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곡은, 작곡가인 전수린이 고향인 개성에서 연극공연차 들렀다가 비가 와서, 공연이없는 날 단원들과함께, 여관 방에서 무료함을 달래던 중 전날에 찾아가보았던, 송악산 아래의 폐허가되어버려서 잡초에 파묻힌 황량하기그지없는 만월대를 생각해보면서, 마침 자신들의 처지와비슷한 망해버린 고려왕조의 서글픔과 애틋함을, 그날 즉석에서 악상을 떠올려 전수린은 기타로 튕겨내면서 오선지에 그려나갔고, 동료인 왕평은 노랫말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가을인 1928년 서울 단성사에서, 연극공연 도중의 막간시간에 18세의 이애리수라는 가수가, 이 노래를부르자 삽시간에 객석곳곳에서, 관객들은 뜨거운 눈물을 흐리면서 발을 동동 구르고 나라잃은 설움을, 대성통곡하면서 분출시키자 임석하고있던 경관은 그 연극을 중단시켜버린일이있었고 이 노래는 조선민족의 감정을 자극시킨다는 이유로, 그후 한때 금지되었던 노래였습니다! 그리고 한편, 이 노래는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효시라는 점에서 역사상으로도 의미가있는 노래이기때문에, 웬만한 가수라면 누구나 다 한번쯤 불러보았을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 노래가 애창곡이었던 박정희대통령과의 인연은! "황성옛터" 의 "황성" 은 임금이 거처하는, 왕궁이 아니고 폐허가되어버려서 방치되어, 황량할 "황" 이라는, 한자어를 당시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이발을 해주던 청와대의 전속이발사에게 박 대통령은, 그런 식으로 정정하여서 올바르게 설명을해주었다는 일화도있습니다. 그리고, 다시말해서 1932년 일본의 빅터레코드에서 정식으로 취입하여서, 발매할때 이애리수라는 원곡가수가불렀던 이 노래의 곡명으로 "황성의 적" 이라고 표기하였는데 그후, 1959년 남인수가 부르면서 가요계관계자가 "황성옛터" 라는 제목으로, 노래이름을 바꾸어서 발표하는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황성" 이라는, 그 한자어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이해를 못하는것같습니다!
"황성 옛 터"1961년 남인수 노래(이애리수 원곡). 왕평(이응호)작사.전수린 작곡 1.황성 옛 터에 밤이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주노라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이 잠 못 이뤄 구슬픈 벌레 소리에 말 없이 눈물져요 2.성은 허물어져 빈 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주노라 아 ~가엾다 이 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 덧 없는 꿈의 거리를 헤메여 있노라 3.나는 가리로다 끝이 없이 이 발길 닿는곳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정처가 없이도 아~ 한 없는 이 설움을 가슴속 깊이 안고 이 몸은 흘러서 가노니 옛 터야 잘있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