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난도일의 소설보다 훨씬 논리적이고 치밀한 사고체계에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그 어떤 미스터리 스릴러보다 재미있는 추리에 요즘 청화수님 영상에 푹 빠졌습니다. 마지막 가설에 상상을 더해보니, 연개소문이 고건무를 처참히 죽인 이유에는, 대수전쟁에서의 승리로 그들의 본거지를 공략해 후환을 제거해야 하는 기회를 놓쳐 당이 들어서게 된 국가적 위기를 초래한 원망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여러가지 즐거운 상상이 가능하게 하는 청화수님, 감사합니다.
마지막3설은 대하사극 소재로하면 정말재미있을듯한 내용이네요. 대수전쟁의 주역2인. 전쟁 승리 후 온건파와 강경파로 나뉘고 결국 2인자(건무)의 쿠테타로 왕위찬탈과 강경파이자 또다른 전쟁영웅(을지문덕)의참살, 그 후 강경파의 후계자(연개소문)의 강경파 세력 집결과 재쿠테타(영류왕도륙). 결국 대당전쟁의 승리. 살수대첩부터 고당전쟁 승리까지의 스토리로 사극하면 정말 재미있을듯 싶네요.
@@kookitube6563 서로 위작 경쟁을 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우리가 불리해집니다. 당장 고구려 산성, 유적들은 여하튼 지금의 중국 지역에 상당부분 걸쳐 있으니까요... 당장 중국이 지금 한창 하고 있는 사업 중에. 만리장성의 동쪽 끝을 계속 확장하면서 성벽의 축조 방식이 엄연히 다른 고구려 산성들도 중국식 장성으로 둔갑 시키고 있습니다. 고구려도 다 중국의.지방정부였다는 거죠.... 유적들을 제멋대로 다시 쌓고, 고구려 산성터 위에 고대 중국식 건물을 덧 씌우는 일도 자행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이렇게 반복된 동북공정으로 어느덧 정말로 고구려가 중국의 영향권 아래에.있었다는 역사적 증거로 삼으려는 것이죠... 그런데에 반해 우리나라가 실제적으로 할수 있는 '창작'의 선택권은 중국보단 많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일은 우리 마음대로 사료를 쓰는게 아니라 사실적 기반에 근거를 둔 연구에 더 집중해서 역사적 명분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청화수님, 현재 몽골에는 '울지'라는 성씨가 흔한 성씨이고, 현대 몽골인들은 을지문덕 장군이 몽골 혈통의 고구려 장수이었을 것이라고 확신에 가까운 역사적 주장을 하는 이들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몽골 국립대 출신의 친구로부터 직접 들은 적이 있으니 참고하시면 을지문덕 장군을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되시리라 생각됩니다.
역사적인 사료 근거로 여러가지 사고방식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영상~(๑˃̵ᴗ˂̵) 대박💕 매력적인 청화수님의 영상 재미있어요~ 미세한 근거 라도 을지문덕 장군이 그렇게 사셨을지도 모르겠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요. 진짜 그런 분이면 역대급 인물네염. 제 개인적으로 안시성주처럼 살다 가신 분 같아요. 와아 🥰👍
오.. 대단합니다. 저역시도 을지문덕장군님에 대해 무척이나 궁금했는데.. 제 재주론 살기에 급급해 알아보지도 알능력도 안되었읍니다 .. 정말 감사드립니다. 1설과 후반은 3설이 아주 땡기네요 . 그리고 .. 제가 어릴적 궁금해하던거 살수라는 지명이 이반도에서는 못찿았다는거.. 제가 잘몰라서 그런건지.. 아니면 정말 고구려의 수도는 현재의 중국 하북성쪽이라 그쪽에서 찿아봐야하는건데 그렇다면 어릴적 지도를 봐도 한자나 영어가 딸렸고 또한 중국도 지명 이름 바꾼게 많다고... 해서 못찿은 기억이 다시금 납니다 .. 진심 감사드리며.. 이 한편으로 구독 꾹 누릅니다 . 꾸벅
전원국씨의 '칭기스칸'이란 책에도 을지문덕 이름을 고구려식 이두로 보고 살펴본 내용이 있더라구요. 몽골을 말갈, 발해(대씨고려), 고구려 특히 발해 대조영의 동생 대무예의 의 후예로 보면서 집사와 황금의의정원이라는 역사서로 고대사를 풀이하는 의견에 대한 청화수님의 고견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늘 좋은 컨텐츠 감사합니다~
@@user-rg5fk3st2m g-k-h은 모두 후음 계통으로 하나로 통하고, 이 발음들을 민족마다 약하게 강하게 발음하는 것에 따라 한 어휘의 발음도 약간씩 달라지게 되죠... 대한민국의 한, 한족(중공)의 한, 모두 "크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글자가 아니라, 발음이 표현하는 의미라고요...
@@user-xr3th4qp1z 연개소문, 영양왕, 고건무(훗날 영류왕) 이 세명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들 이라고 보여지는데.. 제 개인적인 생각은 영양왕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보여지는 것이, "살수"에서의 역사상 길이 남을 업적 이후로, 을지문덕은 일약 고구려의 영웅으로 등극을 하게 되면서, 황제 자리에 있던 영양왕 및 황실 일가에서는 이를 곱지않은 시선으로 바라 보았을 개연성이 크게 존재 할 수 있죠.. 마치 훗날 고려 시대의 명종과 경대승 혹은 임란 시기 선조와 이순신 관계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