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도 인하대 투수 중에 박승암 선수가 있습니다 돌아가신 저희 아버지이신데.. 저도 아버지 덕분에 야구선수 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평범하게 살고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10년 넘게 병마와 싸우시다가 돌아가셨다보니 저한테는 아버지가 야구선수 였다는 모습 보다 아프신 모습만 기억이 남습니다.. 혹시 인하대 박승암 선수 또는 서울고 박승암 선수 등판 경기가 남아있을까요... 돌아가신 아버지 이렇게 라도 보고싶습니다.. 이 영상에서도 등판하시지 않더라도 혹시라도 얼굴이라도 한번 비춰질까하여 계속 돌려보아도 보이지않네요.. 부탁드립니다..
정민태 강판 구대성 구원 익숙한 장면입니다. 우리 대성이형은 고등학교 대학교 대표팀(아마) 가리지 않고 혹사당해서 빙그레 입단한 93년에는 아예 쉬었죠. 94년 팀명 한화로 바뀌고 나서 다시 활약하기 시작했는데요. 팔자인가봐요. 아마때 혹사는 장난이었죠 6회 마무리는 기본이요 2~3일 연투는 밥먹듯이 했구요 팀이 연패에 빠지면 선발등판하여 완투도 하고 그랬었죠 그래서 1이닝만 던지는 다른 팀 마무리투수보다 세이브갯수가 상대적으로 적죠 그렇지만 국제대회(프로참가) 나가보면 그 잘났다는 1이닝 마무리는 벤치에 있고 우리 대성엉아는 150구 완투도 하고 그랬죠 제가 본 국내 최고 좌완투수는 누가뮈래도 구대성 형님입니다.
한양대 88학번이고 89년 6월 군입대후 군복무를 하고 있던 중 이 경기가 열렸던날 부대에서 TV로 후반부 부터 잠깐 보게 되었는데 한양대가 역전승을 하는걸 보고 박수치고 환호 했는데 하필 분대장이 인하대 출신이었고 이등병이 감히 고참들 앞에서 감정을 분출했다는 죄로 그자리에서 고참들에게 조인트 까진 흑역사가 있었다. 웃픈 추억이다.
그나저나 동대문 야구장은 참으로 횐경이 열악하기 그지 없네요. 이런 환경에서 야구를 저 당시 선수들이 참으로 고생이 많았겠습니다. 한양대 정민태 투수가 1회에 무너져 어렵다고 봤는데 대전고 출신 구대성 좌완 투수가 있었네요. 역시 한양대의 선수 구성은 고려대, 연세대에비해 절대 뒤지지 않는 구성입니다.
그건 오바임. 제아무리 아마추어에서 뛰어나도 프로는 차원이 다른 세계이고 방망이도 알루미늄 배트에서 나무배트로 바뀌기 때문에 적응하는게 쉬운게 아님. 아마추어에서 날고 기던 선수들도 프로에 와서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선수들이 부지기수임. 저기 나오는 한양대 멤버중 프로에 입단해 제대로 활약했던 선수는 정민태. 구대성. 임형석 정도이고 나머지는 프로에 지명조차 되지 못하거나 지명되었어도 큰 활약을 못하고 대부분 1군에 올라오지도 못하고 은퇴했음.
@@meanmark7639 대학 4년때 박정태 성적이 타율 4할에 홈런 12갠가 쳐서 성적상으로 국가대표 4번 타자 김기태를 능가했죠 이종택이 워낙 고교때부터 제2의 장효조로 불리워도 박정태로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죠 박정태 급부상이전 김상재 이종택 롯데가 저울질한다는 기사도 봤는데 그래도 그때까진 김상재보단 이종택을 조금 더 염두에 두는 상황이었던거 같습니다
이 경기가 있을 당시 저는 한양대 입학을 목표로 재수를 하고 있었습니다. 좀 우스운 얘기지만 야구 광팬이던 저에게 당시 막강했던 한양대 야구팀의 모습은 이 대학을 가고싶다는 또하나의 동기부여가 됐었죠. 이 경기는 공부에 집중하느라(?) 중계를 못봤지만 주간야구에 실린 경기사진과 기사를 읽으면서 다시한번 이 학교를 꼭 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ㅎㅎ. 결국 무사히 한양대에 입학을 했었고, 재학 중 한양대가 결승전에 진출할 때마다 동대문 야구장에 가서 열심히 응원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깨동무하고 부르던 아리랑 목동의 기억이 새롭네요. 너무나 보고싶었던 이 경기의 영상을 30년이 지나 볼 수 있게되어 너무나 기쁘고 감사합니다!
@@sanmicheal6754 80년대초까지는 그래도 연고대를 위협할 수 있는 '넘버 3' 정도 전력이었습니다. 오동근, 이영근 등 좋은 선수들도 많이 있었고...그러다 배구부를 재창단하고 중앙대가 급부상하면서 존재감이 많이 떨어졌었죠. 제 추측으로는 배구쪽에 더 집중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저도 재학시절 농구의 인기가 한창일 때 한양대 농구팀이 야구, 축구, 배구만 못한 전력이었던 점이 많이 아쉬웠었습니다.
@@user-hi1tz5tv3t 선배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87년 한양대 농구가 3관왕할때 핵심멤버는 센터 김종석 선수(훗날 현대에서 후보센터), 3점슈터 김영철, 가드 김대의 선수 (두명 모두 삼성에서 한때 주전) 등이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3관왕이라고는 하지만 압도적인 전력이었다기보다는 허재, 김유택 등 국가대표 멤버가 빠진 틈을 타서 우승하거나 공동우승하는 경우가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당시 중대의 전력이 압도적이었고 연고대는 약간 암흑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양대 84학번 ? 저는 S대 86학번입니다. 당시 한양대 야구는 천하무적이었죠. 제 모교 S대는 스카웃이 부진해서인지, 성적이 부진했었습니다. S대 야구팀은 2000년대에 들어서, 김성근 감독을 닮은 지독한 감독이 부임해서, 선수들을 지독하게 훈련시켜서 정상권으로 발돋움 했죠.
@@user-vx5fm2ww3x 두려워하긴 ㅋㅋㅋ 전부 한국에서 지어낸 이야기지 ....... 최동원이 체격이 대충 김병현 정도로 보이는데 ..... 위력적이면 얼마나 위력적인 공을 던졌다고 ??? 특이한 투구폼 때문에 ...처음상대하는 국제대회에서 잘 통했던거지 ... 정대현이 국제대회에서 잘 통하던 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