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한 선동열 이종범 홍현우 등 추억의 레전드 스타 총출동! 삼성과 해태의 치열했던 1993년 한국시리즈! 시리즈 MVP가 된 신인 이종범의 활약과 이강철 송유석 선동열로 이어지는 해태의 방패를 삼성은 뚫어낼 것인가? 타이거즈 vs 라이온즈의 3번째 한국시리즈 7차전의 결과는? #1993한국시리즈 #이종범MVP #전설의선동열
1993년 해태는 정규시즌 81승을 거두며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태평양에 17승1패 빙그레에 12승6패 LG와 롯데에 11승1무6패 쌍방울에 13승1무4패 OB에 10승8패로 우위였습니다. 하지만 삼성에 7승11패로 정규시즌에 열세였고 삼성은 93년 해태를 만나면 폭발적인 타력을 뽑냈습니다. 1993년 대구에서 해태를 상대로 한게임 최다 홈런 9개를 뽑아내며 15대2로 대승을거두는등 정규시즌에서는 해태를 압도했지만 한국시리즈 잠실 중립경기에서부터 조계현 선동렬을 공략 못하고 패하게 됩니다
국민학교 4학년 처음으로 야구장 갔던 경기가 이경기 였네요!! 이종범의 팬이 안될수가 없던 경기....박충식이 무서웠던 시리즈....언제나 묵묵히 제몫을 다한 마당쇠 송유석.. 검정 비닐봉지에 소주팩 숨겨서 제 고사리 손에 주시며 "니가 가지고 있어."라고 나지막히 말씀하시던 아버지 모습도 아련합니다ㅎㅎ
대구에서 열린 3차전에서 선동열을 조기에 투입했지만 부상을 염려해서 9회교체.. 15회까지 완투한 박충식한테 밀려서 거의 포기했는데 송유석투수가 연장전에 나와 15회까지 무실점으로 막아낸게 이 시리즈 분수령이었습니다 무승부로 버텨내고 4차전 내주고 1승1무2패로 잠실로 가게되는데 그때 부터 공격에서 이종범 도루로 물꼬를 트고 3연승을 거뒀지요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게 우승했던 시리즈가 아닌가 싶습니다
영상의 제목처럼 김성한부터 이대진까지 모두 뛰었던 시리즈였는데 사실 이 시리즈가 역대 해태의 한국시리즈 중 가장 위험했었죠. 해태가 시리즈 7차전까지 갔던 유일한 시리즈니까요. 특히 지금도 회자되는 3차전 박충식의 싱커를 공략못해서 쩔쩔맸지만 그래도 해태는 해태여서 선동열 강판 후 투입된 송유석이 꼭꼭 틀어막아 기어이 무승부를 만들었던 것이 시리즈 전체의 향방을 바꿨습니다. 그 후 해태에겐 또 다른 홈구장이었던 5차전 주말 낮경기에서 선발 조계현의 완투승(완봉이었다가 막판에 이만수에게 피홈런)과 그때부터 미친듯이 그라운드를 휘저었던 이종범의 발이 쐐기를 박았습니다. 결국 조계현이 완투로 중간투수들을 충분히 쉬게 한 해태의 마운드와 끝내 이종범을 막지 못해 삼성은 6~7차전에선 힘도 못써보고 해태에게 우승을 내줍니다. 결과론적이지만 만일 3차전에서 삼성의 우용득 감독이 해태의 김응룡 감독처럼 박충식을 9회 끝나고 바로 강판했다면? 어쩌면 삼성에게 더 유리했을지도 몰랐습니다.
@@배상근남자 그건 특별한 이유가 있죠. 최해식 전설 출연분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인천출신 심판들의 노골적인 현대편들기가 쌍방울 레이더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부터 아주 노골적이었습니다. 쌍방울이 현대에게 리버스 스윕당할 전력이 아니었어요. 게다가 한국시리즈에서 정명원의 노히트노런 또한 심판 너무한다는 장면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6차전 끝무렵 최해식 전설의 분노에 찬 눈물의 퇴장과 집단항의로 분위기를 일거에 타이거즈쪽으로 끌어갔고 걸국 더이상 편파판정 하기 어려워진 심판들의 판정으로 이긴거라고 봐야죠. 그리고 그 해당심판은 그해 심판상 예정자였는데 그 날의 시합때문에 수상도 취소됐다고 합니다 또한 이런걸 보면 선수나 스탭들이나 언제 어떤 행동을 해야 흐름을 갖고 올 수 있는 걸 정확히 알았던걸 보면 달리 강팀이 아니었습니다.
@@winshc 1996년에 쌍방울이 현대에게 리버스 스윕을 당할만한 전력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애초에 1996년 쌍방울은 현대보다 전력이 더 낮았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쌍방울 성영재의 플옵 부상이 현대때문인가요? 무엇보다 쌍방울은 현대보다 투수가 안좋았던적이 아예 없습니다. 님은 태평양이 투수왕국이었다는 사실을 알고계시죠? 심지어 1996년 쌍방울은 한화보다 투수가 더 안좋았던 팀입니다
93년 해태가 참 강했지만 그 시즌 삼성도 정말 강했죠. 이종범을 제치고 신인왕을 받은 양준혁이 들어오고 류중일, 김성래가 하락세가 오기 전이었고 동봉철이나 강기웅도 커리어 하이였죠. 저 시즌 이후로 삼성도 더 이상 93년만큼 강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이승엽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며 부활했던 기어이 나네요
김성한 선동열 김정수 이강철 조계현 이종범 이대진 - 이거 완전히 국대 라인업인데요? 아무리 삼성도 잘했지만 저 라인업을 이기기는 사실상 불가능... 박충식마저도 광주 출신.... 저 시절 해태는 마치 마이클조던 시절의 시카고불스를 떠울리게 했죠. 지금 봐도 대단합니다!!
솔직히 재밌기로는 1993년 코시가 제일 재밌었음. 2009년은 너무 오랜만에 우승이라 울고 불고 했지만 경기 내용이나 쫄림은 1993년이 더했음. 10번 우승 중 유일하게 타이거즈가 열세인 상황까지 몰렸으니까 (4차전까지 1승 1무 2패) 에휴 삼성하고 코시 또 언제해보나. 한 번 제대로 붙어서 삼성 팬들하고 오랜만에 클래식 매치가야 할텐데
@@동호한-k3p 네 별로 안쫄렸어요. 2009년 코시 3,5,7차전 구장에서 직관했구요. 7차전 지고 있을때도 당시 SK 7차전 선발 글로버가 5회 못채우고 내려가면 결국 SK중간계투진이 지쳤기 때문에 기아가 유리할 거라고 생각 했습니다. 프로야구를 1991년부터 봐서 흐름 돌아가는건 웬만한건 다 맞추는거라. 2009 한국시리즈 들어가기전에도 6차전이나 7차전에서 기아가 우승한다고 친구하고 예측했구요. 오래보면 흐름이 보여요
@@동호한-k3p 7차전 직관하기전에 이미 시리즈 2경기 직관했고, 당시 SK는 중간계투진이 팀의 모든것이었는데 이미 지쳐버린 중간계투진이 배팅볼까진 아니더라도 그에 근접할 정도로 볼의 위력들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발투수 글로버만 5이닝을 못채우게 내린다면 반드시 기아가 승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가지 계산 착오는 6회초 양현종이 박재상에게 다섯번째 득점을 허용했을 때였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주자였던 정상호는 태그아웃이었는데 당시 주심이었던 임채섭 심판이 오심을 했었습니다. 이 경기 중계보다는 경기 후에 연합뉴스에서 올린 스틸 사진에서 정확하게 판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오심만 아니었다면 SK는 5점이 아닌 4점이었구요. 나지완의 끝내기가 아닌 9회초에서 끝낼 수 있었지만 이것도 12년만의 우승이라는 감격을 위한 빌드업이라고 생각했죠^^
@@동호한-k3p 그리고 7차전 직관자로서 당시 1루 기아응원석에서 응원하고 있을때 6회초 정상호의 5번째 득점(임채섭 심판의 오심)으로 기아의 포수 김상훈이 부상으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때 김상훈이 굉장히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1루석에서도 보이더군요. 블루석도 아닌 옐로우석이었습니다. 그 전까지 기아 응원단도 끌려가는 느낌이었다면 김상훈의 부상으로 잠실구장의 3/4를 차지하는 기아관중들이 뭔가 끌어오른다고 할까? 암튼 그 때부터 그런 분위기가 확 느껴졌어요. (물론 직관하는 분들이 SK의 5번째 득점이 오심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었죠. 기아 주장인 김상훈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다들 감정이입 한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그 때부터 끌어오르는 분위기가 느껴졌음) 바로 6회말에 나지완의 2점홈런이 나와도 흥분보다 더 두들겨 패야한다 그런 분위기? 님 덕에 오랜만에 그 때 기억을 되짚어보는군요
@@프로박-y6w 님같은 사람이 있어서 가만히 있는 다른 선동열팬까지 다 싸잡아서 욕먹고있는것입니다. Mlb 124승 투수 그것도 대약물 시대때 했었던 메이저리거가 봉으로 보이십니까? 선동열이 nbp로 진출했었던 첫해때 크게 털리고나서 크보와 nbp의 수준차이를 직접 느끼고나서 그렇게 좋아하던 술도 다 끊고 훈련에만 몰두했었다는 사실은 모르고계시죠?
@@bjh925 네 제가 말한 내용이랑 님이 말한내용이 맞습니다. 동봉철 선수가 96년 시즌 전에 삼성에서 해태로 트레이드 되어 오는데 운좋게 한국시리즈 엔트리 들어 우승반지 끼고 다음해에 lg로 갑니다. 97년도에 최훈재 등이랑 트레이드 되서 동봉철은 lg에 최훈재는 해태로 와서 97한국시리즈에서 해태가 우승하면서 최훈재가 우승반지를 낍니다.
야구에 별 관심 없고 딱히 응원하는 팀도 없는 저 조차도 당시 이때 기억은 무엇보다 박충식 불쌍... 15회 연장 무승 완투하고 7차전 또 나왔으니... 당시 투수 왕국 해태 상태로 버틸 재간이 없죠. 제 기억으로 삼성에 이렇다할 투수는 박충식 밖에 없었던 걸로.. 김상엽도 딱히 이렇다할 활약은 못했던걸로 기억하고..
동열이와 종범이가 합작한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 그리고 원년부터 이어온 해태(한글) 유니폼의 마지막 우승 이 우승 이후 해태는 대대적인 세대교체를 진행했고 80년대부터 해태를 이끌어온 주력들이 대거 은퇴 및 이적을 하게되며 94-95의 과도기를 거친 후 96-97 마지막 불꽃 우승을 차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