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고려거란전쟁:고려는 송나라와 몰래 계속 교류하였고 거란은 강동 6주가 전략적 요충지인걸 뒤늦게 깨닫고 되찾고 싶어 하였다.한편 고려황제 목종은 동성연애를 하느라 후사가 없고,천추태후는 김치양과 분륜하여 낳은 아들을 목종 후계자로 만들려함.목종은 그들을 견제하기 위해 강조에게 자신을 호위하라 불렀고 강조는 왕을 만나기 전에 아버지의 편지를 받는데 편지 내용은 "왕은 이미 죽고 간신들이 권력을 잡았으니 국난을 바로 잡으라."그래서 강조는 5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개경으로 갔는데 왕은 살아있음.강조는 당황했지만 이미 반란을 일으킨 반역죄인이므로 그대로 진군하여 간신들을 죽이고 목종도 폐위시키고 현종을 직위시킨다.줄곧 고려를 침공하려더 거란은 강조가 왕을 죽였다는 대역죄른 저질렀다는 명분으로 직접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에 처들어 왔다.(참고로 목종은 거란이 직접 채택한 왕임)그런데 흥화진을 지키던 양규가 5천이 안 되는 병력으로 7일 동안 막아내자 거란은 병력을 절반을 흥화진에 두고 남쪽으로 내려간다.통주에서 강조의 30만 대군이 거란을 막아섰지만 기습을 당하여 강조는 거란에게 붙잡히고 고려군은 대패한다.신하들은 이번에도 항복하자고 했으나 강감찬은 일단 남쪽으로 피난가자 하였고 현종은 강감찬 말대로 나주까지 피난길을 오르게 된다.양규와 김숙흥은 1700백 병력으로 납치된 고려백성 3만명을 구하고 거란군 수만명을 죽이고 화살로 고슴도치가 되며 전사한다.고려사신 하공진은 거란황제를 찾아가 현종이 직접 거란에게 찾아가 친조를 이행하겠다 하였고 거란은 철수하게 된다.출처:유요님의 노래를 본따 만듦
ㅇㅇ고려는 고구려를계승했다고해서 고구려와 발해땅을 얻을기회를 엿보기도 했었음 그리고 송은 연운16주와 하북지방을 되찾기를 원했고 이런이해관계가 있었기에 고려와 송이 교류를 한거임 그리고 경제력과 유교 불교문화가 송이 제일좋았으니까 고려사신들과 상인 승려들이 송으로 유학가거나 서적을 수입해오거나 했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