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빙그레(한화이글스)도 이상군,한희민의 원투펀치에 장종훈,이강돈,이정훈에 재일교포 고원부 선수로 이어지는 다이너마이트 타선이었는데 전체적으로 공수주에서의 짜임새와 단기전에서의 경기 운영능력에서 해태에 밀렸다고 봐야겠네여🧐선동열 선수의 부상이 있었지만 문희수,신동수 투수의 눈부신 호투와 김성한~김봉연~김준환 선수의 KKK타선과 이순철 선수의 리드오프로로서 맹활약이 꽤나 인상적이었습니다🤔이후 빙그레는 1992년 페넌트레이스 1위로 KS 직행해서 우승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게되지만 크레이지 롯데의 무서운 돌풍과 제1선발 송진우와 슈퍼루키 정민철의 난조로 아깝게 우승을 놓치고 1999년 창단 첫 한국시리즈 🏆을 차지했던 기억이 납니다😇
기본적인 투수력에서부터 해태에 밀렸습니다. 이상군 한희민은 이닝 소화력이 좋고 제구가 뛰어난 투수들이었지만 구위가 좋은 편은 아니라 상대투수공략을 지능적으로 하는 해태타선을 견뎌내질 못했죠 반면 해태는 에이스 선동열이 1차전 완벽한 투구로 승리를 가져 왔고 비록 부상으로 더이상 등판하진 못했지만 문희수, 이상윤, 김정수 같은 구위좋은 수준급 투수들이 연이어 던지면서 빙그레를 격파할 수 있었죠
이호언님. 서울상대 출신 전문 야구 선수는 안했지만 일본과 미국의 야구잡지를 보고 야구 지식을 쌓았다고 하지요. 75년인지 최동원의 경남고가 청룡기 우승 할때 최동원의 공을 보고 공이 철철 흘러 들어 온다고 해설을 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야구를 잘 하면서 탈렌트 스타 기질이 있는 선수를 미국 메이저 리그 에선 핫도그맨 이라고 했지요. 그 핫도그맨이 최동원 이었고. 하연간 프로야구 시작시 서울상대 동기인 이용일 총장과 kbo기틀을 마련 했다는 분이시죠.
다이너마이트 타선은 분명 당대 최상의 맴버들이 모여있던 삼성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음. 다만 주전중에도 하위타선과 백업선수들이 너무나 부실했고 투수진은 한희민, 이상군 제외하곤 고만고만했을 정도로 선수층이 얇다는 신생팀의 한계도 여실히 보여줬음. 그나마 90년대 가서야 투수들 문제가 어느정도 해결되고 타선도 안정화되며 20세기 마지막 우승을 결국 차지함
즐비한건 오바고 엄밀히 따져서 딴팀가서 클린업 칠 선수는 장종훈 밖에 없었음... 그 장종훈도 90년 넘어서야 장타력 포텐이 터졌으니 실제 88-89 빙그레는 클린업에서 해결사가 없는 상황 고원부나,이정훈, 이강돈은 1,2번 테이블세터 스타일이고 이중화 강정길 강석천도 전형적인 하위타순 유형 타자들
빙그레는 88년, 89년 중에 한번은 우승했어야 했었는데...특히 89년 코시가 통한ㅠ 이후에 해태만 만나면 트라우마로 이어져 92년에 해태를 이기고 코시에 오른 롯데에까지 패배하면서 93년에 중심타선 이강돈 장종훈 이정훈이 부상으로 전부 고생하기 시작했고... 결국 한화로 99년에 어정쩡한 코시우승을 달성했지만... 김인식 감독과 류현진의 00년대 중반 이후 꼴찌권이 당연한 팀으로 변모하는 등 이상하게 꼬이게 됨ㅠ 정말 92년 플레이오프에서 롯데 응원했던 이유가 빙그레 우승이었지만ㅠ
운용따질거 있나 88-89-91 세번이나 졌으면 그냥 기본적 실력차로 발린것 투수력은 해태 우위 타자 라인업만 놓고봐도 해태가 더 무게감이 있음 오히려 88년 해태 상대로 2승씩이나 거두고 89년 선동열 상대로 1승 챙긴것만 봐도 빙그레가 선전했다고 봐야함 당시 KS에서 해태상대로 2승 거두고 1차전 패배시킨 팀은 빙그레가 유일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