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산책을 하면서 근대 시기 개신교의 발전, 그로 인한 개인주의의 확산, 그리고 그로 인한 허무주의의 발생이라는 사상적 역사에 대해 논하는 영상을 찍어봤습니다. 여러분은 나의 존재가 개인에게 속한다고 생각하시나요? * 제 철학책 '어떤 생각들은 나의 세계가 된다' 구매 링크 :www.yes24.com/Product/Goods/11... 인스타그램: chungco_phil
저는 지금 61세이고 삶의 후반부 반 이상을 개인주의적인 미국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의 문제를 체감하며 살아서 나름대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개인주의는 그런데 개인적 목적을 추구하기위해 사회적 관계를 끊고 고립되는 것을 의미 하지는 않습니다. 개인주의는 사회 구성방식이 개인을 존중해서 개인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주체적 기본 단위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집단 주의가 관계를 많이 가지는 것 같지만 그것 보다는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집단이 기본 단위가 되어 결정도 하고 가치추구도 하고 경제할동도 하는 것을 뜻 할 뿐입니다. 개인주의 사회에서의 개인은 집단으로 부터 독립을 했지만, 다른 개인과의 관계를 끊은 고립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전통적으로 주어진 가족이라는 관계에서 우리가 삶을 출발 했기에 거기서 부터 떨어져 나온 개인주의적 사회가 외로울수 있다고 샹각하는 듯 싶습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사람은 집단 속에서도 외롭고 허무할 수도 있습니다. 제 개인적 의견이지만, 개인주의와 허무함은 꼭 연결되 있지는 않은듯 싶습니다.
예외란 어디에나 있지만 집단 속에서 외롭고 허무할일이 더 적긴 하죠. 애초에 살아갈 이유가 강제적 주입이든 인간관계의 방식 or 사상 이던지 강제적으로 누군가와 '연결' 되어 있으니까. 실존적으로 개인주의에서 인간이 외로워지고 허무로 빠질 확률은 훨씬 큽니다. 그게 본질적으로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판단을 하려는게 절대 아니죠. 예를들어 강력한 종교같은 믿음으로 묶여있는 집단에선 개인이 절대(높은확률로) 허무주의에 빠질수 없어요. 당장 내일 이라도 신과 우리 단체를 위해 죽으면 그들은 전혀 허무 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그게 물론 좋다 나쁘다 의 판단은 인간이 할수 없는 부분 이고 상당수 이미 우리쪽에선 나쁘다고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 안하니까 목숨을 바치겠죠. 물론 극단적인 예입니다만, 이런부분에서 개인주의가 허무함을 알려준다고 생각하며 우리자신을 고찰 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주의가 만능은 아니라는것 소극적 허무로 빠질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해야 그걸 고칠수도 있습니다. 개인주의와 허무함이 강력히 연결되어 있는건 본질은 아닐지라도 실존적 사실 입니다.
독일 사회 학자가 "한국은 허무주의가 지배한 사회 이다. " 라고 말 했습니다 . 2017년 IMF 총재 였던 사람이 "한국은 출산율로 나라 자체가 자살을 선택한 나라 이다. " 라고 말 했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삶의 가치를 "가족" 이라고 했는데 오직 한국인만 "물질적 풍요" 라고 답했습니다. 애들이 부모 소득에 따라 "2백충 , 3백충 , 임대충" 이라고 놀리는 나라 입니다. 청소년 꿈이 "건물주" 라는 말하는 유일한 나라 입니다. 티비에는 유명인과 그 자식들 나와서 자랑질 하는게 거의 다 입니다. 재산,인맥,취미 , 집 , 자식... 자랑질이 끝도 없죠. 진보 , 보수 할것 없이 핏줄 퍼주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나라 입니다. 유전무죄 , 무전유죄 . 각자도생 인간지옥 한국. 한국은 오만과 모멸의 체계 라고 했습니다. 갈치가 냉동창고에 쌓여도 갈치값 안내리고 우유가 남아돌아서 버려도 우유값 안내리고 치킨은 크기가 작아지면서 값은 비싸지고 달걀 값은 한번 오르더니 안내리고 남여도 눈만 엄청 높아서 독거 노인 될 망정 동거 조차 안하고 수전노 , 지독한 인간들만 사는 한국 학교에서 경쟁만 시키고 한가지 정답만 가르치죠. 다양성,협력,토론,존중,배려 안가르치죠! 공부하는 기계,경쟁하는 기계로 만들고 그외에는 아무것도 모르게 키우죠. 한국에서 교수한 이탈리아 사람이 한국의 특징으로 끝없는 경쟁, 생활리듬의 초가속화,극단적 개인주의,일상의 사막화 라고 했습니다.
모든지 균형이 중요한 것 같아요. 허무를 느껴야할 때도 있고, 허무를 허무해야할 때도 있어야 하고요. 나의 존재가 개인에게 속해야할 때도 있고, 아니어야 할 때도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마치 춤을 추는 듯한 균형이 필요한 것 같아요. 넘어질 듯 하면서도 넘어지지 않는 그런 균형이 필요한 것 같아요. 하나만이 아닌 둘도 볼 수 있고 셋도 볼 수 있는 그런 균형이 필요한 것 같네요. 그렇게 삶을 춤추면서 살고 싶네요. 하지만 어렵겠죠?😊 그래도 어쩌면, 혹시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그런 삶을 저도 충코님도 여러분도 사시길 바래봅니다!
독일 사회 학자가 "한국은 허무주의가 지배한 사회 이다. " 라고 말 했습니다 . 2017년 IMF 총재 였던 사람이 "한국은 출산율로 나라 자체가 자살을 선택한 나라 이다. " 라고 말 했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삶의 가치를 "가족" 이라고 했는데 오직 한국인만 "물질적 풍요" 라고 답했습니다. 애들이 부모 소득에 따라 "2백충 , 3백충 , 임대충" 이라고 놀리는 나라 입니다. 청소년 꿈이 "건물주" 라는 말하는 유일한 나라 입니다. 티비에는 유명인과 그 자식들 나와서 자랑질 하는게 거의 다 입니다. 재산,인맥,취미 , 집 , 자식... 자랑질이 끝도 없죠. 진보 , 보수 할것 없이 핏줄 퍼주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나라 입니다. 유전무죄 , 무전유죄 . 각자도생 인간지옥 한국. 한국은 오만과 모멸의 체계 라고 했습니다. 갈치가 냉동창고에 쌓여도 갈치값 안내리고 우유가 남아돌아서 버려도 우유값 안내리고 치킨은 크기가 작아지면서 값은 비싸지고 달걀 값은 한번 오르더니 안내리고 남여도 눈만 엄청 높아서 독거 노인 될 망정 동거 조차 안하고 수전노 , 지독한 인간들만 사는 한국 학교에서 경쟁만 시키고 한가지 정답만 가르치죠. 다양성,협력,토론,존중,배려 안가르치죠! 공부하는 기계,경쟁하는 기계로 만들고 그외에는 아무것도 모르게 키우죠. 한국에서 교수한 이탈리아 사람이 한국의 특징으로 끝없는 경쟁, 생활리듬의 초가속화,극단적 개인주의,일상의 사막화 라고 했습니다.
인생이 허무하단 사실로부터 느낄 수 있는 해방감은 잠깐이더군요. 제가 생각하기에 허무를 통해 얻는 이점은 삶의 고통을 인내하면서까지 찾거나 도달해야 할 의미는 실은 없으니 어쩌면 영면의 길을 가는 게 더 편하고 자연스러운 선택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인생이란 이 기묘한 모험을 계속 해보겠다 ㅡ는 개인의 '결정'으로 삶을 지속하고 있는 거라고.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것 정도라고 봅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삶을 포기할 자유를 손에 쥐고 있는 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따금 그런 착각에 빠지는 때가 있긴 하겠죠 앞서 말했 듯 허무의 토양에서 자라난 희망의 새싹을 발견하는 경우일 수도 있고 반대로 헤어나오기 힘든 절망에 빠져서 죽음이 오히려 단비같이 느껴지는 때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허무의 실체를 온 몸으로 마주하면 이런 철학적 논의는 뒷간 휴짓장으로 전락한다는 걸..하하 한껏 자부했던 나의 지성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남아있는 건 동물적 거부감과 내 곁의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 뿐이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나니까 이젠 불로 달궈진 쇠구두를 신고 춤을 추는 거울 속의 한 마리 짐승 밖에 안 보이네요. 예전엔 그래도 어떻게든 재미를 찾으며 살아가다보면 돌아봤을 때 지나온 길이 아름다워보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조금씩 긍정적인 인생관이 형성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나름이라면 나름대로 달려보긴 했는데. 이런 짓을 언제까지 해야하나싶은 요즘입니다. 분명 환경도 괜찮고 목표도 하나하나 달성하고 있는 중인데 속이 자꾸 이리 썩어문드러지는 이유는 왜일까요~ 삶이란 진짜로 용암 위에서 하는 줄타기 게임인걸까나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ㅎㅎ
저는 전에는 종교를 믿는 행위를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믿음을 버리고 살 수 없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전 과학을 믿든 종교를 믿든 둘 다 현실적인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것이고 인간이 만든 이상 진실에 가까운 세상과는 동떨어질 수 있으니까요 종교가 실제로 현세나 사후세계와 같은 세상에 들어맞지 않는다 할지라도 인간 개개인들이 살아가는데 자신을 위할 수 있는 괜찮은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당수 과학자들도 과학과 종교는 함께 가는것이라는 말이 이런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사회적인, 보편적인 가치에 크게 공감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만의 가치를 추구하고 또 발전시키며 삽니다 이런 면에서 말씀하신 개인주의적인 성향인 것 같습니다(개인주의를 잘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은 말씀하신 소극적 허무주의처럼 허무함을 느끼고 남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추구하며 쫒기듯 사는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저는 남들보다 좀 더 저를 위해 사는것처럼 느끼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사회적으로도 개인을 위해서라도 바람직한것이 아닌것 같습니다
산책하면서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시는게 예도TV 채널이 생각나는 영상이네요 ㅋㅋ 이 주제 관련해서 조지프 헨릭의 가 역사, 사회과학, 심리학적으로 잘 분석해놓은 것 같습니다 책에서는 개인주의라는 용어 대신에 '집약적 친족 체제의 해체'라는 표현으로 비슷한 현상을 설명하고 있는데요 분석에 의하면 개인주의가 등장한 배경은 다양합니다 상업의 발달, 문해력과 보편 교육의 확산, 산업화와 핵가족화, 정부 행정력의 강화 등등 중간에 말씀하신 에리히 프롬의 분석은 현대 발달심리학과도 매우 잘맞는 시대를 앞서간 통찰력있는 분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변인들과 건강한 상호의존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심리적 안전기지가 불안한 사람들은 자유가 곧 불안이고 순응이 곧 확실성과 편안이라는 것이죠 북유럽처럼 가족 단위는 작지만 대체로 화목하고 사회안전망이 잘 갖춰진 사회 환경에선 개인주의가 가장 잘 맞는다고 봅니다 반면 한국이나 미국의 경우 가족간 결속은 약해지고 사회안전망도 약해서 과도한 개인주의가 오히려 고립과 허무주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구요 결국 개인의 성격, 가족적 환경, 정치적 환경, 교육 등이 적절히 조합되어야만 건강한 개인주의 사회가 되고 개개인이 특정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지 않고 자유로운 사상을 향유하면서 건강한 담론이 활발하게 오갈 수 있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독일 사회 학자가 "한국은 허무주의가 지배한 사회 이다. " 라고 말 했습니다 . 2017년 IMF 총재 였던 사람이 "한국은 출산율로 나라 자체가 자살을 선택한 나라 이다. " 라고 말 했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삶의 가치를 "가족" 이라고 했는데 오직 한국인만 "물질적 풍요" 라고 답했습니다. 애들이 부모 소득에 따라 "2백충 , 3백충 , 임대충" 이라고 놀리는 나라 입니다. 청소년 꿈이 "건물주" 라는 말하는 유일한 나라 입니다. 티비에는 유명인과 그 자식들 나와서 자랑질 하는게 거의 다 입니다. 재산,인맥,취미 , 집 , 자식... 자랑질이 끝도 없죠. 진보 , 보수 할것 없이 핏줄 퍼주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나라 입니다. 유전무죄 , 무전유죄 . 각자도생 인간지옥 한국. 한국은 오만과 모멸의 체계 라고 했습니다. 갈치가 냉동창고에 쌓여도 갈치값 안내리고 우유가 남아돌아서 버려도 우유값 안내리고 치킨은 크기가 작아지면서 값은 비싸지고 달걀 값은 한번 오르더니 안내리고 남여도 눈만 엄청 높아서 독거 노인 될 망정 동거 조차 안하고 수전노 , 지독한 인간들만 사는 한국 학교에서 경쟁만 시키고 한가지 정답만 가르치죠. 다양성,협력,토론,존중,배려 안가르치죠! 공부하는 기계,경쟁하는 기계로 만들고 그외에는 아무것도 모르게 키우죠. 한국에서 교수한 이탈리아 사람이 한국의 특징으로 끝없는 경쟁, 생활리듬의 초가속화,극단적 개인주의,일상의 사막화 라고 했습니다.
허무. 비어있고 없다는 의미. 혼자 살면서 마주칠수 밖에 없는 허무. 인간. 사람과 사람사이. 연결이 되어야만 인간으로서 존재 의미가 있음. 자의든 타의든 개인주의여도 어느정도의 연결은 유지를 해야 함. 그래야 살아가는데 문제가 없음. 그 연결을 고민해야 함. 그래야 허무를 잘 극복할 수 있음. 좋은 컨텐츠네요!
주인(정신)이 더이상 노예(육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 시대라 더 허무한 것 같습니다. "만일 모든 도구가 사람의 의지에 따라, 또는 사람의 의지를 앞질러 그 자신의 일을 성취하게 되면... 만일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북이 직물을 짜고 채가 리라를 타게 되면, 명공(名工)은 조수를 필요로하지 않으며, 주인은 노예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 Will Durant ,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과학
허무한건 다른 이들을 배척했기 때문에 생기는 느낌임(나쁘다는 뜻이 아님. 고통이 크면 남을 배척하기도 함) 개인주의는 개개인을 존중한다는 의미가 깊다고 봄. 한국이랑 미국 비교했을때 인간관계가 더 좋은 쪽은 미국이라고 본다. 집단주의에선 고개를 숙이고 일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게 좋다고 말하고 개인주의에선 개개인의 창의력, 독특함이 존중된다. 세상은 점점 더 개인주의로 갈 것이다.
동의, 동감합니다~:) 추가로, 극단적 개인주의자는 일순간, 상황에 따라 이기주의로 변모할 수도 있거나 사실 구분이 애매할때도 있죠.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이 늘어난다면 공익적 가치, 도덕, 윤리 등이 훼손될 수 있고요. 어찌됐건 이러한 가치들이 파괴된다면 돌고돌아 개인의 삶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겠지요. 지금 한국이 딱 그런것같습니다. 뭐든 중용 중도가 중요한듯요. 애초에 근본적으로 인간이든 뭐든 존재 자체가 상호의존적이지 않거나 인과법칙에서 벗어나있는건 없으니까요. 특히 인간은 극도로 사회적인 동물이고요.
니체가 인간은 고독해야 하지만 너무 고독하기만 하면 안된다고 한 것이 생각나요. 혼자서 나만의 가치를 세우고 능독적인 자세를 통해 허무를 극복할 수도 있지만, 진정으로 만날 수 있는 벗, 가족을 만남으로써 허무흘 극복하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내면의 고독을 언제나 가지고 있어야 해요. 주변의 사람, 가족에게 허무를 극복하는 데 있어 유일한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면 가족으로부터 나의 가치가 좌절되었을 때 방황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개인주의와 허무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항상 정체성과 목표에 대한 허무를 느낄때마다 확실하지 않은 미래와 아직까지 확고한 삶에 목표가 없음에 나에게 막막함을 느끼며 그것이 온전히 나의 잘못인 것 같은 기분을 느꼈는데, 본인이 본인 자신에게 강하고 확고한 방향성과 믿음, 목표를 제시하고 그것을 따르는 삶을 살 자신이 없으며 자신이 그러한 상태에 머물러 앞으로의 방향성을 찾지 못해 허무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라면 개인주의적 사상을 버리고 사회에서 흔히 제시하고 추구하는 목표를 따르는 게 오히려 허무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 될수도 있을 것 같네요. 이 영상을 보고 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많이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고마워요 충코님
마지막 영상 끝 단에서 수동적 허무주의에 빠지신 분들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셨던 것이 흥미롭네요. 개인주의적 삶에서 수동적 허무주의에 빠지신 분들이 놓치시는 사람 간의 관계를 중요하다고 생각하도록 독려하시는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니체의 능동적 허무주의에 대해서, 특히 현대사회의 한국에서만큼은 청소년기 학생 시절에 의무적으로 받게 되는 의무 교육에 의해 단일한 가치를 추구하도록 몰아붙이는 환경 속에서 자신의 내면의 가치를 이루어 갈 수 있는 환경이 아닌 만큼 우리는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자신만의 가치를 일구어 낼 수 없는 수동적 허무주의로 빠지는 확률이 큰 것 같습니다. 저도 의무 교육을 받고 자란 평범한 한국인으로서 적지 않은 삶을 지내오면서 허무주의적 가치관으로 점점 빠지게 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단발적인 쾌락에 빠지게 되어 삶의 고통을 회피하게 되는 수동적 허무주의에 빠지고 있습니다. 니체가 말하는 위버맨쉬가 되는 길은 정말 힘들고 고달픈 길인 것 같습니다. 저만의 가치를 가지고 그것을 넘어가도록 추구하는 삶이란 이미 학습에 의해 내재된 내면의 무의식이 저만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을 거부하고 회피하는 길로 안내합니다. 왜냐하면, 충코님이 끝내 말씀하고자 하셨던 사람 간의 관계로부터 삶의 원동력을 얻으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에서 사람 간의 관계의 가치를 깊게 들어간다면 사람 간의 관계는 사회와의 관계로 나아가고 사회와의 관계를 추구하게 되면서, 결국 사회가 가진 가치를 추구하게 되어 나만의 가치가 아닌 '사회가 필요한 가치' 가 중요해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도 결국 치열한 사회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저는 사회와의 관계와 가치를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수동적 허무주의에서 사람 간의 관계를 생각하며 원동력을 얻으라는 말은 조건적으로 능동적 허무주의와 비슷한 관점을 가진 자신만의 가치를 추구하는 소수의 사람들과 관계 하면서 살아가라는 말이 아닌가 싶네요. 하지만 그러기엔 현대사회의 환경을 생각한다면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뭘 위해서 살아야 할까요...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인간은 결국 혼자다. 사회속의 나와 개인으로 있는 공백에서 균형을 잡는게 필요 하지만 그러기에 세상이 너무 시끄럽고 위험하죠 언제든 누구든 어떤 이유에서든 내가 세워놓은 틀에 도전하니까 그게 피곤하니 더욱더 소극적 허무주의가 동반된 개인이고 싶어 지는게 함정 어설픈 인간찬가로 점을 선으로 잇는 이상론 보다 좀 더 개인이 지닌 틀을 존중 받은채 살고 싶습니다. 돈,돈,돈 비교하고 헐뜯으며 자신의 우월함을 과신하는 사람이 다수이기에 그게 없으면 사실상 노예 악착같은 속에 자아를 싫어 버리거나 극심한 허무에 빠져 놓아 버리는 사람들을 보면 솔직히 삶의 방향을 어디서 잡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용기로 광대가 되느냐 허무로 방관자가 되느냐 중간은 없다는 생각 뚜렷한 맥락 없이 적어 봅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Man führt sein Leben um den Sinn zu treffen. Alles im Leben endet in jeder Zeit. Die werden am Ende alle sinnlos. Die Sachen die unser Leben sinnvoll machen, ist unsere Familie, Freunde und die Menschen um uns. 결국 우리 삶을 의미있게 해 주는 건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가족, 친구 그리고 주변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제가 항상 고뇌해왔던 주제네요...저는 제가 개인주의자이고 허무주의기자기도 했지만 그냥 이건 개별적인 저만의 특별한 성향인줄알았는데 알고보니 두개의 성향이 연관이 되어 있었네요. 이 이치를 깨우쳐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개인주의를 깨고싶지않지만 허무주의는 버리고 싶은데 특별한 해결책은 없을 까요?
말씀 잘 들었습니다. 유럽 역사에 있어서 개신교와 개인주의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 대해 동의합니다. 한편으로 우리나라의 개신교도 그러한지에는 의문이 좀 있습니다. 개인주의보다는 집단주의 같은 느낌이거든요. 우리나라는 아직 개인주의가 잘 자리잡지 않은 상태가 아닌가 싶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옛 문화를 파괴하고 개인주의로 가고 있지만, 개인주의도 그것에 맞는 질서가 필요한 것인데, 이성적 질서가 있어 사회가 조직되어 개인주의가 건강하게 발달할 수 있는 것인데, 아직 그 질서가 잘 발달하지 못하고, 혼돈의 시대를 보내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 혼돈 속에서 한편으로는 우울과 혐오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또다른 양상의 집단주의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리고 니체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의견이 있습니다. 니체를 요약할 때 능동적 허무주의란 말은 제가 느끼기에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뭐 제 주관적인 판단이고, 주관적인 직관이지만요. 저는 니체가 오히려 낭만주의자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생을 긍정하는 철학자'라고 생각합니다. '생성철학'이라고도 생각하고요. 건강과 발전을 구하는 철학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니체를 흔히 망치의 철학자라면서, 온갖 것들을 다 때려부수고 다니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실제로 텍스트의 상당부분이 그런 말들이고, 그런 면에서 허무주의란 말이 니체와 결부되기 쉬운 건 이해하지만, 그러한 파괴는 수단이었던 거라 생각합니다. 파괴해야 할 게 많았던 것이고, 파괴는 낭만을 위한 수단이었던 거라 생각합니다. 이에 '능동적'이란 말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하고요. 능동적이라고 허무주의를 수식할 경우, 파괴를 능동적으로 한다는 의미가 되어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수단에 불과한 것을 ~주의라 붙이는 것은 좀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마치 돌밭에서 돌을 뽑아 씨앗 뿌리고 농사를 지으려는 사람을 보고, 농부라 부르지 않고, 능동적인 광부라 부를 때의 부적절함 같은 거라 봅니다. 주관적인 견해입니다. 니체는 젊어서 을 지을 때부터 낭만주의자였다고 생각합니다. 아폴론과 어울러진 디오니소스는 생성적 낭만을 가리키는 것이지, 파괴를 가리키는게 아니라 생각합니다.
'허무'라는 단어가 싫은 건 고독함에서 오는 고통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고통이 너무 싫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 고통이 있어서 지금의 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고독을 비롯한 다른 아픔 또한 살아있는 한 반드시 겪게 되는 것 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이기 위해서 이러한 고통은 필수적인 요소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은 생에 동반되는 고통을 마주할 때 시작되는 게 아닐까 하는 게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은 집단주의가 강한데도 허무를 느끼는데 말입니다. 직장에 충성해서 자식을 먹여살리지만 결국 자신의 삶의 의미를 잊어버리고 말지요. 오히려 개인주의가 삶의 의미를 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연대를 이뤄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내 아이의 위험이 떠올라 남의 자식을 지키려고 위험을 무릎쓰지요. 오히려 이기주의가 허무와 연관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보이네요
오늘 학교 끝나고 걸어오는 길에 마침 정말 비슷한 생각을 했었습니다. 저는 종종 타인과의 관계에서 상처 받거나, 사랑 받지 못할 까봐 불안해하곤 하는데 최근에, 제가 살아있는한 저 스스로에게 있어서는 꼭 저의 편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타인이 저에 대해 평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좀 가시더라구요. 그런데 문득 또 다른 두려움이 들었습니다. 만약 제 생각이 틀린 생각인데, 항상 저의 편만 들면 저 만의 생각에 갇혀서 고립된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어떤 삶을 살아가야 제가 원하는 삶일지 좀 더 고민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완벽한 것은 없고, 무엇이든 채워지는게 있으면 비워지는게 있다는 생각이듭니다. 그 와중에 저에게 맞는 균형을 찾고 싶습니다.
저는 소극적 허무주의를 하다가 적극적 허무주의를 하다가 개인주의를 버릴까 생각이 움직이고있는데 혼란스럽네요.. 적극적허무주의로 살아도 이게 맞는것같긴한데 말그대로 허무하고 공허하네요 알맹이가 빠진 느낌 무리속에 있을때 어쩔수없이 가면을 쓰는데 이것이 굉장히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네요 그럼에도 개인주의 못버리겠는건 이렇게 하는게 좋은점이 있기 때문이죠 하.. 하지만 단점도 크고 이상의 상태가 되는건 어렵네요
인간의 삶이 많은 인간들이 생각하듯이 “어떤 큰 의미나 이유가 없다는 것” 을 인식하고 나면 자유로우면서도 허무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허무한 상황에 허무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긍정적인것도 부정적인 것도 아닌 사실에 대한 개인의 정직한 감정이 아닐까요. 우울한 상황에 우울한 감정을 느끼는 게 병이 아니라 정상인인것처럼요. 그런 후에 그 공허한 공간에 자신만의 의미와 즐거움, 사랑하는 대상들을 발견하고 채워넣는다면 인생이 어느정도 살만한것이고 죽을수도 없는 커다란 빈 공간안에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는 자신의 목소리밖에 들을 수 없다면 괴로운 삶이 될 것 같아요.
결국은 한 인간이 살면서 겪게 되는 각자 위치에서의 한계상황을 각자마다 해석하는 자유능력의 다름과 차이에 따라 허무든 개인이든 공동체든 이념화 사유화하게 되는 것이죠 즉 나뭇가지로 불지펴 난방을 하냐 석탄을 활용해 전기를 생산하냐 처럼 온기가 필요한데 그 온기를 소유할 사유 수준이 중요한거죠 좀 더 춥냐 덜 춥냐 따뜻하냐... 등등 사유수준의 능력 여유.... 그 차이는 결국 뭘까요? 아마 궁극은 어리석음과 게으름의 변주곡일겁니다
죽음과 소멸을 전제하고 인생을 보면 인생은 허무합니다. 그러나 창조 주의 존재, 신의 자비와 용서, 자신의 부활과 영생을 전제하고 인생을 보면, 인생은 살아야 할 이유와 목적 , 인생의 가치와 의미가 보입니다. 전제한다는 것은 그렇게 믿고 세상을 본다는 말이지요 .어떻게 그렇게 믿을 수 있는가?는 또 다른 주제입니다.
허무의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것, 인생은 한 번 뿐이라는 것, 지구도, 태양도, 우주도 결국 소멸한다는 것, 인생이 반복될 수 없고, 세상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은 모든 것을 무가치하게 만듭니다. 영원 불변한 가치평가 기준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판단을 할 수 있을까요? 뭐 .... 작은 선택 하나하나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아보고자 열심히 고군분투 하는게 개인이겠죠. 종교, 문학 이런 것들이 탄생한 이유도 무의미한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시도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과학 조차도 '불변의 진리' 를 찾는 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을거 같네요. 적극적 허무주의도 결국 '나의 가치판단 기준'을 '내'가 만든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적어도 스스로는 가치있는 삶을 산다고 생각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유용하다고 생각 됩니다만 근본적으로는 종교에 귀의하는 것과 큰 차이는 없어 보입니다. 어쩌면 허무는 자의식, 도달할 수 없는 목표, 물질적/시간적 여유, 지나치게 긴 수명 때문에 발생한 정신적 문제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나라는 존재가 나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얻을 수 있는 것을 추구하고, 건강하고 소박하게 살면 삶이 허무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또 '이게 내가 추구하는 삶인가?' 라는 의문을 가지는 순간 다시 삶이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영원히 허무 속에서 의미를 찾고자 노력할 수 밖에 없는거 같기도 합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수동적 허무에 빠진사람이 타인과의 연결에서 길을 찾는건 또다른 의존이 아닐까요? 너무 내성적인 사람이 성격고친다고 해병대지원해서 일부 해병대의 배타적 우월감을 내면에 잔뜩 채워온 사람을 보고 느낀거거든요 타인과의 연결에 몰두하면 사이비나 파시즘에 빠지기 쉬운 심리상태이기도 합니다 결국 잘 헤쳐나가는 사람은 어떤 사상이든 그럭저럭 살아나가고 안 되는 사람은.. 아마 잘 안 될겁니다
최근의 고민이 절대적인 삶의 도덕법칙, 삶의 기준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한계 안에서 이성적으로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절대적인 어떤 것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가장 주관적인 것을 따르는, 내면의 목소리에 따라 사는 삶이 정답이 되리라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을 수용하게 되면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문장을 절대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되는 것이고 따라서 모순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원래 인생에는 의미가 없는데 무언가 본질적 의미가 있을거라 믿으니 이 괴리에서 허무감이 발생한다고 생각함. 우리가 하는 모든 수고와 노고가 우리가 흙으로 돌아가는 순간 한줌의 재처럼, 푸른 연기처럼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인데 이런 불가해한 인생에 인위적으로 어떤 규칙성이나 인과성을 부여하려다 보니 의미를 찾게되고 실상 현실세계에서 이 의미가 붕괴되어가는 경험을 하기 때문에 허무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고 봄. 인과응보란 나름의 규칙을 세우지만 현실세계에서 인과응보란 미미하게 존재할 뿐이고 실상은 힘을 가진자가 정의인 세상임. 공평을 떠들지만 세상의 법칙상 공평함은 존재할수가 없음. 자연부터가 온갖 불가해한 질서가 지배하고 있음. 인간의 삶이란 해독이 불가능함. 이 말은 왜 이런일이 일어나는지 설명할 수도 없고 이해할수도 없음. 물질세계의 거대한 우연과 난수속에서 존재계로 태어났다 다시 물질계로 사라지는 것 뿐인데 인간이 의식을 지닌 생물이다 보니 이 현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을 가하려고 함. 그러다보니 철학이 생기고 종교가 생겨나지만 그 끝은 거대한 허공과 무 그 자체임. 그 무엇도 밝혀질수가 없음. 철학의 완성은 우리가 그 무엇도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아내는 것이며 종교의 완성은 우리가 그 무엇도 얻어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임.
매킨타이어가 니체를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자라고 비판한 대목이 떠오르네요. 저도 조금 더 어릴 적에는 샌델 책을 읽으며, 허 롤즈가 완성해놓은 정치철학을 이런 식으로 공격한다고? 싶었으나 갈수록 그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의 세태를 보노라면 더욱 그렇구요. 오늘날 개인주의란 극복해야할 그 무엇이 아닌가? 참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뒤에 보이는 나뭇가지 같은거 아닐까요??? 겨울에 다 떨어진 나무를 보고도 3.4개월뒤 봄이 온다면 다시 봉오리를 맺을것이고 다시2개월 뒤에는 개화할것임을 고대하며 즐기는 사람들과 어차피 계절이 반복되는것을 알기에 그저 내 감성과 잘어울리는 지금 겨울의 바짝마른 나뭇가지가 주는 풍경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저는 생각하네요 ㅋㅋㅋ 물론 전 후자입니다 ㅋㅋㅋ
종교, 철학, 과학, 인문학 등 많은 공부들은 절대 지금 당장의 괴로움을 해결 못 합니다 잠깐의 위안을 주는 땜빵에 불과합니다 최선으로 노력하고 결과는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 말고는 아예 방법이 없습니다 이게 팩트입니다 그저 하루를 열심히 살면 그걸로 족합니다 먹고 자고 싸고를 수월히 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삶임을 인지하며 살아갑시다 이것 쉽지 않습니다 허무.. 당장 내 새끼들이 먹을 것이 없어 죽어가는데 병이 와서 몸이 아파 죽겠는데 돈을 못 벌면 가족이 해체가 되게 생겼는데 허무라는 생각이 끼어들 새가 없습니다 허무는 좋고 나쁨이 아닙니다 허무가 사람을 성장시키기도 하고 시련을 주기도 합니다 잘 이용하고, 사용하면 되는 것입니다 허무하다는 생각이 허무하게 만듭니다 허무를 쉼, 휴식, 도약의 발판이라는 생각으로 바꾸어버리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허무라는 생각은 진짜가 아닙니다 생각에 놀아나지 맙시다