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7.2 일본 규슈 미 공군 이즈다케(현 후쿠오카공항)기지에서 한국 공군 조종사가 F51D 머스탱 10대 인수받아 직접 몰고 대구 동촌 K2비행장으로 귀환하죠. 딘 헤스 조종사의 애기 이름이 I fly by faith를 번역한게 信念의 鳥人이죠. 1957년 딘 헤스의 전기영화로 록 허드슨 주연의 Battle hymn가개봉했죠.
최초의 공군 파일럿들 상당수가 일본군에서 제로기 몰다 온 분들이라...처음엔 무스탕에 적응을 못해 저공비행으로 지상공격중 그대로 지상에 박아서 순직하는 경우도 있었다더군요...경차급의 제로기를 몰다가 육중한 세단급인 무스탕을 모니까 조종성이 전혀 달라서 말이죠.. 물론 무스탕 공여받은 극초반 이야기지만요
저때 우리나라가 머스탱을 미국 으로부터 구입하려고 했지만 미국에서 이를 단칼에 거부해 이에 한국은 공군 장병들과 국민들의 성금까지 긁어 모아, 캐나다에서 퇴역해 민간에 넘어간 T-6 10기를 구매했습니다. 이때 도입한 T-6은 기존 T-6을 기반으로 최소한의 대지공격능력을 부여한 AT-6이며 당시 신문기사에 따르면 남선전기, 체신부, 전매청 등 당시 회사나 공공기업에서 단체 기부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체 이외에도 비행기에 탑재하기 위한 M2 기관총 20정과 탄약 5000발, 1년분 부속품과 연료도 함께 구입해서 한국전에 사용을 하다가 유엔군에서 P-51 머스탱 줄테니 모두 일본으로 보내라는 제안에 한국도 마침내 머스탱을 사용하게 되며 큰 활약을 하지만 MIG-15 와 MIG-17 전투기의 등장으로 F-86 세이버에게 밀려나죠.
그런데 정작 많은 한국인들은 초창기 한국 공군 전투기하면 F-51 머스탱이 아닌 F-86 세이버를 떠올린다고 하죠. 그도 그럴게 세계 항공전 영화 TOP 10에 빠지지않는다는, 천하의 군가국가 그 자체인 북한도 제작에 실패한, 신성일 주연의 영화 빨간마후라의 주연기체인 F-86 세이버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죠.
초기의 미국전투기 P-36, P-40,그리고 P-51의 문제는 초기에 알리손엔진에는 고공성능을 위한 과급기가 달려있었는데 그때의 미육군항공대(후에 미공군)이 고공성능이 필요없다고 떼어버리도록 해서 발생한 문제입니다. 다행이 P-51은 영국엔진으로 살아날 수 있었고 실제로 지상가까이에서 싸운 쏘련전선에서 싸운 P-36은 많은 쏘련의 에이스를 만들어 냈읍니다. 무스탕을 만든 노스아메리칸(후에 노스롭)사는 전후 F-86, F-5, T-38, F-17(후에 F-18)등의 많은 좋은 기체를 만들어 냈읍니다. 그리고 무미익기를 좋아한 킨델버거 덕분에 무미익 폭겨기 B-2를 만들었읍니다. 이제 다시 차기 폭격기의 개발사로 지정되었으니 새로운 노스롭의 기체를 기대해 보게 됩니다. 덧붙이자면 노스롭은 스텔스기 경쟁에서 F-23을 만들어서 F-22와 경쟁해서 탈락했는데 F-23의 자료를 중국이 가져가서 자신의 스텔스기 J-20을 만드는데 참고했읍니다.
일본 뱅기 안습 3대 1. 무장이 약함. 기관총은 고무줄 기관총마냥 약한데다, 탄두의 상태도 매우 덜떨어져서 무장이 약함 2. 장갑이 약함. 엔진을 1차대전때 쓰던거 비스무리한거 가져오는데, 무슨 떡장을 칠하겠음? 3. 인력이 부족함. 허구한날 카미카제에 반쟈이에 쌉지랄 하는데 특히 카미카제 때매 에이스 조종다 다 뒤짐
@@kakeghey 예 말이 안되죠? 제트엔진 특성상 출력이 올라가려면 시간이 오래걸리고 속력이 나와야되는데 이착륙시에는 이게 안되서 이륙이 굉장히 무겁고, 착륙할때도 공습당하면 어찌할 도리가 없습다. 이때 머스탱이 기습해 격추했고, 이미 한번 속력을 얻은 슈발베는 머스탱이 격추할 수 없었습니다.
현재 실제 비행가능하록 관리가 잘된 상태의 외국 유투브 동영상도 많다. 무스탕외 2차 대전 참전 전 세계 각국의 폭격기 수송기 전폭기 정찰기 전투기들을 찾아 볼 수 있다. 뿐만아니라 해군의 전함 잠수함과 병력및 군수물자 수송차 장갑차 전차같은 지상장비차량운행영상과 보병 포병등 전투 제현 코스프레 영상도 있다.
독일군 요격대 조종사1:야 이제 호위기 없을듯 요격하러 가자 독일군 요격대 조종사2:읭? 저거 호위기 아님? 조종사1:엉?! 조종사2:일단 가자 저애들 X임 조종사1:오~키 ㅋㅋ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출격이었던 것을... 투투투투다다다다다! 조종사1:뭐야 저 괴물! 조종사2:끄아악!!!!!!!!! 두두두두두두다다다다! 영국군 조종사1:이게 바로 P-51D 머스탱이다 이자식아ㅋㅋ
@@seokyi8577 연료 문제와 엔진의 잦은 고장이 있었던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상승력 속력 화력등이 P51D 머스탱을 앞섰고 연료문제는 본토로 날라오는 폭격기들을 잡기에는 충분했죠 그리고 이미 투입됐을땐 공군들이 싸그리 씨가 말라버려서 그렇다할 활약을 못한거지 기체 자체에는 문제가 없지않았나요?
혹자의 말에 따르면 한국 최초 전투기는 머스랭. 조종사는 일본육군 출신이거나 그것에서 훈련받은 사람들.머스랭은 일본 전투기에 비해 성능이 압도적으로 낫지만 기체 특성상 조종간이 상당히 묵직했단다. 그래서 625때 미국 비행교관들이 이점을 강조하며 조심하라고 경고했단다. 그런데 과거의 적에게 교육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일부 조종사는 기분 나쁜 티를 다 내며 오히려 비웃었단다. 그래고 전투기에 탑승 후, 출격했고 상당수는 직접 체험하고 나서야 '아~ 방심하면 좆되겠구나. 조심해야겠군.' 이렇게 마음먹었단다. 그런데 세상사 꼭 운이 나쁜 사람도 있다.북한군 전차를 향해 기총사격한 후 다시 상승하려는데 조종간이 너무 무겁다? 일본 전투기였다면 벌써 상승하고도 남았는데 머스랭은 너무 묵직하고 이제야 기수가 올라 가려... 그러다 전차에 쾅! 졸지에 가미가제 공격이 되었다. 그리고 매체를 통해 총탄이 떨어지자 의기가 솟아 전투기로 탱크에 직접 부딪쳐 적을 격퇴했다고 선전해 댔다. 그당시 누구도 탱크 1대의 가격과 전투기 1대의 가격을 말하지 않않았다. 탱크는 엄청 튼튼한 것 같지만 상부가 무척 취약(현대에도 마찬가지)한데 상부공격은 전투기가 최고. 그래서 탱크는 전투기의 밥이라는 사실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625당시에는 먼치킨 같은 무기인 머스랭으로 비교적 핫바리인 탱크를 박고 산화한 '영웅(?)'만을 이야기 했고 그래서 전쟁 영웅이 되었다.라고 어떤 사람이 책을 썼더라.
누가 그런 책을 썼는지...고 이근석대령의 이야기 같은데 엔진에 피탄되어 화재가 난 상태에서 충돌했다는 설이 있고, 훈련부족으로 기체 특성을 파악못해 충돌했다는 설 두가지입니다. 후자가 맞다고 보더라도 기체를 양도 받으러 일본에 간 것이 50년 6월 27일, 기상악화로 훈련을 할 수 없어, 기체를 양도받아 비행훈련을 하면서 대구에 도착한 것이 7월 2일, 급박한 상황 때문에 첫 출격이 3일, 사망이 4일 입니다. 즉 P 51을 몰아본 기간이 아무리 길게 잡아도 1주일이 안된 상황이였다는 것이죠. 이건 훈련부족인 조종사가 모는 P-51 말고는 북한군 전차를 막을 상황이 딱히 없던 당시 상황의 문제였지, 조종사가 비난받을 일이 아니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미 육군 해군 항공대와 영국 프랑스 소련공군과 달리 2차 대전 중반부가 넘어가면서 일본 제국 육군 해군 항공대와 나치독일공군은 하루 수십회 이상 반복되는 출격을 할 수 밖에 없던 상황이므로 조종사들이 잠시 자대 비행장에 착륙해서 밥먹을 시간이나 화장실이나 심지어 커피나 담배한대 피울 시간없이 쉬지않고 긴장속에서 대기하다 바로 공습경보가 울리면 또 다시 출격할 수 밖에 없는 전투비행으로 인한 피로가 최고조에 달해 누적되었는점을 감안해야하며 가뜩이나 대전 중반에서 종전까지 항공기와 조종사 연료 부품 전투기 생산시설등 모든것이 부족한 상황속에 직면하는 연합군의 전략폭격으로 인한 본토 대공습에서 아돌프 갈란트 같은 독일공군총감은 제공권 방공망 전투에서 공격형 방어전술인(Hit & run:치고 빠지는 전법)으로 전술상 우위를 점하고 홈 그라운드에서 홈런하는 잇점을 최대한 살리며 수십명의 전투기 에이스 조종사들이 대거 출현하지만 곧 바로 전장에서 누적된 피로도를 이기지못해 격추당하고 전사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봐야합니다. 이탈리아 항복후 홀로 유럽하늘의 제공권을 담당했야만했던, 독일공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