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해, 행, 증. 작은 믿음이나마 믿음생활에서 시작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법문듣기), 읽고, 사경등을 하여 그 내용에 대한 이해가 생겼다면{문수보살격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 다음엔 반드시 행동으로 옮겨서 내 사고(생각)와 말과 행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어야{보현보살처럼}하고, 그렇게 계속해서 삶을 엮어 나아가다 보면 (탐진치를 낮추어서 나를 맑혀가면), 드디어 맞닥뜨리게 되는 `증득`(스스로 체험, 체득)하는 놀라운 경지가 옵니다. (여기 까지가 1차적인 깨달음의 단계라고 보고ㅡ) 자기가 자기를 보는 경지(견성)는 어쩌면 쉽다고 말할 수 있어요. 더 힘들고 어려운 건 그 다음인 것 같아요. 오랜 습관으로 형성된 아주 단단하게 굳어진 것들(생각의 패턴, 관념, 사상.. 그리고 그로 인하여 생겨나는 감정들..)을 늘 알아차리고 조금씩 바꾸어 나아가야 하는 일들과 내 안에서 올라오는 또 다른 아상(내가 낸데하면서 자기를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과 상처(깊은 트라우마)와 이 모든것들과 조화롭게 작별하는 법을 배우고 익혀야 하는 일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여기는 2차적인 깨달음(보림)의 단계라고 편의상 분류했음 ㅡ) 그렇지만 1차적인 깨달음(견성)은 그냥 이게 다 인데, 이처럼 쉬운일인데, 옛 성현이 그러셨지요? 알긴 알아도 행하기가 어렵다고!! 네 맞아요. 그래서 이 공부는 처음엔 출리심이 있어야지만 그 힘(분심)으로 제대로 힘차게 ,변함없이 쭉 뻣어 나아갈 수가 있어요. 그 출리심을 일으키는 요소가 바로 `고통`입니다. 결국은 절실함이 -죽어도 해내고야 말겠다는 간절함(뼈에 사무치고 사무치는 간곡함)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스님처럼 공부하기에 좋은 조건도 아니었고, 지금도 제가 아는 것들을 조금이나마 세상에 풀어 놓을 수 있을 만큼의 상황도 여건도 형성되지 못하기에 (물론 나서고 싶지 않은 마음도 아직은 조금 있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부를 하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주제넘게 몇자 적어 올립니다. 정말 간절히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자기 `자성불`(내가 곧 부처임)을 알고자 한다면, 이 고통의 바다인 윤회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그 시작은 신,해,행,증을 잊지마시고 꼭 이행하며 사십시요. 내가 이미 부처의 행동을 하고 사는데, 그 경지가 계합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 아닐까요? 이 공부는 사실 누구도 이행하며 살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그 누구라도 할 수가 있는 공부입니다. (간절하게 원하신다면 ㅡ) 다들 힘내시고, 자기 자신에게 응원을 보내며.. 아자 아자 화이팅~***
@@maroangel8525 네, 저도 님의 말씀에 동감입니다. 그리고 처음에 이 길로 들어설 때의 제대로 된 방법에 대한 하나의 사례를 제시한 것 뿐이지 누구나 반드시 이런 방법으로만 가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에게 맞게 그리고 각자가 처한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서 제각각 무수히 많은 방법들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저의 경우는 그러했습니다. (죽어도 해내 고야 말겠다는 강한 결의가 있었습니다.)그러기 전에는 죽을 수도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그것이 출가하지 않고 재가자로서의 저의 공부에는 다시 생각해봐도 조금도 변함없이, 흔들림없이 쭉 ㅡ 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거든요. 법상스님의 법문을 제가 즐겨듣는 것은 스님의 열린 사고, 즉 많은 분들의 사례들을 우리에게 들려주시고, 또 스스로 솔직, 담백, 진솔한 수행과정의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스님의 이야기에서 많은 영감과 재미와 공부를 함께 배우고 익혀 나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분들이 늘 건강하시고, 공부에 진척이 있는 하루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끝으로 한 말씀 더 올리자면, 우리들이 가는 이 길은 고통에서 출발 했으되 절대로 고행의 길이 아닙니다. 세상 살면서 이처럼 행복하고 즐거운 길이 없었는걸요. 이 길이 있음을 알고 저는 절망의 늪에서 바로 빠져 나올 수 있었답니다. 이 길은 대자유의 길이요, 큰 광명의 길이요, 대 희망의 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럼 이만 ㅡ
무시=`진리`(공, 즉 내용을 쫓지 않고 그 이면에 있는 본성을 보는것)에 입각해서 보며, 굴절 이것은 달리 표현하자면 =`재해석`, 이 재해석으로 인한 `재인식`, 반사는 =무조건적인 사랑, 수용, 용서와 관용으로 대처할 수 있겠지요. 이것은 단지 그 언어상의 표현만 다를 뿐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결국 같은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말들이 더욱 따뜻해서 좋습니다.
현실이 너무 생생하니 진짜인것 처럼 보이지만 착각의 생각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진짜가 아닙니다. 진짜가 아니라서 취하지도 말고 버리라는 애기가 아닙니다. 속지말라는 거에요. 내 생각으로 분별에 속지말라는 겁니다. 우리가 하루전에 뭐했다. 그걸 언제 애기하지요? 지금 애기하고 떠올리자나요. 내일 뭐한다를 언제 애기 합니까? 지금 애기하자나요. 과거, 미래 전부다 지금 애기하고 떠올리자나요. 그러면 어제와 내일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지금뿐입니다. 늘 지금입니다. 어제와 내일은 내 기억과 생각속에만 있자나요. 그게 진짜 있는건가요? 없자나요. 그러니 현실은 꿈속세상입니다. 그래서 좋고 나쁘고가 다 허망하고 허상인겁니다. 있다. 없다. 내가 있다 없다라고 생각하는겁니다. 그래서 내 생각을 믿지말며 그냥 지금 있는 이대로일뿐입니다. 아무 의미가 없고 그냥 텅비어 있을뿐입니다. 진짜 사는것이 아니라 꿈속의 캐릭터이고 아바타입니다. 꿈속 세상에서 실제 나고 죽는일이 있을까요? 그러니 이 현실이 내가 꿈꾸고 있는 세상이고 이 꿈을 내가 꾸고 있으니 우주전체가 바로 나에요. 우린 전부다 한마음이고 공동의 꿈을 꾸고 있는 하나입니다. 완전 대평등이고 대자유입니다. 여러분들 성불하시고 늘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