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서 군중의 함성이 들려온다.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자들, 그 구슬픈 열기로 일렁거리는 목소리에 가슴이 저며온다. 그러나 어쩌겠나. 나는 한낱 하녀일 뿐인데. 귀족도, 왕족도 아니며, 심지어는 그들을 위해 일을 하고 삯을 받아먹는 사람인데. 어느 저녁, 나는 무도회에 가는 아가씨를 치장하기 위해 불려갔다. 아가씨의 윤기 나는 머리칼을 곱게 빗겨 내리며, 나는 분노일지 슬픔일지 모르는 한숨을 바람처럼 내쉬고 말았다. 왜 울상이니? 상냥하기도 하셔라. 하지만 그 친절함이 다 무슨 소용일까. 당장의 선의로는 해결되지 않을 많은 문제들이 속내에 켜켜이 쌓여 나를 짓누르는데. 그 압박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도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선 안 됐는데... 아가씨는 인생이 마냥 즐거우시겠어요. 좋은 집, 좋은 음식, 좋은 옷... 차마 누울 곳도, 입에 댈 것도, 걸칠 것도 얻기 어려워서, 매일매일 죽음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신 적 있으세요? 아가씨의 답은 냉담했다. 모두가 잘살 수 있는 건 아니야. 세상에 거저 얻는 게 없는 것처럼, 당연한 이치란다. 울컥, 쏟아내고 말았다. 그럼, 원치 않은 가난으로, 일생을 고되게, 괴롭게 사는 것도 당연한가요? 일생을 힘들여 산다는 건 가난 때문이 아니야. 의지 때문이란다. 고작 의지로는 이겨낼 수 없다면요? 의지로 되지 않는 건 없어. 그만큼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한단다. 무엇이든, 이루기 위해서는. 아가씨는 감히, 천한 하녀가 바락바락 언성을 높여 대드는데도 혼을 내지 않으셨다. 그만하라고도, 관심 없다고도 하지 않으셨다. 대신 일리 있는 말로, 모든 것에는 이유와 사정이 있다는 냉정한 논리로 나를 압도하셨다. 나도 한때는 너 같은 사람에게 동조했단다. 네? 참 좋은 사람이었지. 불의에 대항할 줄 알고, 옳은 일에는 절박하게 매달릴 줄도 알았어. ... 그런데 죽어버렸어. 정말 갑자기 말이야. 내색하진 않았지만, 짐작할 수 있었어. 결국엔 눈엣가시를 없애버렸구나, 하고. ...진실을 밝힐 순 없었나요? 내가 어떻게 그러겠어. 나도 이미 그들과 한패인데. 그리고, 이미 가버린 사람을, 나를 버리면서 추억하고 싶지는 않더라. ...만일 혁명이 일어난다면... 아가씨는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살 수 있을까? 쓸쓸하고도 나직하게 돌아온 대답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솔직히 나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다 됐어요... 아름다우세요. 아가씨의 눈은 촉촉이 반짝였다. 고마워. 그 한마디가 아가씨의 마지막 말일 줄을 알았다면, 웃어 드릴걸. 나는 여전히 후회한다. 아가씨를 태운 마차는 제 목적지를 잘 찾아갔다. 호화로운 무도회장으로. 몇 시간이 안 되어 쑥대밭이 될, 그곳으로. 어쩌면... 아가씨는 알면서도 모른 척 죽음을 맞이하러 가셨던 걸지도 모른다. 혁명은 일어났다. 왕정은 무너졌고, 왕족과 귀족들은 일찌감치 죽거나 처형당했다. 백성이 주인인 나라가 되었지만, 그 안에서도 여전히 빈곤과 차별은 존재한다. 무엇을 이루려거든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한다는, 이제는 갈 곳을 잃어버린 그 말을, 나는 천천히 되뇌어 본다. 전혀 기쁘지 않은 마음으로, 그럼에도 변치 않는 무언가를 열망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