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i Jin(Professor of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Education)'s Performances in the St. George's Hall (UK)- 한국교원대 음악교육과 최진교수의 영국 공연실황 j0378@hanmail.net,#최옥삼류#가야금산조#가야금#최진
[최진 가야금, 그 찬란함과 웅혼함!] . 글: 심진섭 작곡가 오래 전에 최진 교수(한국교원대학교)가 영국에서 연주한다면서 편곡을 의뢰하기 위해 나의 작업실을 방문했었다. 그리고 나에게 편곡할 곡의 스타일을 알려주기 위해 가야금 병창을 잠시 들려주었던 적이 있다. 처음 가야금 소리가 울리고... 나는 깜짝 놀랐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였다. 맑고 명쾌하며 힘찬 소리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야금 악기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소리는 악기 자체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허공에서 울리고 있었다. 신기하여 물었다. 악기가 어떤 악기냐고. 좀 크기가 작아보였는데... 최진 교수의 대답은 의외였다. 보통 가야금이 비행기에 들어가기 어려워 작게 만들고 아예 반 잘라서 접어서 운반한단다. 허허... 악기를 잘라서 연결하여 연주하면 통으로 만든 악기보다 울림이 훨씬 방해를 받을텐데... 그런 악기로 연주한 소리가 바로 그 놀라운 소리였다니~??!! 다시 물었다. 어찌 연주해서 그런 소리가 났냐고. 대답은 간단했다.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 연구했단다. 연주는 계속되고... 또 다시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엄지로 뜯으나 검지나 다른 손가락으로 뜯으나 또한 손톱으로 튕기는 연튀김까지도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모든 소리가 고르게, 맑고 명쾌하고 힘이 있었다. 이 일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작곡을 한다고 많은 악기들을 경험하고 컴퓨터음악을 하면서 음향에 관해서도 적지 않은 지식과 경험을 가졌던 나였기에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보통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가끔 그 한계를 벗어날 때도 있다는 것을 나는 경험을 통하여 알고 있다. 바이올린을 처음 배우면 악기를 제대로 잡고 올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악기를 끼고 있는 목과 턱도 아프고 지판을 잡은 팔이 오래 견디지 못하고 자꾸 아래로 쳐진다. 오른손 활을 잡은 팔도 편안한 자세가 아니라 팔꿈치를 들고 버틴 상태에서 손목은 부드럽게 해야 하기 때문에 기본자세를 오래 유지하기조차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오랜 연습을 통하여 점차 어려움은 풀리고 나중엔 자유롭게 운지와 활을 사용하게 되는데, 고수들은 이중음을 글리산도로 정확하게 음악적으로 연주하고, 두 손가락으로 두 줄을 누른 상태에서 다른 손가락으로 튕기는(왼손 피치카토) 묘기(?)도 보인다. 또한 연주소리도 처음엔 물리적인 원리에 의한 단순한 소리가 나지만 오랜 연습과 연구에 의하여 그 이상의 소리를 내는 것도 가능해 진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악기에서 울리고 그 울림이 공기를 울려서 사람의 귀에 들어오는 원리이다. 그러니까 악기를 연주하면 그 소리는 악기에서 나는 소리로 들리고 그 공간의 울림이 좋은지 나쁜지 공간음향은 별개로 인식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오디오 스피커의 경우 모노로 들을 때와 잘 만들어진 스테레오로 들을 때의 차이는 크다. 이것은 공간음향이 어떤 상태인가에 따라 단순 모노 사운드가 될 수도 있고 황홀한 입체 사운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오디오 음향 분야에서도 신기술이 발달하여 옛날과 지금은 많이 다른데, 옛날엔 잔향(Reverberation) 중심으로 매스터링을 했다면 지금은 입체음향(Surround Sound)을 더욱 중요하게 다룬다. 그 결과 소리는 분명 스피커 진동판을 앞뒤로 진동시켜 나는 것인데도, 듣기에는 그 소리가 스피커에서 멀리 떨어진 공간에서 나는 것처럼 들린다. 최진 가야금 소리가 그런 원리와 연관이 있다. 가야금 줄을 튕겨 진동이 만들어지고 그 진동이 안족을 포함한 악기의 공명판과 함께 악기 전체를 공진하게 하고 그 진동이 공기를 울리는 원리는 같지만, 줄 자체의 떨림이 만드는 소리(원시발음)보다도 그로인한 공명(악기 전체의 울림)이 일정 선을 넘어 크게 들린다면 그 소리는 공간을 흔드는 힘이 강해지고, 이윽고 악기에서 분리되어 소리가 들리는 일종의 ‘착음錯音현상’이 발생한다. 이 원리는 모든 악기가 동일한데, 피아노의 초보자와 명연주자의 소리가 얼마나 다른지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빠를 듯~^^ 이론적으로는 그러하지만 그런 경지에 이른 연주자를 실제로 만나기는 평생에 어려운 일이다. 이 후 최진 교수는 영국 공연을 다녀왔고, 당시 한해에도 몇 번씩 독주회를 했는데, 직접 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최진 교수의 연주를 실제로는 처음 듣는 자리였기 때문에 특별히 기대하지는 않았었는데, 그 명쾌한 맑은 소리로 시작하자마자 곧 바로 음악 속에 빠져들었고 뒤로 가면서는 점점 “~~? 이것이 가야금 산조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전에 내가 들었던 그 가야금 산조가 아니었다. 혹 프로그램이 잘못된 것인가 하여 프로그램까지 다시 확인했던 기억이 난다. 보통 ‘거문고는 남성적, 가야금은 여성적’이라고 한다. 나도 공감했던 말이다. 그러나 최진의 가야금은 여성적이라는 것이 전혀 맞지 않았다. 그의 음악은 불꽃이 번쩍였고 전체 울림공간(음악세계)을 자유자재로 다루었는데 그 깊이는 깊고 광대했으며 거스를 수 없는 힘으로 가득하였다. 한마디로 ‘웅혼한 음악세계’였다. 거문고와 특히 다른 점은 언제나 밝았다는 점이다. 최고의 연주자라 해도 인간적인 면이 느껴지는 것이 보통이다. 줄을 튕기는 순간 느껴지는 멈춤과 살이 줄에 쓸리는 소리, 그로인해 찰나의 리듬적 오차와 음색적으로 무디어지는 현상이 발생하고, 그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최진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거침없다.” 모든 음들이 순간의 오차 없이, 음색적 명쾌함을 잃지 않고 마치 잘 만든 전자 가야금으로 연주한다면 날 것 같은 명쾌함을 모든 음 마다 실어 그의 음악세계를 마음껏 표현한다. 그로부터 한참의 세월이 흐른 후 최진의 자작곡을 유튜브 영상으로 들었다. {제48회 최진 가야금독주회 "異音" (20.09.03 한국문화의집)} 최진은 역시 최진이었다. 옛날에 최진의 자작곡을 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최진의 특유한 음악은 아니라 생각되어 특별히 말할 것이 없었는데, 이번에 본 영상의 자작곡은 최진의 음악적 진수 중 적으나마 일부가 드러난 것으로 생각한다. 위에서 말한 ‘최진의 웅혼한 음악세계’ 중 작은 부분이지만 드디어 창작으로도 터져 나온 것으로 보인다. 옛날 베토벤도 자신의 독특한 음악을 세상에 내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었다. 나는 최진의 다음 창작곡에 더욱 기대를 가지고 응원하고 싶다. 또 한 가지 내가 느낀 것은, 최진의 연주에는 최진은 없고 음악만 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뽐냄이 없다. 이 것은 국악계와 양악계 사이에 크게 차이가 나는데, 서양음악 연주회에서는 자신의 화려한 기교를 자랑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경우를 자주 느낀다. 그러나 국악에는 그런 경우가 훨씬 적다는 것도 중요한 점이라 생각한다. 아마도 음악을 유흥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수양의 목적으로 행해왔던 선조들의 음악관이 전수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대학시절만 해도 서양음악을 하는 국내 연주자들이 그리 높은 수준이 아니었다. 예를 들면, 플룻을 전공하는 학생 중에는 바람 새는 소리가 절반인 학생들이 많았다. 그러다가 점차 훌륭한 스승들이 많아지고 지금은 동네 학원에서 배워도 바람소리를 별로 내지 않는다. 나는 가끔 깜짝 놀랄 때가 있다. 학생의 연주를 듣는데 내가 알고 있는 최상의 소리를 듣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더우기 대학생 뿐 아니라, 서울예고 등에는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 되어있는 학생들이 무더기로 있고, 지방의 예고에서 조차 그런 학생들을 만난 적이 있다. 2015년 부조니 콩쿨의 우승자 문지영은 유학을 간 적 없는 한예종 2학년 학생이었고, 심사위원장으로부터 “지금은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자연스런 음악성을 문지영으로 부터 발견했다”는 이 시대에 참으로 귀중한 평을 들었다. 서양음악 분야에서 세계 유수 클래식 콩쿨을 한국인들이 휩쓸고 있음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서양음악 분야에서도 우리 한국이 세계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 한국의 전통음악을 우리가 세계로 펼쳐야 하지 않겠는가. 옛날 파가니니는 자신의 신묘한 바이올린 연주법을 혼자만 부리고 제자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음으로써 1대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최진의 가야금 연주법도 그렇게 될 것인가? .
I am happy to learn to play it in Texas if I find the right master to study under and Instrument. Absolutely it should be spread around the world. This instrument should be played with the accompany of the drum and drum master I think :) It tells a story with each song, much like Pansori. The only other instrument I liken to it in the story aspect, is the guq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