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힘들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레이드 몬스터는 오리지널 검둥의 벨라였던... 2티어 3피스도 맞추지 못한 시절에 화저템 둘둘말면서 딜이나 힐량도 줄고... 하루에 수십번헤딩하면서 간신히 잡았던 기억이... 지금도 놀러가면서 추억에 가장 많이 젖는 몬스터...
가장 큰충격은 화심 입구 골렘2마리. 40명의 엄청난 팟을 꾸리고 뭐든 다이길거라 우쭐해하며 던전진입했지만 현실은 이 두마리한테 많은 공대가 전멸했죠. 그 이후 레이드 탱커 개념이 생기고. 가장 기억에 남는건 벨라스트라즈. 한번 잡기전과 잡은후 난이도가 극명하게 바껴서. 잡고나면 그동안 왜이걸 못잡은건가 생각이 들지만 트라이할때는 피가마르죠. 가장 토나왔던건 안퀴사원. 전혀 준비가 안된 자저세팅과 자보 물약. 레이드말고는 활용도가 없어서 참 손이 안간 세팅과 준비. 나름 공주라는 욕나오는 후후란
최고의 게임 와우…60렙제에서 70으로 넘어가기 직전 플레이해서 아웃랜드 보스들 레이드했던기억이…막공으로 수많은 보스 레이드 너무 재미있었음…일리단 잡는게 목표였는데 결국엔 막공으로 못잡고 접었던 기억이…그 당시 흑마로 탱커도 해보고…누가 내게 제일 재미있던 게임이 무엇이냐 물으면 단연 와우였어요
오리때 공대 경험은 없지만 불타는 성전 시절에 태양샘 패치가 시작되면 낙스 40인 공대가 사라진다는 말에 너도 나도 공대 만들고 처음으로 낙스 40인 공대 체험한 기억이 나네요 나름 70렙 30명 정도 모이고 거기에 저렙 몇명과 갔었는데도 난이도가 너무 어려워서 몇번 트리이 했었네요 진짜 여길 60렙에 클리어 했던 분들 너무 존경스러울 정도였음 ㅋㅋ
레이드는 에드온이 나오면서 점점 어려운 극악 난이도 레이드로 변질 되었죠 진정한 극악 최초 공대 파괴자라는 이름이 생긴 오리지날 검둥의 벨라가 아닐까 생각드네요 그당시 에드온도 없던 시절 탱커는 풀 분노를 이용해서 무조건 어글을 잡아야 했고 딜러는 자기 최고의 기량으로 극딜과 어글 낮추기 힐러들은 40명 공대원 멀티힐로 최대한 살려야만 잡을수 있던 레이드 벨라가 정말 생각 나네요 처음으로 벨라때 플포에 공대 깨지고 했죠
오리 상층 공격대부터 얼땅까지 레이드 뛰었는데 너프전 므우루, 일리단, 그리고 벨라가 제일 기억에 남네요. 므우루는 너프전에 퍼킬 해 보고 싶어서 진짜 미친듯이 뼈 쌓았는데 퍼킬 하고 다음주에 너프되고 나서 2트 만에 잡아서 개허무.. 일리단은 경쟁 공대가 2%봤다는 소문땜에 7월 17일 제헌절 새벽까지 15시간인가 연속 트라이...책상위에 베개 가져다 놓고 버프하고 일리단 대사 읊을 때 까지 자다가 일어나서 딜하고 그랬음...결국 국내 첫킬 하긴 함 벨라는...3달인가 벽에다 돌 던 지는 느낌? 결국 너프해줘서 잡고 나선 허무했던.. 첫킬 희열 때문에 정말 청춘을 갈아 넣었던 게임
난이도를 떠나 오리지널때의 화심 라그를 잊지 못하는 분이 많은 것 같네요 저도 접은지는 오래 되었지만 40인 레이드라는 것을 처음 해보고 입구를 지키는 거대 골렘 2마리한테 40인 전멸 당하면서 파티를 구성해야하고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개념을 잡아가던게 이제 와서 추억이네요
개인적으로는 안퀴사원 쑨 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그 전과 다른 개념의 레이드 였고 각개 전투 각자 모두가 판단해서 진행되는 공략이라 신선했죠 1페이즈를 여유있게 넘겨야지 2페이즈를 잡을 딜링이 됐기에 설령 1페이즈를 넘겼더라도 공대 상황에 여력이 안되면 2페이즈 시도 안하고 1페이즈를 무한 반복하던 그 기억이 남네요.
화산 심장부 처음 오리지널 나오고 획기적인 느낌이었죠. 5명이 파티 가는 것도 아니고 40명이 파티 짜서 가야 한다는 레이드 진짜 뭔가 어마어마하고 무서운 곳에 레이드 인던은 또 녹색 검은 바위산 인던 돌면서 잠깐 이건 뭐지 하고 들어갔는데 레이드 입구부터 엄청난 크기의 화산 골렘이 2마리 서있는데 여긴 가면 안되는 곳이구나 라고 엄청난 위압감과 공략 해보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죠
요그사론은 이성회복이 문제가 아니라, 1. 수호자 한명당 딜10%보너스씩 주던게 없어지는것과 2. 막페에 계속 나오는 수호자들 막타를 토림이 쳐 주는데, 토림이 없으면 광역으로 터지는 힐이 주기적으로 수호자들에게 날라가서 그 대상을 멀리 빼내줘야 하는 택틱이 너무 어려웠던것. 택틱이 조금만 익숙해지면 이성회복시켜주는 프레이야는 없어도 됨.
대부분의 와우저에게는 화심과 그다음이 최고의 임팩트겠죠.. 레이드의 서막을 열였으니.. 저는 그당시 화보물약의 떡상을 직감하고 서버 전체의 화보재료를 막강한 자금력으로 흡수 이후 레이드가 떡상하면서.. 무한대로 팔리더군요.. 그냥 경매장에 던지면 순삭.. 이상 화보물약 제작자 였습니다. ( 서버 화보의 50%는 제가 공급한듯.. ) 이후 제가 서버 1위의 자본가로 등극 서버의 물가는 제가 올리고자 하면 올라가는거고 내리고자 하면 내려가는 거였습니다. 다만 경쟁자가 있긴 하더군요.. 근데 그분은 24시간 와우 돌리는걸로 봐서 , 여러명이 하나의 계정을 돌리는거 아닌가 싶긴 했는데.. 서로 뻔한 인물들이다 보니.. 서로 눈치봐가며 동종업계 사람끼리 지나친 출혈은 피하고 종목을 나누게 되더군요... 이후 사업을 얼라에서 호드쪽으로 확장했는데.. 얼라와 호드간에 물품이 교환될 수 있는 루트가 있긴 했어요.. 굉장히 제한적이긴 하지만. 그걸로 얼라와 호드 사이의 중계무역으로 다시 때돈을 벌게되고. 길드자금은 그냥 제가 다 서포트 하고, 골팟가면 최고의 큰손이라.. 고정공대에서 귀빈으로 초대받으면서 와우했었네요. 제가 그템을 먹고자 하면 그템은 제꺼였습니다. 돈으로 입찰하는한..
@@CinemaruMovieTrailer 몇살이나 쳐드셨는지 모르겠는데, 오리 낙스 난이도가 낮았다면 전설 지팡이가 널렸겠지. 파밍만 되면 제작할수 있는거니까. 당시에는 지금처럼 애드온이 좋지도 않았고 음성진행하는 공격대도 흔치 않았기에 더 어렵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겪어보지 않았으면 말 함부로 하는거 아니다.
시간이 지난후 서버 최고의 템귀가 되었는데.. 당시 아라시전장에 용개가 출현을 잘했는데. 외쳐 EE 하면서 유명인이라.. 용개만 잡으러 다녔던 기억이 있네요.. 갸가 기공이라 저도 맞기공 타고 다르애들 패스.. 용개만 때려잡.. 하는데.. 용개가 튀는데도 선수라.. 잘 안잡히더군요..
한 주에 트라이 할 수 있는 수가 정해진 네임드라 오래 걸린 것이지 지금 보스들에 비하면 객관적으로 난이도가 많이 떨어집니다. 풀링 시 네임드와 npc의 대사 등으로 인해 피로감도 빠르게 쌓이는 네임드라 이후 네임드들에서 그러한 부분들이 많이 반영되기도 했죠 위크오라가 대중화 된 이후, 과거로 돌아간다면 극악의 난이도의 네임드들도 할만하게 되었습니다. 나스리아 성채 데나트리우스 월드퍼스트 영상 한 번 관람 추천드립니다. 개인적으로 난이도와 영상미 모두 좋았던 네임드네요.
게임 오픈했을 때 레이드 개념도 없던 시절. 당시 랩이면 다되던 시절에 서버에서 3번째로 만랩찍어서 상대종족 마을 처들어갔던 걸로 재미봤던 그 때 화산심장부 업뎃되고 레이드란걸 처음했는데 입구 골램한테 40명 공대 전원 몰살을 4번 격고 이후 화저셋과 에픽 생명석 그리고 즉시 생명력 채울 수 있는 물약을 얻기위해 평판작업과 연금술 배워가며 몇일을 준비해서 처들어갔고 장정 한달을 내내 도전한 끝에 라그를 만났고 당시 몬스터가 대사치거나 등장 동영상은 엄청나게 압도적이였음 수십 트라이를 거쳤지만 끝내 실패했지만 이후 북미섭에서 라그 공략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얼마 후 국내에서도 공략 성공하는 공대가 나오기 시작했음 더 충격적이였던건 유물이라는 듣도보도 못했던 아이템의 존재 족쇄 두개를 얻어 퀘스트를 완료하면 얻을 수 있다는 썬더퓨리가 모든 유저들 가슴에 불을 싸지름 6개월 후 북미섭 도적이 썬더퓨리 만들었다는 소식은 지쳐있던 와우저 가슴에 기름통을 부엇고 나도 그 후 8개월이 더 흘렀지만 얻을 수 있었음 그때 감격은 생애 태어나서 가장 큰 희열이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