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최초의 해외파병이자 1970년대 경제도약의 밑거름이 된 베트남 파병. 그런데 전투병력 파병 이후 미국과 작전지휘권 문제를 놓고 갈등이 발생한다. 한국정부가 지휘권확보에 그토록 집착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알아본다. 또한 월남파병 군인들의 무수한 희생도 함께 조명한다. 다큐멘터리극장 53회 - 월남특수 (1994.6.5.방송) history.kbs.co.kr/
저희 집안 어른 한 분도 해병대 대위로 월남 전 참전했다 전사 하셨습니다. 참으로 마음 아픈 희생의 역사입니다. 참전하신 분들의 희생과 피땀으로 대한민국은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하였으며, 동남아시아, 동유럽 사람들까지 이주해와 외국인 노동자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방송을 시청하면서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 눈물이 납니다. 무엇보다 전사하신 분과 부상 당한 병사 가족,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통 받는 분께 마음의 부채와 죄송한 마음에 고개 숙이며 국가의 무한한 지원과 보상을 부탁 드립니다.
월남파병(맹호.백마.청)때 우리나라 수출 목표 1억불 탑이 울산 로타리 중앙에 수출 1억불 목표 달 성 이라는 탑이 세워 졌을 때 였을 때 였 다. 더 이상 우엇을 설명 할 필요가 있을 까?! 저는 월남에 도 착 해 보니 병장으로 진급되여 깜짝 놀란적이 있었든 기 이 난다. 노무현이는 국내 t/o가 없어 상 병으로 제대 했 다. 오늘날 이렇게 잘 살 게 된것도 오직 그 당시 월남참전자의 땀과 희생이 밑 그름 이 되였다. 참고로 월남 참전자의대우 는 미군 과 먹는 칼로 리까지 똑 같은 대우 로 파병했으며 미군 병장의 봉급이 수당 합쳐 약 50만원 이 돈이면 한국에서 엇 만한 즉 한달 윌급으 로 집 한채를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 파월용사들은 한푼 도 받지 못하였다. 이제는 파월용사들 은 그 합당한 대우를 해야 한다. 박근혜는 왜?침묵을 하고 있는 지?! 비겁자!?
일본이 한국전쟁 기반으로 세계경 제 선진국으로 일어났듯이 오늘 낱 한국도 선진 경제국으로 도약 한것도 월남참전 에 참전하여 국익 을 이룬 참전용사 들이 아니였다면 세계경제 10위권 에 들 수 가 있었 겠는가?! 지금이라도 늧은감이 많이 있지만 그 당시 미군과 똑같 은 대우로 파병한 파월용사들의 봉급을 한푼도 빠짐 없이 돌러주시기 바랍니다. 국가에 서 착복한 댓가를 한푼도 빠짐없이 돌려 주시고 국가 의 정의를 바로잡 아 주세요. 자손만대의 귀감이 될 것 입니다! 박근혜는 부친이 저질은 역사의 중요한 사실을 양심고백 하시고 전직 대통 령으로서의 본분 다 하시기 바랍니 다!❤😢😂😊
군시절에 국가가 강제로 월남참전에 투입해서 14개월 총알받이는 온몸에 상천뿐인 영광스러운 온 몸 얼굴 손등 까지 흉터의 별을 달고 귀국했는데 대접 값이 월 삼씹구만원 취급을 하네요 오일팔은. 유꽁짜쯩도 주꼬 월 오십만원을 주냐 어떤 개놈들이 개같은 짓을 했냐 이놈들 싹 쳥소를 하고 그돈을 참전유공자 대우를 위해 줘라😂
저희 아버지 월남 참전용사 시고 현재는 암 걸리시고 치매도 있고 뇌경색도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에서 30만원 주시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구 보훈병원 가서 암 노경색 치매 증상 있으시고 국가에서 지원금 더 주는거 있다고 검사 하니 전부 정상이다 해택은 줄수 없다고 하던군요 더 웃긴건 의사가 걸어 봐라 손 잡아봐라 이게 끝 입니다 지금은 암으로 아산 병원 가서 치료 받고 오고 합니다 이게 나라인가 생각 합니다 맹호부대 입니다 몸이 안좋으신거 보니 자식으로 가슴이 아프네요
나는 경리장교(소위)였는데 훈련 중 허리디스크로 다쳐서 수술 후 부산3육군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이때 월남전 참전용사 중 다쳐서 다리 등이 절단된 사병이 많았다 이들은 국내에서 근무 중 다친 사 병 대비 몇배의 보상금 등을 받았 다 따라서 국내와 파월장병 부상자 간에 보상금 차이에 대한 불만으로 밤새도록 장돌을 던지는 등 치열한 싸움을 벌인 사례가 2 번 있었다 밤새도록 유리창이 박 살나는 소리가 들렸다 병원장은 환자인 사병들을 강당 에 소집하여 야단치고, 팔다리가 짤린 것만 슬퍼하지 말고 병원에 서 가르치는 여러 기술(Tv, 라디 오 수선, 목공기술 등)을 배우라 고 충고하면 참석한 부상병들은 훌쩍 훌쩍 울다가 나중에는 강당 전체가 울음바다가 되곤 하였다 씁씁하나 또한 감동적인 광경이 어서 가끔 생각나곤 한다 이같은 이야기도 자세히 방송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저는 65년 맹호부대 에 귀속되어 퀴논에 도착후 맹호사단 3대대 6중대 소속되 어 치열한 전투경험 하고 66년도에 귀국했던 병사중 한사람으로 당시 까지미국이 약속 했던 전투수당중 월 54달러외에 더이상 의 미국이 보내줬던 금액을 받아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제 당시와는 비교 되지 않을만끔 살게 되었으니 파월장병 들께 속히 여유있게 돌려주어 파월장병 으로 자랑스럽게 긍지와 뿌듯한 삶을 살아가도록 배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1968년 10월 파병되어 십자성부대 105통신 대대 소속이었으나 1중대는 맹호부대 통신을 지원했고 2중대에 소속되어 백마부대 닌호아에서 근무를 하면서 은마2ㅡ12호 작전 동보7호작전 동보8호작전 동보9호 작전에 참여하고 나트랑 앞바다 건너편 흔트리섬에 퍄견되어 6개월간은 미군 통신부대 안에 통신 중개소에도 근무를 했네요 1970년 1월 초에 귀국했습니다.벌써 50년 반세기가 지났네요
백마 28연대 수색중대 근무후 만기제대 71년3월7일 서울시 수도과 근무, 73년3월3일 대조동 순복음 신 학교 신 학 과 입학 78년 12월8일 24회 졸업 ,여의도 순복음 중앙교회 수련 전도사 근무, 일산 순복음 교회 개척 , 베트남 호치민 선교사 5년 활동후 귀국,서울역, 용산역 노숙자 무료급식 28년간 운영중, 사단법인 베트남참전전우회 주앙회 회장 전쟁기념관 입주 계약 했읍니다,
내가 75 살 월남전쟁에 다녀왔습니다 다행스럽게 다친곳없습니다 나라에서 매월 48 만원의수당도받고있으나 지금 동작동국립묘지를비롯하여 5099 명의전사자가있다고합니다 요늘하고싶은이야기 왜 518 유공자는 명단공개를하지몾하게 법으로정해졌나요 518 유공자도 유공자이면 얼만떴떴할까요 나는 참전유공자이라고 자랑합니다 떴떴지몾한유공자 이유가있겠지요 부끄러운무었의이유
저는 68 년에 월남에 파병 되어 나트랑에 주둔해 있는 2 군수 258 병참 중대에서 2종 보급병으로 행정반에서 근무 했었습니다 그 당시에 함께 병영 생활을 하던 동료들이 보고 싶어 지는군요 지금쯤 어떻게들 살고 있는지요 어언 팔십 고개를 바라 보고 있는 지금 모든것은 세월과 함께 지나 가게 되겠지요 모두에 행운을 빌 겠습니다 홍 병장,
허리가 아픈 사람은 어떻게 해야할까? 그물에 걸린 물고기는 그물을 뚫고 나와야 살 수 있습니다. 허리가 아픈 사람은 거짓정보의 그물을 뚫고 나와서 운동을 해야 허리가 튼튼해져서 허리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저는 제 말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흉추11번이 30프로가 으스러져 손상되고 디스크가 87프로가 파괴되어 없어지고 척추전방전위로 허리뼈가 13미리가 어긋나 있는 상태에서 일부러 역도를 심하게 하는 등 일부러 허리에 중상을 자초하고 두 달 동안 극심한 통증을 오직 운동으로 극복하고 오대산을 5시간 종주한 후 병원에 가서 정밀진단을 해보니 허리 2번의 20프로가 골절되어 으스러진것을 확인하였습니다. 대체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70세가 넘어서 흉추11번이 압박골절로 30프로가 손상되고.디스크가 87프로가 파괴되어 없어지고 척추전방전위로 허리뼈가 13미리가 어긋나 있는 상태에서 역도를 배우고 역도를 일부러 심하게 해서 결과적으로 허리2번의 20% 손상시켰어도 다시 역도로 허리근육을 단련시키면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할 것이라는 것을 도대체 누가 알고 있을까? 아직도 운동으로 허리를 튼튼하게 할 수 없다는 말을 믿으며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거짓정보의 그물을 뚫고 나와서 운동을 시작하기 바랍니다, 지난 9월 8일 박담사에서 봉정암까지 5시간 걸어서 일박하고 다음날 6시 소청봉.희운각을 거쳐 신흥사까지 6시간 산행을 했어도 내 허리는 운동만 해주면 끄덕없습니다. 허리가 골절되어도 어떠한 의학적 처치없이 70이 넘은 나이에 매일 역도를 하고 주말에는 밭에서 일을 하거나 등산을 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인류는 농경사회 정착 전 수렵채취생활을 하면서 살았습니다.그것은 달리기.등산과 역도를 의미합니다. 달리기.등산과 역도 또는 자신의 취미나 형편에 맞는 운동을 해야 근육이 단련되어 허리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왜 목 허리 무릎이 아플까? 저자 법무사 이희숙 010-5250-4802 (무료)
교과서에 이런 내용들이 들어가게 해야 합니다. 알아서 교과서에 수록해야지.할 때가 아닙니다. 반드시 교과서에 넣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잘못된 부분, 왜곡된 부분이 있으면 출판사 교과서 쓴 인간들 실명을 거론하면서 강하게 요구해야 합니다. 관련단체, 가족분들이 나서야 하고 향군은 물론 모든 국민들이 나서야 합니다.
박정희 자체가 일본군 장교출신이며 일본과 수교를 맺어 한국의 기업들이 일본기술을 이전받을 길을 연 사람이다. 일본과 수교를 맺어 삼성은 반도체기술을 현대차는 자동차 엔진기술을 포항제철은 철강기술을 이전받을수 있었다. 베트남 파병역시 박정희의 결심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일제패망전 친일을 하던 자들은 거의다 반공을 했고 공산주의자와 싸웠다. 좌익세력들은 모두 김일성에 이득주고 죽임을 당하거나 그의 휘하로 들어갔다. 다음은 채명신의 나무위키로 나와있는 일화로 설명한다. 1913년생인 채명신은 아버지가 독립투사였다고 한다. 그리고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해서 교사를 했다고 나온다. 즉 교사를 임용하는데 아버지의 반일행적 때문에 아무런 제재가 없었던 것이다. 너의 기준으로는 아버지의 뜻에 반하고 일제시대 일본의 교육에 순응하여 사범학교를 졸업한 채명신은 일본에 나라팔아먹는 놈 중에 하나가 아니냐? 한국 근대사를 보며 인물을 평가할때 친일, 반일로 기준을 정할게 아니라 공산, 반공을 기준으로 정하는게 정상인 것이다. 공산세력은 해방이후 쭉 한국을 적대시 해오고 있다. 그런 세력에 붙었느냐, 붙지 않았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일제시대 공부해서 공무원, 교사가 된게 한국에 뭐가 해롭다는 것이냐. 일제시대 성실하게 공부하고 유학한 자들이 한국의 교수, 고급관료가 되어 한국을 이끈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모든 분야가 일본이 선진국이었고 일제시대를 거치며 일본어를 할줄 아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과 일본을 보고 배운 나라다.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노병들을 양민학살자로 몰아가는가는 공영방송 저의가 무엇인지 밝혀야 할것이고 또한 국가를 전범국가로 만들어가려 하는 공영방송 저의가 무엇인지 밝혀야 할것입니다 국가는 젊은 선혈을. 베트남 정글에.뿌려가며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위해 최선의 예우를 하라 !! 전투수당 등등 국가에서 착복한. 자금을 이제는 반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