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가 군사력은 강력한 군사강국이었지만 문제는 고구려가 내전이 진짜 심각했다는것. 백제도 내전과 암살이 심각했지만 고구려는 상상을 초월할정도로 심했음. 애초에 고구려는 다민족국가였기에 민족 구성부터가 단합이 힘든데다가 영토가 거대해서 여러 세력들이 난립해서 전쟁이 가능했고 국내성파 vs 요동성파 vs 안시성파 이런식으로 독자적인 군대로 마치 중세 봉건제 같은 형식이되갔음. 특히 장수왕 초기때 백제,신라,가야를 정복할수있었는데 장수왕이 초기때 백제,신라,가야를 공격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장수왕 시기에 거대한 내전이 발발해서 내전을 끝낼때까지 정복전쟁을 시작하지 못했다는게 가장 큰 핵심임. 아무래도 고구려에는 말갈족 기병대도 존재했기에 내전은 피할수없는데 고구려는 쇠망할때까지 내전이 끝나질 않았음. 신기한건 오히려 영토가 작고 군사력이 약한 신라는 민족구성이 하나였기에 단합이 잘되어서 내전이 자주 일어나지 않았었음. 물론 통일신라때는 내전과 암살이 심해지진 하지만.. 아무래도 내전은 영토가 거대해지면 발발할수밖에 없는듯...
@@sangjunlee7939 고대국가는 전쟁을 진행하기만 해도 타격이 큰데다 한반도 지형 특성상 한 점으로 뚫는 방식으로 공격을 해야 하는데 이런 방식의 전쟁은 방어가 무조건 유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몸집차이에 비해 성과를 내기도 불리한데다가 까딱하면 식량난와서 난리나는데다가 흉년까지 닥치면 바로 멸망임 게다가 신라백제 공격하다가 중국애들 건너오면 그대로 gg이기 때문에 섣부르게 판단할 수 없던거지 고구려가 무식해서 통일을 못한 것이 아니
애초에 명나라가 임진왜란때 조선을 처음에 도와주는걸 꺼려했던 이유 중 하나가 '폐하 고구려의 후예들이 그리 쉽게 무너질 리가 없사옵니다 신중하시오소서'라고 말한 기록이 있는데요 ㅋㅋㅋ 한족의 나라 명나라가 그랬던 기록이 있는덕 고구려가 중국역사? 솔직히 말도 안되죠 ㅋㅋ
고조선 부여 고구려는 한민족의 역사입니다. 땅으로만 그 뿌리를 삼는것이 아니고 생활양식으로 같은 민족임을 구분 할 수 있습니다 상투를 틀고 상,하의 일체형 의복이 아닌 바지와 저고리를 나눠입고 소금에 절인 채소류의 짠지를 먹고 된장을 담가 먹으며 온돌을 사용하는 한민족이 중국과 일본의 문화와 다른점입니다. 이미 고조선이 건국되던 그 이전시기에도 우리 조상들은 온돌과 상투의 문화가 있었습니다. 북방유목민족의 변발과 기름에 채소를 익혀 먹는 중화문화와 완전히 별개의 독창적인 문화를 유지하던 것이 우리 조상님들 입니다. 고구려가 중화의 세력이라니요 이미 중국은 고조선을 동이로 칭하며 다른 문화권의 사람이라고 사마천의 사기에서부터 별개의 다른 이민족 국가라고 여겼습니다. 고구려를 중국역사라 하는 것은 독도가 옛부터 일본땅이라는 허무맹랑한 소리와 같습니다. 고구려는 고조선의 옛 영광을 기억하는 토착민의 열망으로 탄생했습니다. 고구려는 북방의 영토를 개척한 자랑스런 한민족의 역사입니다.
옯습니다. 현재 역사는 중국의 24사에 의해서 또 일본의 식민사관에 맞춰서 5종으로 나눠 내놓는 말도 안돼는 암기역사입니다. 그리고 고구려는 훨씬 광활한영토 입니다. 현재 KBS2와 더민주에서는 우리나라가 중국의 속국이며 유랑민으로 전락하게 예기해놨습니다.우리나라는 중국에서 보앗을때 하늘나라엿지 국가가 아니엿읍니다. 그리고 국가라는 개념은 월래 제주도(탐라도)에서 시작 됩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고구려인 들이 자기자신들이 고조선의 후예라고 여겼는지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최근 (한 10여년전) 에 중국 북망산에서, 고구려 유민 무덤들에서 묘지명 여러게가 발굴 되었는데, 그 내용에, 고구려 유민들을 "요동 조선인" 또는 "요동 삼한인" 이라고 기록해 놓은게 확인되었죠. 다시말해, 고구려 멸망직후 고구려인들은, 자기들이 고조선의 후예, 삼한의 후예 라고 여겼다는걸 증명하는거죠.
0:48: 📚 고구려는 700년 동안 만주와 한반도를 통치한 왕국이었다. 4:20: 📚 고구려는 중앙 집권 국가로 발전하였으며, 중국의 침략과 국내적 위기를 겪으며 체제 정비를 통해 강화되었습니다. 8:55: ✨ 고구려는 남한강 유역으로 진출하며 중력 경북동해안을 연결하는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하였고, 고구려의 남진 정책으로 백제는 옹진으로 천도하였으며 신라와 동맹을 맺어 대응하였습니다. 19:32: 🔥 고구려와 신라가 나당동맹을 이루어 백제를 공격하고 멸망시켰다. 13:11: 📚 고구려는 주변 국가와 활발한 교류를 통해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고 전파하며 강대국으로 성장하였으나 중국의 영향과 신라, 백제의 공격으로 세력이 위축되었습니다. Tammy AI 로 요약했습니다. 구글에 Tammy AI 쳐보세요 아주 유용해요 긴긴 비디오 볼때 시간 없을때!
그런데 광개토는 대왕이 아니라 태왕으로 써야하는거 아닌가요...사전에도 보면 한자가 클 태 자로 되어있는데 대왕은 담덕태자가 왕위에 오른지 얼마 안됐을때의 얘기일텐데 주변국가들 아래로는 백제,신라 위로는 후연 비려 말갈까지 다 제후국으로 두고난 뒤로는 대왕이 아닌 태왕으로 불렸다고 전해졌던걸로 압니다 그래서 드라마 제목도 대왕이 아닌 태왕으로 했었던거구
교과서에는 언급이 없지만, 태행산맥을 기준으로 가운데에 평지가 있답니다. 그곳을 기준으로 좌측이 요서, 우측이 요동이 된답니다. 한때는 한사군의 위치이기도 합니다. 중국의 군사지도에는 많은 자료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이한것은 북경이 북평(북평양)으로 기록되어 있는 점입니다. 가급적이면 1960년대 이전의 지도가 도움이 될껍니다.
@@user-tw4hu4hx6x 국뽕 날조라구요? 간단한 것 두가지만 확인 해 보실래요? 삼국사기에 보면 백제가 말갈과 북쪽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데 저 지도상으로 보면 어떻게 말갈과 마주하죠? ㅎㅎ 두번째 교과서에서 나오는 서희의 강동6주는 왜 그렇게 작은 영토인가요? 6주인데 ㅎㅎ 주가 어느정도 크기라야할지 생각 해 보세요. 주-부--군-현 순서입니다. 주는 현재의 도 정도 크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