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iellerusty8251 맞는말이지만 정도가 있지요 황희정승은 건강이 많이 쇠하고 은퇴할 시기가 한참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세종은 쓰기 편하고 신뢰할만한 황희 정승을 죽기 몇년 전까지 부려먹습니다. 국회의원 암만 본인 명예와 부에 좋아도 70세되면 시켜줘도 건강상 기피할 자리거든요. 고령에 퇴직하고 얼마 못가 죽었으니 죽기 직전까지 부려먹었죠 ㅎㅎ
근데 무오사화의 근거가 된 김일손의 사초가 왕을 모욕하는 찌라시들이 많아서 지금 기준으로도 파직 감이긴 했어요. 근거가 있는것도 아니고 그저 악의적인 찌라시를 사초에 적었으니깐요. 오죽하면 나중에 연산군에게 반기를 들다 죽는 대신들도 감히 김일손과 김종직에 대한 처벌을 말릴 명분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사실 연산군이 사림만 좀 죽이는 선에서 끝내고 정치를 올바르게 했다면 무오사화는 다리 세개 달린 닭이 태어났다고 왕에게 시비를 거는 주제에 실무능력도 한심하고 혁신을 막는 ㅂㅅ같은 사림을 쓸어낸 업적으로 남았을겁니다.
역사속 재미있는 얘기를 흥미롭게 컨텐츠로 만들어주셔서 와빌님 늘 감사하고 재밌게 시청하고있습니다~ 저는 특히 와빌님 채널의 다양한 역사. 미스터리 관련 컨텐츠들을 좋아해서 자주 찾아보는데~ 혹시 경종과 영조 사이의 이야기도 컨텐츠로 만들어주실수 있을까요? 늘 응원합니다! 화이팅!
참고로 중국의 경우에는 후대 황제가 실록을 읽지 못하게 하는 원칙이 없어서 황제나 대신이 임의로 실록을 열람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록에 사관의 논평이나 황제에게 불리한 내용을 싣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또한 처음 편찬한 실록을 후대에 고치는 것도 가능해서, 명 홍무제의 실록인 태조실록은 다음 황제인 건문제 때 처음 편찬되었으나 정난의 변으로 건문제를 몰아내고 즉위한 영락제에 의해 대대적으로 개수되어 영락제에게 불리한 내용이 대거 삭제되었습니다. 한편 중국에서 실록 편찬체계가 정립된 것은 당나라 때부터이나 현재 남아있는 중국의 실록은 당순종 실록 다섯 권과 송태종 실록 80권 중 20권, 그리고 명실록의 대부분과 청실록 전체이고 나머지 명 이전 실록들은 모두 유실된 상태입니다. 요, 서하, 금, 원도 실록을 편찬하였다는 기록은 있으나 이들 국가의 실록은 모두 유실되었습니다.
사관 진짜 힘들겠다 항상 임금을 따라 다녀야 하고 세세한것까지 적어야 하고 광해군이나 연산군같은 폭군 시대에는 죽기를 각오해야 하고 왕이 문란해지면 나라 어떻게 되나 하면서 현타오겠고 그러면서 상관한테 갈굼도 당했겠고 글도 많이 써야 되는데다가 이 글들이 후세에 역사서로 기록될 것을 생각하면 참 힘들겠다 사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