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자꾸 100여명밖에 안 죽였다는 댓글들이 가끔 보이는데 유력 왕족만 아이까지 합쳐서 그 정도입니다. 실록에 보면 그 외에도 지방까지 다 찾아서 죽였다고 나오고 사성정책으로 왕위와 관련이 없는 왕씨들까지 성을 바꿨을만큼 왕씨라면 다 위협을 받았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성씨를 멸족한 일은 이게 유일한데 별거 아닌 듯이 말하는건 좀 아닌 것 같네요
저때가 민주주의 사회도 아니고... 구왕족이 하나라도 살아있으면 구심점으로 반란이 일어났을건데, 그렇게 내전이 일어나면 수만명이 더 죽었겠죠. 수백년 전의 도덕관을 옳다 그르다 판단하기보단 그랬구나 하고 받아들이는게 정신건강에 이롭지 않을까요? 그때는 옳고 지금은 틀리다고 생각하시죠. 세상에 절대진리는 과학적인 법칙이지 인간의 윤리관이 아니니까요. 창조신을 믿는 여러 종교들 조차도 시대의 윤리 변화에 자신들을 맞춥니다.
18~19세기 조선 정조는 전국에 흩어진 왕씨들을 찾아내 본관을 개성으로 정해 주었다. 18~19세기 왕씨들이 왕건의 후손인가에 대하여 의문을 갖는 학자도 있다. 동일한 시기에 출발한 본관의 인구 비율이 극과 극으로 많고 적은 현상이 근현대 인구 통계에 나타나는데, 유명 본관으로 인구수가 집중되어 통합되는 과정으로 해석된다.
마치 이 유투버는 진실을 알지도못하고 쿠테타한 이씨가문이 대단한것마냥 떠들어대고있는데 정확히 이성계는 왕명을 어겨 참형될입장에서 반대파세력인 정도전세력에게 붙어먹어 꼭두각시가된건 이제는 누구나 안다 그렇게 건국도아니지 그 조선이 어떻게되었나 결과론적좋아하는인물들은 알겠지만 동학농민운동2만명조차 막지못하는 그야말로 망한나라가되어 일본을 불러들여나라를팔아넘긴게 이씨다 이완용도 그저 꼭두각시일뿐이고 정확하게는 이씨가문이 나라를팔아넘긴거라고보면된다. 고려시대문건을 세종대왕이 다 불태웠지만 고려가 조선보다 잘 살았다는건 역사학자들도 얘기한다 한마디로 쿠테타는 망했고 나라를 팔아먹은 이씨들때문에 나라가 아직도 친일파가 득실거리는거다 고려가 유지되었다면 나는 일본 중국을 넘는 국가가 되었다고본다 문화나 역사나
좋은영상 감사해요. 꼭 그래야만했니ㅎ 지나가는 개성왕씨1인입니다 집성촌 가보면 가족같답니다 수가얼마안되어서. 흔히 역사를 책에서만 배우는것 같지만, 적어도 살아남은 왕씨들은 역사를 몸으로 받아넘겼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멸족당했는지 오백년도 더된 일이지만 아직 일어서지 못한거같아요 보통 어렵게들 삽니다 개성살던 저희 조부님도 625때 피난나오셔서 거의 무일푼에서 시작했고..
이렇게 답글쓰면 죄송스럽지만 개성 왕씨분들은 지금까지 본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개성 왕씨라고하시니 정말 놀랍습니다!! 그러고보니 기억도 가물가물한 국민학교시절에 같은반에 왕씨 학생이 있었던것도 같습니다!! 공양왕도 조선처럼 명, 원, 여진, 왜등 외세의 세력을 끌어들여으면 일제때의 이씨들처럼 매년 막대한 돈을 받으면서 잘먹고 잘살았을지도 모르는데요!!
고려사의 복원을 위해서 공부 많이 하시고 온라인에서도 힘껏 싸워주세요... 개성 왕씨랑 아무 상관이 없는 시민들도 이렇게 분노를 터뜨리면서 외치는데 왕씨들이 일어나서 앞장서야죠. 500년간 민족의 역사를 퇴보시킨 것도 모자라서 위대하고 찬란했던 고려 황실을 잔악하게 도륙내버린 반역 집단이에요, 벨도 없습니까들.
맞는 말씀인데요. 무신정권때도 왕은 폐위는 하되 고려왕조는 멸족시키지 않았는데 어느 정도 자신감도 있고 애국심도 있었던것 같아요. 그런데 이성계는 반대로 세력이 약했던것 같아요. 주위의 장군들은 북쪽 변방 이민족 출신들이 많으니까 좋아하지도 않았겠죠. 그때 엘리트 최영장군과 정몽주에게 언제 당할지 모르니까 선재 공격한것 같습니다. 그가 정변을 정당화하게 위해서 사대부와 결탁해 양반 노예 사회계급을 이땅에 토착해 시켜버렸죠. 변방출신으로 고려에 귀화한 왕조에대한 충성이 약한 그가 고려왕조를 몰살시키는건 ??
@@마스터마구니-e7n 영원히 종속되는건 어렵습니다. 그땐 중국에서 수백만 이땅으로 이주해서 반이상을 중국인들로 살면 모르겠는데. 군대만으로는 어렸습니다. 이런말이 있죠 전쟁은 이기긴 쉬워나 자기 땅으로 만들긴 어렵죠. 많은 돈과 병력이 필요하죠. 역사상 세계 최강의 몽고군이 30년이나 되어서 고려가 항복했죠 그리고 사대하게만 만들었죠. 우리나란 산세가 험해서 많은 병력과 물자가 이동하면 공격당하기 쉽습니다.
개성왕씨 33대손입니다. 제가 할아버지와 아버지께 배운 내용으로는, 이성계 때 단 한 가족만이 왕씨성을 유지하면서 산에 숨어들어서 살아남았고, 동영상에서 언급된 전씨,옥씨로 변경도 맞다고 배웠습니다(일부는 다시 성을 돌렸고, 일부는 그대로 유지) 태조 이후로 그 뿌리가 큰집은 경기도 용인으로, 작은집은 경기도 연천으로 뿌리를 내려서 (과천도있었는데 과천에서 연천으로 이동했는지, 과천에서 용인으로 이동한건지 기억이안나네요) 집성촌을 이뤘다고합니다. 동영상에 언급된대로 문종이후로 제사도 지낼수있게되었다고하나, 왕씨들은 중앙관직에 진출하는게 제한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똑똑해도 지역에서 벗어날수가 없었지요. 제 뿌리는 경기도 연천이구요. 숭의전이라는 곳은 태조왕건과 고려개국 16공신을 모신 사당이며, 그 주위로 집성촌이 형성되어있습니다. 그리하여 현존하는 개성 왕씨는 다 한뿌리라고 배웠습니다. 역사는 잔인합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에 의해 기록되는 것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조선초기 왕씨들의 삶은 더 암울했을 것이라 충분히 짐작 가능합니다. 영상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잘봤습니다^^
국운이 쇠하면 국가는 망하고,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는게 당연한 이치이고, 패망한 왕조의 왕족들의 생사여탈은 새로운 왕조의 권력자들에게 달려있다. 중국의 경우에는 이민족이 새로운 왕조를 세워, 이전왕조의 흔적을 지우고, 복종을 시키기 위해 갖가지 참혹한 만행을 저질렀다 하지만, 조선의 창업군주는 왜 그렇게 잔혹무도한 짓을 했을까...그래서 본인과 그를 따르는 자들도 군주의 자식에게 좋은꼴을 못당했지만... 이런것들을 보면, 뿌린데로 거두는법이라는 말이 참으로 옳은것 같다.
그것도 있겠지만 이씨 조선이 쿠데타로 이룩한 왕조이기 때문에 국가적 지지기반이 약했다는 이유가 있겠지요. 왕씨를 남겨두면 그 왕씨를 중심으로 또 다른 반란세력이 결집할 것을 두려워해서 그런것 같네요. 조선 초기부터 줄기차게 실행된 토지제도 개혁과 사병의 혁파도 같은 이유에서 실행된것 같습니다.
@@이이-l1z3y 원래 왕정국가가 전 왕족들 죽이는건 특히 동양에선 당연한 일임, 역대로 찾아봐도 왕건. 송태조 외엔 그냥 없다고 봐도 됨, 그리고 고려도 쿠데타로 만들어진 국가임 고려는 호족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세운 나라라서 반란은 덜했을지는 몰라도 조선만큼의 중앙집권화를 못해서 언제나 호족들 눈치를 봐야했음
@@민기-y6b 죄송한데 왕족을 죽인 정도가 아니라 성씨 자체를 몰살시켰다는게 이 영상의 포인트인데 뭔 소리신지..둘이 같은 선상에서 비교가 됩니까? 그리고 고려도 어쨌든 궁예를 폐위시키고 고려를 세웠으니 넓은 의미에서 쿠데타긴 하겠습니다만 신하들의 추대에 의해 왕위에 오른것과, 장군이 왕명을 불복하고 왕위를 찬탈한 것과는 분명 차이가 큽니다.
@@민기-y6b 호족이 약화된 대신에 중앙관료들의 권력이 막강해지죠. 그리고 이는 지연,혈연,학연으로 뭉쳐진 분파들 간의 싸움이 관료들 사이에서 극대화되어 결국 일부가문의 세도정치로 이어집니다. 호족들이 판을치는 세상이나 일부가문이 권력을 독식하는 세상이나 다를바가 있을까요?
@@이이-l1z3y 본질적으로 왕건이랑 이성계랑 뭐가 다른지는 모르겠네요, 그렇게 따지면 이성계 지지세력은 왕건보다 훨씬 강대하고 많았는데요.. 그리고 원래 왕족들 몰살하는거 칠촌, 팔촌까지 다 죽이는것도 흔한일이에요.. 그리고 님은 역사를 보는 시선이 잘못되신게 그 당시의 사회상과 관념으로 해석해야지 지금 시대의 시선으로 역사를 해석하시면 당연히 안좋게 보이지 않을까요?
글쎄. 이걸 읽어보삼 개성 왕씨(開城 王氏)는 고려 왕족의 본관이다. 고려 때 관찬된 정사 편년통록에 의하면 왕건의 증조부 국조는 당나라 선종 아들로 기록하고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은 국사에 당나라 숙종의 후손으로 기록하였다. 원나라 학자가 원나라에 체류하던 고려 충선왕에게 "고려 태조 왕건의 선조는 숙종에게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당숙종은 유년기에 대궐 밖을 나간 일이 없고, 안록산의 난이 있었던 때에는 영무에서 즉위하여, 조선에 들어가 자식을 둘 수 있습니까?", 물어 보자, 충선왕 신하 민지(閔漬)가 대신 대답하기를 "그것은 고려 국사에 잘못 쓰인 것이고, 고려 왕족은 숙종이 아니고 선종의 후손입니다", 라고 설명하였다. 이후 민지는 편년통록에 당숙종이 아닌 당선종의 후손으로 기록하였다. 중국 씨를 말려 버리겠다는 거 아니였을까 이성계는?
저 옥씨인데...거제 쪽이 집성촌인...어른들 말로는 태조가 왕씨들 거제로 배태워 보냈다가 섬앞바다에서 배를 일부러 바다에 잠기게 했고...그때 살아남아 바닷가로 헤엄쳐 나와 살아남은 왕씨 후손이라고 합니다. 거제로 생명보장하고 보내진 않은거 같더라구요...새 왕조 입장에서는 그럴수도 있겠다 싶네요..진짜 내가 왕씨에서 살아남은 후손이라도 별 감정안드는 그냥 옛 이야기...
잘 봤습니다.인류의 역사는 도적의 역사와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지금의 정치현실도 그렇구요... 승자의 일기를 진리로 배우고 시험치고 합격하고. 또 그 자리에 들어앉고...또 욕심어린 정치를 해서 빼앗고 뺏기고... 만물의 영장이었던 인간이 이렇게나 변해버렸네요.. 모두들 이런일들이 당연시 하면서 살아가죠! 왕씨일가와 이씨일가의 피묻은 투쟁사를 보면서 다 같이 반성과 회개의 양심을 한번쯤 생각해보는 기회가 됐습니다..감사합니다...
@@sangwonyoo5953 그쵸 고려의 경우 대로를 넓혀서 주로 마차들이 다니고 상업을 활발하게 하고 전쟁시 병력과 군량미 보급을 원활히 하려고 도로가 잘 정비 되어있고 넓었는데 조선은 적군이 침입 할까봐 정비 되어있던 도로를 부수고 흐트려놓았죠ㅋ 상업을 천시하고 도로사정이 좋지못하니 마차가 아닌 가마를 다고 다녔습니다ㅋ 고려시대 때만 해도 말도 많고 군대도 기병이 많았는데 조선에 들어서 오합지졸 군대가 되었죠ㅋ
@가나다라 고려가 봉건국가 라니요 고려는 중앙집권 국가인디요? 다만 사병을 소유한 지방귀족 즉 호족이라서 그렇지 중국의 봉건국가 나 유럽의 봉건국가 와는 달라요 봉건제 라는건 지방의 귀족이 왕에게 충성을 하는 대신 왕이 봉지 즉 영지를 인정해주고 그곳에서 세금도 거둘수있고 징집을 해서 군대도 소유할수있는 모든 권한 즉 그땅에서는 왕이나 다름없는데 고려는 그런건 아니예요 지방 호족들이 사병을 보유했어도 징집권이 없고 세금도 거둘수없고 고려시대에는 지방관들이 다 있었어요 안찰사 나 절도사가 지방관으로 권한을 행사했습니다 지방 군대의 지휘권도 안찰사 와 절도사가 가지고 있었구요
경기도 연천 아미리 라는 곳에 가면 고려말 왕실가족의 후손들이 모여사는 동네가 있습니다. 지금은 교통이 발달되어 가기 쉽지만 예전에는 첩첩산중이었을 것 같아요. 그 마을에는 왕씨성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마을 산 위에 '숭의전'이라는 건축물이 있는데요, 고려왕실의 제를 지내는 곳이랍니다. 그리 험준한 산은 아니지만 숭의전 아래 절벽 밑으로 임진강이 흐르고 있어요. 아주 오래전에 가 봤는데 경치가 빼어났던 기억이 나네요. 태조 이성계가 고려유민들을 달래기 위해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동네분들 얘기로는 조선 초, 고려왕실 가족들과 그 측근들이 조선의 보복이 두려워 이곳으로 숨어들어와 살게되었다고도 하네요.
제가 왕씨 후손입니다. 왕씨가 전씨,옥씨로 개명후 (전씨는 밭전와 들 입 자를 씌운 전씨 두가지입니다) 강화도,삼척,제주 쪽으로 분산되었으며, 그곳에서도 성을 한번더 개명하여. 서문씨(서쪽),남궁씨(남쪽),동방씨(동쪽) 로 개명하여 숨어지냈습니다. 이 세가지 성씨가 아주 희귀한 이유죠. 번외로, 고려시대때 왕씨들은 친족간의 결혼이 대부분이라 지능이 떨어지거나 장애인출산, 저능아 출산, 단명했었다고합니다. 조선건국후 개명하여살면서 다른지역사람들과 결혼하기시작하면서 이문제는 사라졌다고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정선전씨 입니다. 아주 옛날부터 전해오는 저희 집 얘기입니다. 저의 시조는 전섭이며 왕씨의 탄압이 심해 왕자에 들입과 점을찍어옥씨 또 다른 성 2개 즉 4개의 성으로 살수 밖에 없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렸을때부터 해당되는 성을 만나 결혼하면 안된다는 말씀을 들었죠!! 언급해주시는건 좋지만 아주 세부적으로 들어갈꺼아님 더이상은 건들지 않는게 좋은 사안 같습니다. 어쩌면 왕씨 집안의 큰 상처일수 있으니깐요. 한편으로는 진짜 왕씨를 찾는 일을 하고싶지만 그리 쉽지 않을것같습니다
@@황인재-p9v 원래 숙청은 적당히란게 없는겁니다. 어설프게 밟으면 상대는 원한을 품고 언젠간 기어올라요. 확실히 짓밟아서 후환을 없애던가 아니면 공포감으로 아무것도 못할만큼 짓밟아야 후환이 없는겁니다. 그래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도 무조건 퍼주던가 확실하게 짓밟거나 둘 중에 하나만 하라고 하는겁니다. 그게 정치고요
글쎄. 이걸 읽어보삼 개성 왕씨(開城 王氏)는 고려 왕족의 본관이다. 고려 때 관찬된 정사 편년통록에 의하면 왕건의 증조부 국조는 당나라 선종 아들로 기록하고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은 국사에 당나라 숙종의 후손으로 기록하였다. 원나라 학자가 원나라에 체류하던 고려 충선왕에게 "고려 태조 왕건의 선조는 숙종에게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당숙종은 유년기에 대궐 밖을 나간 일이 없고, 안록산의 난이 있었던 때에는 영무에서 즉위하여, 조선에 들어가 자식을 둘 수 있습니까?", 물어 보자, 충선왕 신하 민지(閔漬)가 대신 대답하기를 "그것은 고려 국사에 잘못 쓰인 것이고, 고려 왕족은 숙종이 아니고 선종의 후손입니다", 라고 설명하였다. 이후 민지는 편년통록에 당숙종이 아닌 당선종의 후손으로 기록하였다. 중국 씨를 말려 버리겠다는 거 아니였을까 이성계는?
@glioo21 중앙집권이 누구를 위한 그렇게도 대단한 태평천국이길래 중앙집권을 위해서라면 자국의 백성이자 전왕조의 왕족들을 그렇게 잔학하게 도륙을 내는 게 정당화될 수 있답디까? 별.. 해괴한 소릴 다 듣겠네 ㅋㅋ 참 가만히 들어주기가 역한 궤변이네요. 교과서에서 주입식으로 중앙집권 중앙집권 거리니까 무슨 그게 엄청난 신천지라도 되는 줄 아시는가본데 중앙집권이 그리 좋으시면 차라리 북한으로 떠나세요ㅋㅋㅋ
왕건은 고려 성립과정부터가 호족세력들의 강력한 지지를 기반으로 가능했던 건데 그런 유력한 호족들일수록 당연히 신라나 백제의 왕족과도 어떤 식으로든 연이 닿아있었고 자신의 지지기반인 호족들 눈치 봐서라도 이전 왕조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은 불가능했음. 또 왕건 때는 이미 후삼국 시대에 신라는 힘을 잃고 견훤이나 궁예 같은 세력가들이 집권했다가 왕건에 의해 흡수된 거라 명분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명확한 왕족이나 집안이 존재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왕건에게 숙이고 들어가서 숙청하는 게 오히려 모양새가 안 좋음. 조선은 아예 다름. 이성계의 건국세력은 본인의 군사력과 신진사대부 같은 뉴페이스들이 지지기반이었기 때문에 왕씨나 기존 유력가문에 대해 어떤 눈치를 보거나 힘의 문제로 엮일 일이 없었음. 신경쓸 건 백성들이 생각하는 이미지인데 그거 때문에 쿠데타 직후에 왕이 되지 않고 적당히 왕씨 체면만 차려주다가 형식상 평화적으로 양위받으려고 했던 건데 마지막 공양왕이 우왕 창왕이랑은 다르게 정몽주를 중심으로 강하게 나오니까 이성계도 주변사람들 꽤나 위기를 겪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힘으로 누르고 집권한 케이스. 일단 집권한 뒤로는 당연히 왕씨나 기존 고려의 기득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고 결과적으로 모양새가 힘으로 누르다보니까 민심도 반발이 있고 까딱하면 왕씨들 중심으로 복권운동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 깔끔하게 숙청하는 게 건국 초기 안정시키기도 쉽고 결과적으로 민생에도 그게 더 나음. 애초에 고려는 이미 권문세족에 원나라에 명나라에 온갖 부정부패 비리 권력다툼 등 막장테크에 민생은 파탄나고 있었고 이게 조선 건국의 큰 명분이기도 했기 때문에 왕씨를 비롯한 고려의 기득권을 우대할 이유가 없음. 우리 역사만이 아니라 근대 이전까지 동서고금 모든 국가들은 새로운 나라나 통치자가 등장하면 기존세력은 숙청당하는 게 당연한 거였음. 그걸 현대의 윤리관이나 가치관으로 잘못이냐 아니냐 판단하려는 것부터가 무의미하고 우스운 일임. 그리고 근대 이전 국가들은 중앙집권이 확립됐다고 부국강병이 바로 이루어지거나 민생이 나아지는 건 아니지만 반대로 나라가 강성하고 민생이 나아질 땐 항상 강한 중앙집권력에 의해 통치될 때임. 즉 중앙집권력이 약하면 필연적으로 지방관의 수탈이나 신하 단위의 부정과 비리가 발생하는데 이건 반드시 국고의 손실과 민생파탄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나라가 안정되고 강해지려면 강력한 중앙집권은 필수임.
@glioo21 별 진짜 궤변을 넘어선 광적인 수준이네 이건ㅋㅋ 이성계가 고려 왕족을 멸족시키면서 묻힌 피가 프랑스 혁명이나 산업 혁명의 희생만큼 가치가 있다고 보시는 거에요?ㅋㅋㅋ 그 잘난 중.앙.집.권을 위해서?ㅋㅋㅋㅋㅋ 조선이 숨막히고 폐쇄적인 북한식 중앙집권을 고수하면서 조선 민중들의 삶의 질에 도대체 어떤 이득을 주었죠?ㅋㅋ
@glioo21 또한 대한민국은 기본적으로 일차원적 과격한 중앙집권이 아닌 권력의 분리를 채택한 나라입니다. 체제적으로 삼권의 분립을 채택했고 중앙과 지방의 분권을 지향하고 있는 나라에요ㅋㅋ 어딜 조선 같은 유사국가랑 비교합니까? 무조건 중앙집권이 지방분권보다 발전된 체제라구요? 그럼 연방제 미국보다 수령제 북한이 더 발전된 나라겠네요?ㅋㅋㅋ 봉건제를 종식시키고 중앙집권을 시작하기 위해 고려 왕족의 피가 필요했다?ㅋㅋ 장난하세요 지금?
그런 할머니 조상도 그분도 조선에서 쭈욱 살았고 대한민국에 이어 또 쭈욱 사셨지요? 조선이 나라 바뀌었다고 대한 제국에 침뱉고 대한민국에 침 뱉나? 아니던데… 그런 거 안하던데… 그분 개인 삶이 좀 힘들게 사셨나보네요. 아니 … 21세기에 사시면서 참 안타깝네요. 배움이 없으면 … 나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나를 제대로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역사를 안다고 할 수 있나요. 나 같으면 좀 더 역사 공부 해서 고려 왕조 권문세족들 조상들이 백성을 얼마나 힘들게 한 점을 항상 죄송하게 생각하고 조용히 살려 할텐데요… 중국으로 강제로 보내진 공녀에 권문세족의 백성 탄압에 수탈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죠. 이성계는 인물자체가 잘 났어요 한번도 전쟁에서 진적없는 100전 100승 인물이었다고 들었어요. 그런 인물을 경계하며 북쪽 변방으로 중국 막아라 나라를 지키라는 핑계로 멀리 보내었죠 그 먹을 것도 없는 추운 곳에 말입니다. 이성계가 홀로 조선 만든거 아니에요. 하도 고려왕이 사치에 중국에 종처럼 네네하며 왕다운 행동을 하지 않고 권문세족들도 합세해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미친짓들을 했고요… 더 한 예를 들면, 고려가 어떤 세상이었느냐하면… 돼지새끼 고기가 맛난데, 사람 젖을 돼지새끼에게 먹이면 그 고기 육질이 더 연해져 더 맛이 난다 해서 사람아이에게서요, 그 엄마를 뺏어 돼지새끼에게 사람 젖을 강제로 먹이게 했을 만큼 고려는요 진짜 변태 짓을 많이 한 나라예요. 오죽하면 장군들이 일어나 … 싸움 잘하고 주변에 인기가 좋던 북쪽 지키던 이성계에게 나라를 같이 갈아 엎어 세워야 한다 설득을 다 했겠어요. 이성계도 번민이 아주 많았지만 … 결국은 그렇게 할수밖에 없었던게 나라가 진짜 부패의 최악상태였다고 해요. 고려의 행태가 심히 유감스럽고 어지러웠어요. 누구에게 침을 뱉는다고요? 그냥 자신의 조상님께는 침은 못 뱉으니 괜히 나라 안정시킨 이성계에게 뱉는 걸 텐데요… 백성을 힘들게 하고 노예로 전락시킨 그런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이 당신의 조상이라면 그저 조용히 반성하며 제사 지내는 게 맞다고 보여지네요. 그리고 고통 받은 백성들 위로하는 제사도 함께 지내시고요: 그래도 이성계가 인간미는 있었는지 당신 조상들 다 안죽이고 고려유민 위로 한다고 마을에 몰아 살게 했다는 대목보고 참 한심하다 생각했습니다. 왜냐구요? 함 보세요. 이렇게 나라가 몇번을 바뀌었어도 … 이성계에게 욕하고 계속 침을 뱉는다잖어요.. 당신들이 침만 뱉었겠어요? 그동안 나라 망해라 망해라 .. 하며 몇 백년이 지날 동안 중국식으로 1000년을 복수에 칼날을 갈며 …다른 나라와 손 잡고 우리 나라 망하게 한 주범일 가능성 상당히 높다는 거죠. 그 할머니 분은 고려 세상에서 아직도 사시는 것 같은데 … 우리 이제 21세기에 사는데 어째요… 제 고모 중에 이런 분이 한분 계세요… 남자 잘못 만나서 자신의 인생이 완전 망가졌다고 땅을 치며 우시던데요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그 남자를 떠올릴때마다 이를 갈고 힘들게 사세요. 정신적으로 엄청 피폐해서 사람들도 피하고요. 홀로 사세요. 물론 다른 남자도 만났다가 그분이 돌아가셔서 홀로 되신 건데 사는게 여의치 않으니 옛날 분을 엄청 원망 하시던데요… 근데 제 사촌 언니 하나는 남자를 더 대단히 잘못 만났어도 지금은 엄청 다시 좋은 사람 만나 잘만 살더라고요. 옛날 얘긴 꺼내지도 않지요. 꺼내면 불편해 해요 오히려.. 언제적 얘길 꺼내나며 싫어하고요. 개인의 생각의 차이라 생각이 들어요. 어떤 사람은 나쁜 일이 자기 인생에 있었어도, 그걸 극복하면서 나아가는 사람이 있잖아요… 마치 어떤 아이가 어릴 땐 힘들게 살았어도, 나는 자기 부모 처럼은 살지 않겠다 하며 반대로 사는 사람도 많거든요. 굳이 과거를 계속 바라보면서 원망만 하다가 베베꼬인 정신으로 인생을 그렇게 일그러진 암울로 만들 필요는 없잖아요? 고려 조상 제를 지내신다니 제사 드리는 인생 내내 … 사라진 옛 고려에 대해 누군가에게 원망을 해야하는 마음은 … 충분 이해가 되나 … 그게 이렇게 오랜 기간동안 이어져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그리고 그걸 그 자손들에게 고스란히 가르친다면 우리나라가 어떻게 되겠어요… 부정적인 마인드가 가득한 나라가 되겠죠… 지금 21세기 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살고 있고요. 신라인 고려인 조선인 이런 패 가르기는 좀 유치하단 생각 들어요. 이제 우린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니까요. 그리고 한가지 더… 조선이 있었기에 결국 우리도 이렇게 한글이라는 위대한 글자를 얻게 되었잖아요? 자기 백성을 가엽게 여겨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님도 이성계의 아들인데 그럼 그분께도 침을 뱉으시렵니까?! 어느 나라에도 이런 아름다운 음성 문자는 없어요. 백성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런 글자가 어떻게 나와요? 그리고 우리가 고려로 계속 살았다면 아직도 중국 글자 쓰고 어려움을 겪고 있을거에요. 끔찍하네요 상상만 해도.
개성 왕씨(開城 王氏)는 고려 왕족의 본관이다. 고려 때 관찬된 정사 편년통록에 의하면 왕건의 증조부 국조는 당나라 선종 아들로 기록하고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은 국사에 당나라 숙종의 후손으로 기록하였다. 원나라 학자가 원나라에 체류하던 고려 충선왕에게 "고려 태조 왕건의 선조는 숙종에게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당숙종은 유년기에 대궐 밖을 나간 일이 없고, 안록산의 난이 있었던 때에는 영무에서 즉위하여, 조선에 들어가 자식을 둘 수 있습니까?", 물어 보자, 충선왕 신하 민지(閔漬)가 대신 대답하기를 "그것은 고려 국사에 잘못 쓰인 것이고, 고려 왕족은 숙종이 아니고 선종의 후손입니다", 라고 설명하였다. 이후 민지는 편년통록에 당숙종이 아닌 당선종의 후손으로 기록하였다.
태조 이성계를 왜 욕하시나요? 고려말 임금들을 보면 백성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나라는 제대로 안 돌보고 사치와 향락에 빠져서 나라가 개판이 되었는데... 연산군은 명함도 못내미는 충혜왕같은 개막장도 있구요. 그런 조상을 두어서 자랑스러우시겠어요. 댓글을 다신 걸 보니 자랑하실려고 글 쓴 것 같은데요. 아버지의 후궁 즉 어머니도 강간하는 그런 패륜 집안에서 태어나셔서 좋으신가 봐요. 태조 이성계가 님들 조상보다는 백배 천배 훌륭하시겠네요.
제가 왕씨 후손입니다. 왕씨가 전씨,옥씨로 개명후 (전씨는 밭전와 들 입 자를 씌운 전씨 두가지입니다) 강화도,삼척,제주 쪽으로 분산되었으며, 그곳에서도 성을 한번더 개명하여. 서문씨(서쪽),남궁씨(남쪽),동방씨(동쪽) 로 개명하여 숨어지냈습니다. 이 세가지 성씨가 아주 희귀한 이유죠. 번외로, 고려시대때 왕씨들은 친족간의 결혼이 대부분이라 지능이 떨어지거나 장애인출산, 저능아 출산, 단명했었다고합니다. 조선건국후 개명하여살면서 다른지역사람들과 결혼하기시작하면서 이문제는 사라졌다고합니다
@@footerx9617 왕족도 이씨 본가와 민씨 외가 일족으로 구분해야 되는데 이씨 본가쪽은 일부 빼곤 그냥저냥 오늘날 중산층 정도밖에 안됐음 문제는 민씨 외가 일족들이 제대로 잘먹고 살았지. 당시 일제시기때 조선 최고 부자가 민영휘였는데 현재가치로 재산이 약 1조원 정도 됐음 지금 논란있는 서울 남이섬도 민영휘 꺼였고 지금도 민영휘 후손들이 관리함
모두 안녕하신가요 저는 조선 이성계 일가에게 역성혁명이라는 명분아래 왕씨말살을 당한 고려왕족의 후손인 숙청을 피해 왕씨에서 옥씨로 성을 바꿔 살아남은 고려왕족 왕손입니다. 역사서에 기록되어있듯이 저희 가문은 대대로 거제도에서 정착하여 살았으며 지금까지 그 피를 이어받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역사가 제대로 잡혀질때까지 저희는 진실역사를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할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역사돋보기님 저희 집안 역사를 다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내가 개성왕씨 36대손이며, 족보에도 등록되어 있고 족보도 조부모님댁에서 보관중입니다. 댓글들 보니, 지금 남아 있는 왕씨는 중국사람이란 댓글을 보고 기분이 너무 나빠 내가 개성왕씨의 혈통인것을 밝힙니다 개성왕씨 종친회가 따로 있으며, 왕씨가 따로 모여사는 마을도 존재합니다
글쎄. 이걸 읽어보삼 개성 왕씨(開城 王氏)는 고려 왕족의 본관이다. 고려 때 관찬된 정사 편년통록에 의하면 왕건의 증조부 국조는 당나라 선종 아들로 기록하고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은 국사에 당나라 숙종의 후손으로 기록하였다. 원나라 학자가 원나라에 체류하던 고려 충선왕에게 "고려 태조 왕건의 선조는 숙종에게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당숙종은 유년기에 대궐 밖을 나간 일이 없고, 안록산의 난이 있었던 때에는 영무에서 즉위하여, 조선에 들어가 자식을 둘 수 있습니까?", 물어 보자, 충선왕 신하 민지(閔漬)가 대신 대답하기를 "그것은 고려 국사에 잘못 쓰인 것이고, 고려 왕족은 숙종이 아니고 선종의 후손입니다", 라고 설명하였다. 이후 민지는 편년통록에 당숙종이 아닌 당선종의 후손으로 기록하였다. 중국 씨를 말려 버리겠다는 거 아니였을까 이성계는?
그렇게 살 수 밖에…글쎄. 이걸 읽어보삼 개성 왕씨(開城 王氏)는 고려 왕족의 본관이다. 고려 때 관찬된 정사 편년통록에 의하면 왕건의 증조부 국조는 당나라 선종 아들로 기록하고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은 국사에 당나라 숙종의 후손으로 기록하였다. 원나라 학자가 원나라에 체류하던 고려 충선왕에게 "고려 태조 왕건의 선조는 숙종에게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당숙종은 유년기에 대궐 밖을 나간 일이 없고, 안록산의 난이 있었던 때에는 영무에서 즉위하여, 조선에 들어가 자식을 둘 수 있습니까?", 물어 보자, 충선왕 신하 민지(閔漬)가 대신 대답하기를 "그것은 고려 국사에 잘못 쓰인 것이고, 고려 왕족은 숙종이 아니고 선종의 후손입니다", 라고 설명하였다. 이후 민지는 편년통록에 당숙종이 아닌 당선종의 후손으로 기록하였다. 중국 씨를 말려 버리겠다는 거 아니였을까 이성계는?
음… 우리 가문의 야사(어릴때 할아버지에게서 들었고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에게서 들었고 또…)에 조상께서 조선이 건국되고 얼마뒤 배를 타고 남해로 가다가 배가 침몰하여 섬으로 흘러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그 섬에서 수백년간 살다가 어느날 조정에서 집안 남자들을 죄다 잡아가 사형을 당했습니다(추론해 보건대 천주교를 믿어서 그리된 듯) 그 때 당시 일부 사람들이 옆 섬으로 도망쳐 지금에 이르렀다고 하죠
조선의 전조인 고려에 비교를 해보면 알수있듯 왕건의 경우는 인근왕조나 적국을 점령했어도 그 왕족들의 생활은 어느정도 보전을 해줬습니다. 신라의 경순왕 김부가 귀부를 요청하자 경주를 다스리는 작위를 내리고 나중에는 왕건 딸과 결혼하여 사위가 되기도 했었죠. 북쪽에서는 발해의 왕자 대인선이 10만 유민을 데리고 귀부요청을 하자 응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견훤이 귀부를 하자 과거 백제의 수도성인 한성부 관련 작위를 내리기 까지도 한 반면...고려는 호족들 포섭을 위하여 혼인을 이용하기도 했으나 사성을 내려서 호족들이나 신하들을 충성하게 만든 경우도 많습니다. 대체적으로 왕성인 '왕'씨 성을 하사한 경우가 많으며 대표적으로 영주(강릉)의 대호족이던 김순식이나,박유,왕규 같은 장수나,호족,신하들이 대표적이죠.
왕건이 지방귀족이나 신라왕족들 한테 잘해준 것은 고려 자체가 중앙집권과는 거리가 먼 국가다보니 심하게 터치 못한 것이죠 호족 포섭할 때 혼인 정책을 쓴건 로열 패밀리에 넣어 줄테니 사이좋게 지내자는 식으로 회유성 정책에 불과하죠 기록된 왕비,빈 만 무려 23명 이상이고 군소 지방 영주 딸들과 혼인까지 합하면 50명 이상이라 했으니 이쯤되면 왕의 권력이 강해질 수 없죠 지방 귀족들이야 좋았겠지만 지방민들의 경우 생활상이 조선보다 좋았다고는 못하겠지요
그렇게 한이유는 지방호족들을 포섭하기위함이었는데 애초에 조선은 중앙집권 왕중심의 국가고 삼국시대부터 고려까지는 봉건주의사회에 가까움 유럽봉건제보다는 왕권이 강하긴했어도 지방토호들의 세력도 만만치않게 강했음 대표적인 지방토호, 군벌세력으로 장보고를 생각하면 이해하기쉬움 고려도 이런 모양새에서 크게 바뀐건없었고 지방토호들이 사병집단까지 거느리고있었는데 조선입장에서는 고려왕족들을 남겨두면 지방군벌로 발전하는거 충분히 가능한일이었고 아예 싹을잘라버리려고 한거지 고려왕조가 조선보다 인정이 더 넘쳐서 그렇게한게 아니라 지방세력들을 억누르고 나라를 안정시키려고 그렇게한건데 조선만욕하는놈들은 진짜 이해가 안된다
인과응보는 하늘의 섭리인데 고려의 신하였던 이성계와 이방원과 그들에게 빌붙었던 신하들이 저지른 죄악은 언제쯤 어떻게 보응되었을까? 아마도 그래서 우리가 무능한 이씨조선에 의해 기구한 세월을 살았고 백성들의 고초가 많았던가 싶다 그런면에서 이씨왕족들의 말로는 행복한 삶인데 그이유는 조상들이 어떠한 삶을 살았느냐가 후손들의 미래에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
나의 선조에 구문으로 전해내려온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의 선조는 고려말 집권세력이었으나 이성계보다 정도전이 워낙 잔인하고 집요해서 정씨랑은 결혼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고, 선조는 깊은 산속으로 도망처 남하하여 지리산 근처로 숨어지내고 족보에는 이때 기록이 없었으나 문종때부터 기록이 있습니다. 이때부터 산속에서 나와 근처에서 집성촌을 이루어 살아왔답니다.
@@앙마민 글쎄. 이걸 읽어보삼 개성 왕씨(開城 王氏)는 고려 왕족의 본관이다. 고려 때 관찬된 정사 편년통록에 의하면 왕건의 증조부 국조는 당나라 선종 아들로 기록하고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은 국사에 당나라 숙종의 후손으로 기록하였다. 원나라 학자가 원나라에 체류하던 고려 충선왕에게 "고려 태조 왕건의 선조는 숙종에게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당숙종은 유년기에 대궐 밖을 나간 일이 없고, 안록산의 난이 있었던 때에는 영무에서 즉위하여, 조선에 들어가 자식을 둘 수 있습니까?", 물어 보자, 충선왕 신하 민지(閔漬)가 대신 대답하기를 "그것은 고려 국사에 잘못 쓰인 것이고, 고려 왕족은 숙종이 아니고 선종의 후손입니다", 라고 설명하였다. 이후 민지는 편년통록에 당숙종이 아닌 당선종의 후손으로 기록하였다. 중국 씨를 말려 버리겠다는 거 아니였을까 이성계는?
@@현풍청명세종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세요. 세종 때 편찬한 고려사 역시 고려가 천자국이라는 것을 어떻게든 감추기 위해 불리한 것은 싹 다 지웠습니다. 대표적 예로 천자의 사면령인 "대사천하"는 전부 천하를 삭제해서 대사로 고쳤으며 고려의 황제제도를 지들이 제후국이라는 이유로 참람하다고 비판했습니다. 또한 세종이 고려 임금의 어진을 전부 태운 분영갱상은 너무 유명한 일이라 거의 상식적으로 알고있는 얘기들인데.. 궁금하면 걍 네이버든 구글이든 검색해보세요. 기사부터 관련 기록까지 바로 나옵니다.
개성 왕씨(開城 王氏)는 고려 왕족의 본관이다. 고려 때 관찬된 정사 편년통록에 의하면 왕건의 증조부 국조는 당나라 선종 아들로 기록하고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은 국사에 당나라 숙종의 후손으로 기록하였다. 원나라 학자가 원나라에 체류하던 고려 충선왕에게 "고려 태조 왕건의 선조는 숙종에게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당숙종은 유년기에 대궐 밖을 나간 일이 없고, 안록산의 난이 있었던 때에는 영무에서 즉위하여, 조선에 들어가 자식을 둘 수 있습니까?", 물어 보자, 충선왕 신하 민지(閔漬)가 대신 대답하기를 "그것은 고려 국사에 잘못 쓰인 것이고, 고려 왕족은 숙종이 아니고 선종의 후손입니다", 라고 설명하였다. 이후 민지는 편년통록에 당숙종이 아닌 당선종의 후손으로 기록하였다.
조선 초기 세조 시절까지 관직에 있었던 왕방연 같은 극소수만 살아남은건 사실. 실제로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된 이후의 유배길 호송하던 사람이 바로 왕방연 이었는데 조선 초기에 왕씨 성을 가진 이들을 대거 죽이던 와중에서도 극소수는 살려뒀으니 세조 시절에 왕방연 이라는 인물이 존재할수 있었을듯.
제가 왕씨 후손입니다. 왕씨가 전씨,옥씨로 개명후 (전씨는 밭전와 들 입 자를 씌운 전씨 두가지입니다) 강화도,삼척,제주 쪽으로 분산되었으며, 그곳에서도 성을 한번더 개명하여. 서문씨(서쪽),남궁씨(남쪽),동방씨(동쪽) 로 개명하여 숨어지냈습니다. 이 세가지 성씨가 아주 희귀한 이유죠. 번외로, 고려시대때 왕씨들은 친족간의 결혼이 대부분이라 지능이 떨어지거나 장애인출산, 저능아 출산, 단명했었다고합니다. 조선건국후 개명하여살면서 다른지역사람들과 결혼하기시작하면서 이문제는 사라졌다고합니다
맞아요. 아니 왕이나 권문세족이 잘 했으면 … 살려는 주겠지만… 너무 더티하게 부정부패에 호모 섹슈얼세계까지 고려가 사실 너무 하긴 했잖아… 그래도 고려 유민 정착 잘하고 살라고 마을 내주고 했다는데 그 정도면 인간적인 거지. 다른 나라 보면 죄다 죽여버리던데 그래도 조선왕은 고려 백성들은 타치 안했잖아…왕권에 지랄할 놈 만 제거 한거지… 부패한 놈들 위주로
개성 왕씨(開城 王氏)는 고려 왕족의 본관이다. 고려 때 관찬된 정사 편년통록에 의하면 왕건의 증조부 국조는 당나라 선종 아들로 기록하고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은 국사에 당나라 숙종의 후손으로 기록하였다. 원나라 학자가 원나라에 체류하던 고려 충선왕에게 "고려 태조 왕건의 선조는 숙종에게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당숙종은 유년기에 대궐 밖을 나간 일이 없고, 안록산의 난이 있었던 때에는 영무에서 즉위하여, 조선에 들어가 자식을 둘 수 있습니까?", 물어 보자, 충선왕 신하 민지(閔漬)가 대신 대답하기를 "그것은 고려 국사에 잘못 쓰인 것이고, 고려 왕족은 숙종이 아니고 선종의 후손입니다", 라고 설명하였다. 이후 민지는 편년통록에 당숙종이 아닌 당선종의 후손으로 기록하였다.
당나라 이세민의 후손이군요? 님들은 왕씨가 아니라 이씨입니다. 씨족은 선비족이구요. 그리고 대륙고려 영토를조선에 자진 위양하고 한반도에 정착해서 1775년에 고려가 멸망했습니다. 고려의 원수는 조선이 아니라 미국이 중심으로 구성된 로마교황청 세력인 세계예수회국입니다. 결론적으로 미국이 실제 원수국입니다. 조선이 마치 고려를 멸망시킨 것처럼 꾸민세력은 바로 서양세력과 일본에 의해서 조작던 것입니다.
@@HipposDayan 원래 양반빼고는 성이 없엇는데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성이잇지요 90프로가 조선말 관직과 성을 돈으로 삿거나 신분제 철폐되며 다들 성씨를 갖기시작햇는데 이때 유명햇던 실세 안동김씨와 민씨 왕족 전주이씨로 대부분 족보까지 위조하여 갖게되니... 지금 이들 성씨 90프로는 천민이나 양민들이다라 보면되지요 모 지금 이런게 뭐가 중요하냐 싶겟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