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시절에는 이 파트가 제일 짜증나고 공부하기 싫은 역사였는데 성인이 된 후에는 제일 흥미로운 파트입니다. 어떻게 한 나라가 식민지가 되는지 알 수 있고 또 우리가 놓친 몇 차례의 기회들이 선명하기 때문인거 같습니다. 게다가 이 파트에서 배울 수 있는 전략들이 현대에도 굉장히 요긴한거 같습니다.
@@yhansookim7850 정확히는 07년부터 일제에 의해 시작되는 순종 융희제 재위기부터 제국적 체제도 유명무실해지는 거죠. 을미사변으로 인한 아관파천으로 일본이 깜짝 놀란 사이, 잿밥에 눈이 먼 제정 러시아 측에서 과한 요구를 해오자, 고종은 주청을 받아들여 환궁, 대조선에 대군주로 칭호를 일신하고 제국 선포를 위해 달려갑니다. 황제 즉위식을 거치며 제국적 체계를 갖춘 대한제국이었고, 일본의 압박이 있었음에도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는 개혁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수도 중심의 실험이 끝난 1905년에 러일전쟁과 을사늑약 등이 있었고, 외교권도 박탈당했죠. 이에 대항하기 위해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했으나 목적 달성은 물 건너 가버렸고, 이를 빌미로 강제 퇴위를 당하면서 군주에 의한 개화 주도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07년에 등극한 순종 융희제는 그렇게 허수아비로 있다가, 정미 7조약도 맺음 당하고 그나마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군대도 해산당해, 결국 경술년인 10년에 강제로 병탄당하며 끝났고요. 제국이라는 것에 딴지를 거는 것보단, 뒤늦은 개혁개방 노선 승차와 뒤떨어지는 세계 정세에 대한 반응 속도를 두고 뜯어야, 정확히 맛있는 부위를 먹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일본에 의해 만들어진 제국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보다는 비관적인 시각이 다분히 섞인 평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지 않은 제국이 저들 뜻에 따라 만들어진다는 게 가능은 한 것입니까. 그 이전의 김홍집 내각도 일본이 요구한 것, 기대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갔다는 게 중론입니다. 일본 세력이 꽤 많이 들어와 있었다고 해도, 홈그라운드가 아니기 때문에 영향력을 높이려고 기웃거린 것을 두고 저들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놀아났다 보는 것은 너무 쉽게 한 시대를 정리하려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적어도 타인의 손에 죽기 직전에 자신 스스르 선명하고 맑은 얼굴빛을 보였다는 정도가 알맞지 않을까요.
제가 황 선생님의 지난 강의 영상에서도 언급을 드렸지만 1884년 갑신정변 이후 1894년 동학농민운동 전까지의 10년의 세월은 조선이 스스로 개혁을 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때는 청나라와 일본이 서로 견제하는 시기였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대한제국 수립 이 후 러, 일 전쟁 때 대한제국 정부가 일본에 무력 항쟁을 전국적으로 전개했다면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치욕의 역사가 없었을 수도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근대 역사에 대한 황 선생님의 멋진 강의 영상 잘봤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
부끄러운 얘기입니다만 학교다닐 때 역사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고조선 이후로는 시험보고 다 잊어버리기 바빴으니.. 헌데 나라 안팎으로 일어나는 일에 연유를 알려다보니 저절로 역사에 관심이 생기고 뒤늦게 의욕이 생기네요. 덕분에 요즘 재밌게 선조들의 발자취를 거슬러 가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공부를 날로 먹어도 되나 싶을 정도입니다..ㅎㅎ) 핸드폰을 잃어버리셨다니 생면부지인 제가 다 안타깝네요 꼭 주인찾아 돌아오길 바라겠습니다 항상 유익한 강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