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제가 가장 관심 있어 하는 삶의 의미, 존재의 의미에 대한 영상을 찍어봤습니다. 여러분은 사르트르의 주장에 동의하시나요? * 제 철학책 '어떤 생각들은 나의 세계가 된다' 구매 링크 :www.yes24.com/Product/Goods/11... 인스타그램: chungco_phil 이메일: cndajd0110@gmail.com
- 충코의 책 - 📖 2023~2024 신간 「가장 사적인 관계를 위한 다정한 철학책」 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1727769 📖 2023 「철학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www.yes24.com/Product/Goods/119577626 📖 2022 「어떤 생각들은 나의 세계가 된다」 www.yes24.com/Product/Goods/119577626 ** 매주 수요일 저녁 8시 30분~10시 30분 라이브 방송 진행합니다. (방송 진행 못하게 되면 커뮤니티에 사전 공지 합니다!) * 인스타그램: chungco_phil
공부하다가 머리 식히려고 유투브에 들어왔는데, 영상을 보게 되었네요. 이십대에 큰 사고로 전신마비장애인이 되고 집에서 고립된 채 살아가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를 읽고 삶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 후 고립되지 않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지금까지 살아 내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제 안에는 ”삶은 의미를 부여한 만큼 다가 온다.“는 내면의 경험적 언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물론 헷갈립니다. 그 의미라는 것이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말처럼 처음부터 실존에 묻어 있던 고유한 것임을 알게 된 후 따라 온 것인지 아니면 사회의 요구에 타협한 결과물로서의 의미인지는 좀 더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가끔 영상을 통해 많은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생각나는 구절이 있네요.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가지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을 빼앗아 갈 수 없다" 젊은 나이에 큰 사고를 당하셨음에도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강한 사람이고 책임감 있는 사람인게 느껴집니다. 앞으로 좋은 일이 생기길 응원하겠습니다.
저도 한때 사고속에서 헤매며 20대 시절을 방황하며 지금에 와서야 깨닳은거지만 "언어"가 존재하면서 부터, 인간의 세계가 코딩된다는 것 입니다 달리 말하면 정답이 없는 문제를 스스로 만들어내서 그 감옥속에 갇히게 되는게 대다수입니다 "의미" 라는 것도 그것만 따로 때놓고보면 컴퓨터의 알고리즘, 수식과 같죠, 칭키즈칸이 정복에 나선 이유가 빌게이츠가 창업하게된게 김연아가 점프를 도는게 프레디 머큐리가 노래 하던게 "의미"라는 관념에 의해서 굴러간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수 많은 팩터들에 의해 몸이 이끌리는 곳으로 가다보니 결과값이 생성된것일뿐 "의미"라는게 참 사람 잡어요 고통스럽게 하죠 언어라는 감옥에 빠지게되면 인간이란 컴퓨터는 알고리즘 오류에 빠져 무한로딩 걸리는 겁니다 언어가 곧 인간이 인지하는 세계가 된다 그럼 때론 언어를 지우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라 칭할때 비로서 문제가된다 그렇다면 지우면 되지않나 불교에서 일컫던 말과 일맥상통 합니다 고통이 날 붙잡고있는게 아니라 내가 고통을 붙잡고 있는것 놓아줘야지 그럼 비로서 자유롭게 되는것
전 20대 후반이고, 비슷하게 사고에 많이 치중해서 살아왔던 사람입니다. 돌아보면 답이 없는 문제를 계속 만들며 많은 시간을 보내왔던 것 같아요. 언어가 감옥이라는 표현이 너무 와닿습니다.. 그게 유일하고, 진정한 길이라고 여겼었죠. 왜 그렇게 되었나를 따져보면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면서, 외떨어지면서 자연히 그렇게 된 것 같네요. 그 때문에 삶의 진척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잘 안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전 음악하는 사람인데 예술을 관념, 즉 의미라는 가치로 접근하면 재미가 없어지더군요. 하지만 그럼에도 언어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과 행동 뿐이기에, 행동에 앞서 생각할 것들이 여전히 남아있죠. 사소한 것에서부터 큰 계획에 이르기까지. 다만 저 같은 경우는 모든 방면에서 관념이 지배적인 사람이었던터라 앞으로는 행동의 비율을 훨씬 더 높여가려고 합니다. 그게 지금의 대안입니다..
실존주의에’이유 없이 태어나 우연히 죽어가는 존재’라는 말이 참 좋습니다. 그리고 태어남과 죽음 사이 삶에는 아무런 의미란 없다고 생각듭니다. 뿐만 아니라 그 무의미한 삶속에 자유의지 또 한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은 그저 거대한 흐름 속에 떠내려 가고 있는 존재 이며, 가장 이상적인 삶의 방식은 그 거대한 흐름과 우주적 의지를 무미건조하게 관조하는 자세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예전 뜨거운 이성을 쫓던것과 다르게 스토아 학파나 스피노자같은 철학자들이 좋습니다.
마지막 코멘트까지 너무 좋네요.. 어디서나 의미를 찾으라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의미에 대한 의지"는 본능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자각 없이 무언가를 중 요하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도 소중합니다. 혹 공허함을 때때로 느끼는 건 본인의 삶에 가장 중요한 가치를 모르거나 이와 다른 삶을 살아서-인 것 같습니다. 가장 경계해야할 것은 (타인이나 사회가 원하기에 혹은 내가 중요하다고 주입받아서) 본인의 내재된 존재 가치가 본인의 일상과 부조화적이고 원하지 않는 매일을 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은 사회나 시대의 요구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존재와 삶에 대해 스스로 해석하고 살아갈 힘을 만들게 하는 좋은 요구인 것 같네요. 그 어느 때보다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실존주의에 대한 제 관심을 확장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 영상 자주 찾아볼게요❤
최근 자유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던 중에 우연히 보게 된 영상인데 흥미롭게 봤어요😊 나이들고 보니 요즘 자유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진정한 자유란 나의 욕망이나 자아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칠 때 그것을 초월하는데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평소에 생각해온 자유라는 의미가 외부로부터 오고 피상적이었는데 이런 자유는 - 겉으로는 자유로운거 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점점 더 내면의 자유를 제한하는 걸림돌을 만드는 것 같더라고요. 또 알고보니 그것이 '나 자신'이라는 제약이었습니다. 눈앞의 이익에 집착이 심해지거나 나를 중심으로 행동할 때 자유는 점점 멀어지고 오로지 내 욕망에 이끌려 지내게 되는 걸 봤습니다. 일시적으로는 만족스럽고 즐겁지만 그 속에서 또 다른 욕망(욕심)을 불러오고 갈증으로 돌아오는 행복을 찾고자하는 패턴이 순환되는 걸 느꼈거든요. 요즘엔 다른 차원의 자유를 경험하려면 자아라는 제약에서 일단 벗어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자아 강해지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탁해지고 외부에서도 어떤 것이 주어져도 충만함? 같은게 없더라고요. 내 자아 속에 갇힐 때 감사할 거리들이 사라지고 자유보다 오히려 내적 상태를 사슬 속에 묶어 두게 되는 것 같습니다. 외부 환경과 상관없이 내적인 해방이 진짜 자유로운 사람인거같고 저도 찾고있는 자유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요즘 많이드네요. 영상을 우연히 보다 안하던 성찰을 하게 됬네요ㅋ 인사이트 얻고 갑니다:)
정말 동의합니다 .. 이제 그래봐야 20살 이지만 지금까지 대인 관계, 도덕, 공부, 신학 등등등에 대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올바르고 맞는 것인가를 찾으며 스트레스를 받아왔었는데 최근에 얻은 그 어떠한 깨달음에서 적어도 진리란 것은 거의 확실히 없고 그저 내가 살아가는 것만이 진리로서 존재할 수 있구나 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생각을 또 구체화 할 수 있는 영상을 보다니 운이 좋군요
잘 봤습니다. 평소 ' 삶의 의미'라는 키워드를 두고 깊은 고민을 하셨다는 게 느껴지네요. 너의 의지대로 살라는 말 역시 이 시대에는 가장 타율적일 수 있다는 말이 공감됩니다. 진짜 의미라는 건 무언가 열린 상태에서 비로소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정해진 방향성을 따라 고민함으로써 생기기보다는 자신 안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것들에 열린 접촉을 유지할 수 있을 때요. 충코님 자신만의 페이스에 따라 너무 짧지 않게, 생각할 기회를 주는 영상을 만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영상 잘 보았습니다. 타율적 삶의 태도를 벗어났을 때, 진정한 의미의 "책임"과 "자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감명깊네요 :) 후반부에는 최근에 읽었던 에서 이야기하는 아들러 심리학도 잠깐 떠올랐구요. 철학자는 아니지만 아들러에 대해서도 추후에 다루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user-js2ml1yn2b 정신차려라 광신도야. 너같이 종교에 빠진 인간들이 폭탄테러하고 단군상 목자르고 다니는거다 사막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쓴 소설을 수천년째 물고빠는게 정상이냐? 구약을 쓴 유대인들도 이걸 인정하는데 왜 지구 반대편에서 절대맹신하는건지 ㅉㅉ 한국인들이 유독 종교를 맹신하고 절대화하는데, 정작 느들이 빠는 유대인들은 진작에 세속화돼서 세상에서 가장 유능한 민족이 됐다. 한편 니처럼 바이블에 매달리는 근본주의자들은 폭탄테러나 하고 다니지
이미 태어난 사람은 삶의 유익을 찾고 즐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 또한 그런 태도를 지향합니다. 다만 자식이란 타인의 생명을 이 세상에 내놓는 결정은 보수적이여야 한다고 봐요. 미래 세대는 철저히 현재 세대의 욕구 때문에 태어납니다. 아이들 또한 나처럼 행복할 것이기에 그 행복을 뺏을 권리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미래 세대를 위해 낳는다는 것은 가증스러운 위선입니다. 저는 업무 특성 상 50구의 시체와 죽어감을 보면서 느꼈습니다. 생로병사라는 수순 자체가 고통이고 시일의 문제일 뿐 힘든 상황은 외면하고 싶어도 찾아온다는 것을 언젠가 막대한 고통을 지불해야하는 도박을 당장 내가 행복하다는 이유 하나로 시작하시겠습니까? 심지어 도박의 리스크는 순전히 자식이 감당하는 부조리한 구조입니다. 비가역적인 인생의 특성상 확실한 안락이 보장된 미래는 없고, 그 책임지지 못 할 타인의 생명(자식)을 두고서 행해지는 도박의 특성이 있는게 출산이라면 그것은 덮어두고 잘했다고 말할수 있는 문제는 아닐겁니다. 오히려 혹독하게 '출생이 태어나는 그 자녀를 위한 행위'가 아님을 상기시키며 강한 책임감을 요구하는게 이성을 가진 도덕적 존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요?
정말 사랑하는 채널입니다 고맙습니다..그리고 진정 자유를 가지기란 참 어렵네요. 자유에는 그림자처럼 책임이 따라오니까요. 엄밀히 누가 칼을 들이밀어도 사실상 자유는 존재하지만 그만큼 책임(이런 상황에선 이를테면 목숨)도 막대해지기 때문에 쉽사리 자유롭지 못한다라는...제 안의 진짜 자유의 소리를 알고있지만 이 자유를 책임질 용기가 없습니다 ㅋㅋ 도피처로 삼은 안정이 후회로만 남지않길 바랄뿐입니다
이런 좋은 영상 남겨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예전에는 철학적인 이야기들을 들었어도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계속 관심을 갖고 나에 존재에 대해서 생각하고, 감정보다 이성을 앞세우는 연습을 하면서 계속 끊임없이 마인드셋을 하고 있는 도중에 이 영상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충코님이 말씀하신 걸을 적어보았는데, 이렇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얘기하시는 걸 보니 아마도 많은 공부를 하셨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상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좋은 영상 감사드리고, 다른 영상도 자주 시청하러 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세상의 소리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 또 지금 나의 생각이 세상의 요구를 나도 모르게 따라가고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우리는 많은 공부를 필요로 합니다(사르트르 자신도 많은 공부를 했겠지요). 진정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늘 공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요즘은 ‘공부에 얽매이지 말고 학생들이 삶을 자유롭게 만들어 가도록 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자주 들리고 국가교육과정에도 그러한 생각이 이미 많이 스며들었는데, 사실은 ‘세상의 시선에 쫓기는 공부 말고, 진짜 자유롭기 위한 공부를 해라‘라는 말로 바꾸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생각을 하다 보면, 과연 어린 아이가 스스로 자율적으로 외부의 강제를 받지 않고서 공부를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실존주의적 사고를 따라가다 보면 저는 늘 칸트가 말했던 이 역설에 도착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냥… 공교육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생각을 적어보았습니다. ^^; 늘 생각의 재료가 되어주는 좋은 영상 감사드립니다!
인간이란 존재가 생겨나면서 부터 주변에 사물을 임의로 설정해 나가며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으려는 습성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 오히려 의미를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의구심만 더 생겨요, 처음부터 모든 것이 임의로 설정 되어저 왔기 때문이에요, 결론적으로 임의로 정한 값이 아닌 카오스 상태를 깨달아야 진정한 자유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맑은 날에 맥주 한잔 하면서 철학적인 얘기를 하는게 뭔가 낭만적이네요 ㅋㅋ 부럽습니다 과학적인 사고방식으로 생각해보면, 특히 진화론을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개개인의 인생에는 주어진 의미가 없다는 게 더 잘 이해됩니다 유튜브에서 간간히 법륜 스님의 법문을 시청하는데, 법륜 스님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다람쥐는 의미에 대해 묻지 않고도 잘 살아간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럼 포유류인 다람쥐보다 진화적으로 가까운 원숭이, 유인원, 침팬지, 네안데르탈인은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고 심각하게 고뇌하면서 살았을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붓다나 선불교에서도 어떤 인생의 의미에 집착하기보다 '모든 집착으로부터 자유'를 더 강조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책에서도 이와 비슷한 내용을 얘기하는 것 같고요 그렇다고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추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의미에 집착할 필요없이도 도덕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면서 살 수 있는 인생의 길이 존재하는게 아닌가 말하고 싶은 것 뿐입니다 그리고 충코님이 말한 것처럼 자기가 믿고있던 인생의 의미(특히 모태 신앙이거나 순응적인 사람)가 진정 자신의 욕구로부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인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는 데 동의합니다 저 또한 긴 우울증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칠 때 글쓰기와 명상을 통해서 자신을 계속 성찰하면서 제가 추구했던 것들 중 대부분이 타인의 욕망과 기대로부터 형성되어온 의미들을 추구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고, 지금도 그 노력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경험적으로는 인생을 항해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추구한 의미가 자기 내면의 자연스러운 욕망과 너무 괴리된다는 느낌을 받을 때 부자유와 억압을 더 절실히 느끼게 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직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책을 읽어보지 못했는데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항상 좋은 생각거리를 영상으로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댓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많은 도움을 얻는거 같아요 ㅎㅎ
배부르고 살만하니깐 그런 쓸데없는 생각이 나는 것이다. 춥고 배고파봐 손가락 하나만 잘려나가도 너는 삶의 의미 따위를 생긱할까. 배부른 자의 고민이 철학이다. 너의 삶이 처절한 가운데 철학을 논해라. 그래야 머리속에서나 나오는 잡념들을 나불거리지 않는거다. 복에 겨운 자들의 행복에 대한 욕심이 너의 그 생각들이다. 그런 생각들이 들때 차라리 쓰레기를 주어라. 고생하는 자들을 생각하란 말이다. 맥주나 쳐 마시면서 삶의 의미를 니가 찾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영상 하나 하나가 정말 최고 입니다. 인술을 영상을 통해서 발동 시키시는것 같습니다. 아시죠들 나루토가 다른 인물 대면해서 발동시키는 그 술법. 우리 충코님은 영상을 통해서 그 술법을 무한 츠쿠요미 형태로 전세계인을 향해서 사용하고 계시는 겁니다!! 아무튼 오늘도 영상보고 마음이 편안하고 평온해 지네요!!
객관적, 보편적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니까 없는거다. 삶의 의미는 주관적인 개별성에만 있다. 하나의 목표를 정해 목숨걸고 걸어 그 길의 끝에서 발견하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지독한 허무뿐이다. 삶의 의미는 목적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로 향하는 길이든 방황하는 길이든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나는 야생화 한송이에 있다.
나랑 생각이 너무 똑같네ㅋㅋ 역시 나만의 특별함 따윈 없다 너무 다행히도. 앞은 뭐 샤르트르 사상 열거인데, 무튼 핵심은 마지막 문장에 있는 듯. 실존주의가 단순하게 받아들이면 요새 유행하는 '뭘해도괜찮아' 이런 식의 자기계발서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아예 다른 이야기지. 염세주의적이거나 허무주의적인 측면을 인지할 정도는 되야 이해한다. 동의하든안하든
저는 실존주의란 인본주의다 라는 말과 비슷하게 실존주의를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의미에 도전하는 사상이라는 점에도 상당히 공감하네요. 실존주의라는 얼핏 보면 사상이 뜬구름 잡는 거짓 의미를 만들어낸 사상이라고 보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실존주의야말로 인간이 느끼는 의미의 본질이란 무엇인지 계속해서 의문을 가지고 비판해내면서 만들어진 사상이라고 봐요. '바깥 세상"을 의심한 결과로 무한한 자유와 무한한 책임을 개인에게 부여하고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역설했지만, 저에게는 인간의 자유를 통한 초월이 인간이라는 종이라는 속박 밖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느껴져요. 실존주의란 인본주의라는 말이 오로지 나인 인간에게서 출발한다는 의미도 되지만 다른 편에서는 "의미를 얻기 위해 인간이라는 종의 속박 안에 묶여있는 개인"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마침 오늘 읽기 시작한 'Daily Philosophy'라는 책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오랜만에 삶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있던 차에 충코의 철학에서 이런 영상이 올라오네요. ㅎㅎㅎ 재밌게도. 삶의 의미를 논하는 것 자체가 오만하다고 한 어느 철학자의 말이 풀릴듯 풀리지 않고 뇌리에 늘 남아 있는데, 저는 나름대로 '살아있음, 그 자체가 삶의 의미지'라는 정도로 정리하고 있었는데, 그냥 이렇게 또 한 번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네요. 추신 : 아~ 맥주 땡겨... ㅋ 하지만 내일 소개팅 있다. 진정하고 내일 먹자. ㅋㅋㅋ
일단 태어나서 사회라는 틀 속에서 살다가 어느날 사회 넘어의 자신을 생각하는 개기를 만나 처음으로 자신이란 존재를 마주치고 진지하게 다른 사람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서로 대화하다가 무거운 짐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좋은 대화 감사합니다.
샤르트르의 실존주의를 간결하고 알기쉽게 설명해주네요~ 고등학생 시절 샤르트르에게 빠졌었는데, 그때 짧은 에세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는 문구를 저는 '실존주의는 Buddism이다'라고 혼자 해석했었습니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충코님이 설명하시는 내의지 혹은 자유는 '참나'로 이해하면 훨씬 이해가 쉬워질 듯 합니다 소름이 끼친다고 할까요? 영상 잘 보았습니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앞두고 누군가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지 않은 순간에도 타인을 의식해서 선택을 내립니다. 칼든 누군가가 협박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온전히 나 혼자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순간에도 타인을 의식한다는게 아이러니하죠. 그래서 내가 나로서 생각하고 나로서 선택을 내릴 수 있는 순간, 즉 내가 온전히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순간은 언제이고 그게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보는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삶의 의미는 그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 라고 생각합니다.
경제력과 상관없이 애 낳아서 생로병사의 굴레 씌우는 행위 자체가 자기 행복을 위한 이기심에서 비롯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출산은 죄짓는게 맞죠. 낳지 않는 것만 해도 부작위로 선한 일을 하는 겁니다. 어차피 시간 지나면 모든 생명은 늙어 죽는데 굳이 서로 잡아 먹고 먹히는 살육의 현장으로 만들어진 이 세상이 잔혹하지 않나요? 낳아지는 아이는 피로 점철된 경쟁의 땅에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던져지게 됩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부모의 결정으로 생로병사를 양도받게 되는 꼴입니다. 이 때문에 죽을 사람을 낳는 선택을 행한 부모는 살인자나 마찬가지라는 철학적 비유도 존재하죠. 생로병사의 굴레 속 권태와 욕구가 끊임없이 찾아오는 삶, 그 자체가 원래 고통입니다. 태어났기 때문에 불행하고 고통스런 것입니다.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하면 괴롭고, 가지게 되더라도 그것을 잃게 될까 두려워집니다. 생활 수준이 올라가면 그것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자그마한 고통도 익숙해 지기는 쉽지 않지요. 인간으로 태어 났기에 겪어야 할 숙명입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다음 세대를 태어나게 하여 고통을 물려줄 것인가, 내 세대에서 고통을 끊을 것인가에 대한 판단입니다
사르트르는 인간의 존재를 자유의 존재로 강조하고, 인간은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인간의 자유에 대한 과대평가와 도덕적 근거와 의미, 그에 따른 목적의 부재 등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고 목표를 설정 함으로써 성취감과 만족감을 얻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을 복잡하게 설계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인 요인들로 갇혀 제한적인 삶을 살고 있으니까요. 대채적으로 경제적인 고통 분담이 되지 않거나 어떠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실패를 반복해 감당이 되지 않을 경우 스스로를 돌이키며, 인생이 왜이러나 싶죠... 이쯤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이러한 제약들과 상호작용하고 그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가에 대해 현실적인 실행계획을 고민하고 생각해봐야 하는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모든 인식에 대한 변화에서 새로운 출발점이 생기고, 인간관계와 사회적영향을 통해 긍정적인 영향을 더욱 강화해 인간관계를 구축하고, 개인적인 선택과 사회적인 변화에 대해 주변 모든 것을 새롭게 평가해보고 스스로 목표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실행해야 더 의미 있는 계획된 삶과 큰 자유를 실현 할 수 있습니다.
무의미 속에서 살아간다는 제목이 또 생각을 하게 만드는 군요. 우리가 의미 있다고 느끼는걸 두가지로 나누어 봅시다. 하나는 우리 모두가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보편적의미 입니다. 가령 나라를 지키는건 가치가 있다, 라든가, 심지어는 돈을 더 번 사람이 더 성공했다고 통상적으로 믿는 그런것들.. 또 하나는 남이 볼때 별것 아닌데 나만 주관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믿는 것들. 그래서 이런 것들은 보편성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의미를 찾는데 익숙치 않습니다. 어려서 부터 내가 원하는걸 추구해 나가기 보다는 사회가 요구하는 사람이 되는 걸 교육받고 자라나왔기 때문에. 객관적 의미는 듣는 즉시 이해가 갑니다. 성적 좋아야 하고 돈 벌어야 하고 스펙 쌓아야 합니다 . 군대도 가야하고 누구의 자식으로 살다가, 누구의 배우자로 살다가, 누구의 부모로 삶을 마칩니다. 사르트르가 말하는 본질이겠지요? 주관적 의미는 본인이 선택하고 자유롭게 경험해 나가는 과정을 겪어야 그제서야 발견 됩니다. 그래서 간혹은 이런 주관적 의미는 과연 있는걸까 하고 의문을 가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 정당화 시켜주지도 않고, 특히 우리는 의미는 스스로 선택하기 보다는 누군가가 내게 줘야하는 거라는 생각에 너무 익숙해 있을때, 그렇게 느끼지 않나 합니다.
인간이라면 그 누구라도 태어나면서 언젠가는 목숨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구조(본질) 속에 갇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라면 그 누구라도 목숨을 내놓기에 앞서 삶이라는 이야기를(실존) 내놓게 됩니다(구속된 자유) 여기서 인간의 '자유'(내놓고 나누울 수 있는 행함)라는 언어를 일차원적으로 이해해 볼 수 있구요 여기서 나아가서 자유에 부수적으로 '사유과정'이 추가 됨으로서 좀 더 능동적 자유가 행해지며 이왕 사유할 바에 좀 더 희소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사유가 진행되면 때론 대가치름도 발생할 수 있고 감사과정을 겪기도 하며 더 나아가 덕을 베풀기도 하며 급기야 예를 다한 퍼포먼스가 가미된 사유를 자유에 추가함으로서 자신의 자유에 진정성을 부여하여 삶을 아름다운 이야기로 내놓을 수도 있습니다(진정한 자유) 이러한 자유자재(제)로 감사한 사유 과정을 거치므로서 비로소 본질(목숨 내놓을 운명)의 질적 향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질적 향상은 다름아닌 바로 '안전' 그것을 위함이지요, 이것이 삶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또한 지금까지도 도덕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얼마전 일입니다. 업무로 처음 만난 타부서 직원(철학과 출신)과 보부아르 이야기를 했고, 그 다음날 넷플릭스 Emily in Paris를 이어서 보고 있는데 시즌3에서 실존주의 에피소드를 보게 되었고, 다시 다음날에는 충코님의 사르트르 실존주의 까지.. 계속 실존주의 관련된 일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일어나니 참 신기하네요.ㅎㅎ 그리고 어제는 고등학생인 아들친구가 집에 왔는데 짐캐리가 나왔던 예전 영화 얘기를 하며 어렸을때는 모든게 내가 주인공인 것처럼 세상이 움직인다고 생각했었다며 서로 공감을 했었네요. ㅎㅎ
나는 누구인가? 를 정의하기는 어렵다 누구의 아들, 누구의 아버지, 00회사의 부장, 이런 주변환경을 다 떼어내고 진짜 나는 누구인가 거기에 대한 대답은 오직 단 하나다 내가 하고있는 생각이 곧 나다 불행한 생각을 하면 나는 불행한 그 누구이고, 반대로 행복한 생각을 하면 그런 행복한 사람이 곧 나다
삶의 의미를 찾는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묻고 사색하고 관찰하고 나 스스로와 대화하는 시간을 계속해서 갖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궁극의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삶이고, 동시에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봅니다. 그치만, 뭐가 좋은 삶인지는 여태 알 수가 없네요. 다만 태어났을 뿐인 우리가 좋은 이유를 발견할 수 있기를..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니 실존주의는 약간 적정선을 지키도록 하는 것을 도와주는 장치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통념을 과연 누구에게나 억지로 적용시켜야하는지? 같은 물음을 던지며 사회가 만든 틀 안에 나를 너무 끼워 넣지 않고 다양성을 추구하게 하는 역할을 크게 하는 것 같습니다.
생각의 생각의 생각 이걸 멈출 날이 과연 있기는 할까요 부처의 경지가 되지 않는 이상 인간이라면 평생 해야겠지요. 삶은 사실 흰 도화지인 것이고 나에게 주어진 건 연필 한 자루와 지우개 정도라고 생각해요. 마음껏 낙서하고 지우고 다시 그리고 또다시 지우고 그렇게 사는 게 삶이죠. 책상 위에 담배와 그림 그려주는 걸 응원해 주는 아내 한 사람 있으면 그걸로 완벽합니다.
와 너무 재밌어요… 전 시대의 거대한 흐름을 따라가려고 애쓰고있는데 쉽지않은 것 같아요. 제가 진정으로 무얼 원하는지 모르니까 찾으려고하고있지만 뭘 하고있는건지도 모르겠고 찾아지지않을수도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도 거대한 흐름속에서 인정받는것도 나쁘지않은 것 같아요. 그냥 이것도 삶인것같고요. 의미를 찾는게 의미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고, 의미를 찾아도.. 의미를 찾았다고해서 또 딱히 엄청날 것 같지도 않긴해요. 아직 못찾아서 그런가? 우선은 꾸준히 제가 원래하던거 잘하려구요. 어릴때부터 해왔던것들에도 제가 의미부여하고있기때문에 또 의미가 있는 것 같기도하고.. 아리송하네요 삶이라는게 알다가도 모르겠어요ㅋㅋㅋ 막 생각하고있는데 멋진말이 별로 떠오르지않네요.. 좋은 마무리로 제 아무말을 장식하고싶었는데ㅎㅎ 뭐.. 어찌되었든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삶은 계속 되겠죠? 다들 뭐가그리 급한지!!! 이렇게 제 생각을 적을 수 있게 영상을 올려주신 충코님 감사합니다☺️
제가 이해하는 실존주의 철학은 앙가주망입니다. 이타적 삶 삶이라는 것은 살아 있는 모든 생물에게서 세상에 자신의 족적을 남기기 위한 몸부림이라 생각합니다. 그 몸부림이 인간의 관점, 인간이 속한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족적을 남기는 게 가장 의미있는 삶인지 실존주의 철학에서 말해줬다고 생각해요
운동선수로 평생 남의 의견만 따라가며 혼자서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내가 내 의견을 생각하는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나선 만화가가 되어 자기자신의 사상을 정리하고 보다 단단히 하기 위해서 노력하고있는데, 항상 이렇게 여러생각을 많이 할수있는 영상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근 사르트르의 구토를 읽고서 아무런 와닿음이 없었는데, 한번 다시 읽어봐야겠네요. 좋은 영상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