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우루과이 #4강신화 #신연호 1983년 멕시코청소년축구 8강전 한국:우루과이 모두가 우루과의 우세를 예상했던 그 경기!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자 무섭게 몰아치는 한국대표팀. 물러서지 않는 한국 대표팀의 모습에 관중들도 열광하기 시작하는데... 기적의 4강신화를 만들어 낸 그 경기 함께 보시죠.
딱 40년 전에 잊지못할 감동의 순간이 였습니다 불과 몇 일전 같은데 세월의 망각은 누구나에게 보편적 착각이겠지요 하여간 저 감동의 순간이란 그 후 기적을 이룬 2002 월드컵 4강의 태동이 아니였나 싶습니다 그때의 열풍은 가히 메가톤급의 열광이였습니다 저는 고3의 수험생이였지요 학교는 수업을 중단하고 4강전을 시청하게 할 정도였습니다 돌이켜보니 우리 국민들의 축구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참 지고지순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그토록 사랑하는 축구발전을 위해서 우리 K 리그에 열광합시다 자국의 리그가 각광받을 때만이 세계축구의 중심으로 가는 토양이 될 것입니다 관심과 행동 으로 축구장에 직관합시다
이때가 국민학교 3학년 시절이었는데 당시 전반전에 PK를 실축한건 너무나 아쉽긴 했는데 원래 신연호 선수가 키커였는데 노인우 선수가 차겠다고 나서서 실축했고 당사자의 증언에 의하면 바람이 역풍이다보니 골키퍼를 방향을 속이고 찼는데 맞바람이라 예상외로 공의 방향이 더 꺾여서 골포스트 바깥쪽을 맞고 그대로 아웃되서 아쉽게 골로 연결되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박종환 감독님도 후반에 교체할까 하다가 그대로 믿고 계속 기용했고 신연호 선수의 추가골을 어시스트 했고 결국 연장혈투 끝에 다시 신연호 선수의 결승골로 2-1로 승리해서 4강신화를 창조했던게 어제의 일처럼 느껴지는데 벌써 40년 전이라는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저때 청소년 4강 멤버중 훗날 성인국대에서도 성공한 선수는 김종부 하나뿐이었지..이 경기에서 두골 넣은 신연호는 훗날 성인 무대에서는 언제 그랬냐는듯이 이름이 감쪽같이 사라졌음. 그나마 김종부도 86월드컵에서 한골넣고 그후 잊혀져감. 참 아까운 선수였는데...그러니 청소년 축구 무대에서 스타가 되어도 성인 무대에서도 성공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수 있다. 80년대 청소년, 성인 국대에서 모두 성공한 최순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수 있음.
저두 맥략은 이런 이야기 하고 싶은데 냉전 색감 자료를 보며 우리가 세계 정상은 못될지언정 못하는 축구가 아니라는걸 오늘 첨 봅니다. 좀 자세히는 골감각은 좀 쳐지는거 같은데 전체 적으로 잘하네요. 국대가 월드컵 4번 이상 쪾팔린 경기라는게 어려서 자세히는 몰랐는데... 3자 시각으로봐도 경기력은 안 좋드라고요. 글고 번외 이경기에 대한 느낌은 첫 페널 실축이 참 아까운데... 저두 저래봐서 그냥 못찬 킥이라는 생각입니다.
@@bk2111 1차전 스코틀랜드 전은 0-2로 졌을때 주전 골키퍼가 김풍주,2차전 멕시코전은 이문영,3차전 호주전은 김풍주가 주전이었는데 그후 8강과 4강 모두 주전은 이문영이었죠 그러다가 이문영은 그후 이렇다할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졌고 김풍주는 국가대표에서 꾸준히 활약을 했는데 아쉽게 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주전으로 뛰지 못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진 선수입니다.
@@user-bo3ik1fg1h 정말 중요한 경기는 다 들려줬어요. 당시는 tv도 없는집이 꽤 있었습니다. 지금보는 대화면 tv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우리집이 그래도 좀 살았는데. 일제 20인치 컬러tv. 다른집에는 14인치 흑백tv가 대부분이고 그나마도.. 바람만 좀 불면 잘안나와서. 안테나 방향잡는다고. 생쇼를 했죠.
0:36 저 당시에는 골키퍼 백패스 금지규정이 없었음. 요즘같으면 간접프리킥 허용 3:00 우루과이는 악마의 손 전문팀이네. 수아레스가 선배에게 배운 듯 8:26 상대 자책골 아닌가? 9:00 연장 막판에 1골 앞서고 있는데 공격하라고 지시하는 감독은 박종환 밖에 없었을 듯. 그 이후에 다른 감독들이 1골 지키려고 수비만 지시하다가 경기 막판에 골을 허용하는 답답한 장면이 많이 나오면서 박종환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가 인기있었던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