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신라에만 여왕이 탄생했으며 여왕의 존재는 역사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당시 신라여성들의 지위를 상속제도와 여성들의 경제활동 등을 통해 살펴본다. 분황사 탑에서 발견된 금은바늘과 선덕여왕과의 관계를 알아보고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의 즉위과정을 살펴본다. 역사스페셜 34회 - 왜 신라에만 여왕이 있었나 (1999.7.3.방송) history.kbs.co.kr/
고대한국 5천년 강력한 모권문명 이씨조선 유교채택으로 가부장제 도입 폐쇄주의로 전쟁대비 못하고 쳐맞음 조선후기부터 가부장제 심화 본격적인 여혐국 시작됨 현대한국 유교를 벗어나며 발전중이다가 현재 여혐 심각해지면서 출산율 0.7에 달해 하지만 전문직 명문대 등 엘리트직군 합격 여성비율 지난 5년 전에 비해 가파르게 상승 중ㅋ 모권문명을 되찾는 날이 한국 세계일류국 되는 날 현대한국 미군정에 의해 기독교 가부장제와 이씨조선의 유교가부장제 혼종으로 여혐 심각하나 전통적으로 교육열 높아 여성교육열이 높으니 똑똑한 여성 dna로 출산율로 저항 중
한국 고대사 연구는 예전 선조들 활동 영역인 만주, 북한 영역에서의 촬영이 필요한데, 근래 중국의 동북공정 추진으로 인한 역사 관련 학술 교류가 어렵고, 북한과도 경색국면으로 역시 어려움이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역사스페셜 홍산문화 등 고조선 이전의 역사와 최근 역사적 발견과 상관관계 조명은 굉장히 의미가 컸습니다. 이런 프로그램이 부활했으면 좋겠습니다.
신라는 세계최초 기행문을 쓴 혜초를 배출하고 실크로드를 왕래하며 동양의 끝에서 로마까지 교역을 했던 위대한 나라입니다. 서역에는 위대한 신라의 문화를 찬양했던 기록이 남아있죠. 또한 고구려나 백제 못지않은 강역을 가졌었다고 일본의 고서에 기록된 있죠. 고구려든 신라든 지금은 우리 조상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뿌리가 다른 종족이었기에 우리가 그시대를 섣불리 추측하고 판단하는건 무리라고 봅니다.
신라는 역사적으로 봐서 매우 매우 특이한 나라며 어떻게보면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선진적이었고 민주적이었다...우리나라는 물론 동아시아에서도 보기드문 세명의 여왕을 탄생시켰고 임금들도 하나의 성씨를 고집하지 않고 박 석 김 세 성씨로 고루 분포되어 있으며 화백제도룰 만들어 군주의 독단이 아닌 여러 신하들의 의견을 취합하려 했다는건 당시의 고구려 백제는 물론ㅍ 후대 고려와 조선 그리고 일본과 중국에서조차 예를 찾기 어려운 매우 독특한 형태의 고대국가였던 것이다...
사실 선덕여왕은 무능을 넘어 매국노에 가까운 암군이었음. 백제가 쳐들어와 연전연패하고 있는데 군사비로 절이나 짓고 빌고나 있었음. 북한 쳐들어오는데 굿거리에 수천억 쏟아붓고있었던거임. 박근혜를 능가하는 개뻘짓. 나중에 진골밖에 안되던 김춘추가 전통성을 강화하고자 숭조사업벌여 대단한 인물인양 꾸민거임
@Choinote 남존여비 뜻을 몰르시나? 신라유물에서도 평등까지 아니더라도 토기나 여러 조형물에서 조선보다 자유분방함을 엿볼수 있고요 조선에서 상상할수 없는 여왕이 집권했죠 또한 성에도 조선보다 개방적였으니깐요 여권이 짓밟혔다? 노비보단 나은 정도 였고요 역사서 기록 조금만 찾을수 있는데 혐오에 물드신거 같은데 역사에 요즘 갈등을 대입해 불편해 하지 마시고요
다부다처의 잘생긴 남자들이 많은 나라 성관계가 자유로웠으나 성관계의 법도가 있던 나라 모권을 뿌리로 모계국가 정통의 나라 여성권위가 높아 여성이 제사장이고 경제고 정치고 다 해먹던 나라 여자꼬마들도 말타고 다닌 개방적인 나라 전세계를 상대로 무역하던 나라 일본에 수출한 도자기의 뽁뽁이를 종이이면지로 하던 부국 유토피아라고 불린 나라 비가 와도 처마 밑으로 걸으면 비를 맞지 않았던 계획도시정비의 나라 무엇보다 자연과 우주의 질서를 탐구했던 지적인 나라
모계는 인류의 시작문명이고 문명이 오래될수록 역사에 모계흔적이 남아있다 고대그리스 모든 신화조차도 전부 여신이 그 주인들이었다고 한다 한국은 유교(부계)탈레반이었던 조선까지도 비교적 모계 풍습을 유지했다가 조선후기 세도정치때쯤 성리학의 썩은물이 깊어지면서 여성을 하대하는 방향으로 부계사회의 권위를 세우기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식민지남성성이라는 것은 사실 이같은 모계사회에서 정신 근대화가 이뤄지지 못한 기형적 부계사회의 부산물이다 모계사회에는 기사도정신이 없다 그들은 전쟁에서 용맹하게 싸울 수는 있지만 본질적으로 여성을 보호대상으로 보기보다는 상위대상으로 존중하고 동시에 의존대상으로 여긴다 모계사회에서 남자의 성공은 강력한 여성파워에 달려있다 그래서 한국남자들의 남성성은 여성에게 의존과 착취를 동시에 하는 모순성을 띈다 이것을 서구사회에서는 식민지남성성이라 부르더라😊
근친상간으로 아들이 끊긴게 아니라 금관가야 멸망이후 김알지계가 성골에 편입되면서 민며느리 제도와 근친이 더욱 심각해지면서 혈우병(열성인자 대물림)때문에 남성이 빨리 죽어서 여성이 왕이 된것이지 근친때문에 남성의 대가 끊긴건 아닙니다. 그리고 태종 무열왕도 진골 왕족이 아니라 성골 출신이고 무열왕이후 진골이 왕이된겁니다.
봉건의 세상에서는 각 성의 종손이 왕이 되어 자신의 나라를 유지 하며 나중에는 번성한자는 큰 나라(울타리)를 차지 하는 상황이며 ....이는 혼인과 관계가 있는 시스템으로 .... 성과 돌림자를 보면 전체의 맥락을 알 수 있으며,,,,,,다만 신이 임한자가 큰왕인데 그는 각성하는 지로 일생의 닦은바에 따라 자신이 갖고 있는 그릇에 다양한 재주를 더하게 된다. 이로 인하여 제국을 이루게 되는 것 이다.더나아가면 왕은 집안에 대들보를 생각하면 되는데 , 이것이 종손을 의미 하는 것 이다.
사실 선덕여왕은 무능을 넘어 매국노에 가까운 암군이었음. 백제가 쳐들어와 연전연패하고 있는데 군사비로 절이나 짓고 빌고나 있었음. 북한 쳐들어오는데 굿거리에 수천억 쏟아붓고있었던거임. 박근혜를 능가하는 개뻘짓. 나중에 김춘추가 전통성을 강화하고자 숭조사업벌여 대단한 인물인양 꾸민거임
왕을 나았다 란 것은 사주의 그릇에서 필요한 것이 그곳에 있을 수 있다+,라고 보면 됨.따라서 주고 받는 상황이 만들어 지며 주변의 인물 또한 그러 하다. 예를 들면 주변의 인물이 신의 창고다 라고 보면 됨. 그러면 자신에게 들어온 만은 것을 그들에게 주었다가 필요 할때 갖다 쓴다. 이런 개념 임.이는 젊음 마저도 그렇다.
원래 아시아는 모계사회가 원류이고 한국이 그 문명의 리더격인데 조상님 중 가야인들이 건너가서 만든게 일본왕조임 일본에 기원후 최초 여왕이 나왔는데 이후 신라에 선덕여왕 그 다음 당의 측천무후 다 비슷한 시기이고 원래가 우리문명은 남녀평등문화임 신라는 창업때부터 알영과 박혁거세가 부부공동통치했는데 주로 여자인 제사장이 더 권위가 높음 가야도 허황옥 김수로 부부공동통치로 봐야하고 고구려는 소서노가 주몽 앞세워서 창업한 소서노의 작품 물론 주몽의 통수로 권력 싸움에 밀렸지만 다시 백제를 창업함 이 부분에서 소서노가 고구려의 창업의 실질적인 주인이었다는 강력한 증거가됨 고로 그냥 이쪽 문명이 선진국들이라 남녀가 평등했고 그래서 가야 일본왕조나 한국이나 다 여자도 정치하고 제사장하고 권위가 높았기에 여왕하는게 그리 뭐 미친 파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유교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을때라 선덕여왕이 왕이 되는데 있어서 기강을 잡기 위해서 첨성대 석굴암 황룡사9층탑 같은 상징적 건물을 만들었다 특히 첨성대는 여성성의 상징이며 석굴암의 부처와 보살들 역시 여성성이 짙고 황룡사 역시 용이라는게 여성성을 의미하므로 신라가 강력한 모권을 중심 근본으로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신라의 여왕이 배출 되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고구려와 백제의 창업주가 여성인 것이 기원후 세계적 상황에서 더 유일무이하다
한자의 조성원리 제1원칙 곡선의 직선화: 오늘날 사용하는 해서체 한자의 제1원칙 0.口(입 구): O동그라미 입의 모양 (곡선의 직선화) , 0.日(해 일): 一 (지평선) O (해 모양의 곡선의 직선화) 지평선을 위 아래로 뜨고 지는 둥근 해의 모양을 직선화 한 글자 → 활용 예: 旦(아침 단), 早(일찍 조) 恒(항상 항)
영성황제가 이 세계를 바꾼다고 합니다 남은 임기 확실하게 해야 대한민국 헌법이 제자리 찾아가야합니다 다시는 돌대가리 간첩단과 허황된 돌대가리들이 돈에 눈 멀어 헌법을 파괴하고 국회법으로 국민을 억압하는 일이 생기지 않게 확실하게 해주길바랍니다 박근혜대통령님 나라걱정 태극기들고 비가오나 눈이오나 국민이 아픔이 생겨나지 않고 편안한 대한민국 마침표를 하시고 청'와대에서 국민의 박수 태극기 휘날리는 그길로 걸어 나오시길 바랍니다
이때부터 38선(남과북)이 갈라졌다 북은 고구려 땅이므로 백제는 식민지라 차별 받았고 장보고도 그래서 죽였다 왜가 한국인을 조센징이라고 차별했듯이 지금도 전라디언이라며 얕본다 통일하고서도 수도를 국토 중심으로 옮기지 못한 까닭은 고구려, 백제 땅을 식민지이상으로 생각지 않았다는 증거다 즉 나무땅에 수도를 옮길수 없었던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