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10월 12일 일본 도쿄 국기관. WBA 페더급 세계타이틀매치 15R. 사상 6번째로 3체급을 제패한 알렉시스 아르게요의 페더급 3차방어전으로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8강까지 진출했고, 프로데뷔 후 18연승(16KO)으로 일본 복싱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로얄 고바야시의 세계타이틀 첫 도전 경기입니다.
80년대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사회주의 혁명의 희생양 아르게요 .세번이나 세계챔피언을 지낸 아르게요가 그동안 벌어들인 재산을 몰수당했는데 . 그심정이 어땠을지 ...( 최소 2백만불로 추정 ) 80년대 니카라과는 공산화되기 일보직전까지 갔죠 . 70년대 소모사 장군은 자유경제를 장려했고 아르게요나 에디 가소는 대우받았는데 ... 1980년 산디니스타 준장의 사회주의 혁명이 불고. 아르게요의 저택은 집회의 집결지가 되고. 재산도 국가소유가되죠 ." 링의 귀공자 .에서 > 반동분자 . 부르쥬아 로 분류되면 얼마나 비통했을지...( 에디가소는 별로 벌어놓은게 없다쳐도.그래도 몆만불은 남아있었겠지만 ㅜㅜ ) 에디 가소는 70년대 소모사 장군이 집권당시 현역 세계챔피언이자 정부군 육군 소좌로 근무한바 있죠 . 정권이 바뀌고 거의 공산화되자 아르게요도 , 에디 가소도 재산몰수에 감시대상으로 전락한 사실이 슬픕니다 에디가소가 군사정권때 육군 소좌로 복무한건 맞지만 ... 본업은 어디까지나 복싱선수 ( 스포츠선수 ) 인데 ㅜㅜ 정치는1도 모르고 관심도없는 복싱영웅이 왜 정치적 희생양이 돼야했는지 ... 소모사 장군은 에디가소를 상당 지원했었죠 . 아르게요는 훗날 니카라과 수도 마나과 시장에 당선 . 정치활동을 한바 있습니다 ( 몰수된 재산을 일부는 돌려받았다는말도 있는데 ㅜㅜ 확실한건 모르죠 ) 사실 돈은 마요르가가 제일많이 벌었죠 . 코토 , 트리니다드 , 호야 , 바르가스 , 모슬리 전까지 합치면 ㅎㄷㄷ 최소 3천만불정도 ?! ( 거의 다 탕진했을것으로 추정 ) 아르게요의 사인에 대해서도 여러설이 있지만 . 진실은 저 너머에
@@user-ip6nw4qt1z 글의 의도를 읽고 해석하는 수준이 ... 나는 정치는 1도 관심없소 . 아르게요라는 명챔피언의 복싱이야기를 쓴것이고 . 아르게요의 국적이 우연히 니카라과다보니 , 그나라의 당시 정치적상황을 조금 묘사한것울뿐 ... 나는 정치는1도 관심없으나 , 한 국가의 지도자를 표기할때 정식 호칭을 쓴거뿐이오 . ( 예를들면 공식적인 자리에선 김의원장 , 김회장 , 김관장 ... 이라표기하듯이 ) 술자리도 아니고 ...공적인 자리에선 사상관 관계없이 예의를 갖춰야 하는거요 . 역사적 지식도 갖춘양반인듯한데 ...반말도 삼가고 ... 좋은 주말보내시길
최고 좋아했던 아르게요 아론프라이어 와 경기는 실지로 아르게요 승리 왜? 프라이어는 아르게요와 두번의 경기 둘다 약을 복용하고 경기를 했기 때문에 실지로는 아르게요 승리, 프라이어가 미국인이기 때문에 이문제는 조용히 지나감, 너무도 좋아했던 아르게요 멋진 남자 구독과 좋아요 알림 보냅니다
승승장구하다 아론프라이어 에게 두번다 처절하게 무너진 링의 귀공자 아르게요. ㅠㅠ '경량급의 신화' 루벤 올리바레스 (52전 51승 50KO 와 '링의 귀공자' 알렉시스 아르게요의 경기는 훗날 1977년 당시 사라테 (45연승 무패 44KO)와 알퐁소 자모라 (29연승 무패 29KO) 라는 KO율 100% 의 경기와 비견되는 명경기 였다. 4전5기 신화 홍수환을 두번이나 녹아웃시킨 인파이터인 KO머신 자모라를 1회 KO로 이긴 사라테는 52연승 51KO 라는 전적을 자랑하며 새로운 'KO 신성'인 윌프레도 고메스와 타이틀전 을 가졌으나 4회 KO패. 36연속 KO(32연속 KO 라는 주장도 있음) 를 자랑했던 고메스는 체급을 올려 도전하게 되지만, 살바도르 산체스 라는 '카운터의 마술사'를 만나 처절하게 농락 당하며 8회 TKO패 하고 만다. 난데없는 패배에 당황한 고메스는 다시 자신의 체급으로 내려가 17연속 KO방어 라는 당시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하고 타이틀을 반납하게 된다.
옛날 학교 들어가기전 1974년 셋방 살던 형 당시 중3이던 형 신문배달 하고 나서 복싱도장 가서 권투연습하고 길거리 에서 줄넘기 하던거ㅈ기억나네... 그형이 "나는 알렉스 아르고 " 선수 처럼되고싶다고 했는데.. 나는 "저형 바보네 권투는 유제두 선수가 최곤데" 그런 생각했는데 당시 그형은 저런 스타일 선수가 되고 싶은거 였네...!
60~70년대 한국 복싱이 인기 있었을 때, 황 선생님 같은 해설을 들을 수 있었더라면... 하긴 먹고 살기 힘들던 당시, 그런 능력을 갖출 수는 없었겠죠. 선배 세대도 선배 세대의 어려움이 너무 많았으니... 해외에서 세계 챔피언을 획득하면 카 퍼레이드를 하던 시절... 그립습니다. 추신=== 아르게요의 공식 사인은 자살로 발표됐지만, 황 선생님이 잘 아시듯 의문의 여지가 많았습니다. 니카라과의 '정치적 지형' 때문에 말입니다. 하여, 타살로 보는 의견도 여전히 만만치 않고요. 감사합니다.
체중 감량을 많이 해서 그런지 아르게요의 움직임이 다이나믹 해 보이진 않네요.두란을 피해서 한체급 밑으로 내렸다는데 그냥 라이트 급에서 싸웠으면..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체급을 올리면서 프라이어라는 괴물을 만난게 정망 안타깝지요. 어쨌든 너무 깡마른 모습이 안타깝네요.
비운의 고바야시.. 고메즈 , 아르게요와 싸워야 했을까..옛날에 니카라과 에디가조 한국에 1월달에 와서 임재근이랑 미들급 타이틀 방어전 했었는데 세계역사상 최악의 졸전중 하나로 기억. 게다가 1월달에 남미서온 참피언 얼어죽게 한다고 경기중에 장충체육관 문이란 문은 다 열어놔서 경기 직관 갔다온 작은 아버지 감기 들어서 씨발씨발 하셨던거 기억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