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의 마지막 행적에 관한 의문들을 풀어본다. 고려 왕건에 항복한 경순왕과는 달리 항복은 거부하고 금강산으로 들어갔다고 알려진 마의태자의 이야기는 사실일까? 예전 통일신라 영토 곳곳에서 발견되는 마의태자의 전설과 지명, 유적 등을 통해 신라부흥운동의 실체를 파악한다. 역사스페셜 65회 - 신라 최후의 미스터리, 마의 태자 (2000.4.15.방송) history.kbs.co.kr/
젊은 마의 태자의 절망적이면서도 분노에 찬, 신라 반항복 의지... 또 마의 타자를 따르던, 신라땅 곳곳의 저항군 레지스탕스들... 결국 마의태자와 그후손들은 발해 및 여진, 말갈세력과 합심해 금나라를 세웠다. 그후 후금, 개명해 청나라를 세워 중국을 지배했다. 지금의 중공은 엄밀히 말하면 한민족 소유다. 중국공산당이 동북공정을 추진해, 이를 감추려 물타기짓 하는 것... 우리 한국인들은 이 일을 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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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1 TV 사랑합니다. 가장 신뢰하고 많이 시청합니다. 헌데 최근들어 뉴스를 제외하면 정치와 경제에 대한 프로그램이 적어서 타방송 시청을 하게됩니다. 권력과 억압에 굴복한 언론은 생명을 잃은 겁니다. 본래 KBS로 돌아가 공영방송의 본분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힘껏 후원합니다. KBS1 TV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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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순왕의 후손인데 백제의 잦은 공격으로 백성이 굶주릴 정도로 힘들어져서 자기를 희생하고 백성들의 목숨을 구하는 쪽을 선택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들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지만 어쩔 수 없었던 아버지의 선택도 이해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네요 포석정에서 술잔만 기울지 말고 평화로울 때 힘을 길렀더라면 역사는 또 바뀌었을지 모를 일인데 고려란 나라가 그리 나쁘진 않았으니 불행 중 다행ㆍ
샬롬 / 경순왕이 무능한게 아니고, 견훤의 힘에의해 임명되엇지만, 신라를 다시 일으키려했는데,, 부하장수들 마저 배신해버려요, 싸울 군인이 없는 것이죠 그래서 왕건에게 항복했고 > 부하들은 안전과 직위를 보장 받고 > 백성들은 죽임당하지안호고 > 결혼시킨 딸의 후손들이 나중에는 고려의 중추세력이 되엇슴 잘못된 선택은 아니죠,,,, 그당시에는 징기스칸 할애비가와도 신라를 일으키지 못했을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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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지명을 지금이라도 조사해서 기록 해 뒀으면 좋겠어요. 제 고향 마을에서도 '알터'라는 지명이 있었는데 요새 젊은 사람들은 잘 쓰지 않죠.. 이런 고유 지명들이 한세대만 더 지나도 다 사라질텐데 참 아쉽습니다. 도로명 주소를 시행할 때도 이런 지명을 활용하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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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태자는 현재 인제 상남 빈도가 35년 전 수도하던 곳에 와 계심 그 산의 신령은 1천 5백년 전 신라왕자, 마의태자도 금강산에서 공부 후 자신의 선대가 있는 곳으로, 경순왕은 25사단 71년대 소속 지역 일명 연천군 백학리"고랑포"에 자신의 집 (산소)에서 남면 대왕각을 오고 감. 옆에 군 초소가 있어 자주 가 뵈었슴. 수고들 하셨슴. 기회가 되면 옥세바위도 찾아뵙고 옆에 마의태자 제각도 건립해드릴 생각이다.
마이태자가 피해자 코스프레? 였나? 하는게 있었는데,,, 물론 저의 짧은 생각이 그랬다는겁니다. 금강산 들어가서 삶을 놓고 살다갔나,, 하는거였죠 근데 그게 아니라니 역사의 줄기를 찾아서 오해를 풀어주신 이 프로그램에 감사합니다. 역사를 잊은자에게 미래는 없다는걸 다시 깨우치게 됩니다.
젊은 마의 태자의 절망적이면서도 분노에 찬, 신라 반항복 의지... 또 마의 타자를 따르던, 신라땅 곳곳의 저항군 레지스탕스들... 결국 마의태자와 그후손들은 발해 및 여진, 말갈세력과 합심해 금나라를 세웠다. 그후 후금, 개명해 청나라를 세워 중국을 지배했다. 지금의 중공은 엄밀히 말하면 한민족 소유다. 중국공산당이 동북공정을 추진해, 이를 감추려 물타기짓 하는 것... 우리 한국인들은 이 일을 잊으면 안된다.
망국의 왕족은 호강은 해도 자기 마음대로 살기는 어려울텐데, 자기가 산에 들어가 살고싶다고 해서 그럴 수 있었을까요. 더군다나 항복에 강경하게 반대한 왕자라면 반란 세력의 구심점이 될 가능성이 높을텐데, 후백제와의 결전을 눈앞에 둔 고려가 그냥 내버려둘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금강산이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첩첩산중이니..예전 625때도 지리산 걑은곳에 부장공비들이 숨어들어가 저항했듯이 ... 오늘 영상보니 청주 인제 여러지역을 거치며 신라재건을 꿈꾸다 여의치 얂자 마지막엔 금강산에 들어가 조용히 살다 생을 마감한거 같내요 고려왕조에서도 산에들어가 세상과 단절하고 사는 사람을 굳이 처형할 필요성을 못느낀거같고
역사는 봐도 봐도 재밌다. 예전에 제천 친척집에 간 일이 있는데 그 마을에도 마의태자와 관련된 이름이 있더라. 정확한 기록이 없으니 정확한 역사도 알기 어렵고, 게다가 역사란 승자를 중심으로 쓰여지다 보니 패자의 역사는 지워지고, 진실은 시간을 지내면서 전설로 남은 것이 아니었을까.
인간은 누구나 불행을 물리치고 행복을 찾아 이루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개인의 사소한 일로부터 역사를 좌우하는 큰 일에 이르기까지 그것들은 결국 하나같이 보다 행복해지려는 삶의 표현인 것이다. 그러면 행복은 어떻게 될 때 오게 되는 것인가?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욕망이 이루어질 때 행복을 느끼게 된다. 욕망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그 본의(本意)를 흐려서 생각하기 쉽다. 그것은 욕망이 선(善)보다도 악(惡)으로 나아가기 쉬운 생활환경 가운데서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의(不意)를 맺는 욕망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본심(本心)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본심은 이러한 욕망이 자신을 불행으로 이끌어 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악을 지향하는 욕망을 물리치고 선을 추구하는 욕망을 따라 본심이 기뻐하는 행복을 찾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망의 어두움을 헤치고 생명의 빛을 찾아 고달픈 길을 더듬고 있는 인생이다. 불의의 욕망을 따라가서 본심이 기뻐하는 행복을 누려 본 사람이 어디에 있었던가? 인간은 누구나 그러한 욕망을 채울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받아 고민하게 된다. 자식에게 악을 가르치는 부모가 어디 있으며, 제자에게 불의를 넣어 주는 스승이 어디 있을 것인가? 악을 미워하고 선을 세우고자 하는 것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본심의 발로이다. 특히 이러한 본심(本心)이 지향하는 욕망을 따라 선을 이루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이 바로 도인(道人)들의 생활이지만, 유사이래 그 본심대로만 살다 간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성서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롬3:10~11)라고 하였으며, 또 인간의 이러한 참경(慘境)에 직면하였던 바울은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롬7:22~24)라고 개탄하였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여기에서 선의 욕망을 성취하려는 본심의 지향성과 이에 반하여 악의 욕망을 달성하려는 사심(邪心)의 지향성이 동일한 개체 속에서 각기 상반된 목적을 앞세우고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는 인간의 모순성(矛盾性)을 발견하게 되었다.
젊은 마의 태자의 절망적이면서도 분노에 찬, 신라 반항복 의지... 또 마의 타자를 따르던, 신라땅 곳곳의 저항군 레지스탕스들... 결국 마의태자와 그후손들은 발해 및 여진, 말갈세력과 합심해 금나라를 세웠다. 그후 후금, 개명해 청나라를 세워 중국을 지배했다. 지금의 중공은 엄밀히 말하면 한민족 소유다. 중국공산당이 동북공정을 추진해, 이를 감추려 물타기짓 하는 것... 우리 한국인들은 이 일을 잊으면 안된다.
@@Woodoripost 대천역 바로 앞동네 옛날 왕궁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궁말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궁촌리에서 궁천동으로 동이름이 되었지요. 이지역이 경주김 집성촌이 있게되었어요. 김씨 태사공파로 경순왕 3 ,4 째 아들이 경주김씨를 이어왔고 아마 4 째아들이 머물렀을것입니다. 비문을 남겻는데 자손은 절대로 정치하지말라는 글을 남겻다네요. 저도 정월대보름 그곳에서 태어났지요.
@@Woodoripost 신라의 왕족 귀족들이 대거 궁말에 이주하여 살면서 지금의 저수지가 없을때 대천천은 많은 물이 흘러 바다로 흘러갓을것이고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는 해산물과 해조류가 풍성하여 살기좋은 지역으로 중국과도 가까이 교류하는 지리적 특성이 있었지요. 해조류중에 김이 광천 대천에서 맛난 김생산은 이곳에 김씨들이 즐겨먹어 생긴 이름으로 연류된것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는데 이를 널리 알려야겟지요. 이제 역사는 신라와 고구려 발해 역사를 풀면서 신라의 건국 흉노와 경순왕과 마의태자 부터 살펴보기 시작하면서 풀어내야합니다. 이제는 김이 세계적인 식품으로 수요를 충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으니 그 자존심을 지켜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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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스페셜 신라를 찾으면 많은 영상이 있습니다 포석정도 두개의 영상이 있는데 포석정은 술마시고 노는 곳이 아니라 경주 남산에 제를 지내고 음복하던 곳이였습니다 신라 멸망직전 다급한 신라왕족이 남산에 제를 지냈고 그곳이 포석정과 제단이 옆이며 제를 마치고 음복하던 모습이 비하되었다 역사스페셜에 나옵니다
@@user-tx2bh1dv3u 전라도 부안이 관이 된 이유는 마의태자의 증손자가 고려때 벼슬에 올라 그의 아들역시 공을세우고 부령부원군으로 책봉되서 하사받았던 땅이 지금의 부안(옛지명이 부령)땅을 본관으로 삼았기에 부령김씨 즉 부안김씨가 된겁니다. 시조가 태어난곳을 본관으로만 삼는게 아니라 신라왕족의 분파에 따라다르고 어느곳을 터전으로 삼았는가에 따라 달라지는겁니다. 의성김씨 부안김씨 김녕김씨 광산김씨 등등 신라 왕족들인데… 다 경주김씨라고 해야하게요 ㅎㅎ
삼국을 통일하고 당군을 물리처 완전한 국토통일을 이룬 용감무쌍한 화랑도 그런 군이 있음에도 나라가 망할수 밖에 없었던것은 정치권의 자중지란이 원인이 아니였을까 지금에 우리국방 세계의 관심사로 급성장하고 있지만 정치권은 온갓잡새가 쓸데없이 조잘거려 국민을 기만하고 언론은 오도를 일삼는 무리에 불가하다
경순왕릉 우리 동네서 30분 가면 있습니다 파주에는 경순왕 전설이 많은데 경순왕이 신라쪽을 바라보며 천년 신라 복원을 기원했다는 신라 라자 를 쓰는 도라산이 있고 왕건이 영수암을 지어 줬다는 터만 남아 있다는데 DMZ 안이라 가볼 수는 없네요 몇 년전 유인촌씨 하고 혜음원지 용암사 화석정 동행 답사한적 있는데 반갑네요
젊은 마의 태자의 절망적이면서도 분노에 찬, 신라 반항복 의지... 또 마의 타자를 따르던, 신라땅 곳곳의 저항군 레지스탕스들... 결국 마의태자와 그후손들은 발해 및 여진, 말갈세력과 합심해 금나라를 세웠다. 그후 후금, 개명해 청나라를 세워 중국을 지배했다. 지금의 중공은 엄밀히 말하면 한민족 소유다. 중국공산당이 동북공정을 추진해, 이를 감추려 물타기짓 하는 것... 우리 한국인들은 이 일을 잊으면 안된다.
난 신라 경순왕 직계손 계림군파손으로 옛날 우리 육촌오빠네 신라궁중일기가있었는데 아주옛날에 알코올 중독자 육촌오빠가 술취해서 망령된짓으로 궁중일기 책을 찢어서 코풀고 벽지바르고했던것을 정확히 알고있읍니다 그리고 비슷한 지금말씀들을 아버지께 들었읍니다 아버지는 안돌아가셨음 올해 112세인데 그당시 보성고등학교를 나오신 분이었읍니다
젊은 마의 태자의 절망적이면서도 분노에 찬, 신라 반항복 의지... 또 마의 타자를 따르던, 신라땅 곳곳의 저항군 레지스탕스들... 결국 마의태자와 그후손들은 발해 및 여진, 말갈세력과 합심해 금나라를 세웠다. 그후 후금, 개명해 청나라를 세워 중국을 지배했다. 지금의 중공은 엄밀히 말하면 한민족 소유다. 중국공산당이 동북공정을 추진해, 이를 감추려 물타기짓 하는 것... 우리 한국인들은 이 일을 잊으면 안된다.
이명수 / 평소 주변에서 멍청하다고 아무도 말 걸어주지 않죠? 신라역사 = 2천년 금나라역사 = 900년 그런데 금나라 왕족이 타임머신 타고 1천년후 과거로 가서, 신라를 세월다고 믿으면,,그게 바로 개돼지새기라는 거요,,,,, 그냔 밥 처먹을때만 주딩이 벌리면, 멍청하다는 소리는 듣지 않고 삽니다,,,,
현실? 마의태지에게 현실은 신라가 망해가고 있고 자신은 신라의 태자이름로 어떻게든 신라를 살려보려는세 마의태자의 현실인데...무슨 현실 타령을 하는거지? 싸움을 포기해야되는게 현실이라고 말하는건가??? 결과를 갖고 과정을 얘기하고 있는 사람이 뭘 안다고 댓글을 달까? 그럼 맨날 지기만한 유방은 왜 항우와 끝까지 싸워서 승자로 남았을까?
@@jykim475 항우 유방이랑 다르지 유방은 그떄 안싸우고 후일을 도모했으면 어느정도 다시해볼기회가 있었지만 신라는 경주를 제외하고 죄다 고려가 차지한 상황이었는데 인심까지 고려로 넘어간 상태에서 무슨수로 고려에 맞선다는거? 이미 군권까지 고려가 관리하고 고려가 돌봐주지 않으면 굶어죽어갈정도였는데 그게 현실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