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좋은 컨텐츠네요.. 역사를 공부할수록 그 당시 상황을 다각적으로 생각해보면 쉽게 얘기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원래 역사가 알면 알수록 쉽게 단언하기 어려워지는 학문인 것 같은데 쉽고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는게 인기를 얻는 시대이니 더더욱 이런 컨텐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무위키뿐만 아니라 대중 역사 컨텐츠로 저변을 더 확대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각주에 대해서 지적하신 부분은 나무위키의 고질적인 문제점입니다. 위키백과는 각주를 참고문헌, 출처를 밝히는 용도로 쓰지만 나무위키에서는 몇몇 극단적인 성향의 이용자들이 객관성이 떨어지는 사견을 적어놓거나 지나치게 내용에 곁가지를 붙여놓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본문에 들어가야할 내용이 정작 각주에 들어가있는 경우도 제 경험상 있었습니다.
세계지리 수업할때 루르 자르 공업지역에 대해서 단순히 원론적인 이야기만 하였는데, 지루하지 않을 썰 하나를 얻은거같아 유익하네요 ㅎㅎ. 혹시 질문도 받아주심다면, 전공 서적을 읽다가 프랑스의 저출산 현상이 산업혁명 이전에 이미 심각한 수준이었다는 통계가 있는데, 어째서 농업 사회 단계에서 저출산 현상이 나타났는지 뚜렷한 해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이미 유럽에서 가장 인구규모와 밀도가 높았고 장자상속때문에 자녀를 많이 낳지 않았다는 글을 보았는데 적절한 해석인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해당 내용에 대해 아시는 부분이 있으시다면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개인적으로 프로이센 쿠테타 문서에 대해도 다뤄주셨으면 합니다. 바이마르 공화국 붕괴의 시발점이라는 대단히 큰 사건인데 그리 널리 알려져있지 않고 또 이 시기가 이 나무위키 컨텐츠에서 다뤘던 사건들의 시기랑 얼추 맞아서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본 프로이센 쿠테타의 정확한 의미와 그 영향을 알아보고싶습니다!
현직 유튜브 편집자입니다 세계사님 덕분에 공짜 역사강의를 들을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고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제 좁은 소견을 말씀드리면 문서를 설명하실 때 보이는 텍스트는 하단에 별도 공간에 넣으시면 어떨까하네요. 그리고 나무위키와 다른 폰트를 사용해서 본문과 해설을 구분할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컨텐츠는 대박칠거 같은 예감이 드네요
안녕하세요 처음 영상을 본 사람입니다. 영상 잘봤습니다.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프랑스가 루르 점령으로 인해 화폐 가치가 흔들리는 측면이 있었다.'라고 말씀해주셨는데, 맥락상 루르 점령이 프랑스 화폐 가치 변동에 직접적 영향을 끼친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루르 점령이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상세를 조금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학교 졸업 후에는 제가 역사에 관심이 식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다시 흥미가 동할 줄은 몰랐네요. 참신하고 재밌는 접근법인 것 같네요 ㅎㅎ
항상 영상 잘 보고있습니다 역사학자님! 혹시 기회가 된다면 위키백과도 읽어주실 수 있나요? 한국어 위키 "선제후" 항목에 보면 "1198년, 독일 왕권을 둘러싸고 내전이 격화되는 것을 염려한 교황 인노첸시오 3세에 의하여, 라인강 유역의 네 명의 선제후들, 즉 마인츠 대주교, 쾰른 대주교, 트리어 대주교, 라인 궁중백의 동의 없이는 왕위에 오를 수 없다고 정하였다. 1257년부터는 앞의 네 명과 작센 공작,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까지 합쳐 총 여섯 명이 선제후 회의에 참석하였으며, 1289년에는 보헤미아 국왕까지 더해져 총 일곱 명이 되었다."라고 되어있는데 맞는 설명인지 궁금합니다!
프랑스와 독일 전쟁 관계 프랑스 나폴레옹전쟁당시 1806년10월말 나폴레옹이 프로이센왕국의 수도 베를린을 점령해서 1대0 1870년9월프로이센왕국이 프랑스의수도 파리를 점령해서 1대1 1919년 프랑스가 독일에게 베르사유조약으로 독일을 경제적으로 폭망즉 멸망적으로 받아들이게해서 2대1 나치독일이 프랑스의수도 파리를 점령해서 2대2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