관총은 MG-34인대 물량공급이 부족했나보내요.영화촬영용으로 개량한'PKMG-34'를 소품으로 등장시켰다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던 상황이며,1941년에 없던 때 이른MG-42등장은 고증꽝입니다.
Я участвовал в этом жестоким войне и попал в плену у немцев и 16 лет прожил в Германии через Турецкий посольство вернулся домой в СССР и у меня есть много ордена и медали 🖐️
09:01 Granaten werfer 라고 하는 대사가 나오는대 직역하면, 수류탄 발사기 인대 이게 어떻게 '유탄발사기' 인지 저도 의아합니다. 전 군에서 보병 지원화기중대 박격포 병과 출신이라 보기만해도 알겠더군요. 번역을 대체 누가했는지 이 영화를 볼 우리나라 관객 중 남자들이면 군 전역자들과 그 중 에서도 밀리터리 메니아들이 상당할터인데, 대략이라도 기본적인 어학상식 군사상식이 번역 작업에 겸비된 제작사 직원들이 하였다면 이런 자막해석상 최소한의 옥의티가 없었을겁니다. 등장하는 전투장비와는 별개로 속전속결 전략으로 단기전 승리만 생각한 독일군 수뇌부의 안일함 때문에 동계혹한기 전투에 대해 전혀 준비되어있지 못한 독일육군장병들 전투복 복장상태가 여름 전투복과 헝겁을 몇겹씩 밑창에 쇠징이 박혀있는 전투화의 한기를 막기위해 헝겁 발싸게와 양손과 얼굴에 그리고 소지하고있는 총기도 얼지 않토록 미라붕대처럼 몇겹씩 칭칭감은 상태로 있어야 하는 모든 독일군 장병들이 거지꼴 같이 나와야 그것이 오히려 정상인데, 기관총도 1942년에 가야 나올 MG-42이니 오류에요. 93년작 토마스 크레취만이 중위로 나오는 영화 스딸린그라드 처럼 흰색 위장전투복은 42년 말에 가야 겨우 최전방 일선급 부대들에 지급되는 상태 좋은 것들이니 고증도 영 엉망입니다. 당시 독소전 개전 초 첫 겨울을 맞이한 독일군 군수물자 보급품 고증상 1941년에는 등장할 수 없는 것 이며, 이 영화에서 가장 안타까운 전사자인 이병(Soldat:은 장병,군인,병사도 되지만 부대안에서 장병 계급의 말딴 최하위 계급을 뜻하니까'이등병'이라해야 맞다. 영어로는 프라이벳 정도) 이병 군터(Gunther)가 스딸린그라드 제6군단의 한스 중위 분대에 베속 되었다면, 그도 어쩔 수 없이 민간인처럼 보였던 소련여군 사살 상관의 명령을 받고 쏘기전 소련 저격수의 총에 맞고 죽는 일이 없었을 것 입니다. 적어도 한 마음이었던 한스 중위의 부하로 살아남아 선한 고참에게 GG라는 별명을 얻은 뮐러 같은 동료들과 후회 막심해 하였을 듯 영화는 실제 역사의 '레퍼토리'를 거르지 않고 흘러가기에 상황상 전멸이라는 부대 전멸과 함께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지도 모름
친위대는 독일 정규군과 다르다. 점령지 치안과 첩보활동을 맡은 SS와 달리 무장친위대(SA)는 준군사조직으로 직접 전장에 투입되었고 한 때 백만에 가까운 규모를 가지기도 했다. . 대체로 이들은 정규군보다 소위 짬밥이 적은 젊은 나치당원이 대부분으로 계급은 낮아도 우월의식은 대단해서 정규군과 심각한 갈등을 빚는 일도 자주 발생했다. 친위대 대위가 부대병력을 지휘하는 게 가능하다는 얘기다.
Твой папа считал? Или сами немцы стояли со свечками и считали немок ? 400 000...идиот. Говори уже 100500 000....спасибо скажут пусть, что Германия осталась, как государство и немок только изнасиловали, а не сожгли в Освенциме. Хотя это вранье.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라는 책에서 그 부분이 언급되죠. 종전 이후의 소련 사회에서의 여군 인식은 창ㄴ여서, 결혼 상대로 기피 대상이라서 혼삿길 막힌다고 치료를 위해 보훈 관련 서류가 필요한데 그걸 다 버리는 여군이나, 며느리가 군인이였다고 바로 그 자리에서 냉대를 하는 시댁, 형제들 앞길 막는다고 한밤중에 짐싸서 딸을 내쫓는 부모 등...덤으로 독일군에 포로로 잡혔다가 귀환한 사람들이 독일군 스파이 취급받고 굴라크로 끌려가는 것도 언급이 되죠.
번역이 잘못된 부분 많아요. 09:01저건 분명 박격포에요. 제가 보병 박격포 병과 출신이라 잘 알아요. 저걸 '유탄 발사기'라고 단어 대로 번역한 걸 보면, 누가 번역담당을 했는지 모호 합니다. 당시 보병 지원화기에서 소총의 총구앞 소염기에 끼워서 발사하는 총류탄이 유탄 발사기 개념인데, 박격포를 09:01에서 발포명령을 내리는 지휘관이'Granaten werfer(그라나텐 베르퍼)유탄발사기 '라고 하내요. 직역하면 수류탄 발사기지만 정확하게 조금이라도 군사병기체계에 명확한 사전지식을 겸비해서 번역에 착수하였다면, 대부분 군대를 전역하거나 어학 군사지식을 겸한 밀리터리 메니아 같은 관람하는 분들이 번역이 잘못된 '번역 옥의티'를 찾을 일이 없을겁니다.
해설해 주시는 분도 마지막에 레드 고스트(코르디아 전)를 사살한 인상이 톰 쿠르즈를 닮은 독일보병을 일반병사라고 해설하셨는대, 일반병사가 아닙니다. 국방군 보병부대장교입니다. 독일군 병과와 계급장은 전투복 디자인 요소와 카라장 견장으로 많이 구분합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친위대 대위의 전투복이 갑자기 국방군 보병용 일반사병 전투복 차림이였는대, 추위 속에 알몸 상태로 얇은 여자옷 이라도 걸쳐 입고 가깥으로 보병분대가 임시병영으로 거처하는 오두막 집의 총격전에서 멘몸으로 간신히 살아남아 황급하게 도망쳐 아군부대와 합류해 급하게 전투복을 착용한 것이라 짐작하지 못했다면, 자칮 고증상 오류가 될 여지도 충분합니다. 아군끼리 전투복은 서로 바꿔서 입을 수 있는것이 아니니까요.
계급이'Koronel(코로넬:대령)혹은 육군'Oberstarzt'(오버슈타츠: 대령)급 이상 되어야 'Kommandant'(코만단트:사령관)이라고 할 수 있지요. 고작 대위(Haupfmann:하우프만)어찌 사령관이 될 수 있는지 ㅎㅎㅎ 그리고 대위가 오두막 집안의 상자를 열어보고 못 본척 하는 병사를 불러 'Soldat ist das!'(뭐야! 이병 다시 열어봐) 지시하는 장면에서 병사 (Soldat:졸닷 장병, 병사, 이등병)라고 부르는 장면은 병사라고 부르는게 틀린 건 아니겠지만 군대니까 군대식으로 이병 이라고 번역해야 더 적확한 번역이겠다고 보이내요.
고증 오류가 하나 더있다면 1941년의 독일 육군 보병 전투복 에는 하얀색 혹한기 전투용 설상 위장 복이 없습니다. 독일군은 겨울에 대비하여 겨울을 나게될 동계장비지급등등 준비없이 단기전 승리를 염두하여 장기전에 대비하지 못했으니까요.기관총도 MG-42나 MP-40 소련군의 Ppsh41등 모두1942년 이후에 가야 등장하는것 들이니까요.
우리는 남북이 분단되어 냉전의 희생제물이 되었다. 그래서 독소전의 진상을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소련군은 남이 아니다. 소련군 안에는 수많은 우리의 항일투사들이 입대하여 싸웠다. 소련군에 들어가서 일제의 관동군을 박살내기도 하고 나찌 독일의 침공으로 궁지에 몰린 소련군대를 위해서 목숨을 바쳐 싸웠다. 지금 러시아 가보면 소련군의 묘지명에서 우리에겐 익숙한 성씨를 발견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렇게 소련군에 들어간 우리 선조들 가운데는 초인적인 무공을 발휘하여 독일 침략군을 무찔러서 소련 내에서도 유명한 영웅이 된 경우도 있다. 그의 이름을 기리기 이해서 하바롭스크나 노보시비리스크 와 같은 시베리아 도시에는 우리 항일 투사의 이름을 기리는 거리명이 있다.
전투경험이 있는 조선의용군 출신 부대가 입북하여 북한 인민군 전력을 3분의 1 이상 증강시켜주었는데, 이는 김일성으로 하여금 남침 전쟁 도발 결심과 전쟁 승리의 확신을 심어준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고 한다.(중략) 1950년 6월25일 아침, 38선 남진 보병 21개 연대 가운데 47%인 10개 연대가 위의 만주 조선족 부대였다고 한다.(중략) 6·25 전쟁 참전은 동족 간의 전쟁에 참가한 것으로 조선의용군의 불명예라고 했다.’(‘조선의용군의 독립운동’ 351~3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