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정방의 죽음에 얽힌 수수께끼를 그가 묻혔다는 당교와 중국 현지취재를 통해 풀어본다. 신라를 도와 백제를 점령한 당나라 장군 소정방, 신라정벌의 모의를 알고 그를 죽였다는 김유신. 소정방과 김유신으로 대변되는 신라와 당나라의 나당전쟁을 통해 신라 민족통일의 의미를 재조명한다. 역사스페셜 44회 - 미스터리 추적, 신라의 소정방 피살사건 (1999.10.23.방송) history.kbs.co.kr/
@익명 뭐야 당나라군대를 끌여들인 신라는 우리나라로보면 역적인데 당나라가 신라까지멸했어야 우리나라가 약소국을면할수있었을 텐데 원수같은 신라가 외세를등에업고 백제와 고구려 넓은 영토를 당에게 제공하고 겨우 코딱지만한 땅만 남게되것 약소국 주제에 저만살려고 동족을 악의소굴로 몰아넣어 오늘날 신라시대이후 우리조상들이 약소국이되어 숫한 고난을 오늘날까지 겪고있으니 신라는우리조상의 악의근원일 뿐이요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거품 무는것도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채 흔들기 때문이다
신라와 당나라가 7년 간 전쟁을 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게 하여 감사 합니다. 이 당시 신라 문무왕과 당나라 설인기가 어떻게 싸웠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나당 연합군ㅁ에 의해 660년에는 백제를 멸 했다는 이야기는 잘 알고 있고, 그리고 668년에는 고구려를 멸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신라와 당나라가 어디서 어떻게 싸워 당나라를 멸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군대가서 선배나 상급자들이 혼내면서 꼭 하는 말, 당나라 군대냐, 이게 궁금해서 사전도 찾아보고 물어 봐도 어디에서도 알수 없었는데 이제 그 의문이 풀리는군요. 그 당시 우리 조상님들이 똘똘뭉쳐 막강한 당나라군대를 연달아 격파했던 기백과 용기 대단합니다. 당나라군대를 우습게 생각하셨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빌빌거리면 당나라군대 같다고 호통치고 이게 대대로 구전되어 내려 왔군요.
@@MBSHIM-td7ch 중국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나라가 한,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두나라 모두 한족이 세운 나라이고 명은 중국대륙에서 원제국을 쫓아내고 세운 나라라 중국인들이 자부심 쩔걸요..그당시 세계1위인 원을 박살내고 명이 세계1위가 된이유때문.. 싫어하는 나라는 수나라 양제로 알고 있는데 그당시 무리한 토목공사와(황하 대운하) 고구려 정벌 한다고 대규모 인원 징집 해서 몰살되다 시피 한 이유..
@@user-ty1pl1mx7y 명나라또한 그 자만심 심취때문에 결국 완전히 무너지고 끝장나버렸죠... 물론 어떤면에선 세계 그리고 역대왕조중 거의 최고였던 원나라 무너뜨리고 제대로 명성을 가져간 나라이기에 중국인기준 가장자부심 느낄수있는 나라일수는 있겠습니다;.. 수나라야 뭐 통일왕조중에 젤먼저 끝났으니, 그리고 수양제는 워낙 폭군이었기에 그럴만도합니다..
일제때 조선사 편수회에서 조선사35권으로 왜곡 각색하여 이병도 신석호를 중심으로 역사왜곡을 그제자들로 지금까지 식민사관에 메몰되어 후손에게 교육하고 있는게 현실 입니다 참고로 이완용의 조카 이병도 신석호가 편수회에 참여하였고 해방후 서울대총장을 역임하면서 교육부장관도 하고 그 조카 이장무도 서울대총장을 역임하고 그제자들로 지금까지 이르렀읍니다
고구려 3대 단군 여울천자는 9만리 1800봉방 제후들중 산동성 수부과정장으로 유방이 있을때 봉방 제후국 중 진의 영정이 형주지역 중심 봉방 초의 육안국인 육성을 빼앗고 스스로 자칭 천자 행세할때 여울천자가 대노하여 역적 진영정을 치는자 기방 봉방왕에 봉하겠다 공포하자 봉방초의 항우와 유방이 두갈래로 천자군을 나누어 강소성 지역에 있는 봉방 제후 역적 진의 영정을 칠때 유방이 선제 공격해 진 영정이 죽고 아들 호해를 쳐서 정벌한 뒤 항우가 뒤늦게 입성하자 원수 진영정 무덤을 파헤쳐 없애고 유방과 싸울때 유방에 밀려 패배하자 스스로 자결했다 단군 여울천자는 약속대로 유방을 강남 한왕에 봉했다 그후210년만에 한은 봉방진에 흡수 합병됐고 그후 봉방진은 봉방 위에 흡수 합병됐다 그후 봉방촉을 유비가 흡수하니 이것이 봉방 촉한인 후한으로 봉방 오 손권과 봉방 위 조조와 싸운 것이 3국이다 이것을 고구려 학자 진수가 위지 동이전에 기록한 3국지이다
그렇죵... 그래도 엯 김유신장군이용.. 얼마나 미워들 했을까용... 왜냐하면 자기들 땜에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용.. 다들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켰다.. 하는 것은 다 뻥이겠지용.. 왜냐하면은용.. 쉽게 얘기를 하자면 어찌하여 당나라 군사 쪽수가용. 많았기 때문입니다... ㅋㅋㅎㅎ~~ 그러니 백제가 어떻게 맞겠습니까용.. 그렇죵.. 여러분~~~~~ ㅋㅋㅎㅎ~~ 도저히 어쩔수 없었으니까요.. 항복을 하고들 만것이께지용. 쩝~~~ 헐~~~~~ 음~~~~~~ 흠~~~~~~.
그래 1300년 동안 이어져 온 고대 한국의 엄청난 유적을 도로공사 하느라 쳐묻어 버리고 장하다 장해. 이러니 후진국 소리 면치 못 하지. 고조선도 중앙아시아 유럽 몽골 등에서 재조명 하면서 그 진실이 밝혀지는 시점에서 우리가 얼마나 식민사관과 중국사대주의에 빠져 우리의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잃고 셀프자학질 해왔는지 깊게 통한의 반성을 해야 함. 우리민족은 정말 대단하고 훌륭하다 확신하는 일인.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거품 무는것도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채 흔들기 때문이다
@@user-uv6yi5wu8y 한민족이 요동과 만주등 북방대륙의 영향권을 상실한건 발해의 멸망 때문이지 신라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요 발해를 신라가 멸망시켰나요? 그리고 발해는 고구려보다 훨씬 넒은 영토를 거느린 대제국이었고 건국초기 당나라와의 전쟁에서도 2차례나 대승을 거뒀을 정도로 막강했습니다
2022년에 다시봐도 재밌네 학계에 연구나 1990년대 후반이 상당히 활발했었던듯 서양역사에서보면 이시대가 그리스 페르시아 전쟁사와 과정이 비슷함 그리스의 맹주가 스파르타 아테네 테베 였던듯 한반도에는 고구려 신라 백제 이고 페르시아는 대륙을 통일한 수 당 이고 인물들의 과정이나 교류 반영과 쇠퇴 여러부분에서 동서양의 역사가 매우 비슷한 과정이라고 보임
@@user-tl7wd6cr5n 너 충격먹을 이야기 하나 해줄께 삼국시대엔 고구려나 백제가 갑옷,의복및 문화기술이 찬란한 시기임. 삼국 사절단 그림에도 나와 있는데 신라 사절단은 맨발에 남루한 누더기를 걸치고 있음.ㅎㅎ 그당시 백제는 금세공 기술이 세계 초일류 국가였음..백제대향로,금관및 악세사리가 현재 기술로 복원이 어려울 정도다는 전문가들 소견..애초에 신라는 북방 오랑캐 흉노 유목민족이니 문화자체가 발전할수 없는 야만국가임..통일신라 시대부터 신라가 비약적인 발전을 하는데 그이유가 고구려,백제 기술자들이 신라시대와 합쳐져 그런거..바보야
고려시대 지금의 예산 대흥면 사람들 정서가 희한하네요. 임존성이 있는 산 아래에 침략군 장수의 사당을 세우고 제사까지 지내다니요. 백제 부흥운동때 장렬하게 전사한 조상님들 생각은 안했나? 저 봉수산 남쪽 15km 지점에도 숱한 백제시대 성터가 몰려있어서 당시 사람들도 백제부흥군 이야기를 몰랐을리가 없었을 텐데 말이죠
김용철님~ 김구선생님은 미국CIA의해 제거 당한것입니다~ 구한말 매국노 이완용의 비서였던 이승만이 이완용의 심부름으로 미국 정부인사를 만나러왔다가 미국에 정착하며 미국의 스파이노릇을하였고 이러한 사실을 몰랐던 미국에 있던 동포들은 이승만을 독립 운동가로 착각하고 동포들이 힘들게 노동으로 벌은 돈을 상해임시정부에 독립자금으로 보태달라고 이승만에게 맏겼었는데 이승만은 동포들이 힘든 노동으로 모아준 독립자금을 10분에 일만 상해임시정부로 보내고 나머지 돈은 착복하여 호의호식하며 살았었습니다~ 그러다가 일본이 패전하고 우리나라가 독립을 하자 미국은 미국의 스파이 이승만을 한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만들어 미국의 꼭두각시로 삼고 우리나라를 편하게 지배하려고 하였죠~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의 강력한 후보 중 김구선생님, 여운형선생님 등을 제거하고 이승만을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으로 만들어 세우게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군정의 시대가 도래하게 됩니다~ (🚫우리가 잘몰랐던 사실 1.김구선생님을 저격한 안두희는 미국 CIA 소속 한국지부 요원으로 안두희가 김구선생님을 겨냥해 쏜 총알은 빗나가고 안두희와 같은 시각 다른 곳에서 미국이 비밀이에 배치한 스나이퍼가 쏜 총에 김구선생님께서 돌아가시게 된것입니다~ 김구선생님이 저격당한 장소에 두 발의 총탄의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한 발은 안두희가 쏜 총알이었고 나머지 한 발의 흔적은 미국 CIA가 스나이퍼의 흔적이었습니다~ 2. 이승만이 "미국이 일본대신 한국을 지배해달라고", 서신을 미국쪽에 보냈는데 이 서신이 어찌어찌 상해임시정부로 들어가 김구선생님 손에 들어가게 되어 이승만은 상해 임시정부의 독립 운동가의 지위를 박탈당하게 됩니다~)
@@user-pd2wp3tt7l 김구가 언제부터 한국에서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음? 이승만의 자유당이 60%가 넘는 의석을 차지했고 김구의 한독당은 15%도 안되는데 그런 정당의 영수가 유력한 대통령 후보? 좀 역사를 소설로 쳐 배우지 말고 팩트로 배워라. 한국에서는 애초 김구가 대통령이 될 수가 없는게 글마가 천민 출신이거든. 해방 후에도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신분제 세습풍토가 강하게 남아 있었는데 다수의 한국인들이 천민 노비출신인 김구에게 표를 줄 이유가 있겠냐? 이승만은 조선 왕조 혈통이라는 사실이라도 있다지만 김구는 뭐가 있는데? 노비출신들조차도 같은 노비에게는 끌리지 않는 법이다. 자기들도 높은 곳을 바라보고 싶은데 잘나고 귀한 사람을 지지하고 싶어하지, 자기같은 놈을 지지하고 싶겠냐?
당나라는 한족의 역사가 아니다 당태종이 수나라의 왕족과 친척이었고, 그들의 모, 아내 , 며느리 까지 선비족이었다 자신의 형을 죽이고 형수를 자신의 부인으로 맞이했다 이것은 선비족의 풍습이다 당헌종도 며느리 양귀비를 아내로 맞이 한것도 선비족 풍습임 그의 아버지가 살던 지역도 선비족 집성촌이었다 그냥 외성씨 이씨라서 한족이라고 말하는데 이것도 의심스럽다
나당 전쟁 승리의 의미를 처음으로 하나된 민족성의 발견이라고 정리하면서 프로그램은 끝내는데요.. 그 하나된 민족성이 어째서 250년이나 흐른뒤에 또다시 후백제 후고구려 라는 후삼국으로 다시 갈라질수가 있을까요.. 땅덩어리라도 크면 그럴수잇겟다 하겟는데.. 좀만한 땅에서 그때도 갈라지고 지금도 갈라지고.. 이눔의 민족은 도데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