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백제가 원주 홍천 청주 진천 보은 옥천까지도 한때 진출했었는데 5세기 이후로는 모조리 신라 영토로 다 바뀝니다. 백제와 신라의 산성들을 비교해 보아도 신라것이 훨씬 견고하고 험준합니다. 왕권이 약하고 귀족세력이 쎄기는 삼국이 다 마찬가지 였지만 신라는 열악한 환경을 극복할려는 의지와 소백산맥이라는 방어선이 있는등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물론 화랑도도 전쟁에서 큰 역할을 했습니다. 김유신 자신도 어릴때 낭비성 전투 등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선두에서 돌격해서 전세를 역전시킨 일을 여러번 했습니다.
ㅈㄹ 지도 신라의 후손이면서 뭔 개소리야 ㅋㅋㅋ 니가 전라도에 산다고 백제의 후손일거같애? 북한출신이라고 고구려 핏줄일거같냐고 신라가 통일하고 지금 도태한남처럼 백제 고구려 출신 남자들은 상것들이 되었을텐데? 거의다 신라 핏줄이다 그리고 당시 같은나라가 아닌데 지금 일본 중국보듯 뭐가 다를까?? 애시당초 같은나라 출신이 아니면 끝인데.
꿀잼 ㅋㅋㅋ 근데 의자왕이 의외로 능력자였다고 함. 문제는 신라가 저렇게 연합군 결성해서 쳐들어올때 귀족들이 비협조적..결국엔 연합군과 싸우다가 밀려서 공주쪽이었나? 그쪽으로 후퇴후 거기 귀족들을 재규합해서 반격할 준비를 할려다가 거기서 지방귀족에게 배신당해서 사로잡히고 그 배신자 귀족이 당나라에 팔아먹음. 그후 그 귀족은 당에 가서 귀족이 됨. 이사실은 중국에서 발견된 어느 비석을 통해서 국내 탐사진이 밝혀낸 사실인데... 국내 기록된 역사는 아무래도 승자가 쓴거니깐 의자왕의 최후를 지저분하게 만드는건 어쩔수없는듯. 재밋는것은 그당시 신라와 백제, 고구려들 갑옷이나 옷 무장이야기 나오는데 신라는....정치질 하는 무슨 장사치 느낌임 ㅋㅋㅋ 거기 귀족들이 막 화려하게 입고 외교나 정치,장사쪽에 특화된 느낌이랄까;
계백 : 호랭이 는 죽어서 꺼죽 을 냄기고~ 사람 은 죽어서 이름 을 냄긴다고 혔따!~ 계백 의 부인 : 므라고라고라? 아가리 는 삐뚫어졌어도 말~ 은 똑바로 씨부려야제?~ 계백 : (...) 계백 의 부인 : 호랭이 는 꺼죽땜시 뒤지고 사람 은 이름땜시 뒤지는거여~ 인간 아!~~ 제일 기억 나는 건! 이 부분! 이었던!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