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대전과 앞에서 잠깐 나온 비미전투가 캐나다군과 캐나다 역사에도 의미가 큽니다. 1차대전 시기만해도 캐나다 사람들은 자기들 정체성을 캐나다 사람이라기보다 캐나다땅에 사는 영국인/프랑스인 (그외 출신국 사람) 정도로 여겼고 영국계는 조국을 위해, 프랑스계는 고조, 증조부모, 친척들이 고통받는 프랑스땅에서 싸우려고 영국정부 요청이 딱히 없는데 자원해서 입대했죠. 입대하면 영국정부가 똑같이 대우해주고 환영해주겠지.. 했으나 영국본토애들 눈에는 가난한 식민지에서 온 어중이떠중이들로 보인거에요. 그래서 무기와 군복보급도 시원찮았고, 같은 영국군으로 대우도 안해주고 영국군 본대랑은 따로 분리하고, 되게 중요하다고 여겨진 전투에는 못믿어서 안 보내고 그랬었죠. 그러다가 비미능선에서 뜻하지않게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여기서 캐나다군이 발군의 활약을해서 위상이 올라가고 영국정부의 무심함과 전쟁때 캐나다애들만 따로 뭉쳐서 전투하면서 영국이랑 우린 다르다, 우린 캐나다 사람이라는 인식이 확고히 자리잡게되죠. 당시 자원입대한 캐나다사람들이 돈이 없어서 무기도 변변찮고 차림도 남루했지만, 캐나다의 혹독하게 추운환경과 곰을 비롯한 야생동물과의 투쟁에서 단련된 명사수들이자 체력 단련수준이 우수했었는데 영국 본토사람들은 얕잡아봤어요.
전쟁에 대한 시선이 일본과 다른 이유도 독일은 이전 전쟁의 배상금으로 인해 극심한 경기침체와 인플레로 금융권을 장악하고 고리대로 돈을 버는 유태인을 향한 혐오와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우생학 장애인차별 인종차별이 있긴 했지만 흑인 독일군도 동양인 독일군도 있었고 일본과 동맹을 맺는등의 일본처럼 같은 동양임에도 철저히 자신들이 더 우월한 존재라 여기며 그것을 증명하려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무단을 유해를 파헤쳐가 연구 할정도는 아니었습니다. 2차대전 초반에는 정치적인 목적과 지지를 위해 아리아인의 우월함을 내세우며 활동을 했지만 결국 전쟁 중반의 행보는 인종차별적인 우월한 아리아인 우생학을 우선을 두는것과는 달랐습니다. 물론 일본은 전쟁이 끝날때까지도 미군정에 의해 강제로 민주주의로 변할때까지도 중국과 우리나라는 하능한 인종 취급을 했지만요.. 아무튼 결국 독일은 전범국이 맞고 심각한 학살을 자행한것은 사실이지만 전후의 행보와 지지부진했던 아프리카 학살에도 사과하고 보상하는 모습을 보이는것 자체로도 전시에도 전후에도 많은 차이점을 보입니다.. 아 그리고 당시의 중국은 일본에 협조한 현 공산당 중국을 뜻하는건 아닙니다. 독립투사를 팔아넘기고 인민지원군에 참가에 남북전쟁에 참여한 조선족들과 현 공산당은 하등한 존재가 맞습니다. 현 대만의 당시 중국 국민당 우리의 독립을 돕고 남북전쟁시에도 특수부대를 보낸 당시의 중국을 칭하는건 아닙니다.
@@버두고 유럽전선과 태평양 전쟁은 좀 다른 전쟁입니다 유럽 전선은 국가는 달라도 기본적으로 같은 문화권에서의 전쟁 (물론 독일은 유대인과 소련인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이었지만 일본군과의 전투는 완전히 서로 다른 문명권에서의 전쟁이라 일본은 자신만의 룰로 전쟁을 했고 포로에 대한 비인도적인 처우도 여기서 비롯됐습니다 물론 일본군과 싸운 미군도 일본군의 행태에 그대로 되갚아주며 서로 잔혹한 전쟁을 이어갑니다
@@jobuke12 일단 한가자 정정하자면 6.25에 참전한 조선족에 대한 것입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범죄자들이었다고 알고 있으며 보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기조차 쥐어지지 않았죠. 거기다 연합군을 구성하는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서양 사람들은 조선인과 중국인을 구분하지 못 하니 중공군과 뒤섞여 밀려오는 조선족들도 중공군으로 오인해 쏘고 조선족들도 살려고 버려진 무기를 들고 저항하게 되죠. 그리고 조선족이 독립 투사들을 팔아넘겼다는 건 처음 듣는 이야기군요. 오히려 연변과 상하이를 거점으로 독립 운동가들이 많이 활동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일단 조선족 자치구로 분류되는 연변 땅은 원래 간도라고 불리는 조선 땅이었고 때문에 연변 지역에는 거기서 정착해 살고 있던 조선인들이 많았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땅 우라니라 사람이었다는 거죠. 그러다 일본이 간도를 중국에 팔게 되고 2000년 대 동북공정이 시작되고 조선족에 대한 한족 동화 정책이 시작되며 젊은이들에 대한 사상 교육이 강화되며 지금의 조선족이 되었죠. 2000년 대 김대중 대통령의 햇살 정책으로 남북간의 긴장이 완화 되고 통일에 대한 예측이 조심스럽게 나올 무렵 조선족 분들은 통일을 한다면 원래 조선의 땅인 조선족 자치구를 독립해 통일 대한민국에 병합해야 한다고 길거리 주점이나 대놓고 주장할 정도로 스스로 중국과 분리하여 스스로를 한민족 한국인 북한인 조선인이라는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주류였다는 것이죠. 그, 당시 20대였다면 지금은 40~50대가 그 세대겠네요. 아 그리고 윤동주의 시를 봐도 2000년 대까지 조선족들은 스스로 중국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가끔 그러면 왜 한국이나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냐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원래 거기가 조선따이고 그 땅이 고향인 사람들이에요. 고향 땅 버리고 남이나 북으로 갈 리가 없잖아요. 오히려 언젠가 통일되기를 기다렸겠죠.
제정 독일군은 의외로 신사적인 면이 있었음 참호전 중 일시적으로 휴전하고 양 진영이 전사자 시신을 되찾아오기도 했고 이건 19세기를 갓 끝마친 유럽에서 아직도 명예, 기사도 정신이 남아있었기 때문인데 이 당시의 공군에서도 공군을 '20세기의 기사'로 생각해 도전장을 던져놓고 1대1로 에이스끼리 결투를 벌인다던지 적 공군 에이스의 장례식에 추모비행을 가서 꽃다발이나 조문을 던졌다던지 하는 기록들이 간혹 있음 특히 독일 장교진은 '프로이센 귀족의 명예'같은 귀족정신이 있어서 적 뒷통수를 까버린다던가 샷건으로 참호에 난입한다던가 포로를 그냥 죽인다던가 하는걸 굉장히 치욕스럽게 여겼음 이후 전간기의 회의주의와 절망이 한 차례 휩쓴 2차대전 초기에도 프랑스 미국 영국 독일끼리는 나름 신사적으로 싸운편임. 물론 유태인 아시아인 슬라브에는 그딴 거 없었음. 일본군도 그딴 거 없었음. 병원선 불킨거 보고 선형포격해서 발트함대 조진게 쓰시마 해전임.
실제 참호전 절대 않저렇습니다 1개 중대 전멸하는데 기관총 십차포화에 걸리면 약 5분이면 중대 전멸입니다 또 참호전 자체가 참호하나만 있는게 아닌 뒤로 10중 넘개 있기때문에 돌격해서 참호에 도달했다해도 바로 후방 참호가소 다시 전투하기때문에 영화처럼 백병전 거의 할경우가 없다고 보면 되요 그래서 더 지옥 같은 전투입니다 겨우 참호하나 얻었다해도 적 후방 지원병력때문에 점령 병력 다죽고 옶고 더시 참호 차지한 상탸에서 참호 뺏으러 온 지원병력들 와봣자 이미 선발 병력은 다죽고 옶고 교듀보 역할해줄 참호도 더시 뺏겨서 더시 기관총 십자포화에 중대, 대대, 연대가 갈려나가기 마련 그래서 참호전이 ㄹㅇ 답없는 전투중하나
2:40 와.. 겨우 천식 때문에 군대를 못가다니.. 심지어 15군번인데 내 동기중에 천식있는데도 훈련소에서 유격하고 행군하고 할거 다했음 많이 힘들어해서 힘 남을때마다 오르막길에서 뒤에서 밀어주고 했는데.. 아니 1차세계대전 전쟁중 국가보다 징집률 높은건 레알 헬조선이 맞는게 아니냐???
@@김수홍-n9l좆방부 커버치는건 절대 아닌데 나치 독일 당시의 "독일 내의 모든 남성을 대상으로 한" 징병률이랑 현 대한민국의 "신검을 받은 20대 초반 남성을 대상으로 한" 현역 판정률은 엄연히 다릅니다 현역 판정률 95% 정도면 실 징병률은 약 7~9% 정도로 보는게 적당합니다 지금이 막장 상황이 아니란건 아니지만 종전기 나치 독일 수준 까진 절대 아니란 것만 알아주셨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