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는 경기네요. 영상엔 안나오니만 4대 0 으로 끌려가던 천안북일이 중반 무렵, 주자 조용호를 두고 4번 장창문이 거의 홈런성 파울을 날립니다. 이 부분이 좀 아쉬웠죠. 추격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당시 천안 북일의 열렬한 꼬마팬이던 저는 속상함에 눈물 훔치며 본 경기였습니다. 지금 보면 그저 노스탤지어죠.....ㅎ
저 황금사자기 대회는 지구별 초청이 있었다는게 특이했죠. 매년 마지막에 열리는 특성상 지역 예선에서 탈락한 팀중에 그해 성적이 좋았던 팀은 초정 자격이 되는건데 천안북일이나 세광이나 지역예선에서 탈락하고 초청된 팀이었습니다.^^ 이후 세광이 결승에서 만난 경남고 역시 초청팀이었습니다.
안성수 선수의 고교시절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는 자료네요. 무사만루에 구원으로 나와 무실점으로 막을 수도 있었지만 조양근 선수가 볼을 놓치면서 병살에 실패하고 이후 연타를 얻어맞는 장면이 안타깝습니다. 고교 최고 유격수 중 한명이던 조양근 선수의 플레이가 아쉬웠는데 뭐 이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해도 안성수 선수의 구위가 좋지 읺았기 때문에 결국은 세광의 타자들에게 두드려 맞았을 것이라 생각은 됩니다. 안성수 선수의 고3때 모습은 잘던지나 못던지나 안타까운 감정이 듭니다...좋은 자료 잘 봤습니다.
조양근,고안성수 전성기가 이시기여서 아쉬웠어요.북일고가 청룡기부터 계속 4강안에 드는데 고안성수의 역투가 빛났지만 훗날 평범한 투수로 전락하는 복선! 조양근은 당시 류중일보다 수비범위 넓었지요.조용호는 원조 정수빈이었고^^ 세광고 송진우는 훗날 고안성수와 상반되는 결과를~국내야구의 최고 모범생이 됩니다!^^
충청이라도 지역 예선에는 만나지 않아서 라이벌은 아닌데. 세광은 청주고가 약해서 늘 본선에 올라왔고, . 데전고, 공주고가 대전과 공주라는 대표성을 가지고 있어서 라이벌 의식이 강했고, 사립인 북일이 투자를 해서 올라와서, 충남 예선이 치옇했음. 졸업후에는 빙그레에서 만나게 되는데.
@@user-jv3id6jn3o 김경문 감독이 공주고 다닐때 야구를 워낙 잘하니 대전고 타자가 배트로 머리를 친적 있을 정도로 두 지역 라이벌 의식이 강했죠. 그 좁은 지역에서 야구인재들 많이 나온거 보면 신기하죠. 충북은 경쟁이 없고 세광이 독주해서 송진우 정도. 각 지역 명문고들이 야구도 잘했는데 특이하죠. 청주고 야구부는 청주기공으로 옮겼다가 다시 청주고로 오고 사연이 많았죠.
@@user-me4wd2mu5w 84년에는 이희수 감독이 빙그레 코치로 들어간 이후 팀이 잠시 망가졌던 거 같아요. 대통령배 예선탈락 후 청룡기에서는 서울고에 1-10 , 7회 콜드게임패를 당했는데 진정필 김길선 구동우 트리오가 3학년이 된 시점이라 천안북일 팬으로서는 충격이 컸지요. 봉황기와 황금사자기에서는 연거푸 부산고 박동희의 벽에 막혀 1-2, 0-4로 주저앉았고요. (진정필이 슬라이더로 박동희와 박빙의 완투대결을 벌였지만) 85년도에도 내내 부진하다 그나마 봉황대기에서 박흥영의 역투로 3위의 성적을 내는 데 그쳤죠. 86년 성적은 별 기억이 없고 지연규가 등장하는 87년에 이르러서야 천안북일은 2관왕을 차지하며 다시 부활의 날갯짓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